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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회(2016-2017 지역부총재 동기회)

2018-0124.일백회 신년교례회

by 조흥식 2023. 6. 5.

2018-0124.일백회 신년교례회(최대감, 종로 인사동)

허균, 강변칠우(江邊七友)와 홍길동전

 

 

 

허균, 강변칠우(江邊七友)와 홍길동전

@허균(1569~1618), 허엽(경상감사)의 첩의 아들이다

허봉(), 허난허설(누나)들과 우애가 좋았다

스승(이달)도 서얼(천한 모친)출신으로 출세할수는 없었다

그래서 봉건적 사회에 개혁의지를 갖는다

15세때, 허봉()도 귀향을 간다

 

*허균의 관료생활도 손탄치 못해

개혁시도에 비난을 받고 불교심취, 여색으로 탄핵받아 변방으로 다니고

불우한 庶子들과 내통으하던 중, 함열(전북)로 귀향을 간다(42)

 

*“홍길동전혁명적 소설을 집필한다(1611, 광해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휴대하고 관부를 드나들며,

기탄없는 행동을 자행하였다”(광해군실록)

주제는 적서차별의 철폐, 탐관오리 제거

광해군의 어두운 정치를 저주하고,

서자들의 혁명정신의 고취와 썩은 사회의 변화를 요구한다

 

*七庶(칠서)의 옥

서양갑, 심우영 등 혁명이 들통이 났으나 허균은 서자들이 우정으로

감싸줘서 살아 남아 이이첨(친구)에게 부탁하여 관직에 복귀하였다

혁명(서자, 무사, 승려)이 실패하자, 현응민이 거사벽보를 남대문에

붙이다가 들통나고 결국 허균도 체포되어 처형된다

 

*허균, 매창(기생)을 각별히 사모했다

부안 세무공무원(전운판관)으로 부임했을때(32, 1601)

기생 계생(28, 계량, 매창)은 시, 거문고에 능숙했다

그래서 詩妓(시기)로 불렸다

당시 김제군수 옥여(이귀)는 파직된다(암행어사 감사시 적발되어)

매창의 첫사랑(18)은 유희경(46)인데 2년뒤 이별하고서

이후, 허균과 매창은 애틋한 애정속에서 곧 이별하지만,

7년후, 재회한다(광해군,1608)

공주군수시 파직되어 부안부사(김청택 별장, 정사암)집에서 만난다

얼마후 승문원 판원으로 복직되었지만 매창과 수시로 안부편지를 전한다

매창이 죽자, 거문고와 함께 뭍었다고 듣고서 슬퍼한다

 

허균이 매창에게 보낸 편지(한시)중에

부용꽃(芙蓉), 탁문군의 거문고, 봉래섬이 등장한다

부용원은 양귀비(당현종)의 정원으로 당태종이 확장하였다(대당부용원)

 

@허균은 오명제(명나라 사신, 1598, 정유재란)와 시를 읊었다

명나라 사신은 를 받아 적어 조선시선을 편찬하였다

최치원(신라)~이규보, 정몽주(고려)~정도전, 허난허설, 서거정(조선)

무려 108명의 시, 332편을 외워서 불러준 것이다

 

@허균은 솔직, 금욕강조, 서출등용 촉구를 상소하였다

6명의 서출들과 강원도 산속에서 죽림칠현()을 본떠,

江邊七友(강변칠우)라 자청하면서 홍길동전소설이 탄생한다

허균은 반역주모자로 체포되어 처형된다(1618, 광해군10)

박응서가 체포, 거짓역모를 자백으로 영창대군이 사약을 받고(계축옥사)

인목대비가 유폐되면서 광해군은 몰락한다

인조반정후 이이첨이 조작했다하여 숙청된다

 

@홍길동전은 책, 영화, 드라마를 통하여 많이 알려진 소설이다

허균(부친과 3형제, 허난허설)의 묘는 서울 서초동에서 용인 백암면

맹리로 이장되었다(1970년경, 백암 비스타cc 36)

허균의 묘는 가묘(시신은 찢겨져 버려졌다)

생가(강원도 강릉 초당), 교산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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