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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C지구(서울)

2015-0706.2015-2016 지구집행부 입주식(권동선총재)

by 조흥식 2023. 3. 23.

2015-0706.2015-2016 지구집행부 입주식(권동선총재)

조선시대 관아(官衙) 안의 부군당(府君堂)

 

 

 

조선시대 관아(官衙) 안의 부군당(府君堂)

@이유원(李裕元 1814~1888), 임하필기(林下筆記) 부군당(府君堂)

우리나라 풍속에 서울안의 관부에 으레 하나의 자그마한 집을 마련하고는

여기에 지전(紙錢)을 주렁주렁 걸어놓고 부군(府君)’이라 칭하면서 서로 모여 난잡스럽게 제사를 지낸다.

새로 제수된 관원은 반드시 정성스럽게 제사를 올렸으며 법사(法司)에서도 이와 같이 하였다.

 

어효첨(魚孝瞻)이 집의(執義)가 되었을 때 하인이 이를 옛날부터 내려오는 고사(古事)라고 아뢰자,

어효첨이 부군이 대체 무슨 물건이란 말이냐?” 라 하고는 지전을 거두어서 불태우도록 하였다.

그가 전후로 근무했던 관아에서는 부군의 사당들을 모두 불태우고 헐어 버렸다.

이수광(李睟光)이 말했다.

어효첨은 벼슬이 1품에 이르고 아들 어세겸(魚世謙)

또한 정승이 되었으니 기도하고 제사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조선시대 경각사(京各司) 중에 의금부(義禁府)가 있다.

의금부는 왕명(王命)을 받아 죄인을 심문하고 재판하는 특별사법기관으로,

요즘 식으로 설명하자면 대통령 직속 검찰청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이 되는 죄인들이 주로 관원(官員)들이었고,

한 번 국청(鞫廳)을 열게 되면 옥사에 관련된 죄인들이 수두룩하게

사형을 받았으며 그 가문도 풍비박산이 되었기에 그만큼 위세가 대단했던 관사이다.

 

의금부의 내규집(內規集)에 해당하는 금오헌록(金吾憲錄)에 의하면

이러한 의금부 내 서쪽 마당에 부군당(府君堂)’이 있다 한다.

도대체 이 부군당이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 궁금하여

다른 관사들의 경우를 살펴보니, 다른 여러 관아에도 부군당이 있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의 관아(官衙)에도 부군당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관아별로 모시는 신이 달랐다는 것이다.

형조의 부군은 송씨부인, 선혜청은 강문도령, 병조는 문천상(文天祥),

예문관은 임경업(林慶業), 한성부는 공민왕(恭愍王),

옥서(典獄署)는 동명왕(東明王), 양현고(養賢庫)는 최영(崔瑩)

그의 딸인 고려 우왕(禑王)의 왕비를 부군으로 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각사의 관아 내부공간에 이러한 신당(神堂)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한필교(韓弼敎 1807~1878)라는 인물이 남긴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중 사복시(司僕寺)와 공조(工曹)의 신당(神堂) 위치를 보겠다.

 

@부군당은 각사의 업무 공간과는 거리가 좀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에 부군당에 지내는 제사를 고사(告祀)’ 라고 하였고

이런 제사가 성행했다는 기록은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부군당은 소속 관원과 아전들이 신상(神像)을 걸어놓고 거기에 복을 비는 장소였던 것이다.

논리적인 철학인 주자학(朱子學)이 주름잡던 시대에 중앙 관사 안에

잡신(雜神)을 섬기는 부군당이 곳곳에 있었다는 것이 의외이기도 하고,

세상사는 고금(古今)이 다르지 않은 것인가 허탈해지기도 한다.

관원과 이속들이 관아 안에 버젓이 신당을 지어놓고

자신들의 복록(福祿)을 위해 제사하던 이러한 풍습은 우리나라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듯하다.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온 김경선의 사행기록 연원직지(燕轅直指)

중국에서도 하나의 아문(衙門)에는 왼쪽에 사원(寺院)이 있고, 오른쪽에 옥()이 있다.

사원에는 우리나라 관사와 같이 반드시 부군당이 있다.”라고 기록했다

당시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박지원(朴趾源)

안의현현사사곽후기(安義縣縣司祀郭矦記)에 이렇게 지적하였다.

꼭 모셔야 할 귀신이 아닌데 그 귀신을 섬기면 군자는 이를 아첨하는 것이라 하였다.

하물며 예()가 아닌 음란하고 방자한 제사로 섬긴다면, 이보다 더한 아첨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2016 병신년 합동 국운 발표회라는

명분으로 무당굿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를 보며 조선의 관아 내에 부군당(府君堂)을 지어두고

지전(紙錢)을 줄줄이 꽂아 놓은 앞에서 절을 하며 무언가를 빌었을 조선의 공무원들을 떠올렸다.

무당에게 빌어서 국가 운영이 잘 될 수 있다면 부군당을 백 개라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허나 원대하고 합리적인 국가정책을 무당이 말해줄 수 있겠는가?

2500여 년 전 중국에서도 아랫목[]이나 부엌[] 등에

제사하는 풍습이 있어 누군가가 어느 곳에 빌어야 좋을지 물었을 때,

공자는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고 하였다.

그 구절 아래에, 하늘은 곧 이치[]이니,

이치를 거스르는 것[逆理]이 하늘에 죄를 얻는 것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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