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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C지구(서울)

2015-0209.제2지역 합동월례회 준비회의

by 조흥식 2023. 3. 6.

2015-0209.2지역 합동월례회 준비회의(이현주 지역부총재)

서촌의 추억

 

 

 

서촌의 추억

@유본학(柳本學 1770~1842)

계해년(1803) 310, 생원 한대연을 찾아갔다.

대과에 낙방한 대연은 하는일 없이 지내면서도

나처럼 밖에 나가 놀지 못하였다.

함께 백문(白門 서대문) 성곽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기로 했다.

하지만 북산(北山 인왕산)의 육각봉까지 갈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육각봉(六角峰)은 인왕산 필운대 옆에 있는 고개로 육각현으로도 불린다. 현재 배화여대가 자리하고 있다

때마침 밤새 내린 비가 아침나절에 개어,

성곽을 등진 인가마다 복사꽃 살구꽃이 한창 곱게 피었고,

성 밑으로 호젓하게 이어진 오솔길은 향기로운 풀이 뒤덮었다.

따사로운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서 너무도 즐거웠다.

우리는 함께 계곡을 건너고 소나무 숲을 지나 들뜬 마음으로 신명나서

걷다 보니 어느새 육각봉에 이르렀다.

풀밭에 앉아 잠깐 쉬면서 북쪽 동네에 피어 있는 꽃을 구경했다.

그런 다음 오씨네 동산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노닌 사람 모두가 술에 취했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해 혼자 취하지 않았는데,

대연이 강권하여 억지로 석 잔이나 마신 탓에

주량이 약한 나는 더욱 크게 취하고 말았다.

이날 봄나들이에서 나보다 더 취한 사람은 없었다.

서대문 성곽부터 육각봉까지는 한양에서 꽃을 구경하기에

가장 빼어난 곳인데 오늘 모두 다 구경했다.

그렇다면 봄놀이를 두루 즐긴 것은 또 올해 만한 때가 없을 것이다.

겸재 정선 필운상화(弼雲賞花)’

 

@200여년전,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한양에 사는 선비 유본학은 집을 나섰다.

오랫동안 앓아온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과거에 낙방한 친구 한대연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인왕산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다.

친구가 살고있는 서대문 인근 성곽을 거닐며 봄나들이하고자 했을뿐이다

그런데 막상 성곽에 올라보니 복숭아, 살구꽃이 만개한 데다

날씨마저 상쾌해 성곽 나들이로 그칠 수가 없었다.

개울을 건너고 소나무 숲을 지나며 봄의 풍광을 만끽했다.

그들이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육각봉이었다.

유본학 일행은 육각봉의 풀밭에 앉아 인왕산 아랫마을을 바라보며

봄꽃을 완상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지인의 집에 들러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우울증으로 고생했던 유본학 뿐 아니라 과거에 떨어져 실의에 빠져 있던

그의 친구 한대연에게는 최고의 봄날이었다.

 

@유본학 일행이 봄나들이했던 육각봉은 백사 이항복의 집터가 있었다는

필운대와 맞닿아 있는 언덕을 말한다.

유본학의 말처럼, 인왕산 중턱에 위치한 필운대와 육각봉은 한양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데다 봄이면 복숭아, 살구, 오얏꽃이 만발해

조선시대 최고의 상춘(賞春) 코스로 꼽혔다.

*겸재 정선 필운상화(弼雲賞花)’ 당시 선비들의 필운대 봄나들이 모습

 

@번암집((중유조원기 重遊曹園記)

유본학의 한 세대 선배인 번암 채제공은 1784년 봄날 사직단,

필운대, 육각봉을 거닐며 꽃구경을 한 뒤 기록으로 남겼다.

또 유본학의 부친이자 실학자인 유득공은 친구 박제가와 함께

필운대에 올라 시를 주고받았다.

유본학의 동생 유본예가 쓴 지리서 한경지략은 필운대에

한양 사람들이 술병을 차고 와 시를 짓느라고 날마다 모여들었다며

여기에서 필운대풍월이라는 시가 나왔다고 전하고 있다.

실학자 이덕무의 한시 육각봉에서의 꽃구경’(六角峰玩花)

인왕산에 봄나들이한 선비의 하루를 잘 보여준다.

 

@유본학이 살았던 시기를 전후해서

인왕산 아래 필운대는 봄철이면 상춘객으로 크게 붐볐다.

그것은 인왕산 아래 고을의 경치가 빼어난 데다

그곳에 문인들이 대거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그즈음 경복궁 서쪽의 인왕산 아래에는 중인 출신 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시사(詩社: 한시 동아리)를 결성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갔다.

천수경과 장혼이 이끌었던 송석원시사’,

박윤묵의 서원시사가 대표적 시사로 꼽히는데,

당시 필운대 인근에서 활동한 시사는 10여 개나 됐다고 한다.

이들 시사는 여항문학이라는 시문학 장르를 유행시키며

조선 후기 중인문화를 꽃피웠다.

 

@200년전, 유본학이 걸었던 인왕산 아래 동네를 서촌이라 부른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필운동, 누하ㆍ누상동, 옥인동, 통인동, 통의동..

서촌은 최근 경복궁 북동쪽에 있는 북촌과 대비해서 생겨난 지명인데,

최근 몇 년 새 북촌과 함께 서울 명소가 되었다.

서촌이 부상하게 된 것은 경복궁, 청와대와 인접한 관계로

도시개발에서 빗겨나 서울의 옛 모습이 그나마 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성동 계곡복원, 한옥 마을 보존, 윤동주 문학관 건립 등

서울시의 문화마을 가꾸기 노력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촌의 진정한 매력은 인왕산의 풍광이나 한옥 골목보다는

유본학과 같은 옛사람들의 이야기와 수백 년간 퇴적된

마을의 역사에 있다고 할 것이다.

 

유본학의 봄나들이 길은 지금의 서대문~경교장~홍난파의 집~

한국사회과학자료원~황학정~사직단~필운대 코스와 유사하다.

지금 인왕산과 서촌에는 벚꽃,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봄꽃이 한창이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유본학의 길을 좇아 봄꽃 구경을 나서는것은 어떨까.

옛사람들의 서촌 기억을 더듬으며 걷는다면 금상첨화의 봄나들이가

될 것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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