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1.일백회 이정희 생일파티(횡성한우, 신설동역 12번출구)
원주, 왕비탄생 예고(격암 남사고)
원주, 왕비탄생 예고(격암 남사고)
1.格菴 南師古(격암 남사고, 중종~선조, 63세)
@“원주에 왕기가 서려있다”(문막읍, 부론면, 지정면)
.玉女洗髮型(옥녀세발형): “아름다운 여인이 머리를 감고있는 명당터”
.천문, 풍수지리, 商法등에 능하고 易學에 통달한 관리였다
.대표적인 예언서: 격암유록(格菴遺錄)의 비결(秘訣)을 전수받은뒤,
“문정왕후의 죽음, 임진왜란, 휴전선”을 예언하였다
2.공빈왕후(光海君의 생모)
@부론면(富論) 손곡리 출생(공빈왕후 성묘: 남양주 진건면)
.金海김씨, 김희철의 딸(사포서 하급관리, 왕실농장을 관리하는 관청)
.광해군이 3살때 공빈왕후 사망(선조 후궁 9명, 왕자 13명)
@富論(부론)이란? “말(言, 소문)이 풍성한 동네”
.富論面 나룻터는 선박 51척, 高麗 전국13대 조창(흥원창)이다
.한양 경창으로 수송+경제+言論(소문)+교통의 중심지
.영동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부론면~지정면, 문막읍을 갈라놓아
이제는 큰 인물의 배출은 어렵게 되었다(남쪽: 귀래면)
3.인목왕후(영창대군 생모)
@지정면 出生(목릉, 동구릉)
.명문가 김제남의 딸(연흥부원군, 연안김씨), 19세 중전으로 간택된다
.김제남의 中祖(형제가 판서되다: 김여지+김자지, 고려말~조선초기)
.김제남의 증조부(김전, 중종시절 영의정)
.신도비+사당에는 강원관찰사 왕래시 참배를 하였다
.종택(99칸 대궐종가)은 현재 14대 후손이 거주하고있다
@光海君의 폐모살제 (己丑獄死)
.영창대군(8세)은 강화도 유배(증살)~인목왕후는 서궁유폐(경운궁)
.김제남(부관참시)과 두 아들(사약), 인조반정후 복권된다
.인목대비(母親)와 조카는 제주로 유배되어 관청의 노비가 된다
“大妃母酒”(전주 콩나물해장국) “모주의 유래?”
4.인열왕후(인조 능양군, 선조의 손자비)
@富論 부론면 노림리 출생(長陵, 파주 탄현)
.영돈녕부사 한준겸의 넷째딸(淸州한氏), 자녀 4명(42세 사망)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의 생모
@3정승+6판서 배출시킨 명문가(기호지방 南人의 대표적인 세력)
.기호지방이란? (황해 남부, 경기, 충청 북부지방)
.부친(한준겸)은 선조의 顧命대신(고명)으로 명신이었다
.백부(한백겸)는 “동국지리지” 서술하였다(조선후기, 역사지리서)
@연려실기술(인열왕후)
.궁녀(보향)가 옛 임금(광해군)이 그리워 슬피우는 모습을 보고,
.고자질한 동료 궁녀에게 매질을 하고 크게 꾸짖었다
“그녀는 의리를 아는 사람이다” 위로하고, 후추 한말을 내렸다
.보모상궁으로 임명하면서 “내 아들을 보육 할만하다”
.외유내강형(온후, 강인)으로 흉년에 백성을 구휼하였고,
궁궐호위 병사들을 챙겨주는 덕을 베풀었다
@부도, 釜島(여주 가마섬)에 음택 명당을 정하다
.백부 한백겸의 묘터는 물위에 떠있는 내륙의 섬이다
.왕실은 섬에 묘를 쓰지 않았다
.그 덕분에 부도 명당을 탐내지 않아 현재까지 유지해온 것이다
@魯林(노림)이란?
.한백겸(중국사신)이 가져온 “魯나라 느티나무”를 칭한다
.마을 수호신(노림, 느티나무)에 제사를 지낸다
.현재, 후손 약30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백부 한백겸의 강원도 99칸 대갓집(4명)
*김제남 연흥부원군(인목왕후 부친)~한백겸(인열왕후의 백부)
~단구동 홍중효(3대연속 판서)~강릉 선교장(이내번)
5.엄귀비(순헌황후, 영친왕의 생모)
@문막읍 궁촌리 출생(1854년 11월)
.시골선비 증찬정(贈贊政) 엄진삼의 장녀, 아기 나인(內人,5세) 입궐
.명성황후(여흥민씨)의 시위상궁(侍衛尙宮, 8세)으로 승격되었다
.고종은 24년간 중전을 비워둔다(1895~1919)
.문막은 부두가 발달되어 한양에서 소금, 쌀을 수송하고
영월의 뗏목이 흘러 지나갔다
@명성황후 시해후 황귀비로 승격되다
.덕수궁 시대, 16년간 정동의 여주인이다
.궁녀가 왕의 성은을 입으면 치마를 뒤집어 입고
궁궐내에 소문을 알리며 나오는것이 관행이었다
.당시, 엄상궁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였다(32살, 고종보다 7세 연상)
.명성황후도 믿지 않다가, 끝내는 분노에 치를 떨게 되었다
.엄상궁이 궁궐에서 쫒겨나 10년뒤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10월)
.명성황후의 살해후 5일만에 고종은 엄상궁을 다시 궁궐로 불러들였다
.엄상궁은 득남하여 귀인(貴人)에 책봉, 선영(善英) 이름을 하사받는다
.순빈(淳嬪)~순비(淳妃)~황귀비(皇貴妃), 경선궁(慶善宮)에서 살았다
.순헌황후(純獻) 시호(諡號)로 추존되다
.일본 사관학교에 유학중 영친왕의 동영상을 보며 떡을 먹던중에,
급체 2일후 급사(1911,58세, 고종~순종실록: 장티푸스로 기록)
영친왕이 급거 귀국하여 장례에 참석했으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아관파천(1896.2.11.새벽)
.경운궁 뒷편 정동 아관(俄館)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주도한다
.늦은 한밤중에 경복궁 建春門으로 2대의 궁궐가마가 빠져 나갔다
고종과 황태자(순종)가 몰래 빠져나온 것이다
.엄귀비는 철저하고 은밀하게 협조하고, 연결하여 계획, 실행했다
(러시아 공관, 친러파, 친미파)
@친일파는 고종의 계비로 정화당 김씨(貞和堂)가 초간택했다
.일왕에게 신하의 예를 거부하자 윤덕영을 시켜 환심을 사기위해
.47살에 일본의 정략으로 입궐하지만, 고종이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 영친왕 1897년 러시아 공사관)
.영친왕은 조선총독(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일본황실에 인질로 잡혀간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다
@양정의숙, 진명학원, 숙명학원을 설립하여 근대화에 앞장서다
.내탕금과 친정의 전재산을 지원하고, 200만평의 땅을 기증하였다
@매천야록
.낭인들의 칼날에 스러진 명성황후의 시신이 채 식지도 않은 상황에서
고종은 10년전 궁에서 쫓겨난 엄상궁을 찾았다.
명성황후가 죽은 지 5일만의 일이었다
@송우혜 소설(마지막 황태자): 엄귀비의 사람을 대하는 모습
“뱃심이 강하고 정치감각이 뛰어난 엄상궁이 있었기에
아관파천이 가능했다”
@영휘원(永徽園)은 고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무덤이다
.숭인원(崇仁園)은 의민 황태자의 아들 원손 이진의 무덤
.시호: 순헌(純獻), 양주 천수산(天秀山)에 무덤을 만들고,
원호: 영휘, 칠궁(궁정동)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홍릉의 유래?
.옛날 홍릉이 있던곳으로 홍릉일대는 조선王家 소유의 국유림이었다
.북악산 줄기가 천장산으로 이어지는 야산, 왕가 능터로 사용했던 곳
.천장산 동쪽끝은 의릉(경종, 20대왕): 한국종합예술학교
.명성황후 묘(국립 산림과학원)를 弘陵이라 불리게 되었다
.홍릉(명성황후)은 1919년 2월 16일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하여
남양주시 금곡동(홍릉, 유릉)으로 옮겨, 고종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홍릉(고종, 명성왕후), 유릉(순종, 순명효황후, 영원 영친왕:이은)
.묘(5): 의친왕, 광화당, 삼축당, 덕혜옹주, 수인당
.마지막 황세손 이구(영원 부근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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