한국연합회

2018-0919. 354복합지구 전,의장단 모임 위촉장 수여

조흥식 2023. 8. 13. 22:13

2018-0919. 354복합지구 전,의장단 모임 위촉장 수여(앰버서더호텔)

풍패지관(豊沛之館) 주지번과 표옹 송영구

 

 

 

풍패지관(豊沛之館) 주지번과 표옹 송영구

@선비들의 인연의 표본이 풍패지관(豊沛之館)이다

.고대 중국 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이 풍패이다

.풍패의 객사로써 전주 李氏의 발원을 뜻하는 존칭어적 용어이다

.태조 이성계의 고향은 하얼빈 부근이지만...

 

@400년전,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전주 객사에 편액을 쓴다

.주지번의 고향은 南京이며, 나라 초기(주원장)에 도읍이었다

.독학으로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나라의 대표적인 학자로써 +書士에 뛰어났으며,

.조맹부(송나라 4대 서예가)의 서체와 닮았다

.石竹을 잘 그렸는데 소동파(송나라)의 화풍과 비슷하였다

 

@1606(선조6),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을 방문한다

.선조가 포구까지 행차하여 영접할 정도로 대접이 극진하였다

.조정에서 왜구문제, 詩歌, 토론을 하였으나 선물은 사양하였다

 

@표옹 송영구(진천 송씨)를 찾아 전주(호남)을 방문하지만,

.송영구를 만나지 못하고, 하룻밤을 잤던 객사의 편액을 남긴다

.1593, 송영구(38)가 송나라에 사신단으로 갔을때 만난다

.북경에서 장작을 패어 학비를 벌어 공부하는 주지번의

뛰어난 서체와 장자사상에 능통함을 보고 감탄한다

.송영구는 휴대한 전재산을 털어 돈+고전()을 모두 넘겨주지요

 

@주지번은 2년후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10년후 조선에 온것이다

.허균과 친분이 많았고, 허난허설(허균의 누이)를 가져갔지요

.주지번은 비단으로 깔은 비단은 절대로 밟지않는 겸손한 선비였다

 

@송영구를 만나지 못한채 객사에서 말(한필)+하인을 지원받아,

.익산 왕궁(전북)을 방문하는데, 그곳은 송영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당시 송영구는 좌천되어 평양부근에 말단관리로 근무중이었으니까...

.주지번이 명나라로 떠난후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지요

.송영구의 조상을 모신 집(사당)의 편액도 남긴다

망모당”...조상을 바라보며 추모한다...는 의미지요

주지번은 가져왔던 서책도 모두 기념으로 남기고 떠났다...

.풍수학에 조예가 깊어 송영구의 묘자리도 봐주고 조선을 떠나지요

 

@1년후, 낙향했던 송영구는 관직에 복직한다

.경상도 관찰사를 마치고 한양 귀경시 백성들은 선물을 준비하지만,

.선물을 사양하고, 심지어 부채까지 강에 버린 청렴한 선비였다

 

@송영구는 사신으로 두 번째 명나라(북경)에 갔는때, 주지번과 해후한다

.감격의 두번째 만남, 20년만에 은혜에 보답을 하게된다

.책을 선물로 받고, 머나먼 이별을 아쉬워하며 귀국하자 시련이 닥친다

.인목대비 폐비논쟁을 비방하는 상소를 올린 송영구,이항복은 파직되어

.1620, 동대문밖에서 생을 마감하지요(65)

.송영구는 익산시 왕궁면에 주지번이 정해준 곳에서 잠들었다

 

@주지번의 생가는 남경 도심에 폐허로 방치되어있다(남경시 사적)

.송영구와 우연한 만남~은혜를 보답키 위해 전주를 방문하였고,

.만남이 불발되자, 고향을 찾아가 편액을 남기고 묘자리도 정해준다

.두번째 만남에서 은혜에 보답하고, 영원히 헤어진다

 

@조선 사신단 역관 홍성헌의 우정도 매우 유명하다

.중국 사신단으로써 옛전에 도와줬던 여인이 있었는데,

.보은(報恩)이라 손수 수를 놓은 비단을 선물로 받을 정도였다

.먼훗날 담판상대가 그여인의 夫君(예부상서)이 되어 외교에 성공한다

.조선 왕실의 200년의 숙원이 해결되었지만,

.청나라 개국이후 조선에 협조한 죄로 처벌이 두려워

.한국으로 귀화하여, 현재 산청에 해주 (18대손)가 살고있다

 

@전설같은, 조건없이 베푼 은혜는 반드시 큰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을 베풀기란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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