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1.제34차 지구연차대회
2016-0521.제34차 지구연차대회(권동선총재,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겨드랑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
겨드랑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
@유희(柳僖 1773~1837), 영남으로 가는 박백온을 전송하는 서문
옛날에 겨드랑이 냄새가 심한 사람이 있었다.
온 집안사람들이 그 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냄새가 심한 사람도 편안히 지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을에는 머물 곳이 없었다.
그래서 양식을 싸들고 산천을 두루 유람하였다.
하루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함께 다니게 되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은 자주 술과 밥을 대접하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참 후, 그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고약한 냄새가 나서 집안사람들도 마을 사람들도 견디지 못했네.
그런데 자네는 나를 버리지 않고 이렇게까지 하니,
혹시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잊어버려서 그런 것인가?”
그러자 길에서 만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냄새가 좋아서라네.
자네에게 냄새가 없으면 볼 게 뭐가 있겠는가.”
@사람이 땀을 흘리는 것은 땀샘의 작용이다.
땀샘에는 두 종류가 있다.
에크린땀샘(eccrine sweat gland)과 아포크린땀샘(apocrine sweat gland)
@에크린땀샘은 온몸에 퍼져 있으며, 체온 조절을 담당한다.
격한 운동으로 흐르는 땀은 바로 이 에크린땀샘의 작용이다.
이 땀은 그다지 냄새가 심하지 않다.
@아포크린땀샘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집중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땀은 독특한 냄새가 난다.
박테리아가 땀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냄새라고 한다.
흔히 액취증(腋臭症)이라고 하는 고약한 땀 냄새가 바로 이것이다.
@액취증에 대한 기록은 동의보감을 비롯한 전통 의학서에도 보인다.
과거에는 액취증을 ‘호취(狐臭)’, 여우 냄새라고 하였다.
여우는 냄새가 심한 동물이다.
체취를 이용하여 영역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드랑이 땀 냄새를 여우의 체취에 비유하여 호취라고 한 것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감수(甘遂) 가루를 묻힌 돼지고기를 겨드랑이에 끼고,
감초 달인 물을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겨드랑이 땀 냄새가 심한 남자(가칭 ‘겨땀남’)는
그 방법을 몰랐는지 아니면 알았지만 효험이 없었는지,
가족과 이웃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다.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오른 겨땀남은 공교롭게도
자신의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런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과학적으로는 가능하다.
본디 아포크린땀샘의 땀 냄새는 이성을 유혹하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이성의 마음을 훔치는 신비의 물질 ‘페로몬’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람이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만 털이 무성한 것도
이 냄새를 잡아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우의 겨드랑이 털만 모아 호백구(狐白裘)라는 털옷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허풍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우의 겨드랑이 털과 달리 사람의 겨드랑이 털은 쓸모가 없지만,
이성을 유혹하는 냄새를 풍기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아포크린땀샘의 땀 냄새는 불특정 다수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나의 겨드랑이 냄새는 어떤 사람에게는 악취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향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나의 겨드랑이 냄새를 향기롭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리라.
겨땀남은 우연히 천생연분과 조우한 것이다!
@유희(柳僖 1773~1837), 영남으로 가는 박백온을 전송하는 서문
유희는 박백온이라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아, 나는 몹시 추한 사람이다.
남의 눈과 코에 거슬리는 것이 어찌 큰 혹이나 겨드랑이 냄새 정도에
그치겠는가. 가까운 친척부터 온 세상 사람에 이르기까지 추하다며
버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박백온은 나를 지초나 난초처럼 사랑하며 차마 멀리 떠나지못한다
그대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지만 그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어찌 저 두 사람과 다르겠는가.
공자는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소와 말, 개와 돼지는 같은 종류의 암수를 유혹할 뿐,
서시(西施)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그렇다면 그대의 마음 또한 몹시 서글프구나.
@유희는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싫어한다.
그런데 그대만은 나를 좋아하니,
겨드랑이 땀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과 다름없다.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이치를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를 좋아하는 그대 역시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 슬프구나.”
@박백온은 박기순(朴基淳 1776~1806)이다.
유희가 지은 행장에 따르면, 박기순이 평생 어울린 사람은
종형 박우순(朴禹淳), 윤흡(尹潝), 그리고 유희 세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자유분방한 행동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를 두고 미쳤다고 손가락질했고,
그도 자기가 미쳤다고 인정하였다.
박기순이 자신의 호를 ‘자소광부(自笑狂夫)’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미쳤다는 것은 세상의 관습과 상식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상은 관습과 상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미친 사람은 세상에서 버림받기 마련이다.
오직 미친 사람만이 미친 사람을 좋아하는 법,
유희와 박기순은 모두 세상에서 버림받은 미친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알아주는 지기(知己)가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거창한 명분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는 한 사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의 존재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릴지라도,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