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복합지구

2017-1102.총장단회 354-B(경기남부) 방문

조흥식 2023. 6. 1. 11:49

2017-1102.총장단회 354-B(경기남부) 방문(강춘모 총재)

가을밤의 단상

 

 

 

 

가을밤의 단상

@목만중(睦萬中 1727~1810), 여와집(餘窩集)

선친이 젊은 시절에 봉은사(奉恩寺)에 자주 왕래하며 공부하였는데

절의 누각 동쪽 두번째 들보의 가장 높은 곳에 성명이 기록되어 있고 아래에 임진년 중추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 헤아려보니 72년 전인데도 묵적이 완연하기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며 쓰다.

 

예를 배우던 뜰 앞에서 선친 말씀 직접 들으니

봉은사에 자주 가서 공부했노라 하시었네

부모님 여의고 홀로 남은 이 목숨 머리가 온통 샌 채

바로 그곳에서 지는 해를 보노라니 눈물이 수건을 적신다

당시의 일 묻고자 해도 연로한 승려가 없고

그저 임진년이라 쓰인 유묵만 남아 있구나

머뭇머뭇 동쪽 문 기둥을 자꾸 배회하노라니

오래된 나무에서 서글픈 바람이 불어오누나

 

@위는 목만중이 58세가 되던 1784년에 봉은사를 방문하여 지은 시이다.

저자는 어릴 적에 부친 목조우(睦祖禹 1693~1756)에게 교육받으며

부친이 젊은 시절 봉은사에서 공부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기억은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저자를 그 공간으로 이끈다.

 

사찰 경내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28년 전에 세상을 떠난 선친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본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당시 이곳의 선친을,

저자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젊은 시절 선친의 모습으로 치환해 보지만 당년 선친의 모습은 아니다.

당년 선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혹 있을까 싶어 찾아보지만

칠십여 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선친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저자에게 72년 전 선친이 남긴 필적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성명과 기록 시기에 대한 내용에 불과하지만,

꿈에 그리던 이름과 익숙한 필적에 반가운 마음이 왈칵 쏟아진다.

그 완연한 묵적을 보니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선친의 모습이 불현 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듯한 착각마저 인다.

임진년 중추 어느 날의 환한 달빛과 그 아래에서 낭랑하게 글을 읽는 서생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당시 이곳의 선친뿐만 아니라, 선친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해주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차마 발길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중한 존재를 잃게 되면 처음에는 그와 공유했던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슬퍼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가 점점 시간이 흘러 그 공간에 다른 기억들이 차면

어느덧 그곳에서의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쉽사리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가 전부였던 공간에 이제는 그가 없다.

소중했던 사람이기에 그가 떠오르는 것도 고통이고 그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고통이다.

 

이제는 희미한 그의 모습을 떠올리다

어릴 적 어렴풋한 기억의 한 자락을 뒤적여 봉은사에 간 것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봉은사에는 온통 선친만 존재했고 선친의 묵적이 있기에 반가웠다.

허나 눈 앞에 있는 것은 결국 한 그루 고목과 저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부는 처연한 바람 한 줄기뿐이었다.

귀뚜라미가 심회를 돕는 가을밤에 옛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감회에 젖어 몇 줄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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