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3.종로구등산연합회 2015년도 송년의 밤
*종로3가 마산해수아구찜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
@이로(李魯 1544~1598), 송암집(松巖集)
우리는 만 번 죽어도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데 어찌 일이 번쇄하고 피곤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학봉 김선생 용사사적은 임진왜란 당시 죽을 각오로 진주(晉州)를 지켰던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학봉은 전쟁중에 크고 작은 문서까지 직접 작성하느라 병을 키웠는데,
이를 본 휘하의 조종도(趙宗道)가 번거로운 일을 그만 두도록 말리자 위와 같이 대답했다
@학봉은 무슨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지었던가?
학봉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오판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인 1591년, 일본에서 돌아온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은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라 경고한 반면,
부사(副使)였던 김성일은 침략의 정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안심시켰다.
조정은 상반된 보고 가운데 더 믿고 싶었던 김성일의 보고를 채택했고,
조선은 무방비 속에 왜란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침략의 급보를 접한 선조(宣祖)는 대노했다.
당장 김성일을 국문하겠다며 잡아들이게 했는데,
만약 이때 국문이 열렸더라면 학봉은 분명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소견은 잘못되었으나 충절은 믿어야 한다”고
유성룡이 비호해 준 덕분에 석방되어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로 나가게 되었다
@“모기만한 힘으로 태산을 짊어지고 있다[以蚊負山]”는 비유가 과장이 아닌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학봉은 자신의 죄, 나아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자신을 포함한
신하들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용서받지 못한다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초유사 임무에 매진하였다.
그리하여 의병장 곽재우 등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호남으로 들어가는
요충지인 진주를 방어하는데 성공하여 전세를 역전시키는 큰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1593년, 병란 중에 덮친 전염병을 구제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다가 병에 전염되어 5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만 번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며, ‘한 번 죽는 것은 어렵지 않다(一死非難)’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제대로 죽고자 했던 학봉의 마음이 어쩌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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