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5. 한미로타리클럽 7월 정기모임(종로 금호팔레스빌딩 1701호)
*국제로타리 3640지구 신년교례회
가난을 참고 때를 기다려라!
가난을 참고 때를 기다려라!
@가평군 잠곡 마을은 先人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숨어살던 동네이다
.김육 문정공(金文貞公)이 미천했을때 가평(加平)의 잠곡에 숨어 살았다.
.호를 잠곡이라 것은 이곳의 지명을 따라서 지은 것이다.
.처음 이사하였을 때에는 집이 없었다. 땅굴을 파고 그 위에 시렁을 얽어
움집을 만든 다음, 그 동굴 속에서 처자식들을 살게 하였다.
낮에는 산에서 나무를 하고, 밤이면 관솔불을 켜놓고 글을 읽었다.
@어느날 부인이 창문을 통해서 내다보다가 말하였다
“저기 푸른 도포를 입고오는 사람은 모습이 마치 새신랑 같습니다.”
.김육이 말했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사위가 되려고 오는 사람이오.”
당시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이 있어 굴속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부인이 깜짝 놀라면서 “어찌하여 저한테 미리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김육은 “미리 말했다 한들 뭘 장만할수 있었겠소?”라고 하였다.
.부인이 딸을 쳐다보면서 말하기를
“버선이 없어 맨발이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라고 하니,
.김육이 자신이 신고있던 버선을 벗어서 딸에게 주어 신게 하였다.
.얼마뒤 푸른 도포를 입고오던 사람이 새신랑의 옷으로 갈아입고서 굴 밖에 도착해 말에서 내렸다.
.김육은 우물에서 물을 한사발 떠다가 토굴 안에 놓은 다음,
옷을 갖추어 입고 읍을 하고 신랑을 맞이하여 토굴 안으로 들어왔다.
.새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는 예를 행하고는 드디어 떠나갔다.
.김육은 토굴 밖으로 나가 한번 읍하고 떠나보냈다.
@.雪鬢霞儀 外形內德 君子觀之 是無不識
“머리 희어 신선같은 모습이거니, 안의 덕이 겉으로 드러난 거네.
군자들이 이런 공의 모습 보고는, 그렇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네”
.맹영광(孟永光)이 잠곡의 모습을 그린 다음에 찬(讚)을 써놓은 것이다.
맹영광은 청나라의 화가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조선에 왔다.
.잠곡이 가평(加平)에서 살때 일화(逸話)를 전해 듣고서 기록하였다
“잠곡은 중년 나이에 집 한칸이 없어 토굴을 파 움집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았다. 잠곡은 2남 4녀를 두었다.
.가족(8명)이 토굴속에서 살았던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짐작이 된다”
@지독한 가난속에서 밤에 관솔불을 켜놓고 글을 읽으면서 때를 기다렸다.
.등잔을 밝힐 기름조차 없어서 관솔로 불을 밝히고 글을 읽었다.
.의지가 정말 철석같이 굳세지 않다면 어찌 그럴수 있었겠는가?
당시 잠곡이 처하였던 상황을 그려보면 정말 눈물겹다.
.잠곡은 15세때 아버지를 잃었으며, 21세때 어머니의 초상을 치를때
인부를 살돈이 없어 자신이 직접 무덤을 파고서 장사지냈다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살다가 남양주의 평구(平丘)에 자리 잡고 살때에는
먹고 살길이 없어, 산에서 숯을 구워 동대문까지 지고 와서 팔았다
평구에서 동대문까지 대략 30~40리 정도 거리였다
.그런데도 동대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바로 잠곡이었다
@25세,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명성을 날렸다.
.광해군 난정(亂政)에 실망하여 한양을 떠나 가평 잠곡으로 이사하였다
.41세, 잠곡은 인조반정(仁祖反正) 뒤에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갔다.
.조선 관료중 대부분 40대에는 상당한 고위직에 올라가 있었다.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은 33세에,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은 37세에 판서가 되었다.
잠곡이 41세에 처음 출사한것은 늦어도 한참 늦은것이다.
@이렇게 늦게 출발하였으나 자신이 젊은시절 고생하면서 겪었던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관직에서 애물제인(愛物濟人)의 신념을 가졌다
.주위 사람들과 임금으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아 영의정에 올랐다(72세)
.잠곡의 일생은 비참하였지만 좌절하지 않고 부지런히 학문을 익혀,
영의정에 올라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최고 명문가문으로 일으켰다
.조선 최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요 “의지의 조선인”이었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즐거움보다 고통이, 희망보다 절망이 더 많은 법이다.
.왜 우리의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였겠는가?
고해속에서 희망을 향하여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잠곡이 행했던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는데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늘의 도가 잘못된 것이며, 세상의 도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잠곡처럼 치열하게 살지 않았으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좌절하며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면, 세상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되돌아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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