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9.인왕산 필운대
*인왕산 필운대(白沙室 계곡)와 자하문, 백사실은 백사 이항복(李恒福 1556~1618)
*배화여고 죠세핀 창립자, 등과정, 낙산공원 성곽(동소문동), 자하문(윤동주 시인의 언덕)
인왕산 필운대(白沙室 계곡)와 자하문
@백사실은 백사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별서(別墅)이다
.이항복의 호는 필운(弼雲)과 백사(白沙)이다
.경주이씨 백사공파 중시조(백사 이항복), 弼雲(아호)이 생긴것이다
.필운(호)은 필운대(弼雲臺)와 관련이 깊으며, 백사는 백사실에서 유래되었다(도심속의 무릉도원)
.필운대는 인왕산자락 전망 좋은곳에 자리한 큰 암벽(이항복의 집터)으로 원래 권율 장군의 집이었는데
사위(이항복)에게 물려주었다, 현재 고택은 없고, 배화여고 교정의 바위에 “필운대” 암석체가 있다
.이항복은 아침마다 주변을 산책하면서 한양(장안)을 내려 봤을것이다
.겸재 정선의 작품(필운대, 간송미술관 소장)을 그릴 정도라면 아마 주변 경관이 빼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필운대 일대는 중인문화가 꽃을 피운 인왕산자락의 중심공간이다
.중인들이 시문을 창작하고 교유했던 모습은 “필운대풍월” 이라는 말로 후대에도 널리 회자되었다
@백사실 계곡을 꿈에서 만나다
.백사실은 필운대에서 조금 떨어진 북악산자락에 위치한 비경이었다.
.이항복은 1611년 1월 꿈속에서 백사실계곡을 찾았다.
.계곡과 흰모래가 매우 인상깊어, 백사(白沙)라는 호를 쓰게 되었다
@이항복의 “백사집”
.신축년 정월 11일 밤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마치 공사(公事)로 인하여 비를 맞으면서 어디를 가는 듯하였다
.말을 타고 따르는 자가 2명이고, 도보로 따르는 자가 4~5인쯤 되었다
.어느 한 지경을 찾아 들어가니, 산천(山川)이 기이하고 탁 트였으며,
길옆 한 언덕을 쳐다보니, 그곳에 새 정자가 높직하게 서 있었는데,
지나는 길이라 올라가 구경할 겨를이 없었다
.곧장 막다른 협곡(峽谷)에 다다르니, 협곡안에는 마치 사찰과 같은
큰집이 있고, 그 곁에는 민가(民家)들이 죽 열지어 있었다
.그 큰집에 들어가서는 마치 무슨일을 한듯하나 잊어버려 기억하지 못하겠다
.여기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중, 다시 지나갔던 언덕에 이르니
그 언덕 밑은 편평하게 탁 트인 광장(廣場)이 되었고
그 위에는 백사(白沙)가 죽 펼쳐져 있는데, 그 주위가 수천보쯤 되어 보였다
.또 백위(百圍)쯤 되는 큰 나무 5그루가 광장 가운데 늘어서 있는데,
일산(日傘)과 같은 소나무가지가 은은하게 빛을 가렸다
@비로소 등성이를 타고 올라가서 비로소 새 정자에 올라가 보니,
.정결하고 산뜻하여 자못 별천지와 같았다.
.그 안에는 서실(書室)이 있는데, 가로로 난 복도(複道)에는
모두 새로 백악(白堊)을 발랐고 아직 단청(丹靑)은 입히지 않았다
그 밖의 낭무(廊廡) 여러칸은 아직 공사(工事)를 끝내지 못하여
다만 기둥을 세우고 기와만 이었을 뿐이었다
.형세를 두루 살펴보니, 사방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한가운데에
큰 들판이 펼쳐 있고, 세 개의 석봉(石峯)이 들 가운데 우뚝 일어나서 그 형세는 마치 나계(螺髻)와 같았다.
이것이 구불구불 남쪽으로 내려가서 중간에 꺾어졌다가
다시 뾰족하게 일어나서 언덕이 되었는데,
.언덕의 높이는 겨우 두어길쯤 되었고 정자는 바로 그 언덕위에 있었다
이 언덕의 오른쪽은 넓고 편평한 비옥한 들판에 수전(水田)이
크게 펼쳐 있어 향기로운 벼에 이삭이 패서 한창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추는 푸른 벼가 백경(百頃)으로 헤아릴 만하였다.
.정북향에 위치한 여러산들은 한군데에 빽빽히 모여 뛰어오를 듯
허공에 솟아 있으며, 동학(洞壑)은 깊고 험하여 은은하게 산천의 무성한 기운이 있었다.
@백사실의 연못과 정자가 있었던 흔적
.정자의 앞에는 멀리 산봉우리가 열지어 동천(洞天)을 둘로 만들었다
.두 동천에서 나오는 물은 마치 흰 규룡(虯龍)이 구불구불 굼틀거리며 가는 것과 같은데,
한가닥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또 한가닥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두가닥이 이 정자 밑에서 서로 합하여 돌아나가 한 물줄기가 되었다
.이 물은 넓이가 수백보쯤 되고 깊이는 사람의 어깨에 차는데,
깨끗한 모래가 밑바닥에 쫙 깔려 있어 맑기가 마치
능화경(菱花鏡)과도 같아서 오가는 물고기들이 마치 공중에서 노니는 것 같았다.
.시냇가에는 흰돌이 넓고 편평하게 깔려있어 한걸음 한걸음마다
낚시터를 이루었고, 현(玄)자의 형세로 흐르는 시냇물은
정자의 三面을 빙둘러안고 돌아서 남쪽의 먼들판으로 내려갔다.
@이항복은 정자에 “평생에 이러한 경계는 본 적이 없었다.”
.꿈속의 선경을 본 기억과 이 별서가 윤두수의 것임을 전하고 있다.
.평생 구경한것 가운데 일찍이 이러한 경계(境界)는 본적이 없었다.
.정자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니, 오음(梧陰)의 별서(別墅)라고 하였다.
.이윽고 윤수찬(尹修撰)이 나와 맞이하면서 말하기를 “상공(相公)이 안에 계신다.”고 하였다
.나는 이 때 문밖에서 머뭇거리다가 우연히 “도원의 골 안에는 일천 이랑이 펼쳐 있고,
녹야의 정원에는 여덟 용이 깃들었도다(桃源洞裏開千畝 綠野庭中有八龍)라는 시(詩) 한 구절을 얻었다
.시를 미처 더 짓지 못한채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꿈을 깨었다.
.문창은 이미 훤해졌는데, 그 시원하던 기분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고
모발(毛髮)에는 서늘한 풍로(風露)의 기가 있었다.
@마침내 일어나서 그 경치를 마음속으로 더듬어 찾아서
.화공(畵工)을 시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이 시를 붙여 쓰려다가 갑자기 스스로 생각하였다
.정자를 “필운별서(弼雲別墅)”라 고치고 절대로 윤씨(尹氏) 집 사람들에게 천기(天機)를 누설하지 않았다.
@백사 이항복의 마음속의 詩
“도원(桃源)의 뛰어난 경치에다 천묘(千畝)의 부(富)를 얻고 녹야(綠野)의 한적함을 누리며
팔룡(八龍)의 복을 소유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지극한 소원이다. 다행히 내가 이런 기이한 꿈을 꾸었으니
왜 굳이 오음(梧陰)에게 양여(讓與)하고 스스로 곁에서 구경이나 하는 냉객(冷客)이 된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푸줏간을 지나면서 고기 씹는 시늉이나 내는 데에 가깝지 않겠는가.
그러니 비밀에 붙여 남에게 말하지 않고 인하여 스스로 취하는 것이 낫겠다”
@이튿날 아침에 기록하다
“이달 27일밤 꿈에 재차 이 별서에서 오음과 함께 평소와 같이 즐겁게 희학질하며 노닐었는데,
산천의 뛰어난 경치는 지난번의 꿈과 같았으나,
다만 정사(亭舍)의 체제(體制)가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하늘이 오음에게 내려준 곳을 내가 사사로이 훔칠 수 없으므로,
인하여 “오음별서(梧陰別墅)”로 복호(復號)시켰다
.오음의 성명은 윤두수(尹斗壽)이다.
@이항복은 자신이 꿈속에서 본 별서가 윤두수의 것임을 알고도,
.그것이 너무나 탐이 나 “필운별서”로 그 이름을 고쳤다가,
.다시 “하늘이 윤두수에게 내려준 곳을 자신이 훔칠수 없다” 하여 “오음별서”로 고쳤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곳이 “백사실”로 전해지는 것을 보면
.결국 이곳 최후의 소유자는 이항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인왕산 자락의 필운대(弼雲臺)에 거주하면서,
.백사실을 별서로 삼은 이항복의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이다.
.이항복은 서인(西人)으로 활약했지만 당색이 뚜렷한 인물은 아니었다
.실무 관료로 자질을 발휘하고, 임진왜란에 의주로 피난을 가는
선조를 호종(扈從)하여 전란후에 호성공신(扈聖功臣)1등에 책봉된다
.그러나 극심한 정쟁의 소용돌이는 이항복에게도 예외가 되지는 못했다
.광해군 즉위후에 폐모론(廢母論)이 전개되자,
.이항복은 이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고, 결국 유배지 북청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배지에서도 이항복은 그토록 풍취가 좋았던 인왕산의 필운대와 북악산의 백사실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백사실은 북악산 뒷자락에 조성된 동천(洞天: 경치 좋은 곳)으로,
.비교적 높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백사실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진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는 글자는 이곳이 별세계임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백사실의 중심부에는 정자를 지은 터와 연못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선비의 별장으로 매우 적합한 지역임을 알수있다
@몽유도원도(1447년작)
.안견(安堅): 조선초기 화가, 대표적인 산수화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 소장중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圖)”의 배경이 되었던 인왕산 자락의 무계동(武溪洞) 계곡과도 인접해 있어서,
.북악산과 인왕산이 만나는곳의 절경이 형성되었음을 체험하게 한다.
.백사실은 명승 유적과 함께 자연 생태가 어우러진 지역으로서
.도롱뇽, 버들치, 가재 등이 서식하여 청정무구의 공간이다.
.도심 지척의 거리에 있는 선경(仙境)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몽유도원도(1447년작)
.안평대군(세종의 3째아들)이 무릉도원을 방문하는 꿈을 꾸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한 후 그리게 한 것이다.
.그림과 함께 안평대군의 표제와 발문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문사
신숙주(申叔舟)·정인지(鄭麟趾)·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최고학자 제찬을 포함해서 23편의 자필 찬시가 곁들여 있다.
.그림은 1447년 음력 4월 20일~ 23일 완성되었다.
.그림의 내용은 통상적인 두루마리 그림과는 달리 왼편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전개되어 있으며,
.왼편 도입부의 현실세계와 나머지 꿈속 세계의 대조적인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각 경물들은 분리된 듯하면서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있으며,
특히 좌반부의 정면시각과 우반부의 부감법을 이용한 공간처리, 평원과 고원의 대조,
사선운동의 활용을 통해 자연의 웅장함과 선경(仙境)의 환상을 절묘하게 나타냈다.
.화법의 특징은 운두준법(雲頭皴法), 세형침수, 조광효과(照光效果)의 표현 등에서
북송대 이래의 곽희파(郭熙派) 화풍의 영향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토대로 발전시킨 안견의 독창성이 잘 집약되어 있으며,
이러한 성향은 후대의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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