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7.재무총장 예방(잠실역 8번출구 예전빌딩 4층)
남연군묘 명당(충남 예산 덕산면 가야산)
남연군묘 명당(충남 예산 덕산면 가야산)
@南延君의 묘(李球. 남연군, 흥선군의 父親)를 명당으로 옮기다
.흥선대원군(넷째아들)의 부친이며, 고종황제의 할아버지이다
.문신,왕족으로 본명;채중, 시호;영희(榮僖)·충정(忠正)이다
.인평대군의 6대손(생부;진사 이병원의 둘째아들)이었으나,
.아들없이 사망한 사도세자의 넷째 서자(은신군)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구(球)로 개명, 남연군에 봉해졌다
.독일 상인(오페르트)에게 도굴당한 사건으로 유명한 인물이다(1866)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했다
.수원관(守園官)과 승헌대부(承憲大夫)를 역임하였다
.죽은 후에 경기도 연천군에 장사되었다
.1868, 오페르트(독일 상인)는 묘지훼손으로 천주교 박해가 심화된다
프랑스 페롱신부가 알려줘, 대원군을 화나게 하였다
.梅泉야록(梅泉 황현 1855~1910)의 기록을 보면,
남연군 사망(1838, 흥선군 18세), 1846(흥선군 26세)에 이장한다
.이하응(1820~1898)은 시정잡배처럼 안동김씨의 눈치를 살피면서
추사 김정희 정만인(지관)과 절친하였다
.정만인은 충청도 덕산땅 “萬代榮華之地 만대에 영화누릴 명당”
흥선군은 가야산의 “二代天子之地 2대에 걸친 왕의 명당”을 선택한다
.우선 덕산면 상가리 절골에 임시 묘자리를 정하는데,
이곳은 윤봉구(영조시절 판서, 파평윤씨)의 賜牌地였는데,
그 후손에게 잠시 빌린다(지금은 舊壙地라고 부른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기슭에 남연군의 묘가 있다
.4째아들 흥선(대원군)은 부친을 경기도 연천에서 500리 이동하여
.마을 백성들을 동원하여 상여를 이동하면서 베풀었다
.종착지 백성에게 상여를 남겨준뒤 보덕사를 창건한다
.흥선군은 가야사 주지에게 재산을 처분하여 금(2만냥)을 주면서
스님들을 몰아내고 사찰을 불태운다
.또한, 충청감사에게 가보(端溪벼루)를 뇌물로 준뒤 방화를 하지요
.가야사는 불에 타고 금탑만 남았다
.보운전의 철불상(3개)도 녹았는데, 쇳덩이를 줠 뒤편에 뭍었는데,
봉덕골 대장장이가 캐내 사철과 함께 녹였지만, 모두 가루되었다
.흥선군 4형제중에서 3형제가 동일한 악몽(꿈)을 꾸었다
“나는 塔神이다, 어찌 내 거처를 빼앗느냐? 4명이 폭싹 죽을것이다”
3형제는 반대했지만, 흥선군은 과감히 추진하였다
“그렇다면, 명당이다...命은 타고났는데 神이 죽으라고 죽을순 없다”
.塔을 부수는 도끼가 말을 듣질않아, 하늘을 보고 울부짖다
“어찌 왕의 아비가 될수 없는 것입니까?”
이후, 종탑이 부서진다
.그안에 백자(2개), 團茶(2병), 사리구슬(3알)은 머리통만큼 크고
맑게비쳐 물속에서도 푸른빛을 내고있었다
.수많은 철근을 녹여 부었고, 석회(강회)로 다졌다
.오페르트는 발굴이 안되자, 큰불을 지른뒤에 썰물시간에 도주한다
.대원군은 건너편 書院山 기슭에 報德寺의 이름을 내린다
.土木金璧으로 치징하고 시주는 큰아들(이재면)이다
주지 碧潭先師를 임명한 마지막 왕실원당(願堂)이다
.한국동란에 불타고, 지금은 여승들이 중창하였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기슭에 남연군의 묘가 있다
.4째아들 흥선(대원군)은 부친을 경기도 연천에서 500리 이동하여
.명당터에 있던 사찰을 불태우고 이장한다
.마을 백성들을 동원하여 상여를 이동하면서 베풀었다
.종착지 백성에게 상여를 남겨준뒤 보덕사를 창건한다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는
.흥선대원군(넷째아들)의 부친이며, 고종황제의 할아버지이다
.문신,왕족으로 본명;채중, 시호;영희(榮僖)·충정(忠正)이다
.인평대군의 6대손(생부;진사 이병원의 둘째아들)이었으나,
.아들없이 사망한 사도세자의 넷째 서자(은신군)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구(球)로 개명, 남연군에 봉해졌다
.독일 상인(오페르트)에게 도굴당한 사건으로 유명한 인물이다(1866)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했다
.수원관(守園官)과 승헌대부(承憲大夫)를 역임하였다
.죽은 후에 경기도 연천군에 장사되었다가,
.흥선대원군에 의해 명당 충청도 예산으로 이장되었다
남연군의 명당 묘터
@유교를 숭상한다는 것은 불교를 잡씨로 보는 견해다.
.절(사찰)집은 기껏해야 양반들이나 왕족들의 원찰에 불과하다.
.종속된것 같아서 아무때나 헐거나 물려도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사찰을 헐고 사람의 유택을 정한 최초는 풍수 도입과정을 알수있다
;통일신라(원성왕)때 숭복사를 헐고 조성한 지금의 경주 괘릉...
.최근역사에 가장 유명한것이 남연군(충남 예산 덕산면 가야산)묘이다
@흥선은 국풍(국가공식풍수관료,잡과과거출신)을 쓸 엄두를 내지못한다
.그것은 그들의 임무 중 하나가 왕의 일가에 대한 풍수적 판단과,
.풍수로 왕권에 도전하는일을 철저히 방비해야 하는것이다
.왕자들의 태실 결정에 절대로 왕이 나올터를 배제하거나,
혹은 혈처를 파괴하거나 한다
@권력 싸움에서 밀려 죽게되는 회안대군의 묘를 안장하게 해놓고도
.왕기 서린 묘터라는 이유로 엄청남 양의 숯으로 뜸을 떠
.기운을 없애는 등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것이 국풍수들 이었다
.이것를 잘아는 흥선은 당연히 왕권에 꿈이 있었던 묘터라
.국풍을 쓰지않고 그일을 은밀하게 지사 정만인에게 맡긴다
@지사 정만인은 애초 사주와 관상에도 능통했던 인물이었다
.한눈에 범상치않은 흥선을 보고 그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알아놨던
.묘터를 하나하나 검토하며 흥선에게 보일 묘터를 고른다
@이곳이 덕산현(예산)의 유혈(여성의 젖모양의 혈)의 묘터를 정한다
.이미 예산에는 헌종태실을 비롯한 왕족의 태실이 넷이나 있었으니,
.또한 자미원의 터라, 이미 세상에 알려진 터였다
.주저없이 흥선을 이곳에 부른다
“이곳에 두터가 있는데, 하나는 만대영화지지로 만대에 걸쳐
부족함이 없이 살터이고, 하나는 이대천자지지로 2대에 걸친
천자가 나올 터이니 둘 중 하나를 고르시오”라고 말했다
@흥선의 정치적 욕심을 이미 간파한 정만인의 술법이 숨어있다
.왜냐하면 만약 흥선이 만대영화지지를 선택했다하더라도
.그는 지금의 이 자리를 권했을 테니까
.가야산(석문봉과 옥양봉)아래에 만대영화지지는 더이상 없기때문이다
@이말로 많은 풍수학인들이 수없이 그 자리를 찾게되었다
.지사로 유명했던 손석우가 주장하는 자리=지금, 본인의 유택이다
.장법을 제외하고 풍수적 가치가 전혀 없는곳이기 때문이다
@흥선이 2대 천자지지를 택한곳은 바로 가야사라는 절이 아닌가
.양반가문 왕족이라 해도 사찰을 불태우는것은 찝찝한게 사실이다
.이에 흥선은 지방 호족이던 모씨 집안에 이를 부탁한다
@당연히 들어서는 안될일, 이 지방호족은 집을 흥선이 방문했을 때
.손톱으로 분노를 표하며 긁은 자국이 깁게 패어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 호족은 뒤에 이곳을 뜨게 된다.
@연천에서 남연군을 이장할때 상여가 지날때는
.그곳 사람들이 상두군이 되는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마지막 구간(덕산현 상가리)은 이 지역 사람들이 운구하지 않고,
.그곳에서 10여리 떨어진 광천리 백성들이 운구한 것으로 볼때,
.끝까지 이장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것은 사실인것 같다
@이 공으로 광천리 백성들은 궁중의 남은들(상여)을 받게 되고
.지금까지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
.물론 보관을 이유로 옮겼지만, 재미있는 것은 광천리는 전주 이씨의 집성촌이고,
.이들은 대부분 회안대군파이다
@가야사는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가야사가 100여칸이 넘는 큰절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큰 절은 가야사가 한창 번창했을 때이고
.쇠락을 거듭하며 전기했지만, 전촉살을 막는돌장승을 세우면서까지
.부흥을 꿈꿨지만 흥선이 이곳에 왔을때 가람이 매우 쇠락했던것이다
@그 과정은 여러 설이 있다
.가야사 스님에게 사주하여 다시짓는 보덕사의 주지를 시켜주는 조건이었다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승되었던 사찰을 없애는 과정은 여기에서 보이지않는다
.급기야는 가야사가 불타고, 문제는 그탑이 있는곳이 명혈이라 그곳을 부수기로 한다
@“임금은 하늘이 낸다”야화는 흥선의 대권야욕을 정당화에 일조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 이장은 했다
.그렇게 이장하고 보답하는 의미로 지어준 보덕사...
.건곤저허의 풍수적 결함으로 숱한 피바람을 몰고 오고...
.과연 정만인은 왜 이곳이 2대 천자지지라고 대원군을 설파했는가?
@정만인이 흥선을 앞에두고
.2대 천자지지라고 큰소리를 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그의 정치적 정세 판단이 뛰어났던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묘터가 2대천자지지라는 뚜렷한 징후는 보이지않기 때문..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추리해낸 풍수적 해석이다
@정안군의 묘터... 주산을 보면 주산의 조건에 맞지 않다
.장경에 이르길 주산은“수두(머리를 지그시 드리워야함)해야”하지만,
.이곳 주산인 옥양봉은 수두하지 못하고 불수두하니,
.거시(땅의 지기가 시신을 거부함)라 하여 쓸 수가 없다
.따라서 이곳을 기대어 묘지의 좌향을 놓을 수는 없는 법,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대명당의 국세는 너무 좋고 아름다우나 주산이 흠이 있다
.결과적으로 흥선은 주산의 흠이 곧 바로 자신의 권력으로
.만들어버리는 영악함을 동시에 지녔으나
.결국, 우백호가 돌아앉은 형세로 명성황우의 거센 도전을 받는다
.암튼 정만인은 이 흠을 바로잡을 명쾌한 답을 얻는데,
.이를 “화이위복”이라 한다“화가 변하여 복이 됐다”
@정만인은 “화이위복”의 풍수시술은 어떻게 2대천자지지가 되었는가
.전기했듯이 주산으로 삼아야할 옥양봉으로는 기대기 어렵게 되자,
.정만인은 주산을 빌려오기로 한다.
.이를 “차주(借主)”라 하여 “횡룡입수”한 형국에서 많이 쓰인다
.“횡룡입수”란?... “용이 혈을 맺기위해 머리를 드밀때의 모습”을
입수라 하는 데 이 종류 중 하나이다
.이때 이 빌린 주산을 “요산(樂山), 또는 낙산”이라 한다
.그래서 정만인은 석문봉을 주산으로 삼기로 한다
.석문봉의 위엄이라는 것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주산을 빌려오면 그힘이 본룡에서 온것보다 약화될수밖에 없는것이다
@“주산이 둘”이라는것은 주산이 주관하는 역량에 비추어볼 때
.천자가 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2대천자지지가 완성된 것이다
.이는 2대천자지지이기도 하지만, 다른 주산이 방을 차지했으니
.대원군의 섭정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고,
.왕권의 약화는 불을 보듯 뻔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이런 풍수적 해석으로 인해 가야사는 드디어 불길에 휩싸이고, 새롭게 “보덕사”가 세워진다.
@흥선군이 가야사 절터로 남연군을 이장하고,
.덕산 지역에 베푼 두가지 중의 하나가 바로 보덕사이다
.그 중 하나는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보덕사에 대해서 잠깐 풍수적 해석을 하고자한다.
@보덕사는 기록에는 없지만, 남연군묘의 원찰 형태로 존속했을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풍수적으로는 “허화(虛花)”에 속한다
.허화란 가짜 꽃이란 뜻...마치 좋은 혈처럼 보이지만 혈이 아니고,
.때론 완벽한 국세를 갖추었지만, 가짜여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허화”는 자칫 속기 쉽고, 화려해서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급하게 대혈을 찾거나 억지로 혈을 찾을때 허화가 잘 보인다
.홍성, “채극철 선생 유택”이 그 허화를 물리친 묘로 유명하다
@보덕사의 결함은 “건방저허”로써
.악재위험이 존재하는 풍수적 허점이 있는 곳이다
.그래도 생명력은 오래였으니 풍수 또한 허점이 있는걸까
.그 허점이 바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듯...
.남연군묘의 명당설이 후세에 웃지못할 풍수극으로 번지고 있다
@남연군의 가족 관계
.조부는 이진익(李鎭翼)
.아버지는 이병원(李秉源)으로 진사,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양 아버지: 은신군(恩信君)
.부인: 현부인 여흥민씨
.아들; 이창응(흥녕군),이정응(흥완군),이최응(흥인군),이하응(흥선군)
.손자 : 고종(高宗)황제
@흥선대원군(이하응)과 운현궁
.안동김씨 세력에 밀려 주변시선을 따돌리며 때를 기다린다
.시정잡배 출신으로 운현궁에서 정치판에 등장한다
.고종은 신정황후+흥선대원군 정치적 밀약으로 옹립한다
.신정황후(헌종모친, 풍향조씨)가 수렴청정한다
.훗날,흥인군(이하응의 셋째형)은 영의정이 된다
@명성황후(민씨)는 흥선대원군의 견제로 대립이 계속된다
.독서로 인내하면서 춘추,춘추가시경,한중록을 완독한다
.대한제국으로 독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후 을미사변(시해사건)으로 변을 당한다
@대원군의 정치적 술수
.정치적 집권 명분에 경복궁 공사로 세금가중, 불평이 생긴다
.“庶民自來(서민자래)”는 백성이 스스로 공사참여한다
;사실은 강제징집으로 공사를 강행한다
.명성황후를 두려워해...속마음을 짐작할수 없어...
.쇄국정책으로 식민사관으로 평가받아...
.인적쇄신으로 심복 이경하(명동 중국 대사관터)집에서 살생부작성
.가짜 석파란 판매(500~5전)하여 정치자금을 조달하였고,
.영의정(이경재)직을 10번 거절후,석파란을 구입후 수락한다
;제갈공명(삼고초려)처럼 거절후 입궁하여,구설수에 오른다
.신하의 자택,석파정(자하문부근)을 빼앗아 비난을 받는다
@안동 김씨/풍향 조씨를 배척하고+
.안동김씨 축출(김좌근,김병기..)에 대원군이 앞장선다
;20만냥을 강제로 헌납받는다
.유림(서원;500개 폐쇄)주장한다
.풍향조씨(신정왕후)와 대립이 계속된다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0204mpcho@naver.com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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