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2.세종로라이온스클럽 월례회
*대나무(義를 배워야...)
대나무(義를 배워야)
1.후난성 쥔산에 전설적인 고대중국의 대나무밭 廟(어영, 아황)가 있다
.어영과 아황은 堯(요임금)의 딸이자, 瞬(순임금)의 婦人이다
.당시, 堯(요임금)이 許由(허유)를 불러 왕위계승을 요구했으나,
“이미 태평성대가 완성되었는데, 부족함이 많아 거절하겠다”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냇가에서 귀를 씻었는데...
냇가에서 소에게 물을 먹이던 巢夫(소부)는 소고삐를 끌어당겨
더러운 물을 먹일수 없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오기도 한다
.남편(瞬)이 죽자, 어영과 아황(姉妹지간)은 소상강가(샤오강)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죽었다고 하는데,
피눈물의 얼룩무늬가 선명한 대나무 簫湘斑竹(소상반죽)이
자랐다는 전설적인 덕담이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다
2.壬辰倭亂에 明나라에 서애(류성룡)과 백사(이항복)는 파병요청을 갔다
.明에 黃應賜(황응사, 특사)를 보냈으나, 軍事外交가 쉽지 않았다
이항복은 옛문서를 꺼내 보여줬는데(왜군이 조선에 보내온 외교문서)
“日本은 朝鮮과 함께 明나라를 쳐들어가자” 일본의 동맹 제안서였다
.壬辰倭亂 초기에 대마도주(소오 요시토시)와 승려(겐소)를 파견하여
조선에 同盟체결 假道入明(明 攻擊路를 빌려달라)의 요구하였으나
東來부사(송상현)은 끝까지 거절하여 순절하였다
(戰死易假道難: 싸워 죽을지언정 나라의 땅을 빌려줄수는 없다)
.우여곡절 끝에 明(이여송)을 설득하여 파병을 결심하게 만들었지만,
朝鮮에 파병된 明나라(이여송)은 전투를 회피하면서
왜군과 휴전및 강화를 주문해온 것을 이항복이 설득에 나섰다
.시간이 지체되면 漢陽 탈환이 어렵고, 피해가 속출할것으로 판단하여
明나라 군대가 적극 가담하여 치열한 戰鬪가 시작된 것이다
.이여송 장군(明)과 기막힌 外交담판이 매우 인상적이다
최초, 이여송(明)은 압록강을 도하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이유는
인접국의 전쟁에 휘말려 피를 흘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여송(明)의 변명은 매우 독특했다
“조선에 人物이 있어야 나도 참여한다. 승산이 있어야 전쟁에 참여한다”
.이에 조선은 즉시 外交사절단을 재편성하였는데,
백사 이항복, 서애 류성룡, 차천로, 한석봉...이 재협상에 돌입한다
.당대 최고 詩人(차천로)은 평소 습관대로 낮술에 취하여
밤이 깊어 흥이 오르자 詩를 읊기 시작을 하자마자
조선 名筆(한석봉)은 차천로의 詩를 일필휘지로 받아 적었다
.한석봉의 서예글씨를 이항복은 이여송(明)에게 전달하며 설득하였다
백사는 “左傳”을 능통했기에 돌발상황 적임자로 선발되었던 것이다
.이항복이 겸상 식사를 하던 이여송(明)이 트집을 잡았다
“소상반죽 저분이 아니면, 밥을 먹지 않겠다...”
(그 눈물 자국이 배여있는 어린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칭한다)
.최고의 명품(소상강 소상반죽)을 서애 류성룡이 가슴에서 꺼내보였다
류겸암(류성룡의 맏형, 풍산류씨 겸암파 시조)은 예지력이 있는
異人이었는데, 류겸암은 평소 천장에다 소상반죽 젓가락을
매달아 놓았는데, 동생(류성룡)이 明나라 접빈사로 떠날 때 줬다
“꼭 필요할 때 긴요하게 사용하거라”
.이여송(明)은 깜짝 놀랄수밖에 없었다
“아하! 朝鮮에도 인재가 있구나! 戰爭을 해도 승산이 있겠구나...”
.이후, 明나라 군대가 적극적으로 壬辰倭亂에 가담하게 된 것이다
3.고려말 포은(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철퇴를 맞아 殉節(순절)하였다
.개성 善竹橋의 붉은 대나무도 義와 忠誠의 상징, 즉 血竹(혈죽)이다
.性理學(朱子學)의 전통적 계보, 정몽주의 피가 대나무로 변한 것이다
안향~이제헌~정몽주~이색,권근~김종직~조광조~김굉필~이황~이이
.또한, 고려말 三隱으로 유명하다(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4.강릉 烏竹軒(오죽헌)에는 뒷마당에 검은줄기 대나무 밭이 있다
.최초 오죽헌은 수재 최응현의 집이었으나 둘째 사위(이사온)에게 상속,
이후,이사온의 딸인(용인이씨)에 상속되어 용인이씨 딸(5명)중에서
4째딸 아들(권처균)에게 상속된다(조상 묘 관리책임을 부여)
.사위 권처균은 검은 대나무를 보고 본인의 호로 정한 것이다
5.남원 광한루 요천 인공연못 방장섬에도 멋진 대나무 섬이 있다
.殉節의 상징, 성춘향의 광한루는 황희(1419년)가 건립하였지만
.銀河水를 상징하는 인공호수는 1461년에 조성되었다
전라관찰사(송강 정철, 1582년)는 연못에 전설속의 삼신산을
봉래선(백일홍), 방장섬(대나무), 영주섬(영주각)으로 만들었다
6.대나무는 殉節의 상징으로 절개, 의리, 절의에 비유되기도 한다
.마디마디 絶(절, 한자어)이 일정한 간격으로 마디를 만들고,
곧은 줄기는 진공상태로써 인간의 정체성의 상징인 셈이다
.殷(은) 갑골문에 새겨진 고대 중국의 문자였는데,
“義(의)는 犧牲羊(희생양)을 날붙이로 잡는 모양”을 뜻하며
“義는 누구를 위하여 죽는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7.殉國志士(순국지사)
.殉(순)은 순애보의 殉, 순장의 殉으로 “따라 죽는것”이다
殉國은 “나라를 위하여 죽는것”이며,
志士는 “나라를 위해 죽는 선비”를 말한다
.민영환과 황현은 殉國志士로 추존되어 존경받고 있다
.민영환은 을사늑약(1905)이 체결되자, 이완식의 집에서 활복했다
고종황제와 2000만 동포에게 죽음을 알리고 자결했던 것이다
.황현(매천록)은 민영환의 죽음(血竹)의 기록을 보면
“민충정공 영환이 殉義한 이듬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빈소 뒷마루(자결했던 칼, 피뭍은 옷을 소장했던 곳)에
푸른 대나무(靑竹,청죽)가 솟아난 것이다
4떨기, 9가지, 33잎이 나왔는데 뿌리는 흙이 아닌 공중에서
나왔으니 忠義가 하늘에 근거했음을 알 수 있다...”
8.황현은 민영환이 활복 5년후(1910, 경술국치) 음독 자결하였다
.絶命詩(절명시)를 남겼는데, 참으로 애절하기 그지없다
“나라가 선비를 양성한지 500여년이 지났건만,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명의 선비도 스스로 죽는자가 없으니 슬프지 아니한가?”
.황현은 황희의 후손으로 동생(황원)에게 부탁(遺言)하여
친구(김택영)가 편집한 것이 유명한 “매천록”이다
.광양출신으로 구례 만수산 기슭 구안당에서 자결하였다(56세)
스승(왕석보)에게 배우며, 스승의 아들(3형제)과 친하였고
생원회시 합격하였으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낙향한다
.황현은 조선말 4대 문장가(강위, 이건창, 김택영, 황현)로 유명하다
.이건창(충청 암행어사)은 이조판서(이시원: 병인양요, 서양침략의
울분으로 자결)의 孫子로써 관찰사(조병식)을 탄핵하였다가 벽동으로
유배되었으며
.황현은 을사늑약후 김택영과 함께 중국망명을 약속했으나,
가난으로 비용이 없어 포기하고 자결을 결심한 殉國志士이다
9.대나무는 선비에 비유되면서 곧은 절개의 義, 기개를 상징한다
.선비들이 자랑했던 四君子중에서 추운 겨울을 차지하고 있다
義의 삶을 강조하는 선비들은 부끄러워 할줄 알아야한다
.孟子왈, 羞惡至心(수오지심)에서 강조하였다
“부끄러워 하는 마음의 義를 실천하는 출발이다...”
10.孤山 윤선도(해남윤씨, 녹우당)는 종로 청운동에 거주하였다
.낙향후, 보길도에 은거하며 五友歌(松,竹,石,물,月)를 집필하였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이 어이 비였는다,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오우가 대나무편
11.육자배기에서는 대나무를 매우 호되게 평하고 있다
“백초는 다심어도 대는 아니 심으리라,
살대(화살)가고 젓대(피리)우니 그리나니 붓대(붓)로다,
어이타 가고 울고 그리는 그 대는 심어 무삼하리오!...”
12.늘빛사랑 조흥식은 소쿠리 지형 대나무 숲에서 태어났다
.전북 김제군 白鷗면 半月리, 대나무 숲속아래 우물이 있다
마을속의 대나무 밭과 우물, 과수원 집의 대나무 밭과 우물
김제 모악산의 줄기의 혈점(좌청룡)이 맺힌 동네이다
.洞(동)이란? 마을사람들이 한우물을 사용하여 동네라고 한다
백석동천(부암동), 청계동천(필운동), 도봉동천(도봉동)...
.감악산(양주) 연가를 생각해보면, 옛 생각이 절로 난다
水自竹邊流出冷 風從花里過來香(임창규님 漢詩)
“물은 대나무 숲을 지나 흘러야 시원한 生水가 되고,
평범한 바람도 꽃밭을 지나야 香氣로와 진다...”
.삼전지묘(蘭)를 완성시킨 화강(박영기)의 竹畵는 명작이다
.소백산 竹嶺에는 대나무는 죽고 조릿대만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담양 죽순요리(대나무 통밥), 죽엽청주도 일품아닌가?...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024.세종로라이온스클럽 월례회 (0) | 2023.01.22 |
---|---|
2013-1015.세종로라이온스클럽 생일오찬 (0) | 2023.01.22 |
2013-0907.세종로라이온스클럽 강릉,삼척(클럽4역연수 2일차) (0) | 2023.01.19 |
2013-0902.세종로라이온스클럽 서울 소년분류심의원 봉사 (0) | 2023.01.19 |
2013-0829.세종로라이온스클럽 영화관람(피카디리극장)*종로산악회 방문(구,민주산악회) (3) | 2023.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