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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C지구(서울)

2015-1209.한강라이온스클럽 창립 30주년 기념식

by 조흥식 2023. 4. 4.

2015-1209.한강라이온스클럽 창립 30주년 기념식

상상의 가족

 

 

 

상상의 가족

@강대수(姜大遂, 1591~1658), 사촌들과 만든 계모임의 서문

나는 몇 년 전 내외 사촌들과 해마다 계모임을 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벼슬길에 올라 수시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느라

점점 미루다가 지금껏 하지 못하여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여름무렵 순천에 있을때 업무중 여가에 우연히 목은집(牧隱集)을 보았는데,

 

예천(醴泉) 권한공(權漢功)의 내외 손자가 이 모임을 열었다.

목은은 예천의 손녀사위로서 역시 이 모임에 참석하고 시를 지어 읊었다.

나는 이를 보고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맞아 옛사람이 내 마음을 먼저

알아준 것을 기뻐하는 한편, 오랜 계획이 어긋난 것이 더욱 한스러웠다.

마침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이 일을 언급하였더니,사촌들이 더욱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예전의 약속대로 위와 같이 약조를 맺었다.

 

, 옛사람의 구세동거(九世同居)는 천년에 겨우 한번있는 일이니, 다시는 볼 수가 없다.

게다가 각기 처자식이 딸렸으니 다른 곳에 흩어져 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형세이다.

형세가 그러하니 어찌할 수가 없지만, 봄가을 명절마다 한집에 모여

정답게 회포를 푼다면 성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를 계기로 화목하기를 다짐하며 세월이 지나도 모임을 약속한 처음의

뜻을 잊지 않는다면 태평성대에 친족을 화목하게 하는 교화를 베푸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구세동거(九世同居)’

()나라 사람 장공예(張公藝)의 고사이다.

그의 집안은 9대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사람의 수명에 한계가 있으니, 9대조와 함께 살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9대조 때부터 온 가족이 한곳에 모여 사는 전통을 지켰다는 뜻이거나,

9대조 자손에 해당하는 18촌 이내 친척들과 한마을에 살았다는 뜻이리라.

옛날에는 사돈의 팔촌까지 한 가족처럼 살았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강대수는 고작 사촌 형제끼리도 모이기가 쉽지 않아 계모임을 만들었다.

어릴 적 형제처럼 지내던 사촌들도 자라면 왕래가 뜸해지는 법이다.

어디 사촌뿐이랴. 한집에 살던 형제도 장성하면 분가한다.

 

@율곡(栗谷)은 장공예의 구세동거를 부러워하며

“9대가 함께 살지는 못해도 형제끼리는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형제들과 합가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미담으로 전해지는 걸 보면,

형제라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분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흔히 대가족을 전통사회의 일반적인 가족 형태로 간주하지만,

조선시대에도 3대가 함께 사는 가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호적(戶籍)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부부와 자녀만으로 구성된

핵가족이 전체 가구의 절반에서 2/3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대가족이라야 장남 부부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마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3대가 한집에 사는 가구는 작년 기준으로 전체의 5.7%

불과하지만 그중 절반 이상은 할머니, 부부, 아이로 구성된, 대가족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단출한 가족이다.

그런데 시청자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 형태는 절반 이상이 대가족이라고 한다.

게다가 드라마의 대가족은 3대가 모두 가정을 이루고도 도무지 분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와도 거리가 멀고 현실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가족이다.

이러한 상상의 가족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극의 전개와 재미를 위해서이다.

대가족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여러 가지 갈등이 복잡하게 빚어지고

해소되면서 줄거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드라마 속 대가족의 갈등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장공예의 구세동거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단둘이 살아도 하루가 멀다고 싸우는데,

9대가 한 가족을 이룬다면 한시도 잠잠할 때가 없을 것이다.

가족이 늘어나면 갈등의 소지 역시 늘어나기 때문이다.

 

@장공예는 가족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당고종(高宗)이 장공예를 찾아가 가족의 화목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었다.

장공예는 종이와 붓을 청하더니 참을 인()자 백 개를 써서 보여 주었다.

참고 또 참는 것이 가족의 화목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가장으로서 집안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장공예조차 참을 일이 많았다면,

나머지 가족들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가족의 화목을 유지하는 비결이 또 하나 있다.

 

@정렴(鄭濂)의 집안은 3백년 동안 7대가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태조 주원장이 찾아가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녀자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아무리 우애가 좋아도 아내들이 사이가 나빠 험담하고 불평하면 화목이 깨진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남편들이야 한 가족이고 친척이니 갈등이 생겨도 참고 산다지만,

아내들 입장에서는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니니 갈등이 생기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는 그들의 갈등을 억눌러야 한다니, 이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일까.

기실 가족의 화목은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시집살이하는 아내만 희생을 요구받는 것이 아니다.

처가살이하는 남편 역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가족의 화목이라는 명분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족쇄가 될 수 있다.

아내의, 남편의, 부모의, 자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가족의 화목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족의 화목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가족의 불화도 그만큼 심각하다.

우리는 가족 간의 유대가 긴밀한 만큼 가족 간의 살인과 폭력이

발생하는 비율도 서구에 비해 높은 편이다.

가족의 화목이라는 명분 아래 억눌려 있던 갈등이 폭발한 결과이다.

가족의 화목을 강요하지 마라.

개인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가족의 화목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누구 하나 희생하는 사람 없이 모든 가족 구성원이 만족한다면 가족의 화목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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