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재갑총재(2020-2021)

2020-0901. 자선골프대회준비 현장답사

by 조흥식 2023. 12. 23.

2020-0901. 자선골프대회준비 현장답사(춘천 로드힐스CC)

양양 낙산사(의상대사~원효대사)

 

 

 

 

 

양양 낙산사(의상대사~원효대사)

1.양양 낙산사(洛山寺)

@의상대사가 유학후 창건후(671, 문무왕)

.영주 부석사(676), 지리산 화엄사(677)를 창건하였다

.나라의 지엄(智儼)문하에서 화엄교학(華儼敎學)을 공부하고,

.문무왕(670)에 귀국하여 낙산의 관음굴(觀音屈)을 찾았다

 

@낙산사 홍련암은 인도 남쪽해안 보타낙가산 관음굴을 본뜬 것이다

.관자재자, 관음보살이 가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를 바라보고, 매향비에 향을 묻고 기도한다

.관음보살의 眞身이 해안 굴속에 산다는 말을 듣고, 落山이라 했다

.7일간 재계하니, 관음보살이 나타난다

앉은자리 윗편 산꼭대기에 한쌍의 대나무가 솟으면,

그곳에 불전을 짓거라

.관음굴에서 나왔을때 대나무 한쌍이 솟아있었다

.의상대사는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聖殿에 놓고 떠난다

 

@紅蓮菴에서 의상대사가 기도할 때,

.靑鳥(파랑새) 한마리가 석굴속으로 자취를 감춘뒤,

.홍련암 바닦구멍에서 7일후 紅蓮(붉은 연꽃)으로 태어난다

.파랑새는 관음보살 주변에 붙어있는 새, 화신이었다

 

@落山 八景(겸재 정선의 낙산일출 진경산수화도 아름답다)

.낙가 모종(洛伽暮鐘):낙산사의 종소리

.설악 반조(雪嶽返照):설악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

.광석 야점(廣石夜砧):광석에서 한밤중 다듬이 소리

.기동 모연(基洞暮煙):기동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밥짓는 연기

.평사 낙안(平沙落雁):망월대앞 동해 모래사장에 내려오는 기러기떼

.원포 귀범(遠浦歸帆):멀리 망월대앞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의 모습

.구만 장천(九萬長川):길게 뻗어내린 남대천의 물줄기

.망정 추월(望亭秋月):망월대에서 바라다보는 가을달의 정취

 

@몽고침입으로 낙산사 화재(1231), 세조(수양대군)이 중창하였다

.몽고침입후, 범일국사가 중창하였으며(헌안왕 858)

.임진왜란~병자호란~6.25사변~2004년 고성 양양 산불에 소실된다

.만해 한용운(1926)이 의상대를 세웠으나, 10년후 태풍으로 붕괴되었다

.의상대 현판(성당 김돈희의 필체), 1975년에 재건하였다

 

2.세조가 낙산사를 방문

@학열스님에게 증창을 지시하였다(1466)

.3층석탑을 7층으로 확장할 때,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넣었다

.원통보전의 둥근 화강암 별무늬 돌담은 진흙과 기와담이 아름답다

.고려 불화(수월관음도)는 소더미 경매가 13억원

.동해용왕, 여의주, 파랑새가 그려져있다(일본 다이도꾸지 소장)

 

3.의상대사

@귀족진골 출신으로 나라에 유학하여 화업종의 체계를 배웠다

.애국의식을 갖고, 당나라가 신라 침범 계획을 알려준 스님이다

거대한 불교체계에 들어와야 깨달음을 알수있다고 주장

.法性偈(법성게)“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다(一卽一切多卽一)”

.통일신라는 원효의 자율성보다 의상대사의 체계질서를 원했다

.의상대사는 화엄 10찰의 개창자로써 신격화된다

(영주 부석사 창건설화는 괴산 佛影寺 신화로 이어진다)

 

4.元曉대사

@낙산사에서 봉변을 당하다

.힌옷(白衣: 관음을 암시)을 입은 여자가 벼를 베는데,

그 벼를 달라농담했더니, “벼가 열매를 맺지 않았다희롱하며 대답했다

.월경대 빨래하는 여인에게 먹을 물을 달라했더니,

더러운 물을 떠줘...” 쏱아버리고, 냇물을 떠 마셨다

.이때.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말하고 몸을 숨겼다

휴제호(休醍醐) 화상아...” 소나무 밑에 신발 한짝이 있었다

.元曉가 낙산사 관음보살상 자리밑에 신발 한짝이 있는게 아닌가...

.여인네가 관음의 眞身이었다. 그 소나무를 관음송으로 칭하게 되었다

.결국, 폭풍으로 元曉는 관음굴에 들어가지 못하고 길을 떠난다

.元曉는 관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수정염주도 받지 못했다

 

@元曉(의상보다 8살 많아): 육두품 출신, 유학을 2번 포기

모든것이 마음에 달렸다개인적인 스스로 깨달음을 강조

.대중성이 강하고 호국적인 면모는 없었으나 대중들의 신봉을 받았다

.發心修行章 行者라도 마음이 맑으면 온하늘이 함께 찬양하지만,

道人이라도 속세에 연연하면 착한 이 버린다

.유학길에 요동에서 고구려군에 체포되어 포기하고,

.서해안 풍랑으로 스스로 깨달았다(꿈에 해골 바가지로 물을 마신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원효: “누가 도끼자루가 빠진 도끼를 줄터인가?

하늘 고일 기둥을 내가 깍아 주겠네...”

.태종(무열왕): “원효 스님이 귀부인을 얻어서 훌룡한 아들을 낳고 싶다는 말이구나...”

.원효는 거짓으로 물에 풍덩 빠지면서 요석궁에서

젖은 옷을 말리면서 묵게 되어, 요석공주와 사랑이 싹튼다

.요석공주(신라 무열왕, 27, 김춘추의 누나, 과부)와 결혼한다

.설총(화왕계)은 백제전투 전사, 동묘(동방 18)중에서 맨앞에 배향

신라 문장3(설총, 최치원, 강수)

 

5.영혈사에 있던 원효대사가 낙산사(홍련암)에 의상대사를 찾아갔는데

.식수가 없어 공양을 만들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양을 받으므로 점심공양이 없었다고 한다.

.원효는 주장자로 암자뒤 바위를 툭툭치니 맑은 샘물이 흘러 나왔다

아마 영혈사의 靈泉을 끌어온 것이다

.원효가 떠난뒤, 천신이 공양을 내오면서 원효법사가 계실때에는

화엄 신장님이 무섭게 버티고 있어 감히 들어올수가 없었다고 했다

 

6.삼국유사(수정염주와 여의주의 행방?)

@몽고침입(1253, 1254),보살상(2)과 보주(수정염주,여의주)를 옮기는데,

.급박하여 주지(아행)은 은상자에 넣어 도망하려 했으나, 노비(걸승)

빼앗아 절터에 뭍었다. 주지(아행)은 죽었으나, 노비(걸승)은 살아남아

명주도 감찰사(낭중 이록수)은 창고에 보관하며 인수인계하였다

.1258, 대선사 각유는 임금에게 건의, 야별초 10명을 보내 회수하여 도성 내부에 모셔두었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daum blog "늘빛사랑 조흥식"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