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5. 독립문 안산둘레길 트레킹(서대문구 안산)
三足烏(삼족오, 高句麗의 상징)
三足烏(삼족오, 高句麗의 상징)
@역사드라마에 (三足烏)표식이 마치 고구려의 국기처럼 착각한다
.자주 등장하지만, 사실은 전유물은 아니다
.고구려~중국~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자주 사용했었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의 상징이다
.태양 숭배사상+새의 상징으로 보여진다 .광개토왕비,장수왕의 시조는 (해)이다
.고구려인 모자에는 깃털모형을 부착한것은 사실이다
.해모수(주몽 부친)도 까마귀깃털을 모자에 착용했다
.신라에서도 까마귀를 “태양의 신”으로 숭배했지요
.연오랑,세오녀에도 까마귀가 등장하며,
.일월,태양속에 삼족오를 상징하고 있다
@424년,고구려도읍지(길림성);광개토대왕비,장군총에 남겨있다
.4~7세기;고구려의 전성기로써 군사력(최강)+문화(최고)
.천정에 황룡이 많았는데 “천하의 중심”을 뜻한다
.조선의 주작기는 3두1족오...머리는 3개지만, 발은 1개이다
.그러나,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까지 (三足烏)깃발을 사용했다
@한대의 삼족오는 중국에서 육조시대까지 유행이 지속되었다
.이는 다시 고구려 고분벽화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일중삼족오가 표현되고 있다.
.고구려 국가상징...천조사상(태양신).광개토왕비에 기록남아...
.하늘의 뜻, 태양조/태양의 새(인류를 다스리고, 밝은생명,하늘백성)
.숫자“3”에대한 성스러운 민족의 간절함
.주작(깃발)에 활용/ 창덕궁의 백태처럼
.삼족오; 서주~전국시데~한.....고구려 남하~삼한~일본
@일본깃발은 태양을 상징한다
.따라서, 태양조 깃발은 일본이다
.고대일본에서는 (三足烏)는 깃발로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1931년부터 축구유니폼에 삼족오 문양을 사용한다
.구마노 나지(신의 성지,오오사카)신사는 (신중의 신)을 모신사찰
.650년,신무천황의 “야타카리스”는...(큰까마귀)라는 뜻이다
“나라”갈때 꿈에 등장하여 “삼족오의 안내받으라”
.신사의 기둥위,벽면에 삼족오 그림이 있으며
.610년;담징이 벽화를 일본에 전파하였다 (교토,5층 품주자)
@고대중국은 주작기로 삼족오깃발을 사용했다
.사실상 (三足烏)의 주인국은 중국으로 봐야한다
.홍산(요하)문화+고조선+고구려; 5000년역사
.북방문화(만주); 동이문화때 번성하였다
.현무도; 용+거북....용,봉황; 최초 요하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남방문화(앙소문화)에도 삼족오가 발견되었으며,
.황하를 중심으로 중원시절 문화에는 삼족오가 없어진다
@4세기말~5세기초(당나라 이전)에 집중적으로 출현한다
.해와 관련된 신, 즉 삼족오로 표현되었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구체적으로 해 안에 까마귀가 살고
;달 안에는 두꺼비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회남왕이 저술,한무제시대 반역으로 음독자결)
@태양안에 세발까마귀가 표현되고, 태양을 상징인가?
.중국의 저명한 신화학자 손작운(孫作雲)씨는
;태양이 떠오르면 그 아래로 까마귀가 동시에 따르는 순간에
운행하는 태양과 날아가는 까마귀가 한점에 놓여 겹치게 되는데
이는 까마귀가 태양안에 들어가 앉아있는것과 같은
시각적 착각때문에 일중삼족오(日中三足烏)가 유래하였다
@일중삼족오는 동이민족이 새와 태양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까마귀가 세개발이 달린 이유는
.동이족이 숭배하는 까마귀가 평범한 새가 아님을 뜻한다
.손씨는 삼족오가 씨족 사회말기 또는 하(夏)나라 성립시기에 산동반도 일대에서
발생하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삼족오를 금오(金烏) 또는 준오(烏)라고도 부른다
.태양에 까마귀가 산다는 신앙은 초사(楚辭), 산해경(山海經)등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부터 발견된다
.중국에서는 해와 달을 단순히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태양,
;밤하늘을 밝히는 달의 의미만이 아닌,
;해와 달 안에는 삼족오와 섬여(옥토)가 살고있다고 믿었다
.주도(周到)씨는 태양의 흑점을 발견하여 세발까마귀로 여긴데서
세발까마귀가 유래하였다고 본다.
@일중삼족오, 월중섬여(달 안 두꺼비)와
.인수사신(人首蛇身, 사람얼굴을 하고 뱀의 몸을 한 것)의 복희씨와 여와씨에 대한
신화전설이 성행하기 시작한 시기인 한대(기원전 206~서기 220)에는
이러한 신상(神像)을 표현한 그림들이 그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상은 대부분 발해연안의 석묘계(돌로 축조되는 고분)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들 일중삼족오에 대한 신화전설은 벽화석묘는 물론이고
.그 외 화상묘(畵像墓), 화상전묘(畵像塼墓), 백화(帛畵), 칠화(漆畵),
.청동기물(靑銅器物) 등에도 묘사되고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일중삼족오의 초기형상으로는
.서한 전기(기원전 175~기원전145)의 장사 마왕퇴 1호묘 출토의
;백화(帛畵) 상면 좌우에 그려진 일상(일중이족오, 태양안 ;이족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화에 그려진 태양 안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원형 안에
;두발 달린 까마귀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한대의 삼족오는 중국에서 육조시대까지 유행이 지속되었다
.이는 다시 고구려 고분벽화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일중삼족오가 표현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삼족오는 크게 세 가지 종류
1)고분의 천정에 성수(별자리)과 함께 동쪽에는 일중삼족오를,
서쪽에는 월중섬여를 묘사한 ‘일중삼족오 월중섬상’이다
2)복희,여와 신화에 쌍룡(혹은 蛇)
쌍교형(雙龍雙交形, 두마리 용이 서로 교차하고있는 형태)의
交尾雙龍(혹은 蛇, 특히 꼬리를 교차하고있는 형태) 및
양인수일사신(兩人首一蛇身, 머리는 둘인데 뱀의 형태를 띤
하나의 몸)을 묘사한 ‘교미복희여와상’이다
3)첫째 유형+둘째 유형이 결합한 형상으로
인수용신유우(人首龍身有羽, 사람의 머리에 용의 머리를 하고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경우)의
복희씨와 여와씨가 양 손으로 일중삼족오와 월중섬여(혹은 옥토)를 머리 위에 받들고 있는
봉일중삼족오섬여(捧日中三足烏蟾蜍, 받들고 있는 태양안의 까마귀와 두꺼비)
복희여와상, 복희여와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제갈량은 머리에 재갈건을 쓰고 다녔다
.백우선(白羽扇, 힌색 깃 부채)을 휴대한 모습을 볼수있다
.촉한의 운명(유비,장비,관우;전사)이 다했다고
;판단한 왕랑(위)은 詩로 제갈공명을 약올린다
“위나라는 달빛, 촉한은 개똥벌레”
.위나라가 공격해오자, 詩로써 “천하역적 조조에게”신경전을 한다
;결국,왕랑이 낙마(촌철살인)하지요
.제갈량은 평소 힌 깃털 부채를 들고 다녔다네요
;영화(적벽대전), 민화, 책...그림으로 볼수있지요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0204mpcho@naver.com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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