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5.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2차)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신입회원 교육참가
*난세에서 이규보의 돌과의 대화
난세에서 이규보의 돌과의 대화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돌의 물음에 답하다(答石問)
*큰 돌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하늘이 낳아 주고 땅 위에 존재하는 물건이다.
엎어놓은 그릇같이 안전하고 깊이 박힌 뿌리처럼 견고하여 다른 사물이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고 사람이 옮기려 해도 옮겨지지 않으며,
언제나 내 본성을 보존하고 곧은 것을 온전히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즐겁다.
*그대 역시 천명을 받고 사람으로 태어났다.
사람은 진실로 만물의 영장인데 어째서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언제나 외물에 부림을 당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밀리는가.
외물이 유혹하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외물이 다가오지 않으면 우울하여 즐겁지 못하며,
남이 인정해 주면 기를 펴고 남이 배척하면 기가 꺾이니,
그대처럼 본래의 참모습을 잃고 지조 없는 존재도 없네.
만물의 영장이 이런 것인가?”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너란 물건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가.
불서(佛書)에 ‘우둔하고 미련한 것들의 정신이 목석으로 환생한다.’라고
했으니 너는 이미 정기와 광명을 잃고 돌덩이로 타락한 것이다.
화씨(和氏)의 박옥(璞玉 원석 그대로의 옥)을 쪼개자
너도 따라서 쪼개졌고, 곤륜산의 옥을 태우자 너도 함께 탔다.
또한, 내가 만약 용(龍)을 타고 하늘에 오르면 너는 디딤돌이 되어
나에게 밟히고, 내가 죽어 땅에 묻히면 너는 나의 비석이 되기 위해
깎여서 상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사물에 의해 움직여지고 본성을 손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도리어 나를 비웃는가.
나는 안으로는 실상을 온전히 하고 밖으로는 연경(緣境)을 끊었기에
외물이 나를 부려도 외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사람이 나를 떠밀어도 사람에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피할 수 없이 절박한 상황이 닥친 뒤에야 움직이고 부른 뒤에야 가며,
행동해야 할 때에는 행동하고 멈추어야 할 때에는 멈추니
가(可)한 것도 없고 불가(不可)한 것도 없다.
너는 빈 배를 보지 못했는가.
나는 그 빈 배와 같은데 너는 나에게 무엇을 따지는가.”
@이규보에 대해서는 극명하게 상반되는 두 가지 평가가 있다.
13세기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인정권에 기능적 지식인으로 권력에 아부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규보가 태어나고 2년 후인 1170년(고려의종24) 무신란이 일어났다.
당시 난세(亂世)였다.
천부적인 문재(文才)를 지니고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을 익힌 지식인이
살아가기에는 녹록치 않은 시대였을 것이다.
이규보는 9살에 신동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시재(詩才)를 보여 주었고,
성격 또한 자유분방했다. 시대와 어울리기 어려운 개성이다.
*청년 이규보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과거(科擧)에 3번을 내리 낙방하고 4번째로 응시한 사마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오랫동안 관직은 주어지지 않았다.
방황하며 술을 마셨고, 장자(莊子) 사상에 심취하여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동경했으며, 저술에 몰두하기도 했다.
역사 서사시로 높이 평가되는 동명왕편(東明王篇)이나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같은 작품은 20대에 쓴 것이다.
무신 정권과 화합하지 못하고 현실 정치에서 벗어나 시와 술을 즐기며
고담(高談)을 일삼던 죽림칠현(竹林七賢) 같은 이들의 눈에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한동안 그들의 시회(詩會)에 출입하며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규보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택한다.
서른 즈음, 정권의 요직에 있는 이에게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호소하고
관직을 구하는 편지를 쓴다.
그러다 최충헌(崔忠獻)의 시회에 초청받아 그를 칭송하는 시를 쓴 덕분에
관직에 진출하게 된다.
본인으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실망스러운
처신이었을 수도 있겠다
변절자란 지목도 있었을 법하다.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위의 인용문은 그 무렵에 쓰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돌은 자신의 선택을 비난하는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고
자기 내면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다.
본심을 잃고 줏대없이 영합한다는 비난에 대해 이규보는 빈배를 자처하고
공자의 인격을 묘사했던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라는 말을 끌어온다.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원칙보다는 현실 수용을 앞세우는 상황논리로
볼 수도 있고 구차한 자기변명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갈림길 앞에 서서 갈등하는 한 청년 지식인의 치열한 고민을
읽을 수도 있다.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영욕(榮辱)이 갈리고
궁달(窮達)이 판가름나는 선택이다.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있다.
어쩌면 삶의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어느 길로 가든 그것은 오직 본인의 결정에 달렸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다.
이규보는 영(榮)과 달(達)이 보이는 길을 갔고,
그의 선택을 우리가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선택 앞에서 고뇌하고 해명이라도 하는 인격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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