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0210. 춘천 금병산(경춘선 김유정역)
丙子胡亂 남한산성(소현세자, 봉림대군 효종)
丙子胡亂 남한산성(소현세자, 봉림대군 효종)
1.외교정책 미흡으로 호란(2회)
@정묘호란(1627년. 인조5년. 후금 공격: 3만명)
.강화도 피신후, 의형제국 조공약속
.후금(청)의 목표는 명나라 격침으로 배후에 불안감
.강화도 조약(물결이 세차고, 교통원활, 후금은 해군이 없어)
@병자호란(1636년 12월. 인조14년, 청태종)
.형제국 약속, 명나라 호의에 불만
“군신관계 전환, 조선군 3만명을 지원하라” 거절하였다
.남한산성 피신(12,15)...개심사 약사불(벽암대사), 화현전
:13000명, 식량(14300석, 50일분), 소금(90일분)
.강화도 함락
2.인조,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다 .....소설(김훈)
@南人(퇴계학파)의 동조, 순수 성리학자들이 정치에 참여
.인조는 10년간 정권확립도 못한채 丙子胡亂을 자초하여,
.江華島로 피난갈 시간이 없어, 南漢山城으로 도망(45일간)
@南漢山城(和, 戰, 守)
.김류(영의정)
.최명길(이조판서): 화친주장으로 판서들의 처형 상소, 항복문서 작성
.김상헌(예조판서): 항복문서를 찢어버려...자살 실패(전,안동김씨)
.이성구(병조판서)
.김자점(도원수)
.이시백(수어사): 최명길(이판)보다 5세 연상
.동계 정온: 활복자살 시도(61세)...함양으로 낙향(某里재)
@江華島(순교자)
.김상용 자결(청음 김상헌의 친형)
.김익겸 자결(서포 김만중의 부친)
.윤방 자결...
*강화관찰사 김경징은 도주하였다
2.靑나라(여진, 12만명)
@청태종(누루하치 “칸”의 8째 아들)
.형제들의 살육으로 등극(하루: 6회 식사, 말린양고기~말젓을 즐겨)
.취미(말, 개, 여자)
.선발대 용골대 장군(통역관 정명수)
.적(狄: 오랑케), 적(敵: 상대), 흉(凶), 황(黃)
3. 南漢山城의 47일간의 비참했던 모습
@행궁처마의 잡상(원숭이, 손오공, 사자, 용, 잉어)
.사당: 온조왕(백제 시조), 관량사(군량미 창고)
.수라상: 닭다리조림, 밴댕이, 취나물, 무말랭이...
.숯을 땅속에 보관~활, 허수아비 제작(뽕나무, 밤나무)
.송진으로 야간조명~탈영병이 난무
@한양을 버려야 한양으로 돌아올수 있다
.가마니의 다양성(말먹이, 깔판, 난방용...)
.식량부족으로 말을 잡아서 사기진작
.초가 민가를 철거하여 화목으로 사용(짚은 말먹이)
4. 삼학사(심양에서 참수되어 효수, 메밀국수로 연명+무우말랭이)
.윤집(30세, 처, 아들3명을 남양으로 피신시켜...)
.오달제(27세, 노모, 임신한 부인을 남겨두고...)
.홍익한(인조반정 공신, 이정구제자, 기호학파)
5. 선조가 남긴 말들
.도루묵(충미어, 말짱 도로묵)
.날이 밝으면 해가 뜨는게 아니냐? 기본이다...나는 살고자 한다
6. 최명길의 항복문서(주화파, 1586~1647)
“.....칸을 황극이라 일컫고 있으니 만고에 없는 일이옵고
明에게도 바치지 않았던 말이옵니다
.天人所歸: 하늘과 사람이 귀의하는곳(하늘에게 칸을 내주자는 뜻)”
.척화파(청음 김상헌 1570~1652), 항복문서를 찢어...
7.남한산성 수어장대
.인조즉위후 산성공사 시작(친명배금정책, 전쟁대비)
.연못(45개), 샘(80개)
.북문 기습공격으로 패배(법화골 전투, 300명 몰살)
.훗날 북문 개축(정조, 전승문 “병자호란의 패배를 잊지말자”)
.수어장대를 2층으로 증축(1751 영조27년)
8.三田渡 굴욕(삼전도: 마루), 삼전동 나룻터(1637.1.30)
@三拜九叩頭(삼배구고두: 여진족의 천자 배례의식)
.서문으로 군복착용,
.三學士 심양 처형(척화론 주장: 홍익한, 윤집, 오달재)
.還鄕女(錦衣還鄕: 비단옷에 출세후 고향방문)
.동계 정온 자해소동~낙향(거창 모리재 은거)
@丁丑和約(정축화약, 항복조건)
.명나라 단절, 청나라 군신관계(연호사용)
.세자 인질(심양: 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1년후 귀국)
.성곽 축성금지
.歲幣(세폐, 공물)제공
.기념비(대청황제공적비), 이경석 필체(훗날, 영의정 1595~1671)
외교정책의 혼선
1.사실상 國論은 主和論이었지만,
@명목상 主戰派의 척화론이다
.끝까지 투쟁하여, 기득권과 유리한 외교적 협상을 확보하려는 목적...
.이론적 투쟁으로, 江華島가 함락되어 저항할 여력이 없었다
(강화도를 원나라가 정벌하지 못한 이유는 해군이 약하고,
유속이 너무빨랐다...지금은 퇴적물이 많아졌다)
@삼학사, 효현세자, 봉림대군(효종)는 靑(심양)으로 잡혀간다
.김상헌의 詩...“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20년후, 남쪽으로 후퇴한 明나라는 폐망(明의종 자살)
.인조 정부의 薪膽大義(와신상담)는 靑나라 복수를 내세우지만,
.靑나라를 배운 “효현세자 親和論”을 주장하는 정치노선(귀국, 1개월후 의문의 독살된다)
.봉림대군은 薪膽大義(주적; 靑)을 지향한다
.효종은 벌대총으로 북벌을 준비하지만, 후손없이 죽는다
@불벌론(소중화 사상)은 삼전도 명예회복, 明나라에 대한 의리론
.(西人)의 영수 송시열이 등장으로 山林, 士林이 정치에 참여한다
.(南人)... 허목, 윤선도와 대립이 시작된다
.丙子胡亂 극복과정에서, 월담 도주한 윤선도는 비겁하게 살아남아
정치적으로 고전하면서, 윤준(子)으로 교체된다
.결국, 노론과 소론이 분류되면서,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온다
.노론(율곡학파)은 송시열을 핵심으로...
.소론은 윤준(파평윤씨)을 핵심으로...
2.對明 의리론
@對靑 복수론은 현실 불가능한 조선단합용 정책이지만,
.산성정비와 군량미 비축등은 지속 추진하였다
.사신단의 삼사를 수행하는 자제군관은 친족들이 대부분이었다
(보디가드, 수행원은 정보수집으로 지도 제작)
@尊周論, 천하는 周나라를 핵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이론...
.周나라 붕괴후, 春秋戰國時代에 천하대란(영토전쟁)이 시작되자,
.혼란 극복을 위한 사상가 “百家爭鳴”이 등장한다
.孔子의 儒家思想으로 周나라 중심(春秋大義)의 尊周論으로
.모든나라의 平和共存하는 儒敎文化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는다
.法家는 秦나라에서 적용되었고, 유학사상은 漢나라부터 정착된었다
.壬辰倭亂+丙子胡亂이후 儒敎文化속에 君主論이 접목된 문화중심의
“조선중화사상”은 조선단결이 핵심이었다
소현세자 인질
@소현세자(1637~1645), 심양관에 거주
.선진문물, 천문과학, 군사력, 문화, 남천주당(북경, 성당), 아담 샬(독일)
.일시귀국(장인별세), 북학(청나라 선진문물을 배워야...)강조
인조와 갈등(이념, 북벌/척화론에 반대)
.練藜室記述(연려실기술), 이긍익 역사서(정조, 태조~현종시대)
.봉림대군(효종)은 척화론을 주장
@소현세자 귀국, 2개월후 의문의 독살(1645,4월~6월 사망)
.모든 사체구멍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독살, 인조의 방치?)
.소현세자의 자녀(아들 3명, 석철 12세...)에게 세자승계를 하지않았다
송시열의 추천을 묵살한다
.세자비(강씨 1611~1646)의 사약처형(독약을 넣었다... 모함)
ceo성향으로 매우 적극적(심양, 무역활동과 유민을 보살펴...)
인조와 후계자 갈등
명예회복 추진 김형옥은 곤장형(추사 김정희 조상, 훗날복위)
@병자호란으로 인조는 남한산성을 포기하고 삼전도의 치욕을 안고,
.인질로써 소현세자(형)+봉림대군(효종)+斥和臣(척화신;청나라와
화친을 거부하는 신하)은 청나라에 볼모로 붙잡혀간다
.청나라가 山海關과 西域을 공격시 소현세자를 보좌한 명군이었다
@ 9년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1645년)으로
.봉림대군이 귀국하여 태자가 되어 1949년에 효종으로 즉위하여
친청파(김자점)를 파직하고, 이완을 등용하였다
.조총,화포를 개발하고 강화도(원두표),남한산성(이시방)을 맡아
성곽을 개수, 식량을 비축하는등 비밀리에 분비를 확충한것이다
@소현세자는 왜 죽었을까?.....이상한 죽음이다
.소현세자는 탁월한 능력으로 청나라와 외교력을 발휘했지만,
.무능한 부친(인조)때문에 청나라에서 9년간 인질생활을 하였고,
.귀국후에, 불안을 느낀 인조는 아들(소현세자)을 독살한거지요
@인조는 소현세자비(며느리)에게 사약을 내린다
.음독주살 미수죄를 뒤집어 씌운다
.조선 사약받은 여인들: 폐비윤씨, 장희빈(남인~서인대립)
.혜경궁 홍씨는 정조를 위해 영조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효종(봉림대군)
@봉림대군(효종)즉위, 1649~1659(10년간 재위)
.親命拜金政策으로 북벌(척화) 추진, 복수절치 논리
.비밀프로젝트...御營廳(어영청)을 설치...이완 임명
.스승(송시열/서인, 송준길)의 대화록에 효종과 독대내용(실록에는 없어)
송시열 문집(幄對說話 악대설화. 송서습유 7권)
.청나라 파병요청(나선정벌)에 군사훈련을 허용하는 해프닝 발생
.하멜 1630~1692(제주 “하멜표류기” 네덜란드 선원), 무기제작참여
.벨 테브레(박연, 네덜란드 귀화, 인조)
@大報壇(대보단): 명나라 태조~신종~의종을 모신 사당
.대명의리론의 정책유지(명나라 멸망, 1644)
.북학파 등장으로 이념약화(영조~정조)
병자호란부터 조선후기로 접어들다
@병자호란(인조)부터 후기 조선이 시작된다
.오랑케는 침략자를 일삼는 漢族이 아닌 민족이다
.中華의 필수는 中原, 漢族, 文化를 갖춰야 한다
.1646년, 조선과 맹방(우방국)이었던 明나라의 쇠퇴기 시대...
@효종, 송시열은 환장암(청주)을 明황제(2명)의 사당을 짓는다
.신종(임진왜란을 지원해준 은혜)과 의종(마지막 황제)의 제사를 제의
.1704년(明,패망 60주년) “대보단”을 창덕궁 후원에 사당을 만든다
“明,태조+신종+의종”의 단을 설치하지만, 1905년경 없어진다
.청나라의 눈치 때문에 묘는 설치하지 않았다
.송시열은 세자책봉 문제(경종)로 정치적 희생이 되지만,
.向化人(明나라에서 귀화)의 특별 과거시험등 예우가 특별했다
.정조는 租貢(특산물, 우정과시)을 직접챙길 정도로 각별했다
.젊은지식인 위주의 “北學”등장으로 “종주국”용어가 등장하지요
.청나라와 외교중시의 중국과 관계를 중간정리한다
.北學은 19c 개화사상으로 이어져 대원군의 척화비로 이어지고
.광무(대한제국,1897)는 부국강병의 국호가 등장하지요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0204mpcho@naver.com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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