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1. 2020년도 성과분석회의
고려시대 반란(정중부, 묘청, 이자겸)
고려시대 반란(정중부, 묘청, 이자겸)
@묘청의 난(1135년, 고려 인종13)
.묘청이 조광(趙匡), 유참(柳旵)...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고려는 생산력 발전, 정치와 사회 구조가 변화, 농업생산 증진으로
잉여축적이 가능해지고 계층간의 분화가 심화되었다.
.권력과 부를 계속 누리려는 특권 귀족세력과 신흥세력의 갈등이다
@이자겸의 난(1126년)으로 외척권세가 이자겸이 제거된 이후,
.중앙정계에는 김부식(金富軾)을 대표로 개경 중심의 문벌귀족은
유교를 정치이념, 학문으로 받아들여 합리적 정치운영을 지향하는데, 성격은 보수적이고 사대적이었다.
.문벌귀족화한 부류와 신흥세력이 등장하여 대립 갈등이 첨예해졌다.
.지방출신의 신흥세력은 道敎의 風水地理說과 같은 전통사상에
유교사상을 결합시켜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고려왕조의 국가적 자주성을 내세우며 문벌귀족의 사회적 폐단을 지적하여 개혁정치를 희구했다.
@묘청, 정지상(鄭知常), 백수한(白壽翰)은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서경천도론(西京遷都論),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
개경은 지덕(地德)이 쇠했으므로 지덕이 왕성한 西京으로 천도해
고려왕조를 중흥시키자고 했고, 국왕을 황제라 부르고 연호를 사용해자긍심을 높일것을 주장했다.
.서경출신의 신흥관료가 많아, 천도후 중앙정치의 주도권을 노렸다
@인종(1122~1146 재위)
.칭제건원론~금나라 정벌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았으나 서경천도론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다.
.내외적 위기의식이 가중되어, 고려의 기틀을 공고히 할필요가 있었다
.묘청~백수한 등의 주청을 받아들여 西京으로 자주 행차하고
관정도량(灌頂道場)을 베풀며, 임원역(林原驛) 근처에 대화궁을 짓고,
15항목의 유신정령(維新政令)을 중외에 선포하기도 했다.
@김부식(개경 문벌귀족)은 서경천도론을 거세게 반대했다.
.유교입장에서 보면 풍수지리설은 미신적이고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서경천도에 대한 정치적 위기의식이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서경에서 재이(災異)가 자주 일어나자,
김부식을 대표로 하는 문벌귀족세력은 서경천도를 격렬하게 반대하며 묘청의 처단을 요구했다.
@1135년(정월), 묘청은 무력없이 목적 달성할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서경에서 분사시랑(分司侍郞) 조광, 병부상서(兵部尙書) 유참...묘청의 난을 일으켰다.
.국호: 대위(大爲), 연호: 천개(天開), 군대 이름: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
.개경출신의 인사 대부분을 체포하였고, 군사, 교통의 요충지인 절령(황해 자비령)을 차단했고,
여러 관속을 두어 양부(兩府)의 관지에서 주부의 직임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경인으로 임명했다.
@서경 반란진압군을 파견하다
.김부식(정부관군의 총책임자)을 임명하고, 기타 군사통솔의 책임자를 문벌귀족들로 구성했다.
.김부식은 출정에 앞서 개경에 있는 백수한, 정지상, 김안 등의
서경천도파를 죽이고, 평산~관산을 거쳐 서경으로 향했다.
.약1년간 관군에게 완강히 저항하던 묘청의 군대는 1136년 2월 총공격을 당해 항복하고 말았다.
정중부의 난(鄭仲夫)
@정중부의 난(1170년, 고려 의종24)
.경인년(庚寅年)에 일어났다고 해서 “경인의 난”으로 부른다
.정중부의 난으로 1세기 동안 무인정권시대가 지속되었다
@고려초기 정치구조
.문반~무반은 1~9품으로 단일 관계체제로 일원적으로 편성되어
양반체제를 형성했지만, 실제로 문반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군대를 지휘 통수하는 병마권까지 장악했다.
.무반은 귀족정권을 보호하는 호위병의 지위로 떨어지고,
외면적으로 문반에 비해 경시되고 훨씬 세력이 미약했다.
.문반귀족은 고리대, 토지개간, 토지탈점, 대외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사회, 경제상황은 민의 대규모 유망현상이 일어났으며,
군인들은 軍人田조차 문반정권에 탈점되어 불만이 고조되었다.
.의종은 문신들과 유락으로 정치기강이 문란과 국가재정이 낭비로
백성들의 착취가 가중되고, 무인들에 대한 천대도 극에 달했다.
@1170년, 무인 대장군 정중부는 의종이 문신들과 보현원에 출타할 때,
.이의방(李義方), 이고(李高)와 함께 거사를 일으키기로 모의했다.
.왕이 보현원에 가는 도중 5문앞에서 시신(侍臣)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武人으로 하여금 오병수박(五兵手博)의 놀이를 하게 했는데,
文臣 한뢰(韓賴)가 놀이에 이기지 못하여 달아나는 대장군(大將軍)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때린것이다
.얼마전, 정중부는 김부식(金富軾)의 아들 김돈중(金敦中)이
자신의 수염을 촛불로 태웠던 일을 생각하고는 분노하여,
“이소응은 비록 무인이지만 벼슬이 3품인데, 어찌 그리 욕을 보일 수 있느냐?“며 한뢰를 나무랐다.
@저녁에 왕의 가마가 보현원에 가까워지자,
.이고, 이의방과 함께 거짓 왕지(王旨)로 순검군(巡檢軍)을 모아
한뢰를 비롯한 문관, 대소신료(大小臣僚), 환관(宦官)을 몰살했다.
.무인들은 다시 개경으로 군졸을 보내 명령을 내렸다
“문관(文冠)을 쓴 자는 서리(胥吏)라도 씨를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이에 많은 문신이 화를 입었다.
.무인들의 무자비한 학살에 당황한 의종은
이고, 이의방을 응양군(鷹揚軍), 龍虎軍의 중랑장(中郞將)에 임명하고,
그밖의 무인들도 상장군은 수사공복야(守司空僕射), 대장군은 상장군에 가하여 회유책을 썼다.
.정중부, 이의방, 이고는 왕을 환궁(還宮)시켜 군기감(軍器監)에 옮기고
거제도(巨濟島)로 내쫓고, 왕제(王弟) 익양공(翼陽公) 호(晧: 명종)를 왕으로 세웠다.
.자신들은 즉위한 명종에 의해 벽상공신으로 봉해지고 정사를 좌우했다
많은 문신이 살육되고, 무인이 집권하여 군사권은 물론이고
문인의 직능이었던 정치권, 행정권까지 독점했으며,
.무인에게 호의적인 문신 문극겸(文克謙), 이공승(李公升), 서공(徐恭)을
기용하여 국정에 관하여 자문을 구했다.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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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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