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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복합지구

2017-1122.제56차 까오슝 동양 및 동남아대회 6일차

by 조흥식 2023. 6. 1.

2017-1122.56차 까오슝 동양 및 동남아대회 6일차(11,17~11,22)

史草이야기(, )

 

 

 

史草이야기(, )

@(;풀초), 다듬어야 한다는 뜻(를 쓰지 않았다)

@; 이 있어야

; 이 있어야(선종~선조로 바꿔, 국난극복 유공)

.적자를 기준으로 한경우도 있어 일정치는 않았다

 

@왕이 사망하면 實錄廳을 선대왕의 實錄을 집필하는데

.영의정을 중심으로 士官禮文館에서 파견하여

.왕의 품격(, . )을 정했다: 燕山君, 光海君(일기)

.고대 중국에서도 반정, 정변, 군란이 아닐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친아들이었다면 먼훗날에도 추존을 했으니까

 

@태종(이방원): 1404년 사냥하던중 落馬하자 주위를 살핀뒤

.(이 사실을 士官이 모르게 하라!), 王도 긴장할 정도였는데

.결국, 사관에게 보고되어 기록을 남겼다

 

@燕山君은 (나는 세상에서 史草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조박(士官, 정7품. 정종7년)사관은 .군주가 두려워할것은 하늘과 歷史입니다

.하늘은 순리. 理致이며 높고 푸르름을 지킨다는 뜻이다

.士官은 君主의 善惡을 萬歲에 전하니 두렵지않습니까?

 

@제나라(춘추시대), 사관 3형제는

.bc548 최저(중신)는 부인과 불륜현장에서 제장공을 죽였다

“최저, 그 왕을 시해하다” 기록했던 사관을 처형했다

.죽은 대사(사관)의 동생이 뒤를 이어서 사관이 되었다

“최저는 대사를 죽였다”라고 기록하자

수정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사관을 또 죽였다

.셋째 동생이 사관이 되었으나 사초를 기록했다

“최저는 그 아우도 죽였다” 라고 기록한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관은 제나라 도읍으로 도주했다

.결국, 최저는 사초 수정을 포기하고 승인했다

 

@폭군 진()영공은 직언한 조순(재상)을 죽이려 했으나

.오이려, 정당하지 못한 명령에 자객이 자살하였고

.연회에 초대하여 개를 시켜 물어죽이려 했으나

사람에게 죽고싶다고 맞선후 망명길을 떠난다

.조천이 진영공을 살해하자 귀경한 조순은

재상으로 책임지고 물러났다는 기록이다

.동고 사관(대사)를 공자는 높이 평가했다

.동고는 재상이 왜 책임져야하는가?를 명확히 설명한다

 

@당나라 이세민(당태종); 위징 승상은 상소문을 사본으로 남겼는데

.사초에 넣어달라고 사관에게 넘겨줬다

.직접 묘비까지 하사했으나 묘지석을 없애라고 지시한 후

.고구려 침공시 위징이 혼령이 나타나 “고구려 정벌을 당장 중단하라”

즉시, 정벌을 중단하고 철수한후에 다시 위징의 묘비를 세워줬다

 

@당태종의 충복 저수량은 끝까지 사초열람을 요구했던

.황제의 요구를 거절한 사관이었다

.사관은 두명인데 좌사는 황제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우사는 황제의 말을 기록했다

 

@송태조는 사냥도중 긴급보고를 청하자 신하를 폭행했다

.신하는 앞니가 2개 부러졌는데 주어 주머니에 넣었다

.송태조는 후회하면서 질문을 했다

“그것을 증거로 왕의 행동을 간소할 작정인가?”

.신하는 “사관에게 알려 분명하게 기록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했던것이다

 

@권력자의 방종,남용을 견제함과 역사기록을 두려워했던

사초는 훗날에야 알려져 지금까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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