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0, 사패산(552m)
*나라가 망해가는 恨도 모르고
나라가 망해가는 恨도 모르고
@성현(成俔 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악학궤범서(樂學軌範序)
“함지(咸池)와 육영(六英), 소(韶)와 호(濩)의 소리를 모두가 기리는
까닭은 그때의 세상이 도타웠기 때문이지 음악이 공을 세워서가 아니며,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와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모두가 미워하는
까닭은 그때의 임금이 방탕했기 때문이지 음악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다.”
*에드워드 양(Edward Yang 楊德昌 1947~2007) 감독의 1991년 작
“고령가소년살인사건(牯嶺街少年殺人事件, A Brighter Summer Day)”은
소년과 소녀의 성장기를 섬세하게 그리면서도 대만(臺灣)의 현대사를 묵직하게 다룬다.
영화에서 어른은 아이를, 국가는 시민을 연신 윽박지른다.
그렇게 개인과 청년에게 가해지는 경쟁의 조장(助長), 폭력의 전이(轉移),
희생의 전가(轉嫁)들이 때로는 직설로 이따금 은유로 빛의 명멸(明滅) 속에서 갈마든다.
낭자한 싸움이 벌어진 한밤의 학교, 깜깜한 교실의 전등을 켠 소년의 눈앞에
섬광처럼 반짝, 소녀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소녀는 칠판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5초쯤 될까,
감독이 부러 화면을 멈추어 우리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칠판을 가만히
본다면 거기에 쓰인 것이 두목(杜牧 803~852)의 박진회(泊秦淮)임을 알 수 있다.
“찬 강물 모래밭은 안개와 달빛에 쌓여,
진회에 배를 대니 주막과 가까운 곳.
상녀는 망국의 한도 모르고, 강 너머 오히려 「후정화」를 부르네”
나라는 가마득히 기울어가거늘 상녀는 한스러움도 모르고 망국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니 시인의 마음은 밤처럼 서늘하고 부옇다.
소녀가 이러한 시를 칠흑 속의 칠판에 홀로 쓰던 밤은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섬으로 패퇴하여 계엄 통치를 시행한 지 10년 남짓하던 때.
더욱이 소년과 소녀의 학교는 그 이름이 건국중학(建國中學).
감독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망한 것일까 세워진 것일까.
어찌하여 우국(憂國)은 이토록 쉬이 강요되는가.
나라가 망해가는 한을 모르는 건 민중이 아니라 통치자 아닐까.
*함지와 육영은 요(堯)와 제곡(帝嚳),
소와 호는 순(舜)과 탕(湯)의 음악이다.
옥수후정화는 남조(南朝) 진(陳)의 후주(後主)가,
예상우의곡은 당(唐)의 현종(玄宗)이 즐긴 노래이다.
진후주 숙보(叔寶)는 일찍이 향락에 빠져 隋문제 양견에게 나라를 잃었고
당현종 이융기는 스스로 성세를 접고 안사(安史)의 난(亂)을 불렀다.
그래서 그들이 즐긴 음악을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이다.
용재(慵齋)는 또 말한다.
음악은 사람으로 인해 이루어지거나 무너지는데
이러한 음악의 도는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그러므로 문제는 음률과 체제라는 시스템보다는 그것을 만들고
움직이는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힘이 센 그 한 사람에게 있다.
*진후주는 호화로운 누각과 정원을 만들어 그곳에서 비빈(妃嬪)들과
저녁부터 아침까지 술 마시고 노래 불렀다.
그는 장귀비(張貴妃) 여화(麗華)를 누구보다 총애했다.
귀비는 궁중에서 음사(淫祀)를 지내고 후주는 병을 핑계로 교사(郊祀)에 나가지 않았다.
후주는 게을러 나랏일을 환관에게 맡겼다.
백관들의 주문이 환관을 거쳐 올라오면 비스듬히 기대앉아
장귀비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함께 결재했다.
귀비는 명민하여 환관조차 깜빡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챙겼다.
바깥일에 참여하고 그것을 살펴보았기에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 한 마디 일 한 가지라도 반드시 먼저 알고 말하니
상벌의 명령이 밖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문제가 진후주를 주벌하는 조서를 종이 30만장에 적어 강남에 뿌리고
군대를 일으키니 진나라는 오래지 않아 맥없이 무너졌다.
귀비는 죽임 당하고 후주는 살아남았다.
그런 후주가 하사품을 후하게 받고서 관호(官號)도 하나 달라 하니
수문제가 말하길 숙보는 배알이라는 게 전혀 없구나라고 하였다.
옥수후정화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일러 아름답다고 한 노래일 뿐이요,
만당(晩唐)의 상녀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그에 어울리는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그러하니 음악에 무슨 죄가 있으며 상녀를 어찌 탓할 수 있으랴.
수군(隋軍)이 궁궐에 이르자 숙보는 우물 속에 숨어들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돌을 던져넣으려 하자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밧줄로 끌어올리거늘 왜 이리도 무거울까,
꺼내고 보니 숙보와 여화가 함께 매달려 있었다.
정녕, 나라가 망해가는 한도 모르고.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0204mpcho@naver.com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늘빛사랑 조흥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101, 도봉산(1) (0) | 2024.12.28 |
---|---|
2024-1226, 도봉산 오봉코스 (1) | 2024.12.23 |
2024-1102, 북한산(단풍구경) (0) | 2024.10.31 |
2024-1019, 아차산,용마산 (0) | 2024.10.16 |
2024-1013, 장한평의 가을(만추), 늘빛사랑 조흥식 생일(음력: 9,11) (0) | 2024.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