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미로타리클럽(국제로타리 3640지구)

2018-0720.국제로타리 3640지구 제6지역 회장,총무단 초청만찬

by 조흥식 2023. 6. 18.

2018-0720.국제로타리 3640지구 제6지역 회장,총무단 초청만찬

*2018,7,20,,18:30~지리산한정식(종로 인사동)

1582(壬午年)坊會帖, 風雲之懷(懷抱), 48만에 邂逅(1630, 寬仁坊)

 

 

 

1582(壬午年)坊會帖, 風雲之懷(懷抱), 48만에 邂逅(1630, 寬仁坊)

 

*중앙(三政丞과 판서): 윤방, 오윤겸, 김상용, 이귀

*우측(2): 정경세(68), 이홍주(69)

*좌측(6품 이하): 윤흔(67), 류순익(67), 윤환(75), 이준(71),

이배적(75), 김두남(71)

*坊會帖 제작(4년후, 1634): 이준(71, 삼척부사 송별회 표정)

추가참석자: 박종현(9,참봉), 연사의

*1636(2年後 불참자): 이귀, 정경세, 류순익, 윤환

 

自衿(詩經): 一日不見 如三月兮

Out of sight, Out of mind, And their bady also

Always Light 조흥식

 

아이고. 벌써 48년이 흘렀네. 그때 태어난 자들도 백발이 되었을 텐데.”

16304월 어느 날. 백발이 성성한 노인 12명이

관인방(寬仁坊·관철동) 충훈부(忠勳府) 건물로 속속 모였다.

손에 손에 술 한 병씩 든 채.

 

이들은 1582(임진년) 사마시(생원·진사시)에 합격했던 동기생들.

 

‘(15)82학번 동기모임이 열린 것이다.

원래 동기생 수는 200명이었다.

하지만 합격한 지 48년이나 지났으므로 많은 동기들이 세상을 떠났다.

 

더욱이 재경(在京) 동문들만이 참석대상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12명 만이 모인 것이다.

이날 모임은 삼척부사로 떠나는 동기생 이준(李俊·71)의 송별회를 겸한 자리였다.

 

‘1582학번’, 48년만에 동기모임 열다

만남과 인연의 추억-임오년(1582) 사마시 입격동기생들의

방회도’(우복 정경세 도록)에 나타난 방회첩 서문을 통해 이날 모임을 재구성해보자.

 

쟁쟁한 동기생들이었다.

이준 뿐 아니라 영의정 오윤겸(72)·

돈녕부사 윤방(68)·

병조판서 이귀(74)·

예조판서 김상용(70)·

경기관찰사 이홍주(69)·

이조판서 정경세(68)·

용양위부호군 윤흔(67)·

한성부좌윤 류순익(67)·

첨지중추부사 윤환(75)·

중추부 경력 이배적(75) 등이 참석했다.

모두 종 4품 이상의 품계를 지닌, 출세한 동기생들이 모인 것이다.

 

이들은 젊은 날의 초상을 떠올리며, 밤늦도록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을 마셨다.

밴드(악사·樂師)’나 도우미(무녀·舞女)는 부르지 않은 간소한 술자리였다.

 

이들은 이윽고 헤어질 때가 되자 장탄식 했다.

이제 세상에 남아있는 동기생들이 얼마 없네 그려.

새벽 하늘의 별 같이 사라지네.(落落如曙天星矣) 다행히 서울에 살아있어도 종일 바쁘니.

오늘과 같은 날이 백년 가운데 얼마나 되겠는가.”

 

조선시대 기념사진 찰칵

동기생들은 이날의 모임을 기념하는 방회첩(榜會帖)을 만들었다.

우복 정경세 특별전’(031-709-8111)에 출품된 <임오사마방회도>이다.

 

방회도엔 모임 장면을 그린 그림과 각자의 시문, 참석자들의 명단을 적어 넣었다.

또한 모임의 과정을 기록한 서·발문도 포함됐다.

 

지금으로 치면 기념사진 등을 담은 동기회 홈페이지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1582학번들은 4년 뒤(1634)에도 동기모임을 열고, 또 하나의 방회첩을 만들었다.

두번째 동기모임은 병조의 옛 관아에서 열렸다.

모임에는 8명이 참석했다.

4년 전 모임멤버였던 이귀·정경세·류순익·윤환·이배적 등이 줄줄이 세상을 떠났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동기들이 장탄식했다.

방회첩 서문에 이날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정리돼있다.

모두 호호백발이네. 2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이가 10분의 1도 안되고.”

그나마 서울에 있는 이는 고작 8명이야.”

그나저나 이 여덟 사람이라도 이렇게 한 방에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 창안백발(蒼顔白髮)의 모습으로 하룻밤의 환락을 마음껏 즐기다니.노경에 보기드문 일이 아닌가.”

 

잘 나가는 학번‘1582동기회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모인 8명 가운데 3명이 만인지상 일인지하라는 정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전 돈녕부사와 예조판서였던

윤방과 김상용이 영의정과 우의정에 올랐으니 말이다.

 

4년 전 영의정이던 오윤겸은 좌의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번에서 3정승을 동시에 배출했으니 동기회의 위세는 다단했을 것이다.

 

방회첩 서문을 보자.

같이 합격한 이들 가운데 정승이 하나 나오기도 힘든데.

우리는 셋이나 동시에 정승이 되어 지금 이 모임에서 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네 그려.”

그렇지 아마도 전무후무한 희한한 사건일 것이야.”

그래. 나라의 3정승이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 가운데 똑같이 나와

지금 한 방에서 회동하고. 또 모두들 높은 수명을 누리고들 있으니.”

! 이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겠는가.”

그렇지. 우리 동기들은 가히 인재의 복록(福祿)이야. 아니 그런가?”

아무렴 아무렴.”

 

국무총리(영의정)9급 공무원(참봉)이 함께 술 마시다

아무리 동기모임이었지만 술자리의 서열은 철저했다.

품계에 따라 앉는 자리가 정해졌다.

하지만 술잔을 기울일 때는 격의가 없었다.

이날 모임에는 4년 전 모임에 불참했던 박종현과 연사의가 새로이 참석했다.

그런데 연사의의 직책은 가장 말직인 참봉’(9급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윤방)

 

고관대작 동기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술잔을 나눴다.

첫 모임에 불참한 이유가 혹 말단공무원이라는 신분을 스스로 의식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랬다가 두번째 모임에는 꼭 나오라는 동기회장의 권유 덕분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52년 전 합격동기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분의 차이를 넘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사마시(소과)에 합격한다고 해서 관직에 나서지는 못했다.

 

다만 성균관 입학이라는 자격을 받는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대입동기생이라면 맞는 표현일까.

이들은 성균관에서 수학한 뒤 대과인 문과(文科·지금의 행정고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사마시는 벼슬길(대과 합격)의 첫 관문인 셈이다.

 

고시동기’(대과)보다 더 각별했던 대학동기(사마시)’

하지만 소과 합격자는 국가고시를 통해 사족(士族)의 지위를 공인받는 신분이었다.

 

벼슬길에는 올라가지 못해도 평생을 생원혹은 진사의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었다. 양반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바로 생원·진사였던 것이다.

 

또한 별다른 배경이 없는 이들에게 사마시 동기는 관직생활을 위한 든든한 인맥이었다.

 

동기생들은 형제관계에 비유될 만큼 굳건한 결속력을 다졌다.

대부분 부탁할 친구도, 받아들여 줄 사람도 없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급제하면 한평생을 벼슬길에서 형제 사이처럼 지낼 사람들이다.

금세 만났지만 그 정은 마치 오래 사귄 친구 같고,

처음 모였는 데도 모든 이의 각오는 쇠를 자를만큼 굳고 든든하다.”

 

그런데 대과, 33명을 뽑는 과거급제자들의 동기회보다는

사마시 동기회의 결속력이 더 끈끈했다.

 

아무래도 대과동기는 출세경쟁를 위한 연줄의 의식이 강했을 것이다.

반면 관직으로 나가는 첫 관문을 함께 통과한 사마시동기들의 인연은 더 각별했을 것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daum blog "늘빛사랑 조흥식"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