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1.대만 300-D1 자매지구 공식방한 1일차(2015,5,1~5,4)
*인천공항 환영행사, 청담동 호프바, 리베라호텔
*칼의 노래(명검 이야기), 국화와 칼
칼의 노래(명검 이야기)
@마이스터, 匠人精神(칼을 만드는 사람들)
소설 “칼의 노래(김훈)”의 주인공은 성웅 이순신이다
창과 방패, 矛盾(모순)의 중심에 있기도 한다
春秋時代(吳) 전설적인 명검을 만든 구야자는 합려와 부차에 의해
용광로에 떠밀려 죽었다는 후담도 전해오고있다
@서부인 비수를 휴대한 자객 형가
자객 형가는 齊나라 출신으로 魏나라를 거쳐 燕나라에서
개백정 전문직업과 청부 살인업자로 은신중이었다
또한 형가의 단짝친구 고점리(축 연주가)도 연나라에서 알게되었다
秦나라는 번어기 장군의 현상수배금은 1000금, 봉읍 1만호를 내걸었다
형가는 번어기를 찿아가서 설득하여 자결시킨뒤 번어기 수급과
보배처럼 귀한 독항 지도(연나라)를 휴대하고,
비수(서부인: 독으로 만든 칼)를 루마기 지도속에 숨긴채
비서(진무양)을 대동하고 진시황제를 암살하러 떠난다
번어기는 秦나라 장군으로 燕나라 태자 단)에 투항한 장군이다
@히젠도(명치41년, 타다요시) *肥前刀(살찔 비)
칼의 주인공 “타다요시”는 후쿠오카 신사에 기부하여 보관중이다
경복궁 건천궁 옥호루에서 왜군들의 습격으로
고종황제 민비(명성황후)를 시해할 때 사용했던 일본도이다
1895,8,20(을비사변)의 작전명칭은 “여우사냥(狐狩: 여우호, 사냥수)”
@중국 저장성 용천은 용천명검의 본고장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기암괴석(절벽)의 비경이 수려하고
철분성분이 많은 바위와 용천산 폭포수로 명검을 제조했던 것이다
이백(唐, 詩人)은 말을 타고 다닐때에도 항시 검을 휴대하였는데
“三盃發劒舞龍泉(3잔의 술을 마시고 검무를 펼쳐보고 싶다)”
또는“ 삼배의 술을 마시고 달에게 물어보다”
@검천교(교량)는 기와집으로 지붕을 만든 독특한 교량으로 유명하다
용천산 용천폭포로 담금질을 한 명검은 차가운 칼빛이 섬뜩하다
“차가운 빛으로 상대를 눞히다”
절강성에서 용천강이 발원해서 흘러오는데,
암석마다 철분이 많아 붉은색을 띠고 있다
지금도 용천 산골마을에는 2600년전 춘추시대의 흙벽돌집이 있으며
楚왕이 구자야에게 검제의 부탁으로 명검을 제조하였다
3박자(돌, 물, 철)를 고루갖췄는데,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용천시 용천보검 박물관
영락제(明)가 티벳 영주에게 하사했다는 검을 보관중이다
화려한 금 공예술을 발휘하여 장식을 하였는데,
검은눈을 새기고 물고기 비늘까지 수작업으로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특히 두 개의 눈동자에는 보석(마누)를 장식하였다
현재 시가로 환산하면 2억 7000만원(순금: 1억원, 66만위안)
칼날이 서늘함과 힘을 느끼고, 살기가 도는게 사실이다
영화(적벽대전)에서 주유(吳)가 지녔던 검을 포함하여
조연급 배우 30명분의 명검을 제조하였는데,
지존검으로 한나라 검의 모형을 복원하여 옥석으로 장식한게 특별하였다
연기 도중에 칼날이 날카로워 상처를 많이 입었다고 전한다
@고위층(皇帝, 宰相, 將軍)의 가보, 숭고한 물건, 협객, 군자의 상징이다
대장간 단조작업 과정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1000번 두둘겨, 100번 담금질을 해야 명검이 탄생된다
송탄을 연료로 불꽃속에서 쇠를 녹였는데,
특별한 검에는 옛날 칼조각을 중간 접기부분에 끼워넣어 옛정신을 담고
과거와 현재의 의미를 부여했으며 유물을 분석한 노력도 많았다
산중마을(화장촌)은 마을가운데 폭포수 흐르고 1000년 고목이 지켜준다
용천시 용천보검 전시장(판매장)에는 영화(강호)에서 유비(蜀)의 쌍칼을
복원하여 전시중이며용천보검 박물관에는 구자야(春秋時代)의 동상이 있다
@용천 보검의 始祖 구자야의 첫 번째 명검은 “태아검”이다
태아검은 태양아래에서 보면 섬뜩한 차가운 빛,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박물관에는 용천보검의 모형(모택동, 후진타오, 시진핑)의 명검이 있는데
칼자루 장식에 七星무늬, 해, 달, 낙관 등이 새겨져있다
一刀走天下(일도주천하): 칼 한자루로 천하를 얻는다
용천 시민들은 안방 침대 머리위에 용천보검을 1개씩 장식하고 있는데,
액운(귀신)을 쫒아내는 상서로운 자주색으로 액운을 물리친다
전술용 검은 전투용, 인마살상용이다
@오다 노부가나의 天下統一의 꿈(日本刀, 니폰도)
“天下希武(천하희무: 칼로써 천하를 품다)”
“겁쟁이의 눈에는 적이 大軍으로 보인다”
무사의 칼은 “칼은 자신의 영혼이다”
오사카 북쪽 기후성(해발 359m)은 오다 노부가나 영주를 지낸 곳이며
천하통일 대업의 교두보이자 일본도의 고향이다
1546년, 오다 노부가나는 포루투칼에서 장총을 도입하여
아네가와 전투, 나가시마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히나와총”이라 일컬었으며
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기로써 鳥銃(조총)이라 칭했다
일본은 장총(조총)을 도입이래 일본도의 인기가 시들지않은 이유는
조총 사격 이전에 돌격하여 적군의 수급을 벨수있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제작하는 전통마을 기후현 새끼시에는 26대째 가문 대대로
제작비법을 전수해오는 “후지와라”는 신이 내려준 장인 가문으로
대장간 입구에 금줄을 달아놓고 있으며 500년간 이어온 일볻도를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비쭈기”나무줄기 다발을 신을 모시는 신사에 비치하는 관습이 있고,
대장간 화로불로 촛불을 밝혀 신에게 삼배를 올리는 전통을 유지하면서,
작업시에는 경건함과 신성함, 잡념제거, 청결유지를 위하여
반드시 힌색 작업복을 입고 칼을 연금하고 있다
시네마현에서 생산되는 철을 재료삼아 강철판 중간에 연철을 삽입하여
일본도의 비법을 전승하여 칼의 표면은 강하고 내부에는 유연하며,
최종작업 과정에서 칼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담금질은 반드시 어두운곳에서 단련작업을 반복하며
용광로의 온도를 800도 이하를 유지하며 1개월에 걸쳐 제작한다
가격은 2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다 노부가나는 130년간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여
백성들의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일본 국민들에게의 가장 존경받는 일본인 1위를 100년째 고수하고 있다
특히 사내대장부다운 기질을 갖춰 대의에 생명을 바친 인물이었다
요즘 일본도는 정신수양의 도구로 사랑을 받고있다
@음식요리에 필요한 칼은 무려 100여종이다
중국 음식종류는 무려 6만종에 이른다
13억 인구의 요리전용 칼은 “차이다오(사각모형)”라 부르며
북경 시민들은 외국 여행시에도 요리용 칼을 휴대한다고 한다
한국인은 아파트에 투자하고, 일본인은 저축에 탐욕스럽고,
중국인은 음식에 눈독을 드린다고 한 것이 결코 틀린말이 아닌셈이다
중국요리중에 두부를 실타레처럼 가늘게 썰어 국수를 만드는
최고 칼솜씨는 북경에 가면 맛볼수 있다고 한다
문사두부국은 문사스님이 도를 닦고서 했다고 전해지며
건륭제(靑)가 한번 맛본후에 반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오이쒜이는 남쪽지방의 요리인데 오이장아치를 칼집을 내어
꽈리모형으로 접시에 담아 마치 피클같은 음식으로 매우 유명하다
가물치 사시미 살점을 국화꽃으로 만든 “쥐화위”도 일품이다
요리할 때 칼질법도 100방법이 있어 칼등으로 마늘을 다지고
앞부분은 세밀한 칼질에 사용되고, 안쪽칼날을 단단한 식재료를 자른다
칼 사용법은 “피옌, 쓰, 두안, 모, 콰이...”등이 있다
요리연습생은 신문지, 밀가루 반죽을 재료삼아 썰기 연습을 한다
“창자”는 표정(백정)출신으로 소를 도살할 때 칼날이 상하지않을 정도로
칼질의 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요리사는 칼질을 하는 자체를 도를 닦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백성은 음식을 하늘로 여기며, 음식요리의 핵심은 칼질이라고 생각한다
요리용 칼의 고향은 양장(해상 실크로드)지방으로 전쟁이 많앗던 곳으로
2200년전부터 차이다오 고향이었으며 唐나라(황저우), 元나라(5가구당 1개씩 휴대)에는 매우 아끼는 주방용품이었다
@오사카 사카이시 하모노 박물관에는 일본요리용 칼 전시장이 있다
참치분해용 장도(2m), 스시용 칼은 200만원 수준으로 90%가 사용중이다
일본은 칼의 나라, 칼의 정신으로 천하통일되었다
“국화와 칼”
세계견문록(아틀라스)의 용천보검
@중국의 용천보검과 금창상 흉터치료
세계견문록 아틀라스에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한정적인 용도로만
사용되는 칼에 대해 소개하면서 칼은 긍지이며 자존심이자 지켜야 할
가치 그 자체로써 검(劍)과 을 몸처럼 사랑하는 검술가들부터 주방에서
사용되는 식칼 속에 숨겨진 역사,
칼의 전통을 사랑하고 역사를 계승하는 장인들의 이야기이다
@2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용천보검은 중국인에게 검은 군자의 상징이자
정직과 정의 그 자체이며, 수많은 문인이 검을 찬양하는 시를 남겼다
그만큼 검을 찬양하는 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 저장성에 위치한 용천시가 우리에겐 낯선 지명이지만 맑은 물과
풍부한 철이 생산되는 명검의 탄생을 위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곳이다
2,600년전 바로 이곳에서 수많은 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명검으로
손꼽히는 용천보검이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春秋時代 후기(bc770~476)
吳나라와 越나라가 남쪽 지역에서 패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
물길과 숲이 많아 차전이 어려워 주력군은 보병과 수군이었다.
따라서 두 나라 군대의 보편적인 무기는 검이 됐었으며 吳, 越국에게
검 생산은 매우 중요하게 됐고 검 주조 기술에 있어 중원에 있는
다른 나라들보다 크게 앞서면서 중국 고대 보검의 고향이 됐다.
저장(浙江)성 용천(龍泉, 룽취안)은 예부터 오월 지역에 속했기 때문에
용천보검은 중국 검 주조 역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용천 일대에 매장된 철광석인 철영(鐵英), 검을 가는 양석(亮石),
칼집에 사용되는 화려목(花櫚木)은 검 제조에 유리했다.
게다가 진계산(秦溪山, 친시산)의 샘물은 검을 벼릴 수 있는 물을
무성한 숲은 충분한 숯 연료를 각각 제공했다.
吳나라의 검 주조 대가인 구야자(歐冶子)가 용천 진계산에서
용연(龍淵), 태아(泰阿), 공포(工布)라는 명검 3개를 만들었다.
그는 용연을 마을 이름으로 삼고 기술을 전수,
용연은 이후 1000년 동안 중국에서 유명한 검 주조의 고장이 됐다.
이후 唐나라 고조 이연(李淵)의 이름과 같은 한자를 피하기 위해
연(淵) 대신 천(泉)을 사용해 지명을 용연에서 용천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저장성 용천은 보검 생산으로 유명하다.
@선씨 일가는 청나라 함풍제(咸豊帝 1831~1861) 때부터 검을 만들었다.
선신페이의 증조 할아버지인 선차오칭(沈朝慶)의 선씨 대장간은
용천 지역에서 아주 유명했다.
당시 선씨 집안의 대장장이는 농기구를 주로 생산했지만 농기구 생산을
통해 철을 주조하는 비법을 터득하자 검 주조의 기본기를 다졌다.
한 세대 동안 철 주조 경험을 축적한 이후
선신페이의 할아버지인 선팅장(瀋庭璋)은 광서 18년(1892년)
심광융검포(瀋廣隆劍鋪)라는 간판은 “널리 번성하라”는 뜻이다
용천은 깍아지를 듯한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있고 劍川橋(검천교)도 있다.
절강성의 근원이 되는 폭포에 와보니 돌이 붉었는데 그만큼 철 성분이
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용천검을 만든 구야자 [歐冶子] 구야(區冶)하고도 불린다.
越나라 사람 야공(冶工)이 칼을 잘 만들었다.
越나라 임금 구천(句踐)의 명령으로 거궐(巨闕)과 담로(湛盧),
순구(純鉤),승사(勝邪),어장(魚腸)등 다섯자루의 명검(名劍)을 만들었다.
吳나라 임금 합려(闔閭)가 어장검을 얻어
전제(專諸)가 오왕료(吳王僚)를 죽일 때 사용했다.
나중에는 간장(干將)과 함께 초소왕(楚昭王)을 위해서용연(龍淵),
태아(泰阿), 공포(工布) 등 명검을 만들었다
@이태백의 詩
萬里橫戈探虎穴(만리횡과탐호혈) 三盃拔劒舞龍泉(삼배발검무용천)
만리를 창 비껴들고 호랑이 굴을 뒤지고, 잔의 술에는 칼을 빼어들고
용천검무를 춘다고 할 정도로 용천검은 유명하다.
두보와 이백도 용천검에 반해 말을 탈때 항상 용천검을 차고 다녔다
@중국에서 수 많은 전쟁과 무사들이 있었을테니
한의학에서도 칼에 베이거나 화살에 찔린 외과적인 상처인
金瘡傷(금창상) 치료에 상당히 노하우가 많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도 언해구급방이란 책이 있는데 여러 가지 위급사항에 대한
처치중에 잘리거나 베이거나 화살에 맞는 내용을 다룬 한의학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응급 외과 처치 이후의 흉터치료에 대한 노하우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모두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현대에는 무사가 없으니 칼에 베이거나 찔리는 상처는 거의 없고
대다수가 병원의 메스가 만들어낸 흉터가 최고로 많다.
불가 선종에서 말한 살인검이 아닌 활인검으로 발생한 흉터인데,
흉한 것을 길한 것으로 치료하는 행위 자체가 다시 흉터가 발생해서
흉한쪽으로 넘어가니 인생의 일이란 새옹지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병원에서 만든 흉터는 외과의사가 처치할 수 없고
한의원의 흉터침과 침, 한약 재생약침으로 피부 관리, 치료가 가능하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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