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7.회장단회 산악회 번개모임(종로3가 국일족발)
출입을 삼가라(김춘택)
출입을 삼가라(김춘택)
@김춘택(金春澤 1670~1717), 북헌집(北軒集) 습유록(拾遺錄)
“몸으로 활동하다 보면 마음도 외면으로 치닫기 쉬우니
은둔하는 이유가 피해를 멀리하려 해서만은 아니네
주역에서는 용이 몸 지키려 칩거한다 했고
시경에서는 새도 제 살 곳 알아 머문다 했으니
주자는 고요히 정좌하여 제대로 배워 정자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네”
@조선후기, 사대부들이 지향했던 덕목중에
“교유를 끊는다(絶交遊)”는 등의 말과 아울러
“출입을 삼간다(罕出入)”는 말이 많이 쓰였던 것을 보면,
당쟁이 심화되던 시기였던 만큼 실제로는 잘 지키기 어려워 지향하게 된 듯하다.
“칠계와(七戒窩)”라는 택호를 붙이고 이에 교훈 삼을
조목을 세워 명(銘)을 지어달라고 한
재종조부(再從祖父) 김만증(金萬增)의 부탁 때문이긴 하였지만
자신을 위한 경계로 삼는다는 김춘택 자술에서 시대상을 볼수있다
@김춘택(숙종시절)은 노론으로 남인 및 소론과의 당쟁에서 중심 인물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그의 5대조이고,
소설 구운몽의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은 종조부이다.
조부는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이고,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仁敬王后)는 바로 그의 고모이다.
노론 명문가 후손으로서 남인과의 다툼에 치열할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같은 노론 계열인 자신의 일가도
유배되자 이를 설욕하기 위해 1694년 소론인 한중혁 등과
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주도하여 다시 노론 집권에 기여하였다.
인현왕후가 죽은 1701년에는 소론과 대립하다 유배되었는데
이 당시 소론은 기사환국 당시 원자가 된 경종을 지지하였고,
이 때문에 1706년에는 경종을 모해하려 했다는 소론의 배척을 받아 다시 유배되었다.
1717년 그가 죽고 나서 1724년 영조 즉위 초부터
영조의 생부라는 구설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혼돈의 50평생을 마치고 나서도
조정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후대의 수많은 역모사건의 불씨로 남았다.
@위의 명이 지어진 시기는 171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1706년의 사건으로 인한 유배시기였다.
택호를 빙자했지만 재종조부 김만증이 편지를 보내 명을 지어보라고
한 것은 세사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손자와 가문을 우려해
은연중에 자중하도록 다독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김춘택 역시 20년간 겪은 당쟁의 역정에 대한 회한이 깊었을 테니
자신의 명으로 삼겠다고까지 한 것은 아니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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