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5.세종로라이온스클럽 평창 계방산(운두령~이승복기념관)
*한강의 얼음
한강의 얼음
@한강이 얼면 세곡(稅穀) 운반이 중단되고 어획에 차질이 빚어지며,
수로를 통해 도성으로 왕래하기 어려워졌다.
반면 한강이 얼지 않으면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다가올 봄부터 가을까지 사용할 얼음을 비축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때 한강이 얼지 않으면 재난으로 여겨 기한제(祈寒祭)를 지내
한강에서 채취한 얼음이 국가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다
@지금의 빙고는 옛날의 능음(凌陰)이다.
능음(凌陰)이란? 주(周)나라 때 얼음을 저장했던 지하 창고이다.
동빙고는 두모포에 있는데, 얼음을 넣는 창고가 하나뿐이라서
국가의 제향에 쓰이는 수요만 담당한다.
얼음을 저장할 때는 봉상시가 주관하며 별제 두 사람이 함께 검찰한다.
또 감역부장과 벌빙군관의 감독하에 저자도 부근에서 얼음을 채취하는데,
이것은 개천(청계천) 하류의 더러움을 피하기 위함이다.
서빙고는 한강 하류 둔지산 기슭에 있는데, 빙고가 8채(梗)나 되므로
모든 국용 및 여러 관사와 고위 관료가 모두 이 얼음을 쓴다
저자도란? 지금의 금호동과 옥수동 남쪽 한강에 있었던 모래섬으로,
한강 본류와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삼각주로써
경관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얼음은 두께가 4치가량 언 뒤에 채취 작업을 하는데,
그때는 여러 관사의 관원들이 동원되어 경쟁을 하므로 군인이 많아도
잘 채취하지 못한다.
그래서 강촌 백성들이 얼음을 채취하여 군인들에게 팔곤 한다.
또 칡 끈을 얼음 위에 걸쳐 놓아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강가에는 땔나무를 쌓아두어 동상에 대비하며,
의원과 약을 갖춰 두어 병들거나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등
사고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다.
8월에 군인들을 보내서 고원(雇員)의 인솔하에 빙고의 천정을 수리하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썩은 것을 갈고,
담이 허물어진 것을 고친다. 또 압도(鴨島)의 갈대를 베어다가 빙고의
상하 사방을 덮는데, 갈대를 두껍게 덮으면 얼음이 녹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담당 관원이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얼음 저장하는 일을
하리들에게 맡기곤 하였다.
계축년(1493)에 얼음 저장이 허술하게 되자 상이 노하여
담당 관원들을 모두 파직하였다.
그 때문인지 갑인년(1494)에는 얼음 저장이 잘 되어
을묘년(1495)의 국상(國喪)과 중국 사신 접대에도
얼음이 부족하지 않고 가을까지 빙고에 얼음이 남아 있었다.
@얼음은 삼동설한인 12월에 한강에서 채취하여 저장했다가
이듬해 춘분에 처음 꺼내어 사용하였다.
빙고는 동빙고와 서빙고 외에 궁궐 안의 내빙고 두 곳이 더 있었으며,
지방의 지정된 고을에도 빙고를 두었다.
저장된 얼음은 제향과 각종 행사 때,
그리고 궁궐 내의 음식을 보관하는 데 쓰였고,
국상이 있는 경우에는 수개월 동안 시신을 보존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 여름철에는 정2품 이상의 관료 등에게도 나누어주었고,
의료기관의 병자와 감옥의 죄수들에게도 지급하여
무더위에 목숨을 잃지 않도록 했다.
그러므로 1년 동안 사용할 얼음을 미리 저장했다가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일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부 이상만이 집에 얼음을 저장해 둘수 있었다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이듬해 가을까지 보관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시설과 관리가 필요했는데,
일반 백성들로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사철 얼음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신라 지증왕 때 처음으로 얼음을 저장하였다
고려 충렬왕 때 누구나 얼음을 저장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최이(崔怡)가 얼음을 사사로이 저장하였다는 이유로 탐욕스럽고
사치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을 보면
개인이 얼음을 저장하는 데는 여전히 제약이 따랐던 듯하다.
조선에서도 원칙적으로 얼음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였으나,
성종 무렵에는 일부 종실이나 권력층에서 사빙고(私氷庫)를 설치하였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민간 장빙업(藏氷業)이 크게 발달하였다고 한다.
@엄동설한에 꽁꽁 언 강에서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고 도성 안으로
운반해 들이는 일이 쉬웠을 리는 없다.
부역으로 나갔건 고용되었건 간에 이 일에 동원되었던 민초들이
겪었을 고충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동상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기도 했고, 강에 빠지는 일도 잦았다.
채취할 때 담당 관원들의 부정과 횡포도 심했고,
빙고로 운반하여 저장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제 곧 음력 2월이다.
옛날이라면 빙고를 열어 얼음을 꺼냈을 춘분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는 한강이 얼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100년 전 연평균 80일이었던 한강의 결빙 일수가
이제는 15일에 불과하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01.세종로라이온스클럽 춘천 삼악산 (0) | 2023.01.28 |
---|---|
2014-0221.세종로라이온스클럽 월례회 (1) | 2023.01.28 |
2014--0211.세종로라이온스클럽 임원회의 (0) | 2023.01.28 |
2014-0116.세종로라이온스클럽 2014년도 신년하례(월례회) (0) | 2023.01.28 |
2014-0112.세종로라이온스클럽 산악회 출범 (0) | 2023.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