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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2015-0202.세종로라이온스클럽 이사회

by 조흥식 2023. 3. 6.

2015-0202.세종로라이온스클럽 이사회(쫄매쭈꾸미, 광진구 구의동)   *회장 조흥식

침묵의 무게

 

 

 

침묵의 무게

@이곡(李穀 1298~1351) 의심을 푸는 방법(釋疑)

다른 사람이 근거도 없이 나를 의심한다면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변명에 급급하다 보면 의심은 더욱 심해지지만 반대로 내버려 두면

저절로 의심이 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불의(直不疑)는 같은 방을 쓰던 동료가 금을 잃어버리자

군말 없이 선뜻 보상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잘못알고 금을 가지고 간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서

자신의 결백이 밝혀지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한 일이겠는가.

그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남이 나를 의심하는 것은 평소 내 행동이 남에게 신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분한 마음에 큰소리로 따지고 소송을 제기하고

신명에게 질정하여 기필코 해명하고 말아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느니 나는 차라리 실체가 없는 누명을 묵묵히 참으며

내면의 인격을 연마하는 쪽을 선택하겠다.

인격이 쌓여 겉으로 드러나면 모든 사람이 심복할 것이니

그때 가서는 내가 실제로 도둑질을 했더라도 현재의 훌륭한 행실이

지난날의 허물을 충분히 덮어 줄 것이다.

하물며 나는 도둑질을 하지도 않았으니 굳이 해명하며 따질 이유가 없다.”

이것은 옛사람이 자기반성을 소중하게 여긴 일화이다.

돌아보아서 스스로 진실하다면 천지와 귀신도 믿어 줄 것인데 사람에 대해서야 염려할 게 뭐 있을까.”

 

@살다 보면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거나 엉뚱한 일로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 같지도 않은 작은 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점점 부풀려져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도 한다.

남의 뒷얘기라는 게 원래 재미있는 일이라,

이 입에서 저 입으로 건너갈 때마다 사실 아닌 사실이 새롭게 보태지고

말하는 사람의 재미는 커져만 간다.

그런 이야기는 대부분 누가 뭐라 하더라’,

누가 어떻다 하더라라는 식으로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지

말하는 당사자가 직접 보거나 들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분하고 답답하여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소문의 진원지를 알 수 없으니 가서 따질 수도 없고,

이야기의 알맹이가 뚜렷하지 않으니 이치를 들어 해명할 수도 없다.

쑥덕거리는 소리에 귀가 간지럽고 흘깃거리는 눈초리에 뒤통수가 따가워도 꾹 참고서 사람들이 제풀에 시들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해명을 하려고 해도 해명할 거리가 없고,

해명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오해와 소문을 만들어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도 개인적인 문제에서는 내버려 두면 머잖아 말하는 사람들도

흥미를 잃어서 소문은 곧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인(公人)의 공사(公事)에 관련한 일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어떤 비리가 밝혀져서 누군가가 그 주역으로 지목되면

그때부터 모든 언론, 전 국민이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선다.

출처도 뚜렷하지 않고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풍문 같은 내용이 시시각각 더해지고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선다.

누구든 그 입길에서 빠지면 시대에 뒤진 사람으로 매도당하기에

십상이므로 뒤질세라 입방아에 끼어들고 자기 생각을 덧붙인다.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가늠할수 없는 수많은 말이

떠돌아다닌다.

이쯤 되면 진실 그 자체는 이미 뒷전으로 밀려나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소문의 올가미에 걸리면 배겨날 사람이 없다.

 

@이럴 때 오해를 불식시키고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묵묵히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라고 가정(稼亭)은 권한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되면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평소 행실을 반성하라는 준엄한 충고이기도 하다.

말과 행동이 진실하여 평소 주위 사람에게 신뢰를 받는 사람은

설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목되더라도 그 사람이 그럴 리 없다.’

믿지 않거나 어쩌다 실수한 것이라고 덮어 준다.

그와 반대의 경우에는 사건만 생기면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도

덤터기를 쓰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럴 때 억울하면 출세하려고 몸부림칠 게 아니라

먼저 스스로 반성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용한 가정의 글 속에는 한 가지 일화가 더 소개되어 있다.

가정과 친했던 홍언박(洪彦博, 1309~1363)의 이야기이다.

홍언박의 집 여종 하나가 유모가 되어 아이에게 젖을 먹였는데

수유(授乳) 기간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홍언박의 부인이 노발대발했다.

젖을 먹이는 동안 임신을 하면 젖먹이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밖에 나가지 말고 아이를 돌보는 데만

전념하라고 했는데 그 명을 어기고 남자를 끌어들였다는 죄목이었다.

닦달을 견디지 못한 여종은 상대가 홍언박인 것처럼 둘러댔다.

당시 연경(燕京)에 가 있던 홍언박이 뒤늦게 돌아오자

부인이 남편을 몰아붙였다.

홍언박이 나는 천하절색 미녀도 거들떠보지 않는데

종을 가까이했을 리가 있는가?”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종은 끝내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부인도 의심을 풀지 않았지만

홍언박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태연자약하게 생활했다.

 

설령 여종이 사실대로 고백했어도 부인은 의심을 풀지 못했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홍언박처럼 의연하게 일상을 유지하며

묵묵히 자신의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다.

이때의 침묵은 어떤 웅변보다 더 큰 무게를 지닌다.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면 반드시 해명하여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고 해명이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기어이 해명하겠다고 나섰다가 의심만 증폭시키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세상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확인할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

직불의와 홍언박이 보여준 침묵의 무게를 생각해 본다.

말은 또 다른 말을 만들어 내어 사고를 마비시키지만,

침묵은 깊은 성찰을 동반한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