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7. 제1기 라이온스 아카데미 5강(김경선 교수)
2020-1007. 제1기 라이온스 아카데미 5강(김경선 교수)
의령(곽재우)~창녕~달성(곽재우, 신돈)
의령(곽재우)~창녕~달성(곽재우, 신돈)
1.의병장 곽재우(망우당, 1552년, 의령)
@주자학 스승(남명 조식)의 외손녀사위
.父親 곽월(의주목사, 황해 관찰사)~현풍곽씨(母親은 진주강씨)
.부인 상산김씨는 김언필(부제학)의 손녀~만호 김행(남명의 사위)의 딸
.과거에 합격무효(34세), 임금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때문에 무효처리
2.임진왜란~정유재란
@곽재우 紅衣將軍(충의사)
.임진왜란(1592,4,13)에 부산포에 왜구 20만명이 상륙하였다
.10일후, 의령(현, 고수)에서 민간유격대(의병)가 창설된다(40세)
.天降紅衣大將軍(하늘에서 내린 붉은옷의 장수)은 대문앞 정자나무에 북을 메달아 치면서 의병을 모집했다
.최초 13명(집안 하인)이 의병 원조이다
.대부호 매형(허언심)이 적극 협조하여 자금을 조달한다
.심대승은 17장령으로 참여한다
@낙동강에서 왜적전함 3척을 격침(5,4)하였고
.옥포해전 전날에는(5,6) 왜적전함 11척을 궤멸시켰다
.최초 의병은 13명이었으나, 전과이후 2000명으로 증강되었다
(“공을 세워 상을 받지말라...왜군의 참수(귀)를 금지하라”)
.의령 정진암 전투에서 왜군 2만명을 저지하였다(6,6)
(왜적장 소조천융경은 함안을 점령후, 안국사 혜경/왜승을 시켜
자칭 전라도 감사라며, 상륙지점 정진암을 정찰후 진창을 피하여 깃발을 설치했으나,
홍의장군은 밤중에 깃발은 진창으로 옮겨, 다음날 상륙왜군을 무찔렀다.
.紅衣將軍(10명)과 힌말이 여기저기 나타나 왜군들이 질겁하여 도주
.전쟁후에 성부목사겸 조방장으로 승진되고, 의병은 관병~귀농시킨다
@丁酉再亂(정유재란 1597)
.경상 좌방어사로써 화양사성 전투(창녕)에서 승리하였다
3.낙향 名言 “고양이는 쥐만 잡으면, 할 일이 없다...”
@사림파 학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전 재산을 투입하여 식량, 무기구입)
.관군과 합동작전으로 승리
.스승(남명 조식)의 귀감을 받았다(칼+방울: 義를 중시)
.의병장: 전라도(조훈), 충청도(김천일), 함경도(정몽구)...
@화왕산 전투후 계모 허씨가 죽자, 3년상을 치르고 관직을 거절하자
.괘씸죄로 2년간 유배된후, 창녕 비슬산에 망우정을 짓고 지낸다
(인생후반 24년 동안, 29회 관직천거에 14회 사양한다)
.망우정에서 羽化登仙(우화등선, 1617 광해군, 65세)
.1709년(숙종) 충익공시호(병조판서, 지의금부사 추존)을 받는다
.의령 충익사(忠翼寺)에는 17명의 위패가 모셔있다
.훗날, 의령 낙동강변 곽재우기념 義兵樓를 세웠다
@달성 설티는 삼동에 눈을 헤치고 길을 만든 곳이다
.승호절벽은 물이 깊어 한국전쟁에 북괴군 1개대대가 익사했다
.화원 사문진 나루: 소금, 식량수송
4.孝 思想(현풍곽씨)
@현풍곽씨의 孝思想(할매 곰탕)
.현풍곽씨 가문의 효성은 유명하다(이향견문록, 19c, 유재건)
.병든 老母를 위하여 어린 아들을 삶았는데, 산삼이었다는 전설이다
.옆집 아줌마가 잠든 아들을 업고온게 아닌가?
.가마솥을 열어보니, 산삼이 누워있었다
@아들이 들고온 회초리(대나무)가 뜨끈뜨끈하였다
.부친은 “왜 회초리가 뜨겁느냐?” 고함을 친다
.아들은 “아버지손이 차가울까봐, 화로옆에 따스하게 해놨습니다”
.그날이후, 부친은 회초리를 들지않았다
신돈(고려말 정치개혁가, 공민왕)
1.신돈(요승? 간승? 개혁가? 창녕 영산출생~1371)
@모친은 옥천사의 시종 노비출신으로, 신돈이 처형된 후 폐사된다
.고려 충렬왕시대 “노비는 모친의 혈통을 따른다” 규정 때문에
.일찍 출가하여 천한 신분으로 “글을 한자도 모르는 중”이라 했다
.신돈(고려말 승려)의 모친 묘소가 달성 필봉에 있다
.신돈이 죽은후, 모친의 묘를 파내고 연못으로 만들었다
.신돈은 “청한거사, 광명편조: 무한한 빛이 널리 비친다”
@정치가 변신
.김원명의 소개로 공민왕(1358)과 인연이 시작되어, 길거리에서 무예를 겨루면서 우정을 쌓는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산통으로 죽은뒤, 정치적 회의감으로 정신적인 어려움속에 혜성같이 등용되었다
.신돈은 미천한 출신으로 일가친척도 없고, 눈치볼게 없었다
.인순지폐(因循之弊): 머뭇거려 고치지 않으려는 폐단을 수정한다
.1365년, 정치개혁을 다행(친원파를 좌천시키다, 최영 장군은 경주 정치책임자로 인사조치)
.전대미문의 농지개혁(토지환수, 노비정책)을 수행하다(1366)
.전민변정도감 설치(임시 개혁추진기관, 포고령 하달)
(강제로 빼앗긴 토지를 환수하여 되돌려주고, 양민들의 강제 노비를 삼은 부패권력자를 처벌하는 제도)
.원나라 간섭기에 부자의 토지확장, 노비를 증가시켜 농사에 투입하였다
.15년간 생각했던 田民문제(토지, 노비)가 최우선적 개혁과제였다
.자진신고하는 귀족들은 형량을 감경하여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평가는 서로 달랐다(농민: 성인이 출현했다...극찬하였다)
.귀족세력: 반항, 신진사대부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중놈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비난(타락한 음해, 뇌물, 추문)
.1371년, 공민왕의 배반으로 수원으로 유배후 사사되었다
.결국 공민왕의 개혁은 신돈의 제거로 중단(신돈이 왕같은 지위, 행세)
“신돈이 왕이 되려고 한다”며 밀고가 많았다
*漢경제는 조착을 죽여 개혁에 실패하고, 크게 후회하였다
문호장(3대 단오제)
4. 문호장(창녕 영산면 교리...단오절)
@전설의 인물(문호장)
(경상도관찰사(순무)가 길가에 있던 점심 광주리를 밟았는데,
문호장이 도술로 관찰사가 타고온 말굽이 떨어지지 않도록 도술부려 관찰사는 문호장을 체포하여 고문을 하였다
뭉둥이가 부러지고, 화살이 하늘로 비껴가고, 총을 쏘자 총알대신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결국 문호장을 자인(경산)으로 압송하는데, 옥에 갖힌 문호장이 먼저 자인에 도착했던 것이다
자신이 천명이 다된것을 직감하고 소원(유언)을 남긴다
“자식이 없으므로 죽은후 매월 단오절에 제사를 지내달라”
“자신의 겨드랑이 깃털을 건드리면 죽는다”고 말하였다
포졸이 손을 대자 절명해버렸다
문호장을 모신 사당(상봉당)에는 부인, 딸, 첩의 딸을 모셨다
제사를 거르면 흉년과 가뭄이 들며 천재지변이 있었다
문호장의 말을 메던 나무를 베었을때(일제), 나무부처가 나왔다
일본인이 약탈후 꿈속에서 “즉각 원위치하”라고 독촉하여 반납하여 문호장 사당으로 모셨다
@문호장(350년전)은 평민의 원한을 풀어주는 神人(신앙의 대상)
.문호장군놀이, 영산쇠머리대기, 영산줄다리기...
.영산입구 돌다리 만년교는 조선말기(석수 백진기)에 세웠다
.입구 비석 “十三歲書”의 유래는 신통한 필력의 13세 소년의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
“만년교라 불러라”
소년은 밤새도록 세글자를 쓴것이다
.영산에서 3.1운동이 경남에서 가장먼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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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