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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갑총재(2020-2021)

2021-0309. 경조업체 MOU 업무협약 준비회의

by 조흥식 2024. 1. 28.

2021-0309. 경조업체 MOU 업무협약 준비회의

글씨로 그린 그림 미수 허목의 매

 

 

 

 

 

글씨로 그린 그림 미수 허목의 매

@허목(許穆, 1595~1682), 기언(記言) 전원거(田園居)

*고매누자대년설(古梅樓子大年說): 오래 산 매화나무와 누자산다(樓子山茶) 이야기

청악매(靑萼梅) 중 둥치와 가지가 밑으로 굽고 묵은 것을 대년고매(大年古梅)라 하고,

누자(樓子, 누자산다樓子山茶) 중 누런 좁쌀 같은 꽃밥의 붉은 꽃이 피는 것을 대년누자라고 한다.

누자는 용주공(龍洲公, 조경趙絅)이 뜰에 심었던 좋은 품종이고,

고매는 한산옹(寒山翁, 송석우宋錫祐)에게서 나온 것이다.

용주공은 여든네 살을 살았고, 한산옹은 여든일곱까지 살았다.

지금은 두 노인 모두 세상을 떠나고 그들이 준 식물만이 석록암거(石鹿巖居)에 전하는데,

암거노인(허목 자신을 지칭) 또한 여든을 바라보니, 가히 식물의 고사라 할 만하다.

대년이란 오래 살았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태령노인(台嶺老人)이 불여묵사(不如默社)에서 씀.

 

*미수(眉叟) 허목은 17세기 남인(南人)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현종조에 장령, 삼척부사 등을 지냈으며 숙종 초 우의정에 오르는 등

남인 집권기에 정치적 역할을 적지 않게 수행했으나,

기실 그가 관직에 있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조일전쟁 및 조청전쟁의 험난한 시기에 강원도와 영남 남부의 각지를 전전하며

청장년 시절을 보낸 그는, 짧았던 출사(出仕)를 뒤로 하고 68세였던 1662(현종 3)

근거지였던 경기도 연천으로 돌아온 후 80세 때 숙종이 즉위하며

다시 등용되기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원림을 경영하고 승경을 유람하는 등

유유자적한 은거 생활을 영위했다.

 

그의 문집인 기언은 크게 생전에 자편(自編)한 원집과 속집(續集),

그리고 사후에 문인들이 편성한 별집(別集)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원집과 속집은 주제에 따른 독자적 체재에 따라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문체별로 글을 모아 사후에 편성하곤 했던 문집의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독특한 색채를 띠고 있다.

위의 글이 속한 전원거 1’ 편은 기언원집에 속하는데,

이 원집의 구상과 편찬이 삼척부사 파직 후 연천에서 은거하던 기간에 이루어졌다.

전원거 1’ 편의 주제가 바로 이 연천 생활의 정경에 해당한다.

유랑과 유람, 은거와 독서로 점철된 남다른 인생 역정,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기언으로 집약된 문필 활동 등,

여러 면에서 미수 허목의 본령은 정치가 아닌 학문과 문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고매누자대년설

허목 문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글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허목의 글은 난삽하기로 악명이 높다.

간오(簡奧)함 즉 간략과 함축이 지나쳐 구두조차 떼기 어려워

생경하고 껄끄러운 느낌을 주기 일쑤다.

위의 글은 그리 난삽하거나 생경하지는 않으며 독해하기 어렵지도 않다.

오히려 간략하고 평이하여 무뚝뚝해 보일 지경이다.

대우가 반복되면서 평범하게 진행되는 이 글은,

제목까지 포함하여 104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길이에 글자조차 반복이 많다.

즉 작품의 제재에 해당하는 고()ㆍ매()ㆍ누()ㆍ자()ㆍ대()ㆍ연()ㆍ노() 등의

글자 및 용주공과 한산옹 등 인명, 그리고 위()ㆍ지()ㆍ야() 등 어사(語辭)가 여러 번 겹쳐 등장하고 있다.

애초에 문학적 수사가 자리 잡을 만한 공간이 부족하며,

실제로 그러한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이 글은 문학 작품이라기보다 일종의 기록에 가까우며,

어떠한 문예미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허목이 손수 쓴 수고(手稿)는 같은 내용이면서도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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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