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재갑총재(2020-2021)

2020-0902. 지구 봉사단장 간담회

by 조흥식 2023. 12. 23.

2020-0902. 지구 봉사단장 간담회

설악산 전진사(선종~도의선사)

 

 

 

 

 

설악산 전진사(선종~도의선사)

1.선림원지(선종사찰 폐사지)

@양양군 서면 황이리 응복산(1360m), 만월봉(1281m), 미곡천

.선림원은 순응법사가 창건했다(804, 애장왕)

.순응법사는 당나라 유학후, 가야산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였다

.애장왕 왕비를 치료하여 받은 하사금으로 해인사를 창건하였다(802)

.선림원 창건시 범종은 상원사 범종, 에밀레종과 함께 3대범종이다

오대산 월정사로 옮겼는데, 6.25화재로 녹아버렸다

.순응법사이후, 홍각선사(886 입적)의 부도글씨는 왕희지 필체를 집자

.선종불교의 요람으로 산사태로 매몰되었다~영화(닥터봉 촬영지)

 

2.陳田寺(진전사터),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탑골)

@전진사(설악산)는 도의국사(조계종 宗祖로 추대)가 수도하였다

.37년간 나라에 유학후 선종을 최초 전파하였다

.일연스님(삼국유사)14세에 출가한 사찰, 조선시대에 폐찰되었다

.도의선사의 최초 浮屠塔(부도)이 등장한다(821년 창건으로 추정)

.불국사는 중앙귀족의 권위상징, 진전사는 지방호족의 문화이다

 

3.도의선사, 염거화상

@도의선사

.784년에 당나라 유학, 서당지장의 불법을 물려받았다

.35년후 귀국(821), 서라벌의 승려와 귀족은 마귀의 소리로 배격한다

.왕권불교 王卽佛(왕즉불)은 왕(부처), 귀족(보살), 대중(중생)으로

.지배와 피지배논리의 불교를 비판하며,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다

.진보적인 세계관으로 불온한 사상, 불온한 사상으로 불렀다

 

@염거화상(~844, 도의선사의 제자)은 설악산 억성사에서 가르침

.보조선사는 장흥 가지산 보림사를 창건하였다

.보조선사 비문에 달마대사(중국의 1)이고,

신라 1(도의대사)~2(염거화상)~3(보조선사)이다

아직 때가 되지못해 감추었다는 빛이 보조선사에 빛을 본것이다

.호족들의 선종사찰의 창건계기가 되고, 태조 왕건이 등장한다

 

@최초 부도탑은 도의선사, 2대 부도(염거화상, 844)이다

.염거화상의 부도탑은 현재,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일제시대 원주 법흥사에서 반출하려다, 파고다공원(1914)에 옮겼다

남원 실상사(수철화상, 증각국사), 곡성 태안사(적인선사, 혜철),

문경 봉암사(지증대사), 화순 쌍봉사(철감국사), 연곡사 북/동부도(?)

.조선 억불정책으로 폐찰할 때(1530, 신증동국지리승람)

진전사 큰연못 깊은곳(女鬼沼여귀소)에 범종과 불상을 던져 수장했다

 

@달마대사에서 시작된 선종이 6(조계혜능, 638~713)에 와서

.남북종으로 분리 편안한 마음으로 벽을 바라보면서 깨달음을...”

.8대조(마조도일; 709~788)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自心卽佛)”

마조의 고향을 본떠 洪州宗(홍주종)이다

.9대조 서당지장의 홍주종을 익히고 귀국한 도의선사는 북쪽으로 간다

.최치원은 지증대사 비문을 쓰면서 현란하게 비유했다

(도의선사가 북으로 간 까닦은 달마대사가 양무제의 군대를 피해

갈대잎으로 배를 만들어 양자강을 건너 소림사로 갔다와 비슷하다)

 

4.구산선문(九山禪門): 도선국사는 가지선문으로 발전시킨다

.통일신라말기, 교종이 득세하면서 산중으로 고승들이 은거한다

.헌덕왕,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도의(道義)를 종조(宗祖)로 삼고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에서 일으킨 선풍이다(가지산선문, 迦智山禪門)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남종선(南宗禪)

전수받은 도의는 귀국(821, 헌덕왕13), 남종선을 신라에 전했다

.교종(敎宗)이 풍미하던 불교계에 용납되지 못하여 진전사에 은거한다

.도의는 심인(心印: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깨달음)을 염거에게 전했다

 

.염거(廉居)는 설악산 억성사(億聖寺)에서 체징에게 전했다.

.체징은 857(헌안왕3), 왕의 부탁으로 장흥 가지산 보림사에

주석(駐錫)하고 있다가, 861(경문왕 1)에 도량을 확장하고

도의의 남종선풍을 다시 일으켜 가지산파를 이룩했다

.가지산파는 도의를 제1(第一祖), 염거를 제2, 체징을 제3조로 하며,

영혜(英惠청환(淸奐의거(義車) 등이 뒤를 이었다.

.고려말까지 산문을 유지하며 많은 승려, 일연(一然)등을 배출했다

.고려말 이 산문의 태고화상 보우(太古和尙普愚)1356(공민왕5)구산을 통합하려는 활동을 했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daum blog "늘빛사랑 조흥식"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