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2.추석연휴 북한산(위문, 백운대)
가을밤의 두 가지 정감
가을밤의 두 가지 정감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임천을 그리는 정 품고 사는데 문밖에는 오가는 거마의 소리
대 난간 세워 만든 화단에서는 꽃나무 잎 단풍져 떨어지누나
찬이슬 가지마다 빛깔 다르고 풀벌레들 저마다 울어대는 밤
홀로 걷다 다시금 혼자 앉으니 밝은 달이 내 가슴 비추어주네
@작년 가을 우연히 “달빛”이라는 대중가요를 듣게 되면서 알게된 시이다
이 곡은 위의 다산 시를 개사하여 싱어송 라이터 권진원이 만든 노래였고,
그녀가 피아니스트, 해금 연주자와 함께 만든 ‘만남’이라는 음반에
수록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실린 곡들은 대부분 다산, 퇴계, 율곡의 한시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대가들의 체취와 숨결이 느껴지는 한시에 매료되어 뭔가에 홀린 듯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날 저는 개인적 호기심에 원시(原詩)와 노랫말을 비교해 보다가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노랫말의 내용이나 신문 인터뷰를 보면,
이 시는 ‘유배지 강진에서 기약 없는 가족과의 이별과 슬픔을 노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해석했을 때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목이 생깁니다.
바로 수련(首聯)입니다.
수련은 한마디로 ‘도회지에 살면서 전원을 그리워한다’는 뜻인데,
그게 맞다면 이 시는 시골 강진에서 지은 시도,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시도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럼 도대체 이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보통은 실마리가 시 속에 숨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대 난간[竹欄]’과 ‘꽃나무[花木]’가 시안(詩眼)입니다.
이를 토대로 어렵사리 찾아들어 가다 보면 여유당전서에 실린
죽란화목기(竹欄花木記)와 만나게 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산이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할 때,
중부(中部) 명례방(明禮坊)에 집이 있었습니다.
다산은 그 집에 마당의 반을 할애하여 대 난간을 세운 다음,
각종 화초와 나무를 화분에 심어 화단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매일 퇴청한 뒤에는 그곳을 거닐며 꽃을 완상하였고,
벗들이 찾아오면 함께 술 마시며 시를 짓곤 했습니다.
이 모임이 바로 조선 후기 대표적 시사(詩社)의 하나인 ‘죽란시사’입니다.
@결국, 다산은 이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전원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여기는 수레 소리 요란한 한양입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전원생활을 맛보려고 화단을 꾸몄습니다.
단풍이 드는 가을이면 가지마다 이슬이 형형색색 은은하고,
밤에는 또 풀벌레 소리가 심금을 울립니다.
더 생각이 맑아지고 마음이 깊어집니다.
낙엽이 지면 또 어떻습니까.
화단은 늘 시절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기에,
홀로 거닐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밝은 달도 살며시 와서 어깨와 가슴을 감싸주네요.
날마다 이렇게 전원의 정취에 젖다 보니
문밖 시끄러운 소리는 잊은 지 오래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강진의 유배지에서가 아니라
2, 30대 공직에 있을 때 서울 집에서 지은 시이며,
긴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고요한 전원의 정취를 노래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읽기보다 자연과 하나 된
물아상망(物我相忘)의 행복을 읽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현대시처럼 한시도 저마다 다양한 정감으로 감상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원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역사 사실 혹은 실체적 진실에
근거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배웁니다
고전 번역이 참 어렵고 두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1)‘만남’에 수록된 ‘봄밤의 매화’는
퇴계의 한시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를,
‘달빛’은 다산의 한시 ‘추야(秋夜)’를,
‘소나무처럼’은 퇴계의 한시 ‘영송(詠松)’을,
‘흰 구름’은 다산의 한시 ‘백운(白雲)’을, ‘
산중’은 율곡의 한시 ‘산중(山中)’을 소재로 하였고,
그 시들 속에 담겨 있는 자연과 풍류와 청정한 삶을
피아노ㆍ해금 연주와 노래로 형상화하였다.
2)이 앨범은 오롯한 선비정신을 격조 있는 선율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사색의 가을에 ‘세 음악 명인’의 청아하고
애잔한 선율을 한시와 함께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듣다 보면 고인(古人)들의 ‘깊은 사유와 여백의 미(美)가 깃든’ 음악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3)강진의 유배지에서 가족과의 긴 이별을 슬퍼하여 지은 시라면
다산의 심정은 이러했을 것이다.
“화단의 꽃나무는 짙은 가을 그늘 속에서 잎을 떨구고,
땅거미가 지고 나면 처연한 풀벌레 소리가 초당(草堂)에 가득합니다.
치열했던 청춘의 봄여름을 지나 이제 소슬한 잎새 같은 인생의
가을도 맞았습니다.
‘누군가의 곁에 있어도 외롭고’ 쓸쓸한 때입니다.
뒹구는 낙엽과 풀벌레 소리에도 새삼 有限한 존재의 가벼움을 느낍니다.
더구나 가족과 헤어져서 머나먼 강진 땅에 유배 중입니다.
‘그리운 얼굴들 언제 다시 만날까?’ 홀로 걸으며 생각하다
집에 돌아와 마루에 걸터앉습니다.
기댈 곳 없는 적막한 마음을 그래도 달이 와서 가만히 위로해 줍니다.”
4)지금의 남대문시장, 명동 일대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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