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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C지구(서울)

2017-0123.제13지역 신년하례(조흥식 지역부총재)

by 조흥식 2023. 5. 7.

2017-0123.13지역 신년하례(조흥식 지역부총재, 은행나무집)

늙어감에 대하여(49)

 

 

 

늙어감에 대하여(49)

@이옥(李鈺 1760~1815), 화석자문초(花石子文鈔)

나는 모르겠다.

너의 얼굴에서 지난날엔 가을 물처럼 가볍고 맑던 피부가

어이해 마른 나무처럼 축 늘어졌느냐?

지난날 연꽃이 물든 듯 노을이 빛나는 것 같던 뺨이 어찌하여

돌이끼의 검푸른 빛이 되었느냐?

지난날 구슬처럼 영롱하고 거울처럼 반짝이던 눈이

어이해 안개에 가린 해처럼 빛을 잃었느냐?

지난날 다림질한 비단 같고 볕에 쬔 능라 같던 이마가 어찌하여

늙은 귤의 씨방처럼 되었느냐?

지난날 보들보들하고 풍성하던 눈썹이 어이해

촉 땅의 누에처럼 말라 쭈그러졌느냐?

지난날 칼처럼 꼿꼿하고 갠 하늘의 구름처럼 풍성하던 머리카락이

어이해 부들 숲처럼 황폐해졌느냐?

지난날 단사(丹砂)를 마신 듯 앵두를 머금은 것 같던 입술이

어이해 붉은빛 사라진 해진 주머니같이 되었느냐?

지난날 단단한 성곽 같던 치아가

어찌해 비스듬해지고 누렇게 되었느냐?

지난날 봄풀 갓 돋은 것 같던 수염이

어이해 흰 실이 길게 늘어진 듯 되었느냐?

인생은 뜻밖의 일과 맞닥뜨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내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삶을 끝없는 긴장으로 밀어 넣는다.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외롭게 버티어가는 사이,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흰머리가 수북하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라.

쓸쓸하게 늙어가는 내가 있다

 

@이옥(李鈺)은 꽃과 물을 사랑했고 감수성이 풍부했다.

문체반정의 유일한 실질적 피해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군대 세 번 갔다는 사실이 더욱 인상 깊다.

이옥은 경기도 남양(南陽, 지금의 화성)에서 태어났다.

그 역시 남들처럼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 시험을 준비,

31세에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36세 때 임금의 행차를 기념한 글을 썼는데,

글을 본 정조가 문체가 괴이하다며 정거(停擧),

곧 과거 응시 자격을 정지시키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과거 시험일이 다가오자 충군(充軍)의 벌로 바꾸어 주었다.

충군은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다.

충청도 정산현(定山縣, 지금의 청원군)에서 몇 개월 군 복무를 한 그는 과거에 응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조는 그의 문체가 초쇄(噍殺)하다고 지적하며 충군을 명했다.

 

@예기(禮記) 악기(樂記)

초쇄한 음악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슬퍼하고 근심한다라고 하였으니,

초쇄란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체다.

그의 글엔 자신도 모르는 슬프고 근심스런 흔적이 배어 있었다.

 

@두 번째 군 복무는 경상도 삼가현(三嘉縣, 지금의 합천군)이었다.

이 상황이 힘들었을 테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과거를 준비했다.

그리하여 다음 해 2, 별시의 초시(初試)에서 당당히 일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조는 그가 쓴 책문(策文)이 격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꼴등으로 강등시켰다.

 

 

@과연 그는 의도적으로 문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걸까?

계속 과거 시험에 도전한 것을 보면 과거에 합격해서 꿈을 펼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그는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오는 내면화된 자기 문체 혹은 기질.

 

@다음 해 그는 실의에 젖어 고향인 남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삼가현에서 군대 소환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예전 삼가현에 다녀올 때 행정 절차를 밟지 않아

그의 이름이 여전히 군적에 등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다시 군대를 가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상 군대를 세 번 다녀온 흔치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의 꿈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스스로 고백했듯, 길 잃은 사람[失路之人]이었다.

재능이 뛰어났던 한 젊은이의 꿈은 절대 권력의 핍박으로 좌절되었다.

그는 출세를 위한 글을 쓰는 대신 자신의 글을 쓰기로 했다.

그것은 소품(小品)의 글쓰기였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기대를 걸었을 부모의 자식으로서,

그 모든 삶의 무게를 끌어안고 가야 하는 외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철저히 고립되었을 그 자신을 구해줄 방편 또한 글쓰기였다.

그는 글을 씀으로써 근심을 잊었고 글을 씀으로써 자기를 구원해 갔다.

 

@나이 오십을 한 해 앞둔 어느 날, 거울을 보던 이옥은 깜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폭삭 늙어 있었다.

위의 글은 그런 그가 거울에게 자신의 늙음을 하소연하는 장면이다.

자기 얼굴의 쇠락을 이토록 애잔하면서 절절하게 표현한 글을 본 적이 있던가?

얼굴 부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곡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문체 때문에 평생의 꿈이 막히고 이러구러하는 사이에

인생은 흘러 쭈글쭈글 늙고 말았다.

그는 팍 삭아버린 얼굴이 퍽 서러웠을 것이다.

허나, 그는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자는 문제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저 반복되는 자기 늙어감의 표현은 뼛속 깊은 억울함과

외로움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초라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고된 삶에 굳건히 맞서가려는 자기 의지의 표현 방식으로 읽힌다.

 

@거울은 다음과 같이 위로한다.

아름다움은 진실로 오래 머무를 수 없고 명예는 진실로 영원토록 함께 못한다.

빨리 쇠하여 변하는 것은 진실로 이치이다.

그대는 어찌 절절히 그것을 의심하며 또 어찌 우울히 그것을 슬퍼하는가?”

 

@영원한 것은 없고 변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니 담담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거울의 말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자기 위로이자 안간힘이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겠다는 자기 다짐이기도 하다.

 

@7년 뒤 이옥은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지금은 그의 무덤조차 찾을 길 없지만,

그가 끝까지 붙들었던 자기 글은 오래도록 남아 오늘의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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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