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31.제2기 ELLI 초급라이온스 리더쉽연수회 3일차
*3,29~3,31(2박3일) 동대문 이비스 앰버서더호텔
삼족오(三足烏)와 고구려
삼족오(三足烏)와 고구려
@역사드라마에 (三足烏)표식이 마치 고구려의 국기처럼 착각한다
자주 등장하지만, 사실은 전유물은 아니다
고구려~중국~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자주 사용했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의 상징이다
태양 숭배사상+새의 상징으로 보여진다 광개토왕비, 장수왕의 시조는 (해)이다
고구려인 모자에는 깃털 모형을 부착한 것은 사실이다
해모수(주몽 부친)도 까마귀 깃털을 모자에 착용했다
신라에서도 까마귀를 “태양의 신”으로 숭배했으며
연오랑, 세오녀에도 까마귀가 등장하며,
일월, 태양속에 삼족오를 상징하고 있다
@424년, 고구려 도읍지(길림성); 광개토대왕비, 장군총에 남겨있다
4~7세기; 고구려의 전성기로써 군사력(최강)+문화(최고)
천정에 황룡이 많았는데 “천하의 중심”을 뜻한다
조선의 주작기는 3두 1족오(머리는 3개, 발은 1개)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까지 三足烏 깃발을 사용했다
@漢代의 삼족오는 중국에서 육조시대까지 유행이 지속되었다
이는 다시 고구려 고분벽화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일중삼족오가 표현되고 있다.
고구려 국가상징 천조사상(태양신), 광개토왕비에 기록남아
하늘의 뜻, 태양조, 태양의 새(인류를 다스리고, 밝은생명, 하늘백성)
숫자 “3”에 대한 성스러운 민족의 간절함
주작(깃발)에 활용하고 창덕궁의 백태처럼
삼족오; 서주~전국시대~한, 고구려 남하~삼한~일본
@일본 깃발은 태양을 상징한다, 따라서, 태양조 깃발은 일본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三足烏 깃발을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1931년부터 축구대표팀 유니폼에 삼족오 문양을 사용한다
구마노 나지(신의 성지, 오오사카)신사는 (신중의 신)을 모신 사찰이다
650년, 신무천황의 “야타카리스”는 큰 까마귀라는 뜻이다
“나라” 갈때 꿈에 등장하여 “삼족오의 안내받으라”
신사의 기둥위, 벽면에 삼족오 그림이 있으며
610년; 담징이 벽화를 일본에 전파하였다(교토, 5층 품주자)
@고대중국은 주작기로 삼족오 깃발을 사용했다
사실상 三足烏의 주인국은 중국으로 봐야한다
홍산(요하)문화+고조선+고구려; 5000년 역사
북방문화(만주); 동이문화때 번성하였다
현무도; 용+거북, 용, 봉황; 최초 요하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남방문화(앙소문화)에도 삼족오가 발견되었으며,
황하를 중심으로 중원시절 문화에는 삼족오가 없어진다
@4세기말~5세기초(당나라 이전)에 집중적으로 출현한다
해와 관련된 신, 즉 삼족오로 표현되었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구체적으로 해 안에 까마귀가 살고
달 안에는 두꺼비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회남왕이 저술, 한무제시대 반역으로 음독자결)
@태양안에 세발 까마귀가 표현되고 태양을 상징인가?
중국의 저명한 신화학자 손작운(孫作雲)씨는 태양이 떠오르면
그 아래로 까마귀가 동시에 따르는 순간에 운행하는 태양과 날아가는
까마귀가 한점에 놓여 겹치게 되는데
이는 까마귀가 태양안에 들어가 앉아 있는것과 같은
시각적 착각 때문에 일중삼족오(日中三足烏)가 유래하였다
@일중삼족오는 동이민족이 새와 태양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까마귀가 세 개 발이 달린 이유는
동이족이 숭배하는 까마귀가 평범한 새가 아님을 뜻한다
손씨는 삼족오가 씨족 사회말기 또는 하(夏)나라 창립 시기에
산동반도 일대에서 발생하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삼족오를 금오(金烏) 또는 준오(烏)라고도 부른다
태양에 까마귀가 산다는 신앙은 초사(楚辭), 산해경(山海經)등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부터 발견된다
중국에서는 해와 달을 단순히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태양,
밤하늘을 밝히는 달의 의미만이 아닌,
해와 달 안에는 삼족오와 섬여(옥토)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주도(周到)씨는 태양의 흑점을 발견하여 세발 까마귀로 여긴 데서
세발 까마귀가 유래하였다고 본다.
@일중삼족오, 월중섬여(달 안 두꺼비)와
인수사신(人首蛇身, 사람얼굴을 하고 뱀의 몸을 한 것)의
복희씨와 여와씨에 대한 신화전설이 성행하기 시작한 시기인
한대(BC206~AC220)에는 이러한 신상(神像)을 표현한 그림들이
그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상은 대부분 발해 연안의 석묘계(돌로 축조되는 고분)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들 일중삼족오에 대한 신화전설은 벽화석묘는 물론이고
그 외 화상묘(畵像墓), 화상전묘(畵像塼墓), 백화(帛畵), 칠화(漆畵), 청동기물(靑銅器物) 등에도 묘사되고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일중삼족오의 초기 형상으로는
서한 전기(BC175~BC145)의 장사 마왕퇴 1호묘 출토의 백화(帛畵)
상면좌우에 그려진 일상(일중이족오, 태양안 삼족오)에서 찾아볼수 있다.
백화에 그려진 태양 안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원형 안에
두발 달린 까마귀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한대의 삼족오는 중국에서 육조시대까지 유행이 지속되었다
이는 다시 고구려 고분벽화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일중삼족오가 표현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삼족오는 크게 세 가지 종류
1)고분의 천정에 성수(별자리)과 함께 동쪽에는 일중삼족오를
서쪽에는 월중섬여를 묘사한 ‘일중삼족오 월중섬상’이다
2)복희, 여와 신화에 쌍룡(혹은 蛇)
쌍교형(雙龍雙交形, 두마리 용이 서로 교차하고있는 형태)의
交尾雙龍(혹은 蛇, 특히 꼬리를 교차하고있는 형태) 및
양인수일사신(兩人首一蛇身, 머리는 둘, 뱀의 형태를 띤 하나의 몸)을
묘사한 ‘교미복희여와상’이다
3)첫째 유형+둘째 유형이 결합한 형상으로
인수용신유우(人首龍身有羽), 사람의 머리에 용의 머리를 하고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경우)의 복희씨와 여와씨가 양손으로 일중삼족오와
월중섬여(혹은 옥토)를 머리 위에 받들고 있는
봉일중삼족오섬여(捧日中三足烏蟾蜍), 받들고 있는 태양안의 까마귀와
두꺼비), 복희여와상, 복희여와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제갈량은 머리에 재갈건을 쓰고 다녔다
백우선(白羽扇, 힌색 깃 부채)을 휴대한 모습을 볼수있다
촉한의 운명(유비, 장비, 관우; 전사)이 다했다고
판단한 왕랑(위)은 詩로 제갈공명을 약올린다
“위나라는 달빛, 촉한은 개똥벌레”
위나라가 공격해오자, 詩로써 “천하역적 조조에게” 신경전을 한다
결국, 왕랑이 낙마(촌철살인)
제갈량은 평소 힌깃털 부채를 들고 다녔다
영화(적벽대전), 민화, 책, 그림으로 볼수있다
중국 9대 명장(명신)
@사극 드라마에서 고구려나 고려의 상징처럼 볼수 있지만,
사실은 틀린것은 아니지만, 사실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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