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1. 소금박사 최위권(천기염)
*포천 허브랜드(한국문학)
*북한산(2012,4,28 쪽두리봉, 사모바위)
*운악산 정혜사 낙성식
*송년의 밤 SPL(2011.12.20)
*도봉산 천축사, 광륜사(2012,4,11)
*방배동 커피숍(2012년 봄)
*판소리 주희정(윤동주 시인의 언덕)
*퐁파두르부인
퐁파두르夫人
@국내 유일한 천기염 전문가(최위권)
.안데스 산맥(해발 6400m)에서 생산되는 치료용 천기염 박사이다
.부산출신의 호탕한 성품으로 언제나 남성미가 넘친다
.평소 친화력이 탁월하여 종로~서초를 온종일 누비는 마당발이다
.넉넉한 인심과 풍요로운 심성으로 산을 찿기 시작하였다
“樂山樂水” 仁을 갖춘자는 山을 찿고, 智慧로운 자는 물을 찿는다
.최근 도봉산을 1/2구간 완주하는 체력을 과시한바 있다
@퐁파두르 부인은 중세 유럽의 대표 美人이었다
.아직까지 가장 知的이고, 격조 높고, 세련된 貴婦人이다
.우아하고 단정한 이목구비, 그윽한 눈길, 아름답고, 교양이 풍부하여
知的인 분위기를 완벽하게 갖춰 파리의 스타일을 지배한 女人이다
.왕의 파격적인 信賴를 바탕으로 國政에도 막강한 權力을 발휘하였다
귀족들의 눈총은 국정개입으로 더 큰 분노를 샀다
.王의 측근들 조차 한결같이 感歎詞를 연발하였다
“퐁파두르 夫人은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女性이다”
@탁월한 才能과 지성, 지적으로 우수했다
.왕이 자주찿은 이유는 미모가 뛰어났지만, 사려깊은 마음씨와
예술적 교양, 남다른 지성을 가진 人才로 볼수있다
.교양의 힘으로 權力을 확대하여 政治에 상당히 관여하였다
.美術, 音樂, 文學, 建築, 인테리어, 패션...
폭넓은 知識을 바탕으로 남동생을 예술담당 長官으로 등용하여
콩코르드 광장, 벨뷔 궁, 프티 트리아농 궁의
建築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당대 최고의 걸작 藝術品과 工藝品을 적극적으로 구입하였다
.세부르 後援에 앞장선다(유럽 最高의 도자기 산지중의 한군데)
.프랑스의 “로코코 時代”로 부르게 되었다
*훗날, 오스트리아 여제(마리아 테레지아)는 딸(마리 앙투아네트)을
루이16세와 婚姻하였다(루이15세의 孫子)
시집보낼때 당부하였다 “무엇보다 파리의 스타일을 지배하라”
이는 퐁파두르 부인의 才能과 역할을 알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예술적 후원자로써 美術史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왕으로부터 영원히 매력을 잊지 않도록 본인의 自畵像을 그리게 했다
.나이보다 젊고, 지적, 예술적 흐름을 강조하여 그리도록 명하였다
.34세, 自畵像에는 펜, 책과 책장, 악보, 격조높은 커텐이 동원되었고,
유행에 맞춰 화려한 의상은 입었지만
장신구(목걸이, 금은보화)는 일체 착용하지 않아
깔끔하고 격조높은 세련미를 추구했던 것이다
이는 높은 교양수준과 안목을 부각시키는 상징이라 할수있다
.특히, 자화상에 등장하는 서적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희곡 “충직한 양치기”와 “디드로”(괴리니 작품: 희곡작가, 시인)
.달랑베르 작품 “백과전서”
.몽테스키외 작품 “법의 정신”
.볼테르 작품 “앙리아드”
@대범했던 여장부, 女傑(여걸), 大人이다
.바람둥이 루이15세가 끝까지 사랑한 이유는
대범함과 현실적인 태도는 냉철한 품성과 태도가 왕을 사로 잡았고,
영향력을 유지할수 있었다
.카사노바가 발굴하여 왕에게 바친 절세미인(마리 루이즈 오머피)은
미모로써 왕을 사로 잡을것으로 오판했다가 3년후 쫓겨난다
.13세의 미모, 관능미, 순수하고 천진한 표정으로 묘한 매력이 많았다
.1755년, 궁을 떠날 때 5만 리브르(위자료)를 받고 버림을 받는다
하급 귀족(자크 드 보프랑슈)과 정략결혼하게 된다
.배려심도 많아서 왕비(마리 레슈친스카)에게 극진한 존경을 표했다
다른정부들의 왕의 사랑을 믿고 오만하고 왕비를 무시하고 모욕했다
왕비와 돈독한 유대강화를 위하여 진심으로 희생하고 양보하였는데,
왕비에게 잘해주도록 루이15세에게 당부를 하였고,
왕비 선물을 준비하여 왕에게 시킬정도로 배려심도 많았다
.왕의 잠자리 여성도 직접 챙겨주은 너그러움을 발휘한 大人이었다
.당시 루이15세 여성편력으로 “모든 인류가 아담의 자손이라면,
모든 프랑스 사람들은 루이15세의 자손이다”라고 하였다
@루이15세의 情夫(프랑스)로 죽을때까지 사랑을 받았다
.유부녀 출신의 퐁파두르 부인은 미모 때문에 정부로 간택되었지만
사실은 그녀의 재능, 교양, 품성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1750년, 두명의 아들이 유산된 이후 王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品格으로 미모와 관능을 이겨낸 여장부, 大人이다
평민 출신으로 궁궐 귀족들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었으나,
예술적, 지적 교양으로 막강한 힘을 획득할수 있었다
.1721년 출생으로 본명은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
父親(프랑수아 푸아송)은 파리 재무전문가의 집사출신으로
금융사고에 연루되어 외국으로 피신하여 母親 슬하에서 성장한다
.母親은 부자 징세인 “르 노르망 드 투르넴”의 後援으로 호강하였는데,
美人엄마와 연인관계로 추정되어 출생신분에도 말이 많은편이다
후견인(노르망)은 敎育에 많은 돈을 투자하게 되는데,
母親의 욕심대로 연기, 무용, 노래, 클라비코드, 회화, 판화등
다양한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을수 있는 幸運을 얻었던 것이다
당대 유럽의 최고 성악가(피에르 젤리오트)를 스승으로 모시고
연기, 노래에 集中敎育으로 뛰어난 才能과 감각을 개발하여
文化와 藝術에 대한 안목을 키운것이 成功의 디딤돌이었다
.후견인(노르망)의 조카(샤를 기욤)와 婚姻한 유부녀로써,
.1745년, 프랑스 황태자(루이 드)의 결혼식 가면무도회에서
역사적으로 루이15세를 처음 만나게 되어 운명이 바뀐다
.그 무렵 루이15세는 사랑했던 정부(마리 안)이 죽어 실의에 빠졌을때
시아버지가 앞장서서 왕을 만나게 주선한 자체가 참 우습다
.남편과 離婚하고, 왕의 정부가 되어 “퐁파두르 후작부인” 작위를 받는다
@루이15세의 추락은 “7년전쟁 패배” 때문이다(1756~1763)
.퐁파두르 부인은 중요한 외교, 군사 정책결정에 개입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국가 재정을 파탄나도록 일조를 했다고
훗날 평가되기도 했다
.프랑스(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는 프로이센(영국 연합군)에
패배하여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인도로 쫒겨가는 신세가 되었다
.로스바흐 전투에서 패배한 소식에 실망한 루이15세에게 위로하였다
“그만 걱정하고 쉬세요. 우리가 죽은후에 대홍수가 난들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루이15세에게 戀人이상의 運命의 파트너
.부세 그림 “일출, 일몰”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태양의 神(아폴로)이 바다의 女神(테티스)과
바다의 요정들이 떠나는 장면과 그들을 환영하는 장면이 멋지다
.아폴로는 “루이15세”를 상징하고,
.바다의 女神(테티스)는 “퐁파두르 부인”을 칭하고 있다
“해가 바다에서 떠오르고, 바다로 되돌아가는 것은 부부간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루이15세와 퐁파두르 부인간의 이별을 예고한 것이다
@퐁파두르 부인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다(43세, 1764년)
.正妃가 아닌 장례식에 궁중법도 때문에 참석할수 없었던 루이15세는
외투와 모자를 벗고, 발코니에서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환송하였다
“부인의 여행길이니 날씨가 좋을 리 없지...”
.프랑스 藝術家들은 後援者(격려자)를 잃고 매우 슬퍼했다
“카를 방로”의 작품은 불후의 명작으로 뽑을수 있다
“運命의 女神에게 퐁파두르 부인의 生命을 연장해달라고
애원하는 藝術들...”
.運命의 女神이 가위를 들고 부인의 명줄을 끊으려 하자,
.아폴로와 주위의 조각, 회화, 건축, 음악이 간절한 자세로
그러지 말것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아마 感謝의 표시이며 藝術 後援에 대한 업적에 대하여
극진한 讚辭(찬사)를 보낸것이다
@코티잔의 유래? Courtesan
.王, 貴族, 權力者의 정부를 칭한다
.일반적 개념의 정부가 아닌 특별한 관계로써 사회적 공인이었다
.높은 교육수준으로 교양, 정서적, 문화적 욕구까지 채울수있는 여성으로
궁정인, 예의, 격, 교양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가능하다
.코티잔이 군주의 정부로 부른것은 르네상스 시대(이탈리아) 부터이다
코르티자나(이태리어), 쿠르티잔(프랑스어), 코티잔(영국어)
.이탈리아의 코티잔은 고급~하급으로 나눠진다
코르티자나 오네스타: 퐁파두르 처럼 지적이고 영양력이 큰 고급형
코르티자나 디 루메: 창부보다 높으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형
.고급 코티잔은 아름다운 용모, 교양, 재능, 품성, 센스, 위트(유머)를
고루 갖춰야 높은 지위의 후원자에게 선택될수 있다
유복한 가정출신으로 高級敎育을 받아야 하고, 有夫女 출신도 많았다
.코티잔은 사랑보다 상호 이익을을 위하여 한 남자의 파트너가 되어
상호 양해하에 後援者와 깔끔하게 헤어졌다
원하는 만큼 補償金(위자료)을 지불하였고,
다른 유력한 後援者를 소개하거나, 經濟的인 보상을 해준 것이다
.政略結婚 분위기는 權力者와 貴族은 가문, 혈통, 재산을 지키고
정서적이고 肉體的인 만족을 서로 원하는 婚外 파트너를 찿게되었다
훗날, 궁정문화와 귀족문화에 공식화 된것이다
@바버라 팔머(클리브랜드 공작부인)
.팔머(1640~1709)는 영국 찰스2세의 정부로써 가장 악명높은 “코티잔”
하얀 피부, 큰 키, 관능적 몸매, 낭비가 심하고, 질투심이 심하였다
財物에 욕심이 많았으며, 그에게 휘둘린 왕은 그만큼 國庫를 탕진하여
팔머는 백성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던 불세의 女人이다
.로저 팔머와 結婚했던 有夫女 출신으로 王의 정부가 된 이후에도
전 男便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전 男便 로저 팔머는 王으로부터 “캐슬메인 백작”의 작위를 받았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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