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3.354복합지구 총재협의회
단오절(5월 5일)
단오절(5월 5일)
@단오절는 모레(6,15,수), 강릉에서 3일간 축제가 열린다
.대관령 서낭당에서 서낭신을 모셔다가 강릉에서 제사를 지낸다
.서낭신은 허균, 김유신이었으나 최근에는 범일국사라고 주장한다
.여서낭은 강릉정씨의 딸이 서낭신의 부인이다
@礎나라(春秋時代)에 굴원의 추모일이다
.굴원(左徒)은 애국시인으로 사상가, 정치가 충신이었다
.경양왕(頃襄王)은 즉위한 후, 齊나라에서 인질생활을 하였으며,
경양왕(27년, bc277)에 초나라는 침탈을 당한다
.굴원은 멱라수(호남성 상류)에서 투신 자살을 하였는데,
순국일이 5월 5일(단오), 62세로 죽었다
.애국시인 죽은날을 기념하기 위해 단오절(5월 5일)이 생긴것이다
.멱라수 강에서는 용선 경기(용머리 배)를 하고 있으며,
.갈대잎으로 싼 찹쌀 주먹밥을 멱라수 물고기에게 준다
물고기가 굴원을 물어뜯지 못하게 먹이를 주는 것이다
.굴원의 詩, 어부사(漁父辭), 이소(離騷), 楚辭(제자 宋玉과 함께 편집)
@후삼국시대 “궁예”는 단오절에 태어났다
.신라 헌안왕(47대)은 성군으로 공주 2명만 낳고서
.아들(후계자)가 없어 큰 고민이었는데 후궁이 아들을 낳았다
.그날 하늘에서 상서로운 빛이 집안 전체를 감싸고,
.태어난 왕자의 잇몸에 가지런한 하얀이가 나 있었던 것이다
.헌안왕은 왕자에게 “궁예(弓裔)” 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일관은 “왕자의 불길한 운세”를 직감하다
.단오(5월 5일)에 출생하면 천명을 거역한다는 것이다
.출생 당시 하늘에서 상서로운 빛이 비췄다면 천기를 범하는 형상이며
.태어날 때 “이가 나 있다” 함은 장차 국운을 해칠 나쁜 징조라 하였다
@헌완왕은 “궁예를 죽여라”
.내관은 비밀리에 하명을 받고, 생모에게 달려가 궁예(아기)를 빼앗아
.다락아래로 던졌으나 유모가 아래에서 받다가 손가락에 눈이 찔려,
애꾸눈이 된 것이다
@드디어 궁예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미륵을 꿈꾸었지만 비운의 출생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먼훗날 출신 비밀을 알고난 뒤, 세달사(절)에 출가한다
.이후 모친과 신라에 대한 복수와 야망을 키워 나간다
.어느날 까마귀가 王(금빛) 자가 쓰인 뼈조각을 떨어뜨렸는데
.무당들이 점을 칠때 쓰는 젓가락 같았는데 하늘의 뜻이었다
.절을 떠날 때 스승은 당부하지요
“너무 큰 욕심을 삼가라, 과욕은 결국 스스로 해치게 된다”
@강한 흡인력과 불교신앙으로 감동받은 백성들과 高麗를 창건한다
.왕건을 송악 성주로 명하고 영토를 확장한다
.궁예는 3년후, 도읍을 철원으로 옮기며 포악해진다
.풍수설을 강조하여 국호를 마진(摩震), 연호는 무태(武泰)로 정한다
.국호를 태봉으로 연호를 수덕만세로 바꾼다
.스스로 살아있는 미륵보살로 자칭하고 독심술(관심법)을 쓴다
.20권의 경전을 만들어 비평한 석총을 처형하는 등 광기가 높아져,
.왕건의 구테타로 평강(강원도)에서 최후를 당한다
@추석, 설날, 단오는 조상들의 3대 명절로써 농촌의 명절이었다
.단오절(5, 5)은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며 귀신쫓는 행사도 한다
.수레바퀴 모양의 떡(수릿떡)을 먹는 날 “수릿날”이라 칭한다
.부채를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하면,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날이다
.단오 고사는 앵두를 제물로 올리고 씨름을 즐긴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은뒤, 창포뿌리를 깍아 비녀를 만들어 “壽福”을
새겨넣고 새옥을 입고 그네타기를 즐겼다
젊은이의 우상,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나는 것을 상상한 것이다
.만병통치약, 단오날에 익모초(약쑥)을 뜯어 말려야 약효가 좋았다
.강릉단오제, 한 장군놀이(경산시 자인), 문호장굿(창녕 영산)
@장호장(창녕 영산)
.전설의 인물 문호장을 기리는 영산지방 무속신앙 문호장 굿은
단오절에 영산면 교리에서 열린다
.문호장은 300년전 영산에 살았던 초인적인 인물이다
.관찰사의 馬에게 도술을 걸어 말이 움직이지 못하게 했을때
.화난 관찰사가 문호장을 처형했는데,
“매년 단오에 제사를 지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강감찬, 대조영이 출생시에는 하늘에서 푸른별이 떨어졌다고 전한다
.관악구 낙성대(落星臺, 별이 떨어진곳)는 강감찬의 사당이 있다
.단오절에 태어난 사람은 어떨까요?
@굴원의 이름은 평(平), 자는 원(原)
.양쯔강(揚子江) 유역의 큰 나라였던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났다
.친척 회왕(懷王)의 신임으로 20대에 좌도(左徒, 侍從)중책을 맡아
.법령입안(法令立案)때 정적인 상관대부(上官大夫)와 충돌하여
중상모략으로 파직을 당하고 국왕 곁에서 멀어진다
@제(齊)와 동맹해 강국인 진(秦)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秦의 장의(張儀)와 내통하던 정적과 왕의 애첩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초왕은 齊와 단교했으나, 秦에게 기만당하고 秦의 포로되어 살해당한다.
.초회왕이 죽은 뒤, 큰 아들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 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을 백성들과 함께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강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되었다
어부사(漁父辭)는 그때 쓴 작품이다
@유배지에서 무속적 민속의식을 관찰하고 전설들을 수집한다
.맨 처음 초회왕에게 내쫓기어 유배되었을 때
.최대 걸작으로 장편 서정시(이소, 離騷)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離(만나다)의 뜻이고, 騷(근심)이라는 뜻이다
.離騷(이소)란 곧 “근심을 만나다”라는 뜻이다
.이소경(離騷經)은 후세 사람들이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왕일(王逸)과 주자(朱子)의 “이소경” 서문의 한 토막이다
"이것은 위로 당우(唐虞) 3후(三后)의 성왕을 법을 말하고,
아래로는 걸(桀)· 주(紂)· 예(羿)· 요(澆)의 패망함을 말함으로써
군왕이 깨닫고 정도(正道)로 되돌아가
다시금 자기를 불러줄 것을 기원한 것이다"
@굴원은 자기의 충정을 노래하다가 한번 용서받은바 있었으나,
.참소를 받아 경양왕에 의해 양쯔강 강남지방으로 쫓겨나다
.굴원은 유배에 대한 절망감으로 강가를 하염없이 거닐며
.마지막 시를 남긴다 “회사(懷沙)의 부(賦)”
.돌을 껴안고 미뤄강(汨罷江, 지금의 汨水)에 투신한다
@중국은 5월 5일(음력)에 벌어지는 유명한 용선(龍船) 축제는
.애국시인의 유체를 찾던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굴원의 작품들은 고대 중국의 명 시선집인 초사(楚辭)에 실려 있다.
.초사(楚辭)에 후세 시인들이 굴원의 전설적인 삶에 대해 쓴다
.독창적, 개성적인 시들은 한부(漢賦) 시단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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