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4.종로상공회 JCA 한기영회장 회갑연, 종로2가 퍼주망
*한명회
한명회(한씨가문 이야기)
@한명회는 누구인가?
.수양대군(세조)의 책사, 최고 권력가, 호는 압구정(鴨鷗亭), 칠삭둥이
.머리가 아주 비상하여 어려운 난관을 극복(오뚜기)
.세조는 “나의 장량(張良)”이라 총애한다
1)큰딸: 윤사로의 며느리(윤사로: 세종의 부마 駙馬)
2)둘째딸: 신숙주의 며느리
3)셋쩨딸: 예종왕비(장순왕후)
.왕세자(예종)과 혼례, 세자빈 부부가 되었다(16살, 1460년)
.정숙한 성품, 아름다운 용모로 수양대군의 총애를 받았다
.1461년(17세), 원손(예종의 장남, 인성대군)을 낳고,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죽었다(17세)
.3째딸(장순왕후)
세조는 총애하던 며느리의 죽음에 비통해 한다
장순(章順)의 시호, 장순빈(章順嬪)으로 승격한다
온순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장(章)
유순하고 어질고 자혜로운 것을 순(順)
.먼훗날, 장순빈의 제부~시조카(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시호: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로추존되어,
공릉(恭陵)으로 승격되었지만,
세자빈의 묘는 다른 왕후들의 묘소보다 초라하다
4)넷째딸(막내): 공혜왕후는 자을산군(성종)과 혼인(1467년)
.천안군부인(天安郡夫人) 한씨(韓氏)로 불리우다가,
.자을산군(성종)의 왕비에 책봉된다(1469년)
.1474년(19세), 창덕궁 구현전(求賢殿)에서 후손없이 훙서(薨逝)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시호를 올렸는데,
성종은 공경하고 유순하게 윗사람을 섬김을 공(恭)을 인용하였다
너그럽고 부드러우며 인자함을 혜(惠)
.연산군 5년(1498년), 휘의신숙(徽懿愼肅)의 존호가 추가된다
.순릉(順陵, 파주), 종묘 정전(正殿)에는 왕후의 신위가 있다
.한명회의 딸(장순왕후, 공혜왕후)은
.역사상 처음으로 두 딸이 왕비가 되었으며,
.두 자매가 젊은나이(17세~19세)에 요절한것도 처음이다
.공릉(恭陵, 서삼릉)~순릉(順陵, 파주)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공혜왕후+시숙(의경세자)+부군(예종)+아들(인성대군)...
젊은나이에 요절함이 현덕왕후(단종모친)의 저주때문이라 한다
.한명회도 두가지 이상의 복을 누릴수 없었다
@한확(좌의정)의 딸
1)큰딸: 세종의 둘째 서자(계양군)과 혼인
2)둘째딸: 소혜왕후, 의경세자(덕종)의 세자빈
.월산군, 자월산군(성종)을 낳은 인수대비는 훗날 모욕을 당한다
@한확의 여동생(2명): 태종시절
1)소혜왕후의 큰고모: 明(영락제, 공헌현비)
.부친 한영정의 사망후, 한확에게 입양된다
.明 영락제의 총애~여비(후궁)~공헌현비 승격되다(1417년)
.영락제와 공인(30명)들과 함께 20대에 비극적으로 순장(1424년)
2)소혜왕후의 작은고모: 明(선덕제, 공신태비), 한계란(본명)
.명나라의 진헌처녀로 뽑혀 명나라 후궁이 되었다
.궁인의 지위에서 크게 성공하진 못했으나,
헌종 황제를 양육하여 그 유공으로, 죽은뒤 공신부인에 책봉되어
행복하게 천수하였다
@한확은 명나라와 외교를 전담하면서,
.조선 왕실과 인척유지(혼인)로 실권자로 부상되었으며
.여동생(2명)은 명나라 황실의 후궁으로
특히 큰 여동생(한씨)은 영락제의 총애를 받음으로써
조선의 임금이 함부로 대할수 없을만큼 큰 권력을 누렸다
.딸은 세조의 며느리인 세자빈(인수대비)로 책봉되어 가문을 빛내고
성종의 외조부가 되었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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