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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2013-0226.세종로라이온스클럽 창립전 이기수총재 초청만찬

by 조흥식 2023. 1. 7.

2013-0226.세종로라이온스클럽 창립발기인대회 이기수총재 초청만찬         

  *2013,2,26,,18:30~야리성(25)

   .354-C지구 이기수 총재님 초청 만찬(장한평 야리성)

   .이기수 총재, 최성수 사무총장, 김동욱 재무총장, 고석봉 총재특보, 나흥수 사무부총장,

    김재홍 재무부총장, 최재구 정우클럽 회장, 오태섭(13지역부총재), 의전위원장

 

 *청권(효령대군), 지덕(양녕대군), 허유(許由) 소부(巢夫), 산천재, 수몽왕과 계찰(오, 합려)

 

 

 청권(효령대군), 지덕(양녕대군), 허유(許由) 소부(巢夫), 산천재, 수몽왕과 계찰(오, 합려)

1.莊子(소요유. 인물편)의 소부(巢夫), 허유(許由)

@당랑거철(螳螂拒轍): 螳螂(사마귀)는 화가 나면 어떨까?

  *집게를 크게 벌려 수레바퀴 앞길을 가로막는다

     제 힘(能力)을 과시하다가 깔려 죽게된다

     자중하지 않으면 표적이 되어, 비참한 결말을 자초한다는 경고이다

 

@螳螂窺(포)蟬, 당랑규(포)선

  *사마귀는 매미를 잡기위해 정신을 팔을때, 참새가 사마귀를 잡기위해 노려본다

      이때 참새를 향해 화살을 겨눈다(오,수몽왕이 초나라 침공을 포기했던 고사이다)

      눈앞의 조그만 이익에 급급하면 큰 화를 자초한다

   *제장공을 弑害(시해)한 최저는 안영을 처형하려다 용서해준다

     안영은 훗날 역사를 기록하는 사초(사관의 숙명), 역사에 기록됨을 알깨워준다

  *동호필봉 (董狐筆鋒), 붓끝의 힘

    사관은 계승제(부친, 아들, 동생...)로 이어지는데, 안영은 사관을 불러 사초를 고쳐달라고 간청했지만 거절당한다

    안영은 사관 伯 백(태사)을 처형하자, 동생 仲(중)이 사관을 이어받았지만 사초 수정을 거절당하자 처형한다

    동생이 뒤를 이어 사관직을 이어받았지만 叔(숙) 처형당한다

    막내동생 季(계)는 처형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許由隱者로써 箕山(기산) 아래에서 반듯한 의자에만 앉고,

.상하지 않고 깨끗한 음식만 먹었다

.임금()은 도덕적으로 관불솔 수준의 이지만,

이 태양, 달과 같은 許由(허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청한다

天下가 부담스럽다면 九州(중국 전대륙)를 맡아달라며 제의했지만

.許由는 거절하지요

이미 天下公明正大가 완성된 治國인데,

왕위를 욕심낸다면 名譽, 탐욕을 위한것이다...”

.許由는 지체없이 영수(潁水)로 달려가서 더러운 귀를 씻었다

.냇가에서 마귀에게 물을 먹이던 친구, 소부(巢夫)가 이유를 물었다

.소부(巢夫)는 상류지역으로 나귀를 끌고간다(더러운 물을 먹일수 없다)

.소부가 목격후 許由 隱者의 소문을 내어 후세에 알려진 古事이다

.하남성 箕山高士(許由)가 죽은뒤, 箕山公神(기산공신)으로 추대한다

.결국, ()임금은 순()~()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3.남명 조식(덕천강변, 산천재의 벽화)

*함양 덕천강가 산천재에 벽화가 남아있다

.현풍 도동서원에도 벽화 산수화가 있지만 매우 드문 현상이다

.정면벽화(노인4명 바둑놀이)~우측벽화(농부가 소를 몰고가는 모습)

.소부와 허유가 복거할 때 관직에서 나오라는 전갈을 듣고,

귀 버렸다하면서 냇가에 내려가 귀를 씻는 모습과,

귀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수 없다고 끌고 올라가는 모습이다

*조선의 대표 處士는 남명(조식)~조선의 대표 徵士는 명재(윤증)이다

 

智德(태백)~淸權(중옹, 우중)의 유래

1.왕위를 양보한 태백(智德), 우중(淸權)

@周문왕(계력의 아들)

.상나라(尙) 고공단보(太王)의 世子선택 의중을 눈치채고

.큰아들(태백)과 2째아들(우중)는 3째아들(계력)에게 세자를 양보한다

.계력왕(부인: 師任堂)의 아들(서백 창)은 周나라를 창업한 周문왕이다

.주문왕은 周易을 편찬한 현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력의 孫子(무왕, )이 죽은뒤, 성왕은 숙부(주공단)의 보좌를 받는다

.훗날, 孔子1~2째아들에게 지덕(智德)~청권(淸權)이라 존칭하였다

 

@문왕은 2명의 백부(태백, 우중)에게 나라 제후로 책봉한다

.무왕은 고공단보가 찿았던, 渭水에서 낚시질하는 姜太公(여상)

승상으로 추대하여 천하를 통일한 후, 나라 제후로 책봉한다

.주공단의 훌룡한 보좌는 중국역사에서 존경받는 재상이다

.훗날, 합려(,)는 요왕을 주살하고(구테타) 집권하게 된다

 

@주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즉위했다.

.주공(周公)이 성왕을 도와 섭정(攝政)을 했다.

.주공이 장차 어린 성왕을 밀어낼 것이란 유언비어가 퍼져,

성왕까지 주공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가만있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주공은 동요없이 동쪽으로 옮겨가 평상시와 다름없이 태연자약하였다.

낭발이란 시는 환난에 임한 주공의 늠연한 태도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물러서면 배신자라 하고, 버티자니 이렇다 할 명분이 없다.

 

@발호치미(跋胡疐尾)는 진퇴양난(進退兩難)과 같은 뜻으로 쓴다.

.()는 늙은 짐승의 늘어진 턱밑 살로 멱미레라 부른다.

.늙은 이리가 나아가려다 제 멱미레를 밟아 고꾸라지고,

.뒤로 물러나려다 제 꼬리에 밟혀 자빠지고 만다는 뜻이다

 

2.尙나라 멸망, 周나라 開國

.尙나라 紂王(주왕, 소달기)을 멸망시킨 선택을 하늘이 내린것이다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것을 버리고 큰것을 얻어야 한다

.해가 저물면 뱁새는 몸을 숨길 나뭇가지 한 개이면 족하고,

두더지가 강물을 마셔 한배만 채우면 근심이 없는 것

 

@차마설(借馬說) 統一新羅도 자만하여 멸망

“잘 나갈 때 조심하라” 지성의 목소리(리더)

.가정 이곡(李穀 1298~1351, 목은 이색의 父親)

.을 빌려탄 이야기(역사속 흐트러짐을 바로잡는 경고, 부패와 갈등)

.값싼 말(하등급)을 빌렸을 때 항상 조심하는 것이다

냇가를 내려갈 때 싼 말은 조심하기 때문에 사고가 드물다

비싼 말은 마구 부리니까 낙상을 하기 쉽다(자만심 경계)”

.인간사 모든게 빌림으로 본것이다

임금도 백성을 빌리고, 노비도 상전을 빌리는데,

일에 집착해서는 자칫 우를 범하게 된다”(소통하는 지혜가 필요)

 

@麥秀之嘆(맥수지탄): 채미자세가

.나라가 망한 자리에는 보리만 무성하여 탄식하다(기자, 箕子)

.殷紂王 충신3: 기자(箕子), 미자(微子:이복동생), 비간(比干:숙부)

.미자(微子): 타국으로 망명한다

.기자(箕子): 거짓으로 미친척하며 종으로 연명한다

.비간(比干:숙부): 처형될때 간을 꺼내 7개구멍을 확인한다

.훗날, 箕子나라로 가면서 은나라 도읍을 보고 한탄을 하였다

 

3.나라 수몽왕의 유언 “4째아들(계찰)까지  형제간 순서대로 왕위을 넘겨줘라

@4형제: 제번(諸樊), 여제(餘際), 여매(餘昧), 계찰(季札)

.1(제번왕)은 계찰(4)이 왕위를 거부하자, 잠시동안 왕에 오른다

  소 공격으로 전사한다

결국, 2째동생(여제)에게 양위한다, 이에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으며

큰형 제번이 일부러 자살식 전투로써 동생에게 왕위를 넘겨주려 전사했다면

.2(여제왕)17년간 재위한후, 제왕의 적임자인 계찰(4)이 왕위를 거부하자,

3째동생(여매)에게 양위한다

.3(여매왕)4년후 사망하였는데,

.계찰(4째아들)은 왕위를 극구사양하고 타국으로 떠난다

.3(여매왕)의 아들 요()가 왕위에 등극하자, 합려(장손)가 암살한다

 

@합려는 오자서(출신: 정치고문)+손무(孫子兵法, 출신)를 등용한다

.1(제번왕의 큰아들 ”)은 장자계승 원칙을 주장한다

는 전제(專諸)를 발굴하고 구테타를 준비하던중,

오자서()와 손무(손자병법)를 발탁하였다

.3년후 오자서의 추천을 받아 손무()를 전격 등용한 것이다

.요왕을 잔치에 초대하여 명검으로 암살(전제)하고 합려왕이 탄생한다

오자서+손부의 치밀한 계획으로 오왕으로 즉위한다

.4~6년후 나라 공격하여 영(, 도읍)을 함락시키고,

합려는 재임기간중에 지속적인 영토확장(재위: bc514~496)

 

 

智德(양녕대군)~淸權(효령대군)의 유래?

1.양녕대군 지덕사(智德): 상도동 장승백이

@“국사봉(봉천동, 장승백이)에서 도성을 바라보며 조선을 걱정하였다

.지덕사: 묘소와 사당(전주이씨 양녕공파 시조)

.양녕대군(1394~1462, 69): 세자책봉(1404)~폐위(1418)

.동생 충녕대군(세종, 재위 32)이 붕어할 당시, 57세였다

.양녕대군(이시)은 김한로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美人 어리(於里, 정종 애첩)를 겁탈하여 아들을 낳고, 폐세자가 된다

.훗날, 유부인 어리는 이천에서 목메 죽었다

 

@세자 폐위를 반대한 황희 정승은 남원으로 유배되었고

.김한로(장인)는 나주에 유배되고, 폐세자비는 친정으로 보낸다

.광주~이천~과천~한양귀환(16년간 이천 군들마을풍류생활)

.이천 대월면 군량2, 40칸미만 규모 건축을 지시했다(세종,1419)

.崇禮門(남대문) 현판의 원본탁본은 지덕사에서 보관중이다

.태종은 慶會樓 현판을 쓰게 하였다

.蘇東坡(소동파)8곡병풍 後赤壁賦(후적벽부)을 남겼다

 

2.효령대군 청권사(淸權), 방배동 효령로

@世子의 꿈을 접고, 울분으로 북을 두들겨 찟겨졌다

.은근히 세자를 바랐으나, 양녕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佛敎에 입문하여 많은 공적은 남기고, 장수하였다(90)

 

@수양대군의 금강산 40일간 온천유람(1446,3,16~윤월 3,25)

.내금강산 표훈사에서 간경도감(刊經都監; 불경 번역기관)에 명하였다

.~바다의 여러 귀신들을 위한 水陸會(수륙회)를 베풀었다

(숙부 효령대군을 초청하여 주재하도록 하였다)

.30, 효령대군(숙부)의 보고서가 온천행궁에 도착하였다

표훈사에서 수륙재를 올리던중, 상서로운 구름과 꽃비가 내렸다

.수양대군은 대대적인 특진및 포상, 특별사면을 단행하였다

 

3.冠岳山 연주암~연주대의 유래와 상당한 연관이 있다

@의상대사가 관악산 의상대(연주암)를 창건후 수도하였다(문무왕, 677)

.이어서, 관악사도 창건하였다

 

@高麗末 충신(서견, 강득룡, 남을진)隱居하였다

.의상대에서 松嶽(高麗왕조)을 쳐다보며, 그리워 연주대로 칭했다

.서견은 거칠현동(7)의 한명이다

 

@양녕대군, 효령대군의 유랑길에 관악사에 隱居하였다

.40칸의 현위치에 관악사를 창건하고, 漢陽궁궐을 바라 보았다

.의상대를 연주대라 칭하고, 관악사를 연주암으로 고쳐 부른것이 유래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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