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1, 수락산(16), 수락산역~귀임봉~동봉~주봉(637m)~장암역
제목: 꿈틀꿈틀 구불구불 원교 이광사의 힐곡완전(詰曲宛轉)한 필획(3)
제목: 꿈틀꿈틀 구불구불 원교 이광사의 힐곡완전(詰曲宛轉)한 필획(3)
*원교서결의 진정한 가치는 그 글씨에 있다.
이광사는 자찬의 글로 펼쳐낸 이론을 자필의 글씨로 씀으로써 그 자체로 예술적 실천을 이루었다.
서결은 넘치는 힘을 눌러 담은 생동하는 획으로 가득하다.
“호위서노(號爲書奴)”의 ‘호(號)’의 마지막 획은 두드러지게 길어
생동하는 동세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예가 된다.
이 세로획은 길게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몇 번이고 방향을 바꾸고 있으며,
미세한 연동은 그 횟수를 셀 수조차 없다.
꿈틀거림과 구불거림을 이 정도로 온전히 갖춘 획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소동파의 대표작인 황주한식시권(黃州寒食詩卷)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에도 긴 세로획이 몇 군데 보인다.
‘위(葦)’와 ‘지(帋)’(紙의 이체자)의 마지막 획이 그것이다.
상당한 길이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모두 이광사의 ‘호’에 비해 방향 전환의 수가 적다.
더구나 꿈틀거림은 편린조차 보이지 않는다.
▲(좌) 원교서결 호(號) | (중) 황주한식시권 위(葦) | (우) 황주한식시권 지(帋)
▲소동파 〈황주한식시권(黃州寒食詩卷)〉
(부분)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北宋蘇東坡書黃州寒食詩卷. 國立故宮博物院, 台北, CC BY 4.0 www.npm.gov.tw)
*‘일(一)’과 ‘과(過)’ 마지막 획은 〈원교서결〉 가로획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쉽사리 곧장 뻗지 않으며 힐곡하는 이 획은 변화미의 가장 간결한 화신이다.
황정견 또한 물결치는 가로획으로 유명했다.
소동파의 〈황주한식시권〉 뒤에 단
발문(跋文)의 ‘의(意)’의 제5획은 글자의 일상적 범위를 한참 넘어선 길이를 갖고 있는데,
넘치는 힘을 잘 체현한 구불거림을 보이고 있다.
▲(좌)원교서결 일(一) | (우) 원교서결 과(過)
▲황정견 〈황주한신시권발〉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北宋蘇東坡書黃州寒食詩卷. 國立故宮博物院, 台北, CC BY 4.0 www.npm.gov.tw)
▲(좌) 증장대동고문제기 정(丁) | (우) 증장대동고문제기 적(適)
▲황정견 〈증장대동고문제기贈張大同古文題記〉.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미술관(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소장.
Huang Tingjian(1045–1105), Scroll for Zhang Datong (Zeng Zhang Datong guwen ti ji. Gift of John B. Elliott, Class of 1951 (y1992-22)
*장대동에게 준 고문(古文) 앞에 쓴 글(贈張大同古文題記)〉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미술관 소장)의 ‘정(丁)’의 첫 가로획은 매우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즉 획의 윗부분이 비교적 평탄한 표면을 지닌 데 비해, 아랫부분은 파도치듯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글의 ‘적(適)’의 가장 아래에 있는 획은 이와 달리
획 전체가 몇 차례 힘의 방향을 바꾸며 전체적으로 꿈틀거리며 전진하고 있다.
둘 모두 대단한 동세를 체현한 혁명적 획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와 비교해 보면 이광사의 획이 동세의 조형에서 한 단계 더 진보한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힐굴과 완전을 동시에 갖춘 이광사의 긴 세로획과 가로획은 확실히 이 두 송대(宋代)의 대가보다 앞서 있다.
이광사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이렇게 눈에 띄게 긴 획이 아니어도 원교서결의 글자들에는 꿈틀거림과 구불거림이 넘친다.
‘즉(則)’의 세로획들은 팽팽히 긴장되어 있으면서도 연동 운동의 떨림을 갖고 있다.
‘변(變)’의 두 糸은 자형 자체의 맥락을 잘 살려 완전(宛轉)하고 있다.
아래의 夊의 ‘丿’의 힐곡 또한 멋지다.
‘세(势=勢)’에서는 첫 3획을 이루는 ‘扌’를 유심히 보아야 한다.
제2획인 세로획 끝에서 제3획으로 넘어갈 때 보이는 허획(虛畫)의 구불거림을 보자.
글자의 구조를 이루는 실획이 아닌 이러한 획조차 이광사는 그냥 넘기지 않았다.
▲원교서결 중에서. (좌) 즉(則) | (중) 변(變) | (우) 세(勢)
*이광사가 추구한 변화미는 개별 획과 글자를 넘어 글자들을 넘나들며 화면 전체를 채우는 동세를 지배한다.
위 세 번째 인용문의 마지막을 이루는, 정첩(貞帖)의 네 면(제236~239면)을 보자.
원문의 “法, 是所謂有意於變, 卒爲不善變已矣. 今人不知此爲蘇黃畔道之言, 喜其辨之可以自解不學之過, 以粗心躁意, 未見古人糟粕, 便自謂自出新意. 新學小生, 才寫數卷紙, 便作五十二以後之羲之之事, 更不求進, 良材美質, 竟無一人成”에 해당한다.
▲원교서결 탁본첩 중에서 (貞帖) (제236, 237면) (개인 소장)
▲원교서결 탁본첩 중에서 (제238, 239면)
*점차 변화의 강도를 더해가던 글자들은 ‘新意’ 이후 폭주하며 2개 면을 내달리고 있다.
이 부분이 원교서결 전편 조형미의 하이라이트다.
*‘新’은 글자의 크기가 갑자기 커져 이후 난장의 신호탄이 된다.
글자 오른편(방旁)의 ‘斤’의 마지막 획은 둥근 호를 그리며 왼쪽 아래로 빠지고 있는데,
꿈틀거리는 연동 운동이 잘 나타나 힘차다.
이 면은 4개의 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2~4행은 행들 사이 틈입이 심하다.
즉 제2행의 첫 두 글자인 ‘小生’과 제3행 첫 글자인 ‘紙’,
그리고 제3행의 ‘紙便作’과 제4행의 ‘二以後’는 각자의 고유 행간을 비집고 들어와 공간을 공유한다.
제3행과 제4행에서 ‘紙便作五十二以後之’의 글자들은 각기 모두 회전 운동이 훌륭하다.
빙글빙글 이어지며 견아상입(犬牙相入)하는 획들로 인해,
이 부분은 오로지 운동감만으로 가득 찬 화면이 된다.
운동감은 다음 면의 ‘羲之之事 更不求進 良材美質 竟無一人成’에서 더욱 고양된다.
‘羲之’의 ‘之’는 매우 길게 뻗었고 이어지는 ‘之’는 작고 간단히 처리되어 대비된다.
마지막 제4행의 ‘無一人成’은 ‘成’의 마지막 점만 제외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획으로 그어졌다.
구불구불 이어진 이 일획(一畫)은 마침 이 부분의 원문에서 이광사가 설파하고 있는 궁극의 변화미의 화신이다.
*체제가 안정되고 정치는 발전한 조선 후기는 정치 세력간 투쟁, 즉 당쟁이 격화한 시기이다.
당쟁에서 밀려난 지식인들은 격절의 공간 속에 금고(禁錮)되어 강제된 침잠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평생토록 단련하여 내면화된 학문의 내공은 그들을 저술의 길로 이끌기도 했다.
어떤 이는 사회와 체제에 대한 개혁안을 구상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경전에 대한 주해를 연찬하기도 했으며,
어떤 이는 새 기운을 지닌 시문을 창작하기도 했다.
이광사는 예술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오롯한 시간을 형식미의 탐구에 쏟았다.
평생 함께한 분야라도 일상의 시간 속에선 반성과 탐구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렇기에 이광사 개인의 불행은 후대의 예술가에겐 축복이 되었다.
그가 남쪽 바다 한가운데의 섬 신지도에서 남긴 원교서결의 문장과 글씨는
명사십리의 모래알처럼 무궁무진한 조형미의 가능성을 품은 한국 서예사의 보배다.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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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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