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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2018-1201.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정기봉사

by 조흥식 2023. 8. 20.

2018-1201.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정기봉사(주몽재활원, 강동구)

태백산맥(조정래) 줄거리 요약

 

 

 

 

태백산맥(조정래) 줄거리 요약

@해방후 토지를 둘러싼 지주와 농민간의 갈등이 시작되고...

.식민~분단~전쟁속에서 소작농의 애환을 그린 격동기에 등장하는

.국가에 기댈수없는 시대에 가족, 지연으로 뭉칠수밖에 없었던

.가족간에 이념적 극단적 대립으로 아픈상처의 소설이다

 

@일본패망 덕으로 독립은 했으나, 냉전시대 희생물로 南北은 분단되고,

.한국동란(6.25)~반란~거제도사건/포로석방~휴전~4.19의거~5.16혁명..

.정치적, 사회적으로 심한 격동기에 태백산맥 부근의 시골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비극적 대립으로 전개된다

 

@해방후, 左右翼의 대립이 심화되고 여순반란사건이 터진다

염상진(큰아들)은 장남으로 左翼대표 인물, 사회주의자로 등장한다

.사범학교 졸업후 농사를 짓고, 남노당에 가입하면서

.인간적 광기로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갈등이 표출된다

.염상진중심의 左翼세력은 벌교를 장악해 반동 숙청에 나서지만

.반란군이 전세가 밀리자 조계산으로 후퇴한다

.이때, 돌아온 右翼세력은 左翼에 연류된 사람들을 숙청하고

대대적인 복수에 나선다

 

@염상구(둘째아들)右翼대표 인물, 자본주의자이다

.(염상진)에 대한 적개심과 사회주의자에 적개심이 불탄다

.염상구는 형(염상진)에 대한 증오심으로 앞장서 빨치산의 아내를

겁탈하는 등 만행을 일삼는다

 

@김범우는 중도파, 민족주의자이다

.이를 가슴아프게 지켜보던 김범우(순천중학교 교사)

.,우 완충지대 역할로 폭력에 격분하여, 이념적 광기를 해결하려고

.左右翼 모두를 비난하지만, 오히려 빨갱이로 몰려 고초를 겪지요

 

@염상진은 후퇴하면서 율어를 장악,해방구로 선포하고 개혁을 실행한다

.평등한 사회를 기대했으나, 많은 피를 뿌린후 회의를 느낀다

 

@심재모(토벌대장)는 김범수의 민족주의적인 입장에 공감하는데...

.염상진일행에 대해 온건정책을 펴지만 지주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심재모는 율어 탈환에 성공하지만, 전출 당하지요

.염상진 일행은 대대적인 군경의 토벌로 절망적인 생활을 이어지고,

.전쟁중 숨어있던 염상진()은 동생(염상구)를 숙명적으로 만나지요

 

@임권택 감독의 영화(태백산맥), 33회 대종상, 1994

.좌우익 이념대립으로 희생당한 소박한 마을사람들...

.형제끼리 左翼右翼 양극단에 서게 된 염상진과 염상구 형제,

.좌익과 우익 모두를 비판한 민족주의자 김범우,

.술도가 외아들로 태어난 공산주의자 정하섭,그를 사랑한 무당 소화...

.골만큼이나 깊은 아픈 민족의 비극과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서편제 이전에 영화제작 예정이었으나, 정치적 민감함으로 미루어졌다

 

 

 

 

 

조정래 태백산맥줄거리

 

1(한의 모닥불, 1~3)

@여순반란사건 종결 직후(1948,12)부터 시작된다

빨치산 부대가 율어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하는 과정이 그려져있다

1948,10,24일 밤, 여순사건과 함께 左翼이 장악되었던 벌교가

진압세력 군경 수중에 들어가자, 좌익 반란군들은 산속으로 퇴각한다

 

이때 정하섭이 상부의 밀명을 받고 벌교로 잠입하기 위해서

마을 외딴집(현씨네 제각)에 살고있는 무당딸 소화를 이용하지요

소화는 정하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감시를 피해서

정하섭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된다..그리고 사랑이 싹튼다

 

불과 나흘전에 벌교는 左翼의 수중에 있었지만,

국군 14연대(여수)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거점으로 左翼반군들이 순천까지 세력을 확대한다

남로당 조직에 연결된 벌교지역 左翼세력들이 반군에 합세하여

벌교를 장악(1948.10.20)하였으나,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군경진압군에 밀려 벌교를 포기하고 산속으로 퇴각한다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군당 위원장)은 하대치, 안창민등과 함께

조계산으로 쫓겨가 진압군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율어면을 점령한다

이때, 토지개혁을 실시한후, 해방구로 선포하여 조직세력을 정비한다

 

군경진압군은 벌교를 장악했던 左翼 반국세력을 몰아낸 후,

청년단의 도움으로 마을에 남은 左翼세력과 부역자들을 찾아낸다

그바람에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左翼右翼으로 서로 갈라지고

원한이 겹쳐서, 반란군과 함께 산속으로 가버린 입산자 가족들은

온갖 곤욕울 치르게 된다

 

벌교의 유지,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김범우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처단되고 고문당하는 고통을 받자, 희생을 줄여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김범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사람들이 총살당한다.

 

벌교에서는 흉흉해진 민심수습과 혼란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하여

수습위원회를 설립하는데 최익승을 대표로 선임한다

최익승은 해방직후 제헌국회의원으로 일제시대 친일파였지요

 

김범우는 최익승을 찾아가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였지만,

左翼을 두둔한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구속되어 순천으로 송치된다

 

청년단 감찰부장의 감투를 쓰고, 양효석, 송성일등 右翼 희생자의

아들들을 모아 멸공단을 조직한다

밤에 입산자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부녀자, 노인을 가리지 않고 잔인한 보복을 한다

이때, 판석 염감(하대치의 부친)이 목숨을 잃는다

 

정하섭이 左翼에 가담했기 때문에 左翼세력이 벌교를 장악했을 때,

악덕 지주로 처단되지 않고 살아남았던 정현동(양조장 주인)

다시 군경찰이 들어오자,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체포된다

최익승은 정현동을 빼내주는 조건으로 양조장지분 절반을 차지하고,

정현동은 벌교에 진주한 토벌대의 후원회 회장을 맡는다

 

아들 김범우가 순천경찰서로 송치되자,

김사용(부친)은 김씨 문중의 힘을 빌려 아들을 석방시키고

경찰서장 남인태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킨다

 

벌교가 수복되자, 左翼잔당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벌교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이다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된 간척사업으로 일찍부터 일제자본이 침식당한

벌교지역은 토지때문에 지주와 소작농사이에 큰갈등이 쌓였던곳이다

이런한 사회적 모순이 해방직후 左右翼의 이념적 대립으로 치닫고

결국 계급 대립과 투쟁으로 사회의 한 단면으로 볼수있다

이때,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 중심의 좌익 세력의 존재와

그 사회적인 실체가 드러나지요

이에 토착지주와 자본가 중심의 우익세력은 군경의 힘을 빌린다

비참한 입산자가족들의 삶과 중도적 입장의 지식인 김범우의 활동은

대립과 갈등의 사태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지요

 

#1부의 핵심은 여순사건이후 약10개월동안 일어난 사건이다

19491월의 소작농 봉기를 전후 사건이다

 

@2(민중의 불꽃, 4~5)

벌교주민의 전체의 8할이 농업으로 생업을 일구고 있다

대부분 지주에게 목을 매달고 있는 소작농들은 해방된후 토지개혁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농지개혁을 하지 못하자

불만이 갈수록 높아진다

에서는 이미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주들은 오히려 농지개혁 이전에 소유농지를 처분하려 한다

 

소작인 모르게 논을 처분한 서운상(고흥 지주)은 불만을 품은

강동기(소작인)가 삽으로 내리찍어 중상을 입었고,

강동기는 그 길로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반면에 서민영은 지주로서 자기 소유의 논을 모두 소작인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하여 협동농장을 운영하기도 하였고,

심각성과 농민들의 참상을 심재모(국군 벌교지구 사령관)에게 설명하여

농민들의 농지개혁 요구로 일어난 모든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토록 한다

 

염상진 左翼반란군은 율어 해방구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의 환영을 얻고, 그들의 지원으로 혁명 과업을 수행한다

벌교의 농민들에게 이러한 율어의 변화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염상진 빨치산 부대는 벌교읍을 습격하여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고루 나눠준다

 

심재모(별교지역 국군사령관)는 용공 혐의로 서울로 압송되고,

후임사령관으로 백남식(관동군출신.친일파 경력)이 취임한다

백남식은 하숙집 주인(과부 송씨)과 딸을 농락하고

토벌군이 철수한뒤, 송씨의 딸을 속여 끝내 결혼을 한다

백남식은 송씨의 재산 절반을 차지하고, 부패한 군의 실상과 비리

그 돈으로 헌병병과로 바꾸어 후방 근무를 택한다

 

김범우(벌교의 유지)는 벌교를 떠난다

서울에서 반민특위 사건이나 백범(김구)의 암살사건을 맞는다

백범(김구)과 몽양(여운형)이 이승만과 한민당의 친일세력에 의해

암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벌교지주들은 소작인 모르게 땅을 팔거나,빼돌리는 일이 계속 증가한다

농민들은 분노하여 대규모 항의 시위를 일으킨다

정현동(지주)은 멀쩡한 논에 바닷물을 끌여들여 염전을 만든다고 하자

분개한 소작인의 낫에 죽음을 맞은 것이다

 

드디어, 농지개혁법이 발표된다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아니라,

유상몰수유상분배란 것을 알고는 더욱 분노하기 시작한다

벌교에 주둔한 군경과 지역 청년단은 사태가 악화되자

농민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2부 내용의 핵심은 토지 소유와 연관된 농민들의 좌절과 분노이다

 

@3(분단과 전쟁, 6~7)

소설의 무대가 벌교지역을 벗어나 전쟁 현장을 따라 확대된다

南北의 상황변화와 미국의 개입등이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6.25의 발발과 벌교는 다시 염상진에 의해 장악되고,

左翼 세력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한다

 

그러나 경찰이 철수직전에 미리 左翼전향자들을 사살하였기 때문에

또다시 살육의 참상이 겪는다

당시 군부의 모습은 벌교지역 주둔군사령관(심재모)을 통해 알수있다

심재모는 용공혐의로 서울로 압송되었으나,

벌교지역 주민들의 진정으로 풀려나, 군에 복귀하여

태백산지구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하고 있던중 6.25전쟁을 맞는다

 

여러부대를 옮겨다니며 6.25전쟁 당시 무방비상태로 부패와

무능에 빠져있던 군대의 실상을 보여주지요

피난시절 수도(서울)과 부산의 모습도 부분적으로 그려진다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살상하는 특무대원들의 횡포는

맹목적인 이념전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벌교의 최익승은 부산에서 피난중 군대와 짜고 군수품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우는 반민족적인 자본가들이 행태를 반증하는 것이다

 

3부 내용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김범우(벌교지역의 지식인)와 손승호의 사상적인 선회이다

김범우는 임민군 치하에서 전북도당에 근무한다

인민군이 패퇴하자 미군에게 붙들려 강제로 통역관이 된다

미군들이 자행한 강간+살인+방화+비인간적+부도덕한 행태를 보면서

한국전쟁이 미군과 우리민족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범우는 미군부대에서 탈출하여 공산주의 노선을 택하게 되며

인민군에 자진 입대한다

손승호도 6.25전쟁후 공산주의 길을 택한후에 빨치산에 입산한다

이에 벌교에서 염상진도 다시 입산하게 된다

이때 많은 농민, 소작인들이 염상진을 따라 입산하지요

#3부의 핵심은 6.25전쟁의 현장(전쟁의 성격)을 소상하게 묘사했다

(1949. 10~ 195012월까지)

 

@4부 전쟁과 분단 (8~10)

소설적 공간은 벌교와 지리산 지역으로 고정된다

6.25전쟁은 유엔군 참전과 중국 개입으로 교착 상태에 빠지고,

전선은 38선부근에서 대치상태가 지속된다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이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 투쟁을 게속한다

 

군경의 진압작전으로 빨치산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진다

남로당 계열(박헌영)이 전쟁의 실패로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져,

패배감과 낭패에서, 역사선택의 기로에서 항전결의를 가다듬는다

자신들의 투쟁과 죽음이 역사투쟁으로의 전환임을 인식하고

대부분 강렬한 최후를 맞는다

 

인민군에 입대했던 김범우는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갇힌다

그는 뜻밖에 포로수용소에서 제자 정하섭을 만난다

두 사람은 6.25전쟁을 민족 해방전쟁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들의 눈을 통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실상이 속속들이 파헤쳐진다

포로 석방때에 정하섭은 으로 떠나지만,

김범우는 반공 포로로 위장한 석방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정하섭으로부터 에 남아 거점을 구축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지리산에 근거했던 빨치산 세력은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모두 와해된다 이름없는 숱한 빨치산 전사들과 함께 손승호가 사살된다

김범준(독립투사, 인민군 소장)도 토벌군의 총탄에 스러진다

염상진의 빨치산부대는 군경과 수많은 전투에 패퇴를 거듭한다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하지요

그리고 염상진의 목이 벌교 읍내에 내걸린다

염상진이 염원했던 인민해방은 실패로 끝나지만,

염상진을 추종했던 하대치 등이 살아남아 염상진의 무덤앞에서

새로운 투쟁에 결의를 다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4부 핵심은 지리산의 빨치산 투쟁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950.12~ 1953.7월 휴전협정 직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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