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9. 세종로라이온스클럽 10월 정기월례회(송쉐프, 장한평역)
임진왜란(이순신)
임진왜란(이순신)
1.성웅 이순신은 누구인가?
@건천동 출생(중구 인현동, 1545~1598)
.묵사동(필동2가)에서 서애 류성룡이 살았다(3살 연상)
.12대조 이돈수(중랑장, 고려)
.曾祖父 이거(장령, 성종, 연산군의 스승), 사헌부 정4품
.祖父 이백록(중종, 조광조 탄핵의 기묘사화로 관직삭탈)
.父親 이정(초야에서 모친봉양), 가정형편으로 외가로 옮겨(충남 아산)
.49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벼슬 15년후)
@9년전(1583), 栗谷이 10만 양병설과 군비확충을 건의하였다
.東人 반대로 묵살되고 파직된다
.栗谷(덕수이씨 종친)과 만남을 회피(벼슬을 주는 관직에 있으므로...)
.서애 류성룡(징비록), 이순신 승진을 건의(외로운 처지, 10년간)
.유성용 파견(이순신 형과 교분: 요순~순순~우수)...요순우 임금
.歷史의 물꼬(이순신~서애 류성룡의 역사적인 만남)
31세 무과합격(1576년), 10년간 말단근무, 정읍현감(44세, 종6품)
전라좌수사(정3품)로 7단계 승진시킨다
@노량해전에서 戰死(시신): 노량나루~완도 고금도~아산으로 안치
.현충사 현액(숙종 친필), 박정희 필체
2.폭풍전야(임진왜란의 징후)
@임진왜란 직전(1590,3~1591,3) 일본에 사신단 파견
.正使: 황윤길(西人,기호학파)의 必有兵禍(반드시 전쟁이 있을것)
일본의 침략을 주장(20만명, 포르투칼 조총으로 무장)
.副使: 김성일(東人,영남학파)의 不見如許情形(그런 정세를 보지못했다)
침공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진주성 전투 戰死)
.서장관: 허성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관상
.황윤길: 눈빛이 밝고, 지혜와 용맹이 있는 사람이다
.김성일: 눈이 쥐와 같으니 두려워 할필요가 없다
@학봉 김성일은 민심안정 분위기를 감안한 것으로 해명은 했지만...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서 학봉의 불침론을 비판했다
.학봉(경남관찰사)은 과오를 인정후, 초유사(招諭使)로 종군하고,
.전국에 격문을 띄워 義兵을 모집하고, 진주성 전투에서 戰死한다
3.壬辰倭亂
@일본군 침공: 1592, 4, 14, 5시 부산포 도착, 선조25년)
.9개 제대, 20만명으로 朝鮮을 侵略한다
.선발대 18000명, 부산첨사(정발)는 전함3척으로 대항(부산포 함락)
.대마도주(소오 요시토시)와 승려(겐소)를 파견하여
.同盟체결, 假道入明의 요구(明나라 攻擊路를 빌려달라...)
.東來부사(송상현)의 거절(戰死易假道難)후 순절한다
.4,15일 동래성이 함락된다
*병법36계: 假道伐虢(가도벌괵, 春秋時代)
(1)진(晋)은 괵(虢)을 공격하기 위하여, 우(虞)의 길을 빌려달라고 했다
.우(虞)의 길을 빌려 괵(虢)를 함락시킨뒤, 우(虞)를 침공하였다
(2)진(秦)은 연(燕)을 침공하기 위하여, 조(趙)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조(趙)는 협공을 거부하였다
.훗날, 연(燕)을 공략한 후에, 조(趙)를 침략을 우려한 것이다
(3)오(吳, 주유)는 촉(蜀, 유비)에게 협조를 부탁하였다
“서천 공격로, 형주의 길을 빌려달라...”
.유비(촉)가 승낙하여, 오(주유, 5만명)가 형주에 입성한뒤,
.관우, 장비, 황충, 위연이 형주로 공격해온다는 기별을 듣고,
.주유(오)가 깜짝 놀라서 낙마하였다
제갈량의 지략? “하늘이여! 왜 제갈량을 낳으셨나요?”
@목계장터(남한강), 오목대(조포나루, 이포나루)
.문경세제 방어를 피하고~신립장군은 참패, 戰死(4,23)
.기마병 전투계획은 습지와 조총에 무력하였다
.탄금대: 가야국에서 악성 우륵이 신라에 망명하여 지낸곳(진흥왕)
.열두대: 신립장군, 화살이 뜨거워 12번 강물에 식힌곳(전쟁 독려)
@漢陽함락(6,2), 平壤공격(6,13): 선조 의주로 피신(明나라 피신검토)
.임진나루 화석정(栗谷)을 불태워 임진강을 야간도하
.왜군, 호남 양곡으로 자급자족을 판단하고 해군을 중요시 하였다
.조선군 5개 수영(전함 166척): 원균(경상우수사), 박홍(경상좌수사),
이억기(전라우수사), 이순신(전라좌수사), 최호(충청수사)
.이순신은 4개진영에서 유일하게 미리부터 전투준비(1591 선조24년)
@의병장(홍의장군 곽재우, 조식의 외손녀사위)
.4, 22일에 의병을 모집한다
.사림파 학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전재산 투입, 식량, 무기구입)
.관군과 합동작전: 남명 조식은 義를 중시, 문무겸비(평소 칼을 휴대)
.전국에 의병출동: 전라도(조훈), 충청도(김천일), 함경도(정몽구)
.승병도 전투에 참여(서산대사, 사명대사)
.진주성 전투 승리
@최초 의병장 유팽준
.왜란발발 2일후(4,16), 한양에서 소식을 전해듣고 고향으로 낙향한다
.최초 500명에서 순식간에 6000명으로 증강된다
.유팽준은 홍문관(정7품)으로 문과에 합격하였다
4.옥포해전(1592. 5. 4~)
@원균과 합동작전(원균부하 장군, 수병이 많이 戰死)
.거제도 왜군 42척 격침(토도 다카도라, 가토 기요마사, 9000명)
.원균(경상 우수사), 이영남(전라좌수영)을 보내 원병을 요청한다
.전함 91척(원균:6, 전라좌수영:24, 전라우수영:61)
5.사천, 당포해전(5.29~)
@철갑 거북선 최초투입(화포)
.거북선으로 왜군 72척 격침
.판옥선(2층 목재전함, 대형)...선상전투용(1555,명종10년)
6.한산대첩(1592.7.8~)
@학익진 전법: 큰 바다로 유인작전
.판옥선 투입(5척, 소나무 제작으로 매우 견고)
.왜선: 삼나무 파괴가능(거북선, 철선투입으로 선상전투 불가능)
(일본 조총: 900m 유효사거리...조선군 대포: 900m 가능)
.이순신(전라좌수사, 전함 55척), 원균(경상우수사), 이억기(전라우수사)
.대승리: 왜선 59척 침몰, 생포 12척
.다음날 부산포 왜선40척 공격(구키 요시타카, 가토 기요마사)
*한산도 제승당, 통영 세병관, 충렬사 사당
7.明나라에 파병요청
@평양성 탈환(明나라 군대 투입: 조승훈, 이여승; 5만명)
.백제관전투 패배(明)~행주산성 승리(권율)
.왜군과 강화도 협상(明나라~일본)
.왜군 잠시 철수, 휴전상태(남해부근에 왜성구축)
.울산성 전투 치열
.명나라(진린)은 전쟁중단을 요구, 이순신은 항전을 주장하였다
8.부산포 해전(1592,9월초~)
@명나라 연합군으로 왜군 100척을 격침
9.정유재란(1397)전쟁재발: 왕자인질, 선릉을 파헤쳐...
@이순신의 명령 불복종으로 삼군 수군통제사 해임
.1597년(선조30), 가등청정 입국 가짜정보에 조정의 군사명령에 거부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는 이중간첩으로 기만작전을 펼치는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니
수군을 부산포로 출동시켜 생포하도록 하라” 가짜정보를 간파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의 계략임을 확신하고 출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토 기요마사는 이미 몇일전 조선에 상륙해 있었고,
.부산포에 가는 수로, 섬에 일본의 화포가 매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명령에 불복종하여 적장을 놓아주었다는 모함을 받아 파직되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투옥된후, 참형에 처해질 위기에
우의정(정탁)의 변호로 죽음을 면하고,
.권율장군(도원수)의 밑에서 두번째 백의종군을 한다
10.원균 戰死(삼도수군통제사)
@칠철량전투 패배(1597,7,14~)
.배설만(경상우수사)의 후퇴(전함12척, 장교9명, 병사6명)
.이순신 삼군수군통제사 복직
@이순신의 백의종군 도로(합천군 초계면)
.1597년, 감옥에서 풀린뒤 모친상을 치르지도 못하였다
.권율의 초계진영에서 종군하였다(6,4~7,18)
.낙동강변 율지나루는 매우 번성했던 나룻터이다
.율지리, 밤머리(밤나무가 많은 마을)는 가면 광대놀이가 유명하다
(마부 “말뚝이”는 탈을 쓰고 양반들의 온갖 비리를 폭로한다)
.난장도 성대했다(난장: 일정기간 장터를 운영한다)
11.명랑대첩(1597.9.16~)
@명량(鳴粱, 진도 울돌목), 필생즉사 즉사필생
.왜선 300척을 대항, 133척을 격침(조선함대: 12척)
.명량대교 명칭을 진도대교로 변경(진도군민의 의견을 존중했다)
12.노량해전(1598,11,16~ 露梁)
@이순신 장군 戰死(1598,11,19, 54세): 직접 북을 울리면 전투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전의상실(고니시 유키나가)
.연합군 150여척으로 왜선 500여척을 격파(왜군50척도주, 명군을 구출)
@노량나루(관음포)에 3개월 임시안치(충렬사: 빈 봉분): 露梁(노량)~노들
.이락포(李落浦):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곳(뒷산은 이락산)
.유배: 바닷물결이 이슬방울이 되어 교량처럼 보여(애틋한 고향생각)
13.이순신의 협상기술(명나라 진린 제독)
.진린 제독(명)은 조정 관료들에게 곤장벌을 내린 강압적 스타일
.선조는 이순신과 마찰을 우려했다
“대의를 위하여, 때로는 철저한 을(乙)이 되어야 한다”
.갑(甲)이 강압적이면 교만해진다(양날의 칼날)
14.壬辰倭亂(7년, 이순신의 해상전투: 13전승)이 끝나다!
@잘못된 선조의 논공행상: 1등공신 군인 3명뿐이다(이순신, 원균, 권율)
.피난간 관리들은 전원 1등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선조의 피난길 안내 유공인가? 명나라군대 지원요청 유공인가?)
.이후, 명나라 국력쇠퇴와 여진, 후금이 성장한다
.창의(의를 택한다)~귀순(순하게 항복하다)~항왜(항복한 왜군)
@기술, 문화의 전달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구마모토성 건축(오와리 동부출신)
.축성경험(울산성, 순천성)으로 귀국후 구마모토/큐슈 성주시절
.일본 3대성(오사카성, 나고야성, 구마모토성)
.일본으로 도자기, 한지, 활자, 성리학의 전달
.사야카(왜군 선봉지휘관, 김충선)의 귀화, 무기 제조술을 배운다
@세계3대해전:살라미스해전(bc480),칼래해전(1588),트라팔가해전(1805)
15.光海君의 화해외교(1609)에 부산 기유약조(도쿠가와 막부)
.부산포에 교역선 50여척이 무역을 하였다
.숙종(1678)에 왜관이 설치되었다(부산포 초량)
@이예(71세, 울주 출신, 태종~세종), 대마도 전문가
.무로마치(1막부)~아시카가(2막부)
.교토(4회), 대마도는 수시로 방문하여 인질을 구출하였다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40여명을 구출한다
*通信士 30회 파견으로 신뢰와 소통이 되었을땐 전쟁이 없었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daum blog "늘빛사랑 조흥식"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1123.세종로라이온스클럽 정기봉사 (0) | 2023.12.31 |
---|---|
2020-1025.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전선아 자녀혼례 (1) | 2023.12.29 |
2020-1016,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손진현총무 회갑연 (1) | 2023.12.26 |
2020-1012.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이사회 (0) | 2023.12.26 |
2020-1006.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조윤배 모친상(군산) (0) | 2023.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