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2.세종로라이온스클럽 창립5주년 기념식(리베라호텔 몽블랑홀)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김삿갓(1807~1863, 순조)은 조선후기의 풍자, 방랑 시인이다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한자 이름(별호)은 김립(金笠), 김삿갓
가명(假名)은 김란(金란),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이명(而鳴), 본관은 (신)안동
@김병연은 백일장에서 장원하였으나 반역자의 후손임을 알게된다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에 선천부사로 있다가 항복한 것을
비난하는 詩로 장원(壯元) 급제한 것을 수치로 여겨 방황하게 된다
일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단장을 벗을 삼아 전국을 떠돈다
독특한 풍자와 해학으로 퇴폐하여 가는 세상을 개탄했다
@1807년 양주 회암에서 태생(양반 가문인 김안근의 3남중 차남)
1807년(순조7), 부친(김안근)+모친(함평이씨) 슬하에서 탄생
5살(1811), 홍경래의 난, 조부(祖父) 김익순 선천부사(선천방어사)는
반란군 수괴(홍경래)에게 항복했는데,
원래 咸興 中軍(함흥군관)으로 전관되어 온지 불과 서너달 되었다
반란군의 새벽에 급습으로 술에 취한 김익순을 결박해 놓고
“안비막개(眼鼻莫開)로 항복하라”에 어쩔수없이 투항하였다
@결국, 김병연의 가문이 몰락한다
김익순은 참수를 당하였으나 가족은 살려준다(안동김씨)
황해도 곡산에서 가문에서 종노릇(김성수)의 집으로 피신하였으나
아버지는 도중에 사망하였고, 어머니만이 살아남아 3형제를 키워냈다.
사면정책으로 양주로 이사한뒤,
광주~여주~이천을 거쳐~영월로 이전하여 은둔생활이 시작된다
김병연은 어렸을 때부터 문장 솜씨가 뛰어난 신동(神童)이었다
어머니가 직접 문장을 가르켜 四書三經을 통달하였다
장수황씨와 20세에 혼인, 영월 동헌백일장에서 장원으로 급제(20세)한다
@과거시제, 공교롭게 조부(김익순)의 역적행위를 비판하라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논하라
@가산의 정군수는 문관의 몸으로 최선을 다해 싸우다 전사한다
그러나 선천부사겸 방어사(김익순)는 맥없이 투항했다
서슴지 않고 김익순(조부)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답글을 쓴다
시험직후, 어머니로부터 조부(김익순)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아 삿갓을 쓰고 전국 유랑을 떠나게 되었고
본명 대신 '삿갓' 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당시 20세까지 조부(김익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할아버지가 적장 앞에 무릎끓은 대가로
역적으로 몰린 사실을 자녀들이 모르도록 숨겨왔던 것이었다.
병연은 조부(김익순)이 사망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방랑의 시작
조상을 욕되게한 죄인으로써 푸른 하늘을 처다볼수 없어,
삿갓을 쓰고 죽장에 몸을 숨기게 된다
20세, 방랑길을 떠나기 전 갓을 파는 집에 큰 삿갓을 주문하고
집에서 긴 지팡이와 동국여지승람을 휴대하고 떠났다
어머니와 처(妻)에게 홍성(충남)의 외가에 다녀오겠다 한후,
북쪽 금강산으로 첫 방랑을 떠난후, 한때 잠시 집을 들렀으나
사실상 가족들과 일체 연락을 끊은채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묘향산, 지리산, 금강산 등 30년간 유랑하며 600여 詩를 남겼다
@방랑의 최후
아들(익균)한테 귀가를 권유받았으나 거절하고서 방랑을 계속했다
전남 화순군 동복(전남)에서 6년간 살다가 죽었다(57세)
아들(익균)이 부고(訃告)를 듣고 화순으로 달려가
김삿갓의 시신을 영월(강원도)로 운구하여 노루목에 안장하였다.
@문학적 사상
방랑생활은 출발 동기부터 불평객과 반항아의 색채를 띠고 있다
불평, 반항은 계급적 몰락의 개인적 입장에서 시작되었으나
폭넓은 사회경험에 세계관, 사회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조선 왕조에 은근히 반대의 감정을 표시하면서,
봉건 질서와 제도를 부정하는 태도와
빈부의 차가 극심한 사회적 불합리를 저주하고
양반, 귀족들의 죄악과 불의, 거만, 허식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중년을 넘으면서 점점 더 심해졌다.
폐족의 계급적 지위, 종의 집에서 유년기의 성장 과정과
불행한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깊은 동정을 표시하고
만인이 갈망하는 벼슬을 포기함과 동시에
봉건질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멸망, 붕괴에 직면한 민중들+사회의 시대적 기운이 반영되었다
@핵심 경향은 강한 의분+정의감, 반항 정신과 풍자 정신이었다
인도주의로 받침되는 평민 사상이었다.
자유분방, 노골적인 연애감정, 낙천성과 풍부한 유머,
개개 사물에 대한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관심
@문귀의 특징
이러한 사상 경향의 심도와 강도가 매우 철저하고 강렬했다.
아들이 세번 찾아와 귀가를 간청하였으나 돌아가지 않은 점,
모친이 계신 외가가 있는 마을을 지날때는 들러서 직접 만나지는 않고
산에 올라가 나무하러 온 아이들에게 안부를 묻고 갔다는 이야기,
친구 정현덕의 주선으로 왕의 사면을 받고 벼슬을 거절했다
사상 경향의 표현 방법과 형태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였다.
방랑생활 자체가 불평과 반항의 한 표현이었다.
*생육신 김시습(金時習)도 일생을 방랑객으로 지냈고
*홍경래는 서북인에게 벼슬을 주지않는 편파적 정치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1811, 순조11)
*봉건 체제에 반항했던 교산 허균(許筠)도 강원도, 경기도를 방랑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된다
광적(狂的)인 행동+반항적 태도의 표현이다.
*황오(黃五)의 녹차집(綠此集)에는
“정현덕이 편지를 보내와 천하 기남자(奇男子)가 여기 있는데,
한번 가 보지 않겠는가? 하기에 같이 가 보니 과연 김삿갓이더라.
사람됨이 술을 좋아하고 광분하여 익살을 즐기며
시를 잘 짓고 취하면 가끔 통곡하면서도
평생 벼슬을 하지 않으니 과연 기인이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석우는 해장집(海藏集)
“과거장에 들어가되 어떤 때는 수십 편을 짓고 나오고
어떤 때는 한편도 안 짓고 나오니 그 광태가 이와 같더라....
과거장 밖의 술집에서도 그의 이름을 사랑하나
그 광태를 무서워하여 술을 모조리 먹어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기행을 기록하고 있다.
@상대방을 공격할 때는 큰소리로 웃어주기도 하고
풍자와 재담으로 비꼬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취하였다.
일반 대중이 그와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양반들도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삿갓은 변형된 투쟁 무기였으니
사회와 세상에 불평불만의 사상적 표현이었다.
@양주 김삿갓 문학대회는 큰행사로 치러진다
*영월군 김삿갓면, 백일장대회도 제법 활성화 되었다
*화순(전남)에도 김삿갓의 시비가 있다
@백일장이란?
백일장은 낮(白日)에 시재를 겨룬다는 뜻이며,
望月場은 달밤에 서로 시재를 견주며 친목을 나누는 것이다
태종(이방원)이 성균관에서 시작하였다
백일장은 관리임용과 상관없이 학업을 장려하고,
유생들의 경쟁을 유도하여 기회를 부여했다
개화기에 사라진 여항문학의 핵심이 白戰(詩 경연대회)이었다
17세기, 한양에서 여항인(閭巷人)이 문학과 여행 모임으로,
말단관리 수준으로 경아전(京衙前)과 기술직 계층이었다
대표적 서민소설(춘향전, 심청전, 별주부전, 흥보전)과
양반소설(구운몽, 남정기, 숙영낭자전)이 등장한다
@백일장 장원(1등), 시험문제(시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김삿갓의 답안지
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농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daum blog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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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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