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정기월례회
제목: 해람(解纜)과 계람(繫纜) 사이





제목: 해람(解纜)과 계람(繫纜) 사이
@신유한(申維翰, 1681~1752), 청천집(靑泉集)
*오후에 징파강에 배를 띄우며[午發澄波江]」
“조각배 띄운 오후 하늘도 쾌청하고
가을 강 바람 쐬니 병든 몸 상쾌하네
단풍과 솔은 멀리서도 빛깔 또렷하고
일렁이는 바위 그림자 듣던 대로 황홀하네
시상이 솟구쳐 글로 다듬기 어려운데
노 젓는 소리에 졸다가도 쉽게 놀라 깨네
뱃전에 기대 풍광 보니 몹시도 흥겨운데
구름 너머 돌아가는 새 가장 마음 끌리네”
*신유한이 1739년 59세 나이로 연천 현감으로 부임하여 지은 작품이다.
환갑이 다 되도록 말단 관직과 지방 수령 자리를 전전하다
이제 또 척박한 땅의 수령이 되었으니 달가운 벼슬살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울울한 심사를 달랠 수 있는 안식처가 바로 징파강이었다.
*징파강은 임진강의 지류로 한탄강과 합류하기 이전에 북쪽에서 흐르는 강이다.
안협, 토산, 삭령, 연천을 거쳐 마전 남쪽에서 임진강 본류와 합류하는데,
삭령의 우화정(羽化亭), 연천의 웅연(熊淵)과 징파 나루가 경치가 좋았다.
신유한은 2월에 부임하여 6월엔 웅연을 유람하였고 한 달 뒤 징파 나루를 유람하며 이 시를 지었다.
음력 7월 보름 선유(船遊)의 경험을 노래하였으니 딱 요즘과 같은 절기에 지은 작품이다.
*하늘도 쾌청하고 바람도 상쾌하니 뼛속까지 시원하다.
축축 늘어지는 여름을 인고하여 가을맞이 유람에 나섰는데 날씨까지 도와주니 이보다 흡족할 순 없다.
가을 강바람의 청량함과 승경을 유람하는 흥분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역력(歷歷)은 또렷한 모양이고 의의(依依)는 일렁이는 모양이다.
멀리서도 또렷이 보이는 나무에 눈이 정화되고 일렁이는 물결에
투영된 바위 그림자는 절벽의 풍광을 더욱 황홀하게 만든다.
상반된 이미지가 혼연히 하나가 되어 서로의 바탕이 된다.
멋진 풍광에 절로 창작욕이 샘솟지만 이내 글로 담기 어려움을 깨닫고 창작을 포기한다.
그저 한가함을 즐길 따름인데 노 젓는 소리에 설핏 잠이 들다가도
또 그 소리 때문에 단꿈에서 깨어난다.
*모든 풍광이 아름답지만 하늘 위로 자유롭게 나는 새에
더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광활한 대자연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툭 트였기 때문이다.
시선이 하늘로 향하면서 후련한 심정이 극대화된다.
56자의 짧은 시이지만 마치 요즘의 여행 블로그를 보는 것처럼 매 장면이 선명하고 생생하다.
*신유한이 가을 강에 배를 띄운 것은 소식(蘇軾)의 유람을 본뜬 것이다.
소식은 황주(黃州) 유배 시절,
임술년 7월 기망(旣望)과 10월 보름에 장강(長江)의 적벽(赤壁)을 유람하고
이를 불후의 명작 전적벽부(前赤壁賦)와 후적벽부(後赤壁賦)로 남겼다.
그 영향으로 조선에서도 7월 16일과 10월 15일에 뱃놀이를 즐기는 문화가 유행하였는데,
전국 각지에서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
임진강은 그중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장소로 그 배경에는 적벽이 있었다.
*임진강 유역은 주상절리가 발달하여 강변을 따라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이 참으로 장관이다.
석양을 받은 절벽이 붉은 빛을 발해서인지,
절벽의 돌단풍이 가을에 붉게 물들어서인지
임진강 주상절리 절벽은 적벽으로 불렸다.
소동파가 장강 적벽에서 조조의 적벽을 떠올렸듯이 조선의 풍류객들은 임진강 절벽에서 소동파의 적벽을 떠올렸다.

▲임진강 주상절리(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시에서는 호젓한 정취를 즐긴 듯 보이지만 이날 행차는 꽤나 성대하였다.
신유한은 아들을 대동하였고 연천의 박천휴(朴天休)와 그 자제들이 참석하였으며
아전과 하인들이 동원되었다.
15일 오후에 징파 나루에서 배를 띄워 휴류탄(鵂鶹灘), 유탄(楡灘) 등을 거쳐
한탄강과 합류하는 도가미(陶家湄)까지 이르렀다.
해가 진 뒤에는 하선하여 일행들과 회식을 하고 숙박하였으며,
다음 날에도 유람이 이어졌다.
*이날의 선유에서 전적벽부가 재연되었다면 3년 뒤 임술년 10월 보름에는 후적벽부의 재연이 이루어졌다.
마침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洪景輔)가 관할 지역을 순력하게 되어
당대의 문장가 연천 현감 신유한과 일류 화가 양천 현령 정선(鄭歚)을 불러 뱃놀이를 즐겼다.
이때 행차는 더욱 성대하였는데 수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삭녕 우화정에서 출발하여 연천 웅연에 정박하였다.
이 장면을 정선이 마치 기념사진처럼 우화등선(羽化登船), 웅연계람(熊淵繫纜) 두 작품으로 남겼고,
신유한은 의적벽부(擬赤壁賦)라는 글로 아름답게 기록하였다.
59세 7월 보름엔 징파강 남쪽을, 62세 10월 보름엔 북쪽을 유람하였으니
신유한은 소동파 적벽을 징파강에 재현하는 일에 참으로 진심이었다고 할 만하다.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에 실린 정선의 웅연계람과 신유한의 의적벽부(1742)
*‘해람(解纜)’은 닻줄을 푼다는 말로 출항을 의미하며 ‘계람(繫纜)’은 이 반대말로 정박을 의미한다.
모든 여행은 결국 해람과 계람 사이의 항해이다.
일상의 닻줄을 풀고 우연의 세계와 조우하다 다시 일상에 닻줄을 내려
필연의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시에서는 ‘해람’의 공간만을 다루고 있지만
그 ‘등선(登船)’이 ‘등선(登仙)’의 경험으로 치환될 수 있는 이유는,
땅에 발을 내딛는 ‘계람’의 일상이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여정도 해람과 계람의 무한한 반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상향의 바다를 향해 닻줄을 풀었다가 현실의 땅에 정박하여
지난 항로를 점검하는 일이 우리의 삶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의 배는 어느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지,
또는 어느 포구에 정박하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가을이 성큼 찾아왔다.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이 모두의 항해를 아낌없이 응원할 것이다.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0204mpcho@naver.com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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