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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합회

2019-0217. 구드런 국제회장 공식방한 1일차

by 조흥식 2023. 9. 23.

2019-0217. 구드런 국제회장 공식방한 1일차(2019,2,17~2,21)

*인천공항 입국, LCIF 캠페인100 미팅(신라호텔), 만찬(한국의 집)

*율곡 李珥(대학자, 구도장원공)

 

 

 

 

율곡 李珥(대학자, 구도장원공)

율곡(李珥) 출생

*48(1536 명종~1584 선조), 강릉 오죽헌 태생(41, 3째아들)

이원수(덕수이씨, 사헌부 감찰)~신인선(평산신씨, 신사임당)

*본래 이름은 현룡” (신사임당 몽룡실, 흑룡이 하늘에 오르는 태몽)

개명 李珥(율곡 10)” 부친의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개명을 암시

이 아이는 東國大儒이니, 이름을 옥()변에 귀()를 붙이거라

 

구도장원공(9회 과거 장원급제)

*12, 진사과 초시(1548), 스승 휴암 백인걸(정암 조광조의 제자)

*20, 진사과 복시

*22, 별시 초시

*23, 대과 낙방

*28, 생원과 초시, 복시, 진사과 초시, 대과 초시, 대과 복시, 대과 전시

 

율곡(李珥)의 생애

*3, 한글을 깨우친 신동

*4, 史略(중국서적) 첫권을 공부, 스승보다 풀이능력이 더 탁월하였다

*5, 모친 병환(신사임당)에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사람들이 탄복

외조부(신명화)의 사당(위패)에 홀로 매일 1시간씩 쾌유를 비는 기도

*6, 강릉 오죽헌에서 파주 율곡(법원리)으로 이사

*10, 개명(이현룡이이)

*12, 진사과 초시(1548)

*15, 모친 사망(신사임당), 시묘살이 3년간(묘막살이)

*18, 금강산 입산 생불(의암 스님)” 주변에서 불경 완독에 감탄

*19, 환속(불교공부 중단), 불교사상은 유학이론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

*21, 결혼(1557), 혼인시기 늦어(3년 시묘살이, 금강산 불교공부)

성주목사 노경진의 딸(자녀없음)

(이씨, 김씨)21, (사계 김장생의 첨)

*22, 안동 도산서원 퇴계(이황)을 찿아 2일간 면담(1558, 명종13)

대학자 이황(57, 35살 연상) “율곡의 능력에 탄복하다

이후, 서신교류를 통하여 학술 토론은 계속된다

*28, 신년식과 장원급제후, 정계입문(1564, 명종19)

호조좌랑, 예조좌랑 상소문으로 소윤 윤원형과 보우(스님)을 파직

왕실외척(문정왕후, 파평윤씨)이 승려(보우)를 궁중에 이끌어 비행

윤원형은 파직, 보우(스님)는 제주도에 유배

*30, 이조정랑(1566)

*32, 천추사(1568, 명나라 사신 서장관으로 연경 동행)

귀국후, 홍문관 부교리(5) 승진

*35, 청주목사(1571)

서후향악을 정하고, 백성들의 자치생활을 권장하는 큰성과를 올려

*36, 사직, 낙향(파주 율곡)

우계 성혼과 학문교류(이기론, 사단칠정론, 인심도심설)

장기간 서신 및 방문 토론 퇴계의 이기이원론이 옳을수 있다

*37, 승정원 우부승지 정계복귀(1573, 선조6)

만언봉사(萬言封事 1574(선조7) 상소문에 선조의 감탄

현 조선의 정치, 사회풍습중 잘못된 7가지는 국가적 근심거리이다

지적을 자세하게 설명, 개선책을 강구하라는 요구사항을 열거한다

병조참지(3)

사간원 대사간(3)

병환으로 사직후, 낙향(파주 율곡)

*38, 황해도 감사 6개월(1574), 기생 일화(유지, 12)

기생(유지), 율곡을 흠모하자, 독서권장등 각별하게 아껴준다

한양으로 복귀 9년후, 기생(유지)를 다시 만나다

명나라 사신 접대차 방문시, 잠시 황해도 해주를 방문한다

병풍으로 경계하며 촛불을 켜고 뜬눈으로 지새운다

율곡 사망이후, 기생(유지)는 율곡의 3년상을 치러준다

율곡 유지사(이화여대 박물관)” 기생(유지)와 사연을 시, 글로 기록

황해도에 사람하나 있어, 맑은 기운 모아 선녀자질 타고났네

마음이며 자태 곱기도 해라, 얼굴이랑 말소리도 곱구나

문을 닫는 건 인정없는 일, 같이 눕는 건 옳지 않은 일

가로막힌 병풍이야 걷어치워도, 자네도 달리 이불도 달리

사랑의 정 다 못하고 일이 어긋나, 촛불 밝히고 밤을 새우네

 

*41, 낙향후 은거(1577, 황해도 해주 석담, 처가) “계몽요결저술

아동교육서, 문맹 계몽을 위한 학문연구와 후학양성

*45, 정계복귀(1581), 홍문관 부제학

성학집요저술 보급(5), 주자학 핵심내용의 요약본

선조 극참(감동)

이 책은 부제학(율곡)의 말이 아니다, 바로 聖賢의 말씀이다

바로 정치에 절실하게 도움이 되겠지만,

나같이 어리석은 임금이 행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사헌부 대사헌과 예문관 제학 겸직

동지중추부사

예문관 대제학과 홍문관 대제학 겸직(양과 대제학)

*46, 이조판서(1582)

선조의 하명으로 인심도심설저술

김시습전(김시습 일대기), 학교모범(학생계몽서) 저술

*47, 병조판서(1583)

시무육조외적침입에 대비 10만 양병설(선조, 대신들의 반대)

사직 낙향(파주 율곡), 東人들의 탄핵(당쟁을 조장한다는 이유)

병중에도 쉬지않고 東人들의 공격은 계속된다

*48, 사망(1584,1,16 한성부 대사동 자택)

죽음 예상하고서 파주 율곡에서 요양중, 한성으로 귀경한후 사망

재산이 없어 수의를 빌려 염습(가난으로 초라한 장례식)

이정구(대제학 역임) “율곡시장

율곡이 죽은뒤, 집에는 곡식 한섬조차 없었다

한양에는 식구들이 거처할 집이 없어 추위, 굶주림이 계속되자

친구, 동료, 선비들이 쌀, 포목을 거출하여 집 한채를 구해준다

 

사림당쟁과 정치 환경

*금강산 불교공부(승려), 환속에 대한 경력으로 東人에게 심하게 비판받아

東人(南人)들의 과거 승려행적을 집요하게 인신공격을 받았으나

*200년 후에도, 南人(동인) 미수 허목, 백호 윤휴, 고산 윤선도 등

계속되는 사상공세 율곡은 학자의 탈을 쓴 스님이다

*사상 의심 여론속에서 휴암 백인걸(스승)이 제자로 받아준다

자유로운 학습분위기 속에서 평생친구 우계 성혼을 만나 서로 돕는다

*율곡은 훗날, 정암 조광조(스승 휴암 백인걸의 스승)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정암 조광조가 너무 급진적이다

 

*퇴계 이황 利己 논쟁후유증

율곡이 조정출사 정계입문시, 東人의 공격(이유: 스승 이황을 모욕)

퇴계 제자들은 율곡을 향해 論敵(논적)으로 규정

*율곡은 자연스럽게 西人쪽으로 전환(윤근수, 윤두수, 정철, 송익필과 친교)

사림당쟁 소용돌이(東人, 西人), 붕당에 미참여(중립유지 성향)

西人세력이 주도권(율곡의 제자)을 장악후, 율곡의 의도와 상관없이

율곡을 西人의 영수로 모시면서부터 모순된 상황으로 전개된다

 

*임금앞에서 종종 퇴계 이황,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의 학문을 비판하면서

율곡은 東人(南人)의 제자들과 관계가 나빠진다

김효원(東人)西人(심의겸)보다 먼 곳의 지방관으로 떠나 보내면서,

집권세력인 東人들의 거센 공격을 받는다

*율곡,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초래한다

도덕, 윤리, 예절의 뒤에 숨어 위선, 형식, 겉치레가 팽배한 사회분위기를

비판하면서 사물의 본질에 입각한 정직한 자세를 촉구하자,

주변 동료와 선배들한테 오해를 받아 미움을 받는다

특히 원로대신 초당 허엽, 동고 이준경은 율곡을 비판하였는데

율곡은 예절의 근본조차 모른는 인간이다

 

*동고 이준석, 율곡의 솔직 냉정함에 화를 내며 스승(백인걸)을 찿아 역정

자네가 추천한 이아무개(율곡)라는 인간은 왜 그런가?”

훗날 율곡은 이 사실을 알고서 동고 이준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며

동고 이준석도 율곡의 인격을 의심하게 된다

*이준경 사망직전, 붕당문제 거론하며 율곡을 공격 율곡이 많이 사악하다

중립입장의 율곡 사망한 이준경을 소급하여 처벌해야 된다고 강한 대응

 

율곡 유학적 이론

*“기발이승일도설, 利己는 하나이다

퇴계의 사단칠정론利己는 서로 독립되며 보다 가 우위에 있다

이기호발설을 배격한다

화담 서경덕중심 이론으로 독창적이지만 문제가 있다며 비판

남명 조식은 학문을 하면서 실제 체득한 주장과 견해가 없다며 혹평

 

 

대학자 율곡의 역사적 평가

*율곡의 거침없는 비판으로 당대 관료, 학자들에게 비난받아

조선대표 지식인(대학자, 유학의 천재)으로 평가받으며

배운 학문을 바탕으로 뛰어난 정치가 모습으로 기억된다

은퇴후 스스로 공부에 매진하며 후학양성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 학자

 

*성균관 문묘와 종묘 동시배향: 6(조선시대 문인)

퇴계, 율곡, 서계 박세채, 신독재 김집, 회재 이언적, 송시열

 

*율곡의 제자(기호학파), 西人의 종주로 추대하다

율곡~사계 김장생~신독재 김집~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후세 유교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대학자로 평가된다

 

*수제자 사계 김장생 행장(율곡의 일대기)” 율곡의 업적을 찬양(극찬)

학문이 높고 밝은데에 이르고 재주가 경국제세의 역할을 감당할만하고,

의리로써 벼슬에 나서고 물러났던 사람은 조광조와 율곡 두명뿐이다,

만세토록 태평성대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으니 그 공로가 원대하도다

 

 

율곡의 현대적 평가

*5,000원권 화폐 주인공(1972,7~), 행실과 업적, 존경심

율곡기념관: 강릉 오죽헌, 파주 자운서원(법원리 율곡리)

*율곡전서(시문집): 이재 편집 및 발간(1742~1749)

 

*가족묘역: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율곡, 신사임당)

부인(곡산노씨), 임진왜란시 율곡묘소를 지키다가 왜군에게 살해되어

하녀와 구별할 수가 없어 합장하지 못해

 

*과거시험 장원급제(9), 천재학자

기호유학 종장(宗匠), 총체적인 경장(更張), 양병설 주장(선각자)

조실부모(15, 신사임당 사망이후 금강산에서 승려 입적)

환속뒤 유생에게 배척을 당해 큰좌절과 고뇌를 슬기롭게 극복

 

 

*花石亭(화석정), 5대조부 이명신 건립(파주시 파평면)

관직에서 물러나 제자들과 독서하던 학문연구소

팔세무시(시판): 율곡 8세의

율곡은 임진나루터 화석정 기둥에 기름칠하라

임진왜란 선조 피난시, 임진강 야간 도하시 정자를 불태워 불을 밝힌다

 

*당시 하급관리 이순신, 덕수이씨 종친 사실을 알고난뒤 한번보자고 했으나,

이순신은 인사권을 가진 문중어른(병조판서)을 만날수가 없다고 거절한다

 

*율곡은 20대 과거급제후 엘리트 코스 정청요직(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동호문답(1569), 만언봉사(1574, 1585), 성학집요(1575)을 저술

선조에게 바쳐 경연때마다 성인을 본받아 경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조선이 망할것이라고 압박하였으나, 임진왜란의 참변을 초래한다

특히, 현자를 등용하여 정치를 맡기고 민생안정을 위해 공납제도를 개선,

경장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임시기구(경제사)를 설치를 건의

이때, 성혼도 같은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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