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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C지구(서울)

2015-1006.한마음체육대회 현지답사

by 조흥식 2023. 3. 29.

2015-1006.한마음체육대회 현지답사(하남 종합운동장)

보다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보다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홍세태(洪世泰 16531725), 유하집(柳下集) 자경문(自警文)

내가 평생 한스럽게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나만 홀로 아는 것이니,

그것은 뜻을 구함이 높지 않고, 재주를 쓰는 것이 넓지 못했던 것이다

 

*홍세태는 1682년 통신사 부사 이언강(李彦綱)의 자제군관으로

일본에 가서 자신의 문재(文才)를 펼치고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 사신이 조선의 시를 요구했을 때

조정에서 홍세태를 시켜 시를 지어 주게 했을 정도였다.

 

*홍세태는 원래 노비였는데,

그의 재주를 아꼈던 김석주(金錫胄)와 이항(李杭)200냥을 내어

속량시켜 주었으며 홍세태는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형제와도

가까이 지내며 시문을 주고받았고, 김창협의 권유로

여항 시문집 해동유주(海東遺珠)를 편찬, 간행하기도 하였다.

70세 지은 자경문(自警文)에는 제대로 성학(聖學)을 공부하지 못한 채,

아무짝에 쓸모없는 시만 얻고만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서려 있다.

독서하는 선비가 되지 못하고,

뇌가 없는시인이 된 것을 슬퍼하면서,

죽기 전까지는 ()’를 듣겠노라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당시의 신분 질서에서만 놓고 보면 홍세태가 노비에서 벗어나

역관, 제술관이 된 것만도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재주에 비추어 보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홍세태는 자신의 제자인 정민교에게 준 글(송정계통서 送鄭季通序)에서도

하늘이 재주를 낳음에는 귀천이 없지만,

재주가 세상에서 쓰이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라

귀천의 차이가 있다고 하기도 하였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