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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합회

2019-0613.한국연합회 감사수검 및 시력보존센터 운영위원회

by 조흥식 2023. 10. 8.

2019-0613.한국연합회 감사수검 및 시력보존센터 운영위원회

소현세자빈(강씨), 丙子胡亂

 

 

 

 

 

 

소현세자빈(강씨), 丙子胡亂

@소현세자(인조 아들)의 세자빈 강씨(1611~1646)

.청나라에서 귀국한 소현세자는 2개월후 의문의 죽음으로

세자빈 강씨는 冢婦(총부)가 되었다

.소현세자는 親和論정치노선을 주장하며 9년만에 귀국하였으나

의문의 독살모든 사체구멍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인조가 묵인하였는가? 방치하였는가?

 

@강빈옥 사건

.세자비(강씨 1611~1646, 3)의 사약을 내린다

(인조는 비망기를 내려 음식에 두달전부터 독약을 넣었다며 모함하고

심양에서 역모를 계획했으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2월 강빈을 폐출하고 한달후에 사가에서 사약을 받는다

당시 독약사건도 자백한 사람도 없었으며

심양에서 역모를 꾸몄다는 행위도 증명할 길이 없어

많은 대신들이 강비의 처형을 일제히 반대를 하였다

.인조실록

심양에서 비밀리에 왕후를 교체를 도모하면서

붉은 비단으로 왕후의 옷을 미리 만들고 내전이라는 칭호를

버젓하게 참람되게 행동했다...”

.인조는 세자빈(강씨)애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소현세자의 자녀(아들 3, 석철 12...)에게 세자승계를 하지않았다

또한, 우암 송시열의 추천을 묵살한다

.인조는 둘째아들(봉림대군)에게 세자로 정하고

冢婦(세자빈 강씨, 소현세자의 부인)에게 賜藥을 내린다

혹시, 冢婦 권한을 주장한다면 왕위계승에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경여는 인조에게 재고를 요청한 것이다

종법에 따라 소현세자의 큰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떳떳한 도리(常道)이고,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는것은 權道(권도)에 해당한다

.봉림대군(효종)薪膽大義를 지향하지만, 10년후 자손없이 죽는다

 

 

@세자빈 강씨의 탁월한 경영능력

.강빈은 에서 마련해준 농장의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여

재산을 모아 귀국하여 경제력이 넉넉했다

.소현세자는 귀국후 재산처리를 놓고 조정에서 논의을 하였다

, , 나귀...돈을 주고 구입하였으니 청에 맡겨두면 안된다...

호조는 농군들이 귀국할 때, 끌고 오도록 결론을 내렸으며

속공된 남녀(110여명)과 인삼을 캐다가 잡혀간 농부(50여명)

모두 귀죽하도록 조치하였다...”

.5000석 곡식이 쌓여있다는 것은 소현세자와 강빈의 농장 경영능력을

짐작할수 있으며, 귀국 당시(2) 곡식이 남을 정도로 넉넉하였다

.강빈은 포로(조선인)를 속량하여 농장에 투입하여 생산된 물품을

청나라와 교역을 했던 것이다

.강빈이 귀국후 철원 사찰에 황금 260냥을 시주할 정도였다

.청에서 瀋官(심관)이라는 독립 정치체를 맡고, 농장을 경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경험을 쌓고 부를 축적했던 것이다

.청나라의 선진 문물제도를 접하면서 넓은 세계관을 정립하였다

.당시, 청나라는 은근히 조선왕(인조)을 소현세자로 교체 가능성을

비치면서 인조를 압박하였기에 강빈옥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150년후 강빈이 복권되었다(1718, 숙종44)

 

@인질들의 포로생활(심양)

.소현세자(9년간), 봉림대군(소현세자 사망직후 귀국), 인평대군(1년간)

청음 김상헌(6년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삼학사는 심양에서 참수되어 길거리에 효수되었다

삼학사는 감옥에서 메밀국수와 무우말랭이로 연명하였다

윤집(30, , 아들3명을 남양으로 피신시켜...)

오달제(27, 노모, 임신한 부인을 남겨두고...)

홍익한(인조반정 공신, 이정구제자, 기호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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