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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빛사랑 조흥식

2014-0628.팔마포럼 야유회

by 조흥식 2023. 1. 31.

2014-0628.팔마포럼 야유회(남산 팔각정~장충단공원)

*까꿍놀이

 

 

 

까꿍놀이

@기우만(奇宇萬 1846~1916)

나는 잠자기를 좋아한다.

차가운 등불 심지를 다 돋우며 밤새도록 괴로이 읊조려 보기도 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잠자는 것이 낫다.

수암주인은 이를 먼저 터득한 사람이다.

수암주인은 누구인가.

해상(海上) 김성표(金聲表) 군이다.

그는 젊은 시절 부지런히 책을 읽고 농사를 지었다.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며 촌음을 아꼈으니,

어찌 편안히 자는 것을 능사로 여기겠는가.

지금 세상이 옛날 같지 않으니,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으려고

꼼짝도 않은 채 집 이름을 수암이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세상을 잊는 방법을 배웠다.

긴 꿈에서 먼저 깨어나는 그 날이 과연 올 것인가.

나는 주인이 동쪽 창가에서 자고 깨는 모습을 보며

순환하는 세상의 운수를 점쳐 보리라.

아들 율관(栗寬)이 책을 들고 내게 와서 배우다가 돌아가게 되자

이 글을 써서 보낸다

 

@구한말 학자 기우만이 수암주인 김민호(金敏浩)에게 보낸 글이다.

기우만은 김민호가 자기 집에 수암(睡菴)’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이다

김민호는 부지런한 사람이니 편안히 잠자는게 좋아서 그랬을리가 없다.

어지러운 세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보고 싶지 않은것은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으려 아무것도 모른 채 잠자는 사람처럼

지내고 싶어서 그랬으리라.

 

@기실 이것은 기우만의 바람이었다.

기우만은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고픈 심정을

자주 토로하였다.

그는 세상에 두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보고 싶지 않은것은 보지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않는 것”(이락당소기(二樂堂小記))이라고 하였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고 싶으니,

항상 술에 취해 깨지 않으면 좋겠다.”(취석기(醉石記))라고도 하였다.

심지어 차라리 죽어서라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는다면 통쾌하겠다.”(답오찬중(答吳瓚仲)라고 하였다.

 

@기우만이 그토록 보기싫고 듣기 싫던것은 당시 사회의 현실이었다.

개항이후 외세의 침탈과 내정의 문란으로 온 나라가 혼돈에 빠진 가운데,

그가 살고 있던 호남 지역은 동학(東學)의 거센 파도에 휩쓸렸다.

그가 유학자로서 평생 지켜왔던 전통적 가치는 밀려드는 새로운 문물

앞에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차라리 깊이 잠들어 아무것도 모르는게 낫겠다고 생각한것도 이해된다.

격한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울 때는 잠시 눈을 붙이는것도 방법이다.

다만 잠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수 없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나도 냉엄한 현실은 그대로이다.

기우만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을미사변에 이어 단발령이 시행되자 기우만은 의병을 일으켰다.

보고 싶지않고 듣고 싶지않은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는 호남 의병의 영수로서 각지의 의병을 불러모아 거사를 준비하였다.

비록 고종의 명령을 받고 해산했지만,

그 뒤로도 상소를 통해 부당한 현실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보기 싫은 모습을 보아야 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다.

오죽하면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이 인생의

여덟 가지 괴로움 중 하나라고 하겠는가.

사람들은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채 있는 것을

없는 셈 치고 애써 자위한다.

 

@까꿍놀이라는 것이 있다.

아기 앞에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다가 손을 떼면서 까꿍하고

아기를 어르는 놀이로써 엄마 아빠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아기는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줄로만 안다.

그러다가 손을 치우며 까궁하고 어르면, 아기는 사라진 줄 알았던

엄마 아빠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놀랍고 반가워서 즐거워한다.

까꿍놀이를 통해 아기는 대상 영속성을 자각하게 된다.

대상 영속성이란?

심리학자 피아제(J. Piaget)의 인지 발달 이론에 나오는 개념으로

어떤물체가 시야에서 사라지더라도 그 물체는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기는 단순하다.

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은 다르다.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안 보는 게 속 편하다고 하면서

애써 눈을 가린다.

안 보이면 없다고 믿는 인간의 단순함이란!

 

@보기 싫은 꼴이 보이지 않으니 즐거운가.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편안한가.

보고 싶지 않다고 눈을 가리고, 듣고 싶지 않다고 귀를 막는다면

까꿍놀이에 속아 넘어가는 아기와 다를 게 무엇인가.

사회에 만연한 비리와 불법이 보기 싫다고 눈을 가리면

부정부패가 저절로 사라지는가.

생활고로 일가족이 목숨을 끊었다는 끔찍한 소식이 듣기 싫다고

귀를 막으면 동반자살이 없어지는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현실은

더욱 심해질 뿐이다.

보기 싫은 모습을 보지 않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는 방법은,

보기 싫은 모습을 직시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경청하는 길 뿐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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