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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산악회

2019-0107. 청운산악회 2019년도 신년교례회 및 장학금 전달

by 조흥식 2023. 9. 14.

2019-0107. 청운산악회 2019년도 신년교례회 및 장학금 전달(당산역)

허균(교산)과 허난설헌(허초이)

 

 

 

허균(교산 許筠, 七庶之獄, 49)

*1569~1618, 광해군 시대를 거슬러 살았던 이단아, 부적응아

정치성향은 東人에서 北人으로 전환, 大北(대북 강경파)

11, 허엽 사망(허봉의 친구 이달에게 부탁하여, 허균은 5세부터 공부)

이어서, 서애 류성룡에게 학문을 배운다

박학다식, 명석한 두뇌의 천재(수천권의 책을 읽고 내용을 모두 기억)

중국사신단 앞에서 수백편의 를 통째로 외웠다

명나라 조선시선오명제가 허균이 입으로 외운 시를 모아 편집한 책

(신라 최치원, 고려 이규보, 조선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332)

서출, 기생, 무사, 노비친구로 사귀면서 귀천의 차별에 대한 불만

우리는 좁은 나라이고 양편에 적이 있는데, 서얼이거나 개가녀의 자손,

능력있는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것은 나라 발전에 해가 된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백성을 무서워 해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시대에 맞지않은 생각의 소유자)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庶子 출신들의 설움과 애환, 도적의 두목, 의적)

활빈당(活貧) “가난한 백성을 살린다지배층의 수탈 때문이다

치도곤(治盜棍), 가장 큰 곤장, 도적을 다스리는 뭉둥이(관료에게 앙갚음)

체포령(특사: 홍길동 형), 임금과 홍길동 면담후(병조판서) 율도국으로

 

*1592(인진왜란), 단천(함경도)으로 피난 도중에 부인이 사망

부인(안동김씨)이 첫아들을 낳다가 죽고, 어린 아들도 전란중에 죽는다

처가 뒷산 애일산 뒷산, 교산을 본인의 호(蛟山, 교산)로 삼는다

東人, 1대 당수 김효원의 딸과 재혼한다

*1594(선조27), 25(과거급제, 정시문과 을과)

1597, 3년후 문과중시 장원급제

 

*1598(29), 황해도 도사(관찰사 보좌간 종5),

6개월후, 상소로 파직된다(한성 기생을 대동하여 현지에 부임한 죄)

복직이후 춘추관기주관, 형조정랑, 병조정랑

 

 

*1601(31), 전운판관(전라지역 세금거출 담당)으로 부임하던중

부안에서 매창(여류시인)을 만난다

*1604(35), 수안군수(황해도) 암행어사의 탄핵으로 파직(불교 심취)

*1606,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영접하는 종사관(글재주와 높은 학식)

허난설헌의 를 알려, 18년후 명나라에서 시집 출판(난설헌전)

*삼척부사, 불상을 모시고 염불과 참선으로 탄핵되어 3개월후 파직된다

 

*1607(38), 내자시정, 사복시정, 공주부사 부임후 파직

유람하며 부안으로 내려가 매창을 만나고, 천민출신 시인 유희경과 교류

*1610(41), 과거시험 담당자로써 답안지 채점시,

조카와 조카사위를 합격시켰다는 혐의로 사헌부에서 탄핵하여

의금부에서 42일간 구금되었다가 전라도 함열로 유배

 

*1611(42), 유배지에서 학동들을 교육, 성소부부고(64)을 저술

미식가였던 허균은 도문대작(음식품평책)을 함께 실었다

屠門: 도축장의 문, 大嚼: 크게 씹는다 도축장 문을 향해 입맛을 다신다

*1612(43), 감옥에서 홍길동전 완성

감옥에서 석방되어 명나라 진주사로 다녀온다

일탈행동으로 파직(6), 유배(3)

유배지에서 글 당신들은 당신들 법대로 사시오, 나는 내멋대로 살겠소

 

*1613(44, 광해군5), 七庶之獄(칠서지옥)

이이첨의 도움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겨

적서차별에 불만 반란 모의(허균, 7명 서자를 조종)로 역사적 오해받아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적서차별을 폐지해 달라는 상소문이 거절당하자, 불만을 품고 강도짓

조령에서 상을 죽여 은 수백냥을 강탈한다

여주 남한강변 무륜당 토굴에서 江邊七友(강변칠우)를 결의한다

박응서 체포, 허위자백으로 영창대군을 옹립하고, 김제남이 우두머리,

인목왕후도 반역에 가담진술한다

대북 이이첨의 모략에 허균은 대북으로 합류하면서 화를 피한다

 

 

*1614(45), 천추사(명나라 사신)

명나라의 진귀한 책 불교, 유교서적을 조정으로 보내 광해군의 칭찬받아

*1615(46), 동지겸지진주부사(명나라 사신)

명나라 책자를 가져와(태평광기, 천주교 기도문, 지도)

승문원부제조(3), 승정원 동부승지(3), 가선대무(2)

*1616(47), 자헌대부(2), 형조판서, 정헌대부(2)

*1617(48), 의정부좌참찬 겸 예조판서

의정부에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보좌하는 고위직

대북파의 광해군의 정적제거(인목대비, 영창대군)를 위한 전략으로

허균은 이이첨의 사주를 받아 인목대비 폐위(南人, 西人)에 앞장선다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는 영의정 기자헌(北人)과 다툼이 시작된다

결국, 기자헌(영의정)은 길주로 유배된다

허균의 제자 기준격(기자헌의 아들)은 허균의 배후조종을 의심하여

부친을 구하기 위하여 비밀상소를 올린다(허균이 역모하였다)

이에, 허균이 상소를 올려 변명한다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1618, 기준격은 계속 상소를 올리고, 허균은 계속 해명을 한다

이 무렵, 세자빈(이이첨의 딸)이 왕자를 생산을 하지못하자,

허균의 딸을 세자의 후궁으로 내정되자, 이이첨은 허균을 제거한다

*세자빈으로 허균의 딸이 후궁으로 간택되자,

이이첨은 후궁이 왕자를 생산한다면 허균에게 권력이동을 우려한다

 

*남대문 벽서

포악한 임금을 치러 하남대장군 정아무개가 곧 온다

허균의 심복 현응민이 벽서를 부쳤다라고 소문이 나돈다

이이첨은 허균을 변호하지 않고, 허균 일파 처형을 주장한다

광해군은 허균의 쓸모가 없고, 인목대비 폐모와 영창대군 살제사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으로 전환시킨다

*1681(광해군10), 황당한 반역의 근거

허균이 부하를 보내 북방 오랑케가 압록강을 건넜으며 유구국 사람들은

남쪽섬에 와서 매복하고 있으니, 한성사람들은 지금 피해야 살수가 있다

유구국(오끼나와, 당시 독립국)

소나무에 등불을 걸어놓고

살고자하는 사람은 지금 성밖으로 나가 피신하라

 

광해군이 직접 허균을 심문했으나, 변명조차 못하고 전격적으로 처형

나는 역적이다서명을 끝까지 거부하자, 강제로 서명케 한다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자, 이이첨은 허균에게 곧 풀려날 것이다라며

허균을 안심시킨 뒤 갑자기 처형시킨다

능지처참하면서 3,000번 이상 회질하여 목이 잘리고, 잔인하게 죽인다

혼인한 딸(2)은 연좌제에 적용되지 않았으나, 아들(2)은 처형된다

주변에서 도주하라는 충고에도 태연하게 체포되기 전날,

성소부부고허난설헌의 시집, 성수시화, 학산초담 책을 큰딸의 집으로

옮겨 작품이 훗날까지 남아있으나 대부분 불태워졌다

 

*이이첨은 허균을 토사구팽으로 제거하여 권력의 기반을 공고히 다진다

훗날, 권력독점 욕심이 가득한 이이첨의 흉계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1623년 인조반정이후, 복권과 추숭을 하였으나 복권되지 않았다

*묘소는 용인 원삼면 가묘와 두 부인이 묘와 합장되었다(백암비스타CC)

 

 

관송 이이첨, 친구(동료)에서 정치적 경쟁자

*1560(명종)~1623(63), 대북파 최고 권력자(선조~광해군의 간신)

계축옥사를 기획(설계)하여 정적을 모두 제거한 광해군 권력의 2인자

조상(이집)부터 이이첨의 아들까지 10대 연속으로 과거대과 합격 명문가

충북 음성 출생(부친: 이우선, 영의정으로 추증)

5祖父 간신 이극돈(무오사화 주인공)의 후손

주위에서 천대, 멸시받아 설운과 애환으로 억울함과 가난속에서 성장

가난으로 부인은 굶주림으로 실성하여 벽지의 풀을 먹으며 연명하였다

*의병장 정인홍의 제자(남명 조식의 제자)로써 공부

*22(1582, 선조15) 사마시 합격후, 성균관 입학

*32(1592, 선조25) 임진왜란시 광릉참봉, 세조 어진을 의주까지 호송

왜군이 남양주 봉선사 화재시, 불길속에서 어진을 찿아 선조의 신임받아

왜군진영을 통과(2),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직접 전투에 참여하며 고생

이성계 어진(홍여울)은 현재까지 보존, 세조와 단종(절반소실)은 없어짐

선조의 신임으로 출세가도(현감)

*34(1594), 현감재직중 과거에 응시 별시문과 을과급제, 전적(6)

이후 사가독서 부친과 좀 사망으로 장례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진다

*37(1587), 성균관 전적, 병조좌랑, 평강현감

*38(1588), 세자시강원(왕세자 교육기관) 사서(6), 광해군을 만나

사현부지평, 홍문관부수찬, 사간원정언

*39(1599), 이조정랑

*43(1604), 선무원종공신 1등 책록(임진왜란 의병활동 유공)

*1602, 선조(51)는 인목왕후(19)와 혼인

*1606, 적자 영창대군 탄생

 

*48(1608), 광해군의 세자폐위와 영창대군(2)을 후계자로 지명시

영의정 유영경(소북)이 찬성하자, 이이첨(대북의 영수)과 정인홍(스승)

광해군의 적합함을 주장하다가 선조의 미움으로 갑산으로 유배형을 받아

유배(귀양)를 출발 직전에 선조 사망으로 극적으로 전화위복된다

선조는 식사중 급사하자, 이이첨과 상궁(김개시)이 독살했다는 소문

*광해군 즉위후 총애받아, 예조판서 대제학 겸직

이이첨과 정인홍은 영의정 유영경을 탄핵 상소를 올려

영창대군을 선조의 후계자로 주장했던 정적을 처형(소북의 피해)

 

*49(1609), 임해군(광해군의 형)을 역적으로 규탄하여 강화도 유배

위리안치후, 賜死(사사)의 유공으로 효충분의익사공신 3등 녹훈

*51(1611), 외손녀가 광해군의 세자빈으로 간택, 가선대부 제수

*52(1612), 김직재 옥사, 선조의 손자 진릉군(이태경)을 죽인 유공

분출병의결기형난공신 2등 녹훈

 

*53(1613), 계축옥사(癸丑獄事)

명문가 庶子 7명의 문경세재 은상살인 재물탈취사건으로 숙청

박응서 체포후 고문으로 거짓자백 김재남의 자금조달, 영창대군 옹립

김제남(인목대비의 부친)과 아들(3)의 처형, 영창대군(강화도 유배),

대북 권력장악(이이첨, 정인홍), 西人南人 몰락(신흠, 이덕형, 이항복)

*1614, 이이첨은 강화부사(정항)을 사주하여 영창대군(8)을 죽인뒤

병사했다고 광해군에게 보고

*57(1617), 이이첨과 정인홍은 인목대비 폐모 발의, 허균이 적극 가담

*1618, 인목대비의 서궁 유폐,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반대, 비판 잇달아)

심복 백대형을 시켜 서궁이 잠입, 암살시도 실패(이이첨을 죽여라 상소)

이이첨의 외손녀 세자빈은 자손이 없어, 세자빈 후궁을 간택(허균의 딸)

*1618, 남대문 벽서사건(허균 제거작전, 심문도 하지않고 능지처참)

이후 이이첨의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승진반대 상소에 무산

*60(1620), 명나라 원접사로 명나라 방문(사신을 맞이하는 임무)

*1621, 퇴계 이황, 회재 이언적 문묘종사 배향을 반대함으로써

남명 조식학파와 영남유림 중심으로 계속하여 유배, 탄핵을 상소

이황, 이회재 문묘종사 반대와 폐모살제의 주동자 이이첨을 죽여라

 

*1623(인조반정), 광해군의 질문 이이첨이 난을 일으켰느냐?”

西人(이귀, 김자점, 이괄)은 능양군의 반란으로 광해군 퇴출

이이첨은 가족과 함께 도주(이천에서 영남으로, 광주 이보현에서 관병에게

체포되어 4일간 구금후 참수, 백성들이 시신을 난도질한다다(적이 많아)

하늘이 나의 무죄를 내려다 보고 있다,

살아서는 효자이고 죽어서는 충신이다

*인조반정, 西人 집권으로 폐모살제의 주동자로써 아들(4)을 처형

사위 박자홍과 부친 박승종은 자결하는등 멸문지화

심복(이위경, 정조3형제, 채겸길, 백대형, 이정원, 박종주) 40명 처형

숙청과 귀양 200, 이괄의 난에 측근을 추가 처형(의금부, 형조에 투옥)

*1908(순조), 정인홍은 사면복권되었으나, 이이첨은 영원한 간신으로 기록

명문지화에 묘소, 시신, 초상화조차 남겨있지 않다

 

*1년전, 이이첨의 아들은 점쟁이를 불러 부친을 미래를 묻자

내년 3월이면, 흉한 꼴을 볼 것이다심한 폭행을 가하자

이이첨이 점쟁이를 불러 사과하고 후하게 대접을 해준다

평소 검소한 베옷을 입었으며, 여성문제에 스캔들이 없고 매우 근면하며

사리사욕은 없었으나, 권력에 대한 탐욕은 가득하였다

*광해군의 후광으로 권력 2인자로써 정적이 많았던 간신으로 평가된다

임해군(광해군의 형), 영창대군, 능창군(광해군의 조카), 김제남 제거,

인복대비 폐비로 유폐, 정적(소북, 서인, 남인)을 모두 숙청하여

광해군의 정치권력을 확고하게 세워준 충견의 역할

 

*西人 집권의 후유증(피의 숙청)

北人과 남명 조식학파의 계보가 없어지고, 대북세력의 씨가 마른다

 

 

 

부친(초당 허엽, 東人 1517~1580 성리학자)은 누구인가?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 본관은 양천(陽川), 시호는 문간(文簡)

나식(羅湜), 이여(李畬), 화담 서경덕과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이언적을 사숙하였으며 진사시에 합격한 뒤,

1546(명종1) 식년 문과에 갑과 급제, 관직에 올라

東人, 西人 분당시기에 東人(동인)에 가담하였다.

 

1551년 부교리,

1553년 사가독서한 뒤, 장령(掌令) 때 재물을 탐하였다가 파면

1559년 필선(弼善),

1560년 대사성,

1562년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이 되었다.

경연관 재직중 윤근수, 구수담, 허자 무죄를 주장하다가 다시 파직

,

1563년초 복직, 삼척부사로 부임후, 과격한 발언 때문에 다시 파직, 복직

1568(선조1)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간에 올라 향약(鄕約)의 시행을 건의하였다.

 

1575년 을해당론으로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시작될 때 東人에 가담했다.

이후 부제학(副提學)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지병으로 사퇴하고 동지중추부사로 전임되었다.

청렴결백하여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나 재물 문제로 탄핵을 당하기도 했다.

 

*강릉초당 맑은 물로 두부를 만들어 초당두부의 기원이 되었다.

허엽은 고위공직자 관료가 두부장사를 한다고 이유로 탄핵을 받는다

자녀: 허성, 허봉, 허균, 허난설헌(의성 허준에게는 8촌 형)

큰아들(허성): 이조판서, 병조판서

 

 

 

 

 

 

손곡 이달(蓀谷 李達, 서자 출신 1539~1612)

*시인, 서예(: 익지(益之), 서담 西潭,東里, 본관: 신평 新平)

부친은 영종첨사 이수함(李秀咸), 홍주의 관기(官妓) 슬하의 서자

제자는 홍길동전(洪吉童傳)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

스승 이달이 훌륭한 재능을 지녔으나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불우하게 사는 것을 가슴 아파하여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제자 허균(許筠)은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으면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 이첨(李詹)의 후손이다.” 하였다.

원주 손곡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

 

*삼당시인(三唐詩人),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과 어울려 시사(詩社)

봉은사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지방을 찾아다니며 시를 지었는데,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모였다.

임제(林悌), 허봉, 양대박(梁大樸), 고경명(高敬命)과 자주 어울려

 

*서자출신으로 문과에 응시할 생각을 포기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에서 조선시대의 오언절구 가운데

대표작으로 별이예장(別李禮長)을 꼽았다.

 

*허균은 손곡산인전에서 평하였다

그의 시는 맑고도 새로웠고, 아담하고도 고왔다(淸新雅麗).

그 가운데 높이 이른 시는 왕유, 맹호연, 고적(高適), 잠삼(岑參) 등의

경지에 드나들면서, 유우석, 전기(錢起)의 풍운을 잃지 않았다.

신라, 고려때부터 당나라 를 배운 이들이 모두 그를 따르지 못하였다.”

 

*손곡 이달은 일흔이 넘도록 자식도 없이 평양여관에 얹혀살다가 사망

시비(詩碑):충남 홍성군 홍성군청앞,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손곡초교 입구

 

 

 

 

 

 

허난설헌(27, 본명: 허초희)

3가지 후회: 여성으로 태어남, 조선에서 태어남, 남편 김성립과 결혼

가정환경(명종18(1563))

*초희(楚姬, 蘭雪軒 양천허씨), 33(3째딸), 번희(樊姬)를 사모했다

*강릉(江陵) 초당 출생,

한양 건천동에서 성장(김종서, 정인지 등 인접동네)

부친: 초당 허엽(양천허씨, 강릉 초당마을의 유래), 스승(화담 서경덕)

부친의 첫부인: 병사(2), 둘째부인: 강릉김씨(허성, 허봉, 초희, 허균)

*초당 허엽은 東人중에서 北人계에 가까운 인물,

승지, 대사간, 대사성, 부제학, 경상관찰사 마치고 귀가중 상주에서 사망

北人들은 성리학에만 고착되지 않고, 여러분야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허엽 가문의 학문에 대한 열린 가풍은 딸 허난설헌에게 남자와 똑같은

교육기회를 부여하고, 아들에게 자유로운 사상을 가질 기회를 마련해준다

 

*오빠 허성(문인): 이조판서, 병조판서

허봉(문인, 6살 연상)이 허초희 문장능력을 누치채고 키워줘: 홍문관 전한

허성은 훗날 당파에 휘말려 유배되어 갑산에서 객사한다

중국책자를 구입하여 선물하고, 허난설헌의 문재를 일찍이 알아보고 독려

허봉에게서 두보의 소리를 네게서 들을 수 있으리라라는 극찬받아

자신의 친구, 당대 가장 뛰어난 시인 손곡 이달에게 여동생 교육을 부탁

*이달은 뛰어난 문학성, 양반가 서자출신으로 벼슬길이 막힌 불운한 시인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지어 선조때 삼당파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를 가르쳐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동생, 교산 허엽, 과거급제(48세 능지처참, 홍길동전)

*난설헌, 아호의 유래: 젊은나이에 요절을 미리 암시한 스스로 이름()

 

*8, 천재 여성시인

신선세계 상상의 궁궐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받아()

상량문을 지었다(옥황상제의 거처, 경포대 대련의 글씨는 한석봉 필체)

*조선후기 문인 서포 김만중이 논하였듯이 가문과 스승의 격려 속에서

조선 규중의 유일한 여성시인으로 성장하여 갔다.

초당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예쁘고 총명하고, 문학적 소질을 타고났다.

7세에 에 능하여 그림도 뛰어나 신동이라 했다.

허난설헌은 바느질, 살림보다 독서와 작문을 좋아했다

결혼생활

*1577(선조10) 15, 안동김씨 김성립(16, 金誠立)과 결혼

안동시댁으로 시집간다(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 괴로워한다)

*東人西人으로 붕당된 상황, 東人北人南人으로 분리되기 시작

허난설헌의 남편(김성립)南人계에 속한 인물로써

5대 연속 문과 과거에 합격한 가문이었지만, 남편은 계속 낙방한다

*당시 南人北人보다 사상적으로 성리학에 더 고착되어 보수적이었다.

자유로운 가풍, 친정에서 가부장적인 가문으로 시집 온 허난설헌은

시집살이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양반가 여성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분위기에서 시를 쓰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였으므로

허난설헌의 시어머니는 지식인 며느리를 이해못해 갈등이 깊어갔다.

 

*남편 김성립에 대한 평가

과거공부를 핑계삼아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하였다.

뛰어난 오빠와 남동생을 보고 성장한 허난설헌은

평범한 김성립은 성에 차지 않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8세때, 이미 신동이라고 소문난 아내를 남편 김성립은 늘 버거워했다.

허균은 훗날 자신의 매형인 김성립에 대해

문리(文理)는 모자라도 능히 글을 짓는 자, 글을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혀도 놀리지 못한다고 평하였는데,

이 평에서 알 수 있듯이 김성립은 무뚝뚝하고 별다른 재기없는,

고집세고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슬픔의 마지막

*허난허설은 슬픔이 가득하였다

부친사망, 오빠 허봉(객사), 아들과 딸 사망(전염병), 임신 유산, 남편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고서

금년이 바로 3·9의 수(3×9=27, 27세를 뜻함)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를 맞아 붉게 되었다하고 눈을 감았다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哭子(곡자)”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 마주보고 나란히 서 있구나

백양나무 숲 쓸쓸한 바람... 도깨비 불빛은 숲속에서 번쩍이는데

지전(紙錢)을 뿌려서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들 무덤에 술 부어 제 지낸다

! 너희 남매 가엾은 외로운 혼은, 생전처럼 밤마다 정답게 놀고 있으니

이제 또다시 아기를 낳는다 해도, 어찌 능히 무사히 기를 수 있으랴

하염없이 황대의 노래 부르며, 통곡과 피눈물을 울며 삼키리...”

 

내가 죽으면 모든 시문집를 불에 태우라고 유언을 남겼다

예언은 적중해 허난설헌은 부용꽃 27송이가 지듯이 27세 목숨을 거두었다. 남편 김성립은 허난설헌 사후, 남양홍씨와 재혼(자녀없음)하여 합장되었다

곧이어 터진 임진왜란에서 남편은 의병으로 싸우다 전사하였다.

*懲毖錄(징비록); 서애 류성룡(임진왜란)의 피눈물로 사죄(반성)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임금에겐 죄가 없다)

 

허균, 여동생(허나설헌)의 시집을 중국사신단에 전달

*허난설헌 죽은 후, 작품 일부를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전달하여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 간행, 애송되었다.

*선조22(1589), 27세 요절, 유고집(난설헌)

*(142):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망선요(望仙謠),

동선요(洞仙謠), 견흥(遣興)

*가사(歌辭): 원부사(怨婦辭), 봉선화 등

*바둑을 깨우쳐 허봉, 허균과 바둑을 나누며 시를 지었다

*사회제도와 현실에 대한 한을 시에 담아 한탄하며 표출하였다.

 

閨怨(규원)”

비단띠 비단치마 눈물 흔적 쌓였음은, 임 그린 1년 방초의 원한의 자국

거문고 옆에 끼고 강남곡 뜯어내어, 배꽃은 비에 지고 낮에 문은 닫혔구나

달뜬 다락 가을 깊고 옥병풍 허전한데, 서리친 갈밭 저녁에 기러기 앉네

거문고 아무리 타도 임은 안 오고, 연꽃만 들못 위에 맥없이 지고 있네

 

규원가(閨怨歌)

엊그제 젊었더니 어찌 벌써 이렇게 늙어버렸나

어릴적 즐겁게 지내던 일을 생각하니 말해야 뭣하랴

이렇게 늙은 뒤에 설운 사연 말하자니 목이 멘다.

(나이 먹어감을 아쉬워함)

 

부모님이 이몸 낳아 기르며 몹시 고생하며 길러낼 때

높은 벼슬아치의 배필은 바라지 못할지라도

군자의 좋은 짝이 되기를 바랬는데

전생에 무슨 원망스러운 업보가 있었길래

방탕하면서도 경박한 사람을 꿈같이 만나

시집간 뒤에 남편 시중들면서 조심하기를

마치 살얼음 디디듯 하였다.

(출가하던 지난 날을 회상함)

 

열 다섯, 열 여섯살을 겨우 지나

타고난 아름다운 모습 저절로 타고나니

이 얼굴 이 태도로 평생을 약속하였더니

세월이 빨리 지나고 하늘 마져 다 시기하여

봄 바람 가을 물 곧 세월이

베틀사이에 북이 지나가듯 빨리 지나가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 어디 두고 모습이 밉게도 되었구나

내 얼굴을 내가 보고 알거니와 어느 님이 사랑 할 것인가

스스로 부끄러워 하니 누구를 원망 할 것인가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

 

여러 사람이 떼지어 다니는 기방에 새 기생이 나타났다는 말인가?

꽃 피고 새 울 때 정처 없이 나가서

호사스러운 행장을 하고서 어디에 머물러 노는고

집안에만 있어서 원근 지리를 모르는데 님의 소식은 어히야 알 수 있으랴

(기방에 출입하는 남편에 대한 경멸과 괴로움)

 

 

겉으로는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님에 대한 생각이야 없을 것인가?

님의 얼굴을 못 보거니 그립기나 말았으면 좋으련만

하루가 길기도 길구나 한달 곧 서른 날이 이다지도 지루하랴

 

규방 앞에 심은 매화 몇 번이나 피었다 졌는고?

겨울밤 차고 찬 때 자국 섞여 내리고,

여름날 길고 긴 때 궂은비는 무슨 일인고?

봄날 온갖 꽃피고 버들잎이 돋아나는 좋은 시절에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없네

 

가을 달 방에 들이 비추고 귀뜨라미 침상에서 울 때

긴 한숨 흘리는 눈물 헛되이 생각만 많다.

아마도 모진 목숨 죽기도 어렵구나

(4계절 내내 끊임없는 님에 대한 그리움)

 

돌이켜 여러 가지 일을 하나하나 생각하니

이렇게 살아서 어찌 할 것인가?

등불을 돌려놓고 푸른 거문고를 비스듬히 안아

 

벽련화곡을 시름에 겨워 타니

소상강 밤비에 댓잎 소리가 섞여 들리는 듯

망주석에 천 년만에 찾아온 고고한 학이 울고 있는 듯

아름다운 손으로 타는 솜씨는 옛 가락이 아직 남아있지만

연꽃 무늬가 있는 휘장을 친 방이 텅 비어있으니

누구의 귀에 들릴 것인가?

마음속이 굽이굽이 끊어 지누나

(거문고로 시름을 달래보지만 적막함은 애를끊나니)

 

차라리 잠이 들어 꿈에나 님을 보려하니

바람에 지는 잎과 풀속에서 우는 벌레는

무슨 일이 원수가 되어 잠마져 깨우는가?

 

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을지라도

칠월 칠석 일년에 한번씩 때를 어기지 않고 만나는데

우리 님 가신 후는 무슨 장애물이 가리었기에

오고 가는 소식마져 그쳤는고?

 

난간에 기대어 서서 님 가신 데를 바라보니

풀 이슬은 맺혀있고 저녁구름이 지나갈 때

수풀 우거진 푸른 곳에 새소리가 더욱 서럽다.

세상에 서런 사람 많다고 하려니와

운명이 기구한 여자여 나 같은 이가 또 있을까?

아마도 이 님의 탓으로 살동 말동 하여라

(잠을 자지 못하고 님을 기다리는 마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 1570)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은 난설헌(허초희)8살에 상량식에 꾸목에서

초대받았다고 생각하여 지은 것으로 그녀의 천재성을 일컫는 작품

 

원문

보배로운 일산이 하늘에 드리워지니 구름수레가 색상의 경계를 넘었고,

은빛 누각이 해에 비치니 노을 난간이 미혹된 티끌세상을 벗어났다.

 

신선의 나팔이 기틀을 움직여서 구슬 기와 궁전을 짓고,

푸른 이무기가 안개에 붙어서 구슬 나무 궁전을 지었다.

 

청성장인은 옥 휘장의 도술을 다하고,

벽해왕자도 금 궤짝의 묘방을 다 베풀었다.

이는 하늘이 지은 것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다.

 

(광한전)주인의 이름은 신선명부에 오르고, 벼슬도 신선반열에 들어 있어서,

태청궁에서 용을 타고 아침에 봉래산을 떠나 저녁에 방장산에서 묵었다.

 

학을 타고 삼신산을 향할 때 왼쪽에 신선 浮丘를 붙잡고,

오른쪽에 신선 홍애를 거느렸다.

 

천년 동안 현포에서 살다가 꿈속에 한번 인간 티끌 세상에 늦었는데,

황정경을 잘못 읽어 무앙궁에 귀양 왔다.

 

적승노파가 인연을 맺어주어, 다함이 있는 집에 들어온 것을 뉘우쳤다.

 

병속의 신령스러운 약을 잠시 玄砂에 내리자,

발아래의 달이 문득 계수나무 궁전으로 몸을 숨겼다.

웃으면서 붉은 티끌과 붉은 해를 벗어나자 미궁의 붉은 노을을 거듭 헤치며, 난새와 봉황이 피리부는 신령스러운 놀이의 옛 모임을 즐겁게 계속하였다. 비단장막과 은병풍에 홀로 자는 과부는 오늘밤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니,

어찌 日宮의 은혜로운 명령을 월전에까지 아뢰게 할 수 있으랴.

 

 

벼슬맡은 무리들은 몹시 깨끗해서 그 발로 팔색 노을의 관청을 밟으며,

지위와 명망이 드높으니 그 이름이 오색구름의 전각을 짓눌렀다.

 

옥도끼에서 차가운 기운이 나니, 계수나무 밑에서 吳質이 잠들 수가 없었다.

 

예상우의곡을 연주하자, 난간 가에 있던 素娥가 춤을 추어 올렸다.

영롱한 노을빛 노리개와 노을빛 비단이 신선의 옷자락에서 떨쳐지고,

반짝이는 성관은 별빛 구슬로 머리꾸미개를 꾸몄다.

 

여러 신선들이 모여들 것을 생각해보니,

상계에 거처하던 누각이 오히려 비좁게 느껴졌다.

푸른 난새가 옥비의 수레를 끄는데 깃으로 만든 일신이 앞서고,

백화가 조회에 참석하는 사신을 태웠는데,

황금 수실이 그 뒤의 먼지를 따랐다.

 

유안이 경전을 옮겨 전하자 두 용이 책상 위에서 태어나고,

姬滿이 해를 쫒아가자 팔방의 바람이 산비탈에 머물렀다.

 

새벽에 상원부인을 맞아들이자 푸른 머리는 세 갈래 쪽이 흩어졌고,

낮에 상제의 따님을 만났더니 황금 북으로 아홉 무늬 비단을 짜고 있었다.

 

요지의 여러 신선들은 남쪽 봉우리에 모였고,

백옥경의 여러 임금들은 북두칠성에 모였다.

 

당종은 공원의 지팡이를 밟아 우의를 삼장에서 얻었고,

수제는 화선과 바둑을 두며 온 누리를 한 판에 걸었다.

 

붉은 누각이 높게 지어지지 않았더라면

어찌 편하게 붉은 깃발을 세우고 조회에 참례할 수 있었으랴.

 

이에 십주에 통문을 보내고 구해에 격문을 급히 보내어,

집 밑에 장인의 별을 가두어 놓게 하였다.

 

 

목성이 재목을 가려 쓰고 鐵山을 난간 사이에 눌러 놓으니,

황금의 정기가 빛을 내고 땅의 신령이 끌을 휘둘렀다.

 

노반과 공수에게서 교묘한 계획을 얻어내어 큰 풀무와 용광로를 쓰고,

기이한 재주를 도가니에 부리기로 했다.

 

푸르고 붉은 꼬리를 드리우자 쌍무지개가 별자리의 강물을 들여 마시고,

붉은 무지개가 머리를 들자 여섯 마리 자라가 봉래섬을 머리에 이었다.

 

구슬 추녀는 햇빛에 빛나고, 붉은 누각이 아지랑이 속에 우뚝했다.

비단 창가에는 유성이 이어지고, 푸른 행랑을 구름 너머에 꾸몄다.

 

옥기와는 물고기 비늘같이 이어졌고, 구슬계단은 기러기같이 줄을 지었다. 미연이 깃대를 받드니 월절이 자욱한 안개 속에 내리고,

부백이 깃대를 세우자 난초 장막이 삼진에 펼쳐졌다.

 

비단 창문의 수술을 황금 노끈으로 매듭짓고,

아로새긴 난간의 아름다운 누각을 구슬 그물로 보호하였다.

 

신선이 기둥에 있어 오색 봉황의 향기로운 누대에서는 기운이 불어나오고, 선녀가 창가에 있어 쌍 난새의 거울 갑에서는 향수가 넘쳐흐른다.

 

비취 발과 운모 병풍과 청옥 책상에는 상서로운 아지랑이가 서리고,

연꽃휘장과 공작부채와 백은평상에는 대낮에도 상서로운 무지개가 둘러쌌다.

 

이에 봉황이 춤추는 잔치를 베풀고, 제비가 하례하는 정성을 펼치게

하였으며, 널리 백여 신령을 초대하고, 널리 천여 성인을 맞이하였다.

 

서왕모를 북해에서 맞아들이자 얼룩무늬 기린이 꽃을 밟았고,

노자를 함곡관에서 영접하자 푸른 소가 풀밭에 누웠다.

 

구슬 난간에는 비단무늬 장막을 펼쳤고,

보배로운 처마에는 노을빛 휘장이 나직하게 드리웠다.

 

꿀을 바치는 왕벌은 옥을 달이는 집에 어지럽게 날고,

과일을 머금은 안제는 구슬을 바치는 부엌에 드나들었다.

 

쌍성의 나전 피리와 晏香의 은쟁은 균천의 우아한 곡조에 맞추고, 완화의 청아한 노래와 비경의 아름다운 춤은 하늘의 신령스런 소리에 얽혔다.

 

용머리 주전자로 봉황의 골수로 빚은 술을 따르고,

학의 등에 탄 신선은 기린의 육포 안주를 바쳤다.

 

구슬 돛자리와 옥방석의 빛은 아홉 갈래의 등불에 흔들리고,

푸른 연과 하얀 복숭아 소반에는 여덟 바다의 그림자가 담겼다.

(이 모든것이 갖춰졌지만)구슬 상인방에 글(상량문)이 없는 것만이

한스러웠다.

 

그래서 신선들에게 노래를 바치게 하였지만,

청평조를 지어 올렸던 이백은 술에 취해서 고래 등을 탄지 오래이고,

옥대에서 시를 짓던 이하는 사신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백옥루)새로운 궁전에 명을 새긴 것은 산현경의 문장 솜씨인데,

상계에 구슬을 아로새길 채진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나는)스스로 삼생의 티끌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끄러운데,

어쩌다 잘못되어 구황의 서슬 퍼런 소환장에 이름이 올랐다.

 

江郎의 재주가 다해서 꿈에 오색찬란한 꽃이 시들었고,

양객이 시를 재촉하니 바리에 삼성의 소리가 메아리쳤다.

 

붉은 붓대를 천천히 잡고 웃으며, 붉은 종이를 펼치자, 강물이 내달리듯,

샘물이 솟아나듯 (상량문) 글이 지어졌다.

 

자안의 이불을 덮을 필요도 없었다. 구절이 아름다운데다 문장도 굳세니,

이백의 얼굴을 대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비단 주머니에 있던 신령스러운 글을 지어 올리고,

(백옥루에)두어서 선궁의 장관을 이루게 하였다.

 

쌍대들보에 걸어 두고서 육위의 자료로 삼는다.

 

어영차 떡을 들보 동쪽으로 던지노니

새벽에 봉황을 타고 瑤宮에 들어갔더니

날이 밝으면서 해가 扶桑 밑에서 솟아올라

붉은 노을 일만 가닥이 바다를 붉게 비추네.

 

어영차 떡을 들보 남쪽으로 던지노니

옥룡이 아무 일 없어 연못물이나 마시니

은평상 꽃그늘에서 낮잠을 자다 일어나

웃으며 瑤姬를 불러 푸른 적삼을 벗기네.

 

어영차 떡을 들보 서쪽으로 던지노니

푸른 꽃 시들어 떨어지고 오색 난새가 우는데

玉字를 수놓은 비단옷 입고 서왕모를 맞아

학을 타고 돌아가니 날이 이미 저물었네.

 

어영차 떡을 들보 북쪽에 던지노니

북해가 아득해서 북극성이 잠기고

봉새의 깃이 하늘 치니 그 바람에 물이 치솟고

구만리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 비의 기운 어둑하네.

 

어영차 떡을 들보 위에 던지노니

새벽빛이 희미하게 비단 장막을 밝히고

신선의 꿈이 백옥 평상에 처음으로 감도는데

북두칠성의 국자 돌아가는 소리를 누워서 듣네.

어영차 떡을 들보 아래에 던지노니

팔방에 구름이 어두워 날이 저문 것을 알고

시녀들은 수정궁이 춥다고 아뢰고

새벽 서리가 벌써 원앙 기와에 맺혔네.

 

엎드려 바라오니, 이 대들보를 올린 뒤에 계수나무 꽃은 시들지 말고,

아름다운 풀도 사철 꽃다워지이다.

 

해가 퍼져 빛을 잃어도 난새 수레를 어거하여 더욱 즐거움 누리시고, 땅과 바다의 빛이 바뀌어도 회오리 수레를 타고 더욱 길이 사소서. 은빛 창문이 노을을 누르면 아래로 구만리 미미한 세계를 내려다보시고, 구슬 문이 바다에 다다르면 삼천년 동안 맑고 맑은 뽕나무 밭을 웃으며 바라보소서.

 

손으로 세 하늘의 해와 별을 돌리시고, 몸으로 구천세계의 바람과 이슬 속에 노니소서.

 

 

 

廣寒殿白玉樓上樑文(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述夫寶蓋懸空雲輧超色相之界銀樓耀日霞楹出迷塵之

술부보개현공운병초색상지계은루요일하영출미진지

 

雖復仙螺運機幻作璧瓦之殿翠蜃吹霧噓成玉樹之宮

수복선라운기환작벽와지전취신취무허성옥수지궁

 

靑城丈人玉帳之術斯殫碧海王子金櫝之方畢施自天作

청성장인옥장지술사탄벽해왕자금독지방필시자천작

 

非人力也主人名編瑤籍職綴瓊班乘龍太淸朝發蓬萊

비인력야주인명편요적직철경반승룡태청조발봉래

 

暮宿方丈駕鶴三島左挹浮丘右拍洪厓千年玄圃之棲遲

모숙방장가학삼도좌읍부구우박홍애천년현포지서지

 

夢人間之塵土黃庭誤讀謫下無央之宮赤繩結緣悔入有窮

몽인간지진토황정오독적하무앙지궁적승결연회입유궁

 

之室壺中靈藥纔下指於玄砂脚底銀蟾遽逃形於桂字

지실호중령약재하지어현사각저은섬거도형어계자

 

脫紅埃赤日重披紫府丹霞鸞笙鳳管之神遊喜續舊會錦幕

탈홍애적일중피자부단하란생봉관지신유희속구회금막

 

銀屛之孀宿悔過今宵胡爲日宮之思綸俾掌月殿之牋奏

은병지상숙회과금소호위일궁지사륜비장월전지전주

 

曹淸切足踐八霞之司地望崇高名壓五雲之閣寒生玉斧

조청절족천팔하지사지망숭고명압오운지각한생옥부

 

樹下之吳質無眠樂奏霓裳欄邊之素娥呈舞玲瓏霞佩振霞

수하지오질무면악주예상란변지소아정무령롱하패진하

 

錦於仙衣熠燿星冠點星珠於人勝仍思列仙之來會尙乏上

금어선의습요성관점성주어인승잉사렬선지래회상핍상

 

界之樓居靑鸞引玉妃之車羽葆前路白虎駕朝元之使金綅

계지루거청란인옥비지차우보전로백호가조원지사금침

 

後塵劉安轉經拔雙龍於案上姬滿逐日駐八風於山阿

후진류안전경발쌍룡어안상희만축일주팔풍어산아

 

迎上元綠髮散三角之髻晝接帝女金梭織九紋之綃瑤池衆

영상원록발산삼각지계주접제녀금사직구문지초요지중

 

眞會南峯玉京群帝集北斗唐宗踏公遠之杖得羽衣於三章

진회남봉옥경군제집북두당종답공원지장득우의어삼장

 

水帝對火仙之棋賭寰宇於一局不有紅樓之高構何安絳節之

수제대화선지기도환우어일국불유홍루지고구하안강절지

 

來朝於是移章十洲馳檄九海囚匠星於屋底木宿掄材

래조어시이장십주치격구해수장성어옥저목숙륜재

 

壓鐵山於楹間金精動色坤靈揮鑿騁巧思於般倕大冶鎔

압철산어영간금정동색곤령휘착빙교사어반수대야용

 

運奇智於錘範靑赮垂尾雙虹飮星宿之河赤霓昂頭

운기지어추범청하수미쌍홍음성숙지하적예앙두

 

鼇戴蓬萊之島璇題燭日出彤閣於煙中綺綴流星架翠廊於

오대봉래지도선제촉일출동각어연중기철류성가취랑어

 

雲表魚緝鱗於玉瓦雁列齒於瑤階微連捧旂下月節於重

운표어집린어옥와안렬치어요계미련봉기하월절어중

 

鳧伯樹纛設蘭幄於三辰金繩結綺戶之流蘇珠網護雕欄

부백수독설란악어삼진금승결기호지류소주망호조란

 

之阿閣仙人在棟氣吹彩鳳之香臺玉女臨窓水溢雙鸞之鏡

지아각선인재동기취채봉지향대옥녀림창수일쌍란지경

 

翡翠簾雲母屛靑玉案瑞靄宵凝芙蓉帳孔雀扇白銀床

비취렴운모병청옥안서애소응부용장공작선백은상

 

蜺晝鎖爰設鳳儀之宴俾展燕賀之誠旁招百靈廣延千聖

예주쇄원설봉의지연비전연하지성방초백령광연천성

 

邀王母於北海斑麟踏花接老子於西關靑牛臥草瑤軒張錦

요왕모어북해반린답화접로자어서관청우와초요헌장금

 

紋之幕寶簷低霞色之帷獻蜜蜂王紛飛炊玉之室含果雁

문지막보첨저하색지유헌밀봉왕분비취옥지실함과안

 

出入薦瓊之廚雙成鈿管晏香銀箏合鈞天之雅曲婉華淸

출입천경지주쌍성전관안향은쟁합균천지아곡완화청

 

歌飛瓊巧舞雜駭空之靈音龍頭瀉鳳髓之醪鶴背捧麟脯之

가비경교무잡해공지령음룡두사봉수지료학배봉린포지

 

琳筵玉席光搖九枝之燈碧藕氷桃盤盛八海之影獨恨

림연옥석광요구지지등벽우빙도반성팔해지영독한

 

瓊楣之乏句繄致上仙之興嗟淸平進詞太白醉鯨背之已久

경미지핍구예치상선지흥차청평진사태백취경배지이구

 

玉臺摛長吉咲蛇神之太多新宮勒銘山玄卿之雕琢上界鐫

옥대리장길소사신지태다신궁륵명산현경지조탁상계전

 

 

蔡眞人之寂寥自慙三生之墮塵誤登九皇之辟剡江郞才

채진인지적요자참삼생지타진오등구황지벽섬강랑재

 

夢退五色之花梁客詩催鉢徹三聲之響徐援彤管咲展

몽퇴오색지화량객시최발철삼성지향서원동관소전

 

紅牋河懸泉湧不必覆于安之衾句麗文遒未應頮謫仙之

홍전하현천용불필복우안지금구려문주미응회적선지

 

立進錦囊之神語留作瑤宮之盛觀置諸雙樑資於六偉

립진금낭지신어류작요궁지성관치제쌍량자어륙위

 

拋梁東曉騎仙鳳入珠宮平明日出扶桑底萬縷丹霞射海紅

포량동효기선봉입주궁평명일출부상저만루단하사해홍

 

拋梁南玉龍無事飮珠潭銀床睡起花陰午咲喚瑤姬脫碧衫

포량남옥룡무사음주담은상수기화음오소환요희탈벽삼

 

拋梁西碧花零露彩鸞啼春羅玉字邀王母鶴馭催歸日已低

포량서벽화령로채란제춘라옥자요왕모학어최귀일이저

 

拋梁北溟海茫洋浸斗極鵬翼擊天風力掀九霄雲垂雨氣黑

포량북명해망양침두극붕익격천풍력흔구소운수우기흑

 

拋樑上曙色微明雲錦帳仙夢初回白玉床臥聞北斗廻杓響

포량상서색미명운금장선몽초회백옥상와문북두회표향

 

拋樑下八垓雲黑知昏夜侍兒報道水晶寒曉霜已結鴛鴦瓦

포량하팔해운흑지혼야시아보도수정한효상이결원앙와

 

 

伏願上樑之後琪花不老瑤草長春曦舒凋光御鸞輿而猶

복원상량지후기화불로요초장춘희서조광어란여이유

 

陸海變色駕飆輪而尙存銀窓壓霞下視九萬里依微世

륙해변색가표륜이상존은창압하하시구만리의미세

 

璧戶臨海咲看三千年淸淺桑田手回三霄日星身遊九天

벽호림해소간삼천년청천상전수회삼소일성신유구천

 

風露

풍로

 

抛梁東(포양동) 어영차, 동쪽으로 대들보를 올리세.

曉騎仙鳳入珠宮(효기선도입주궁), 새벽에 봉황 타고 진주 궁궐에 들어가,

平明日出扶桑底(평명일출부상저), 날이 밝자 해가 부상 밑에서 솟아올라,

萬縷丹霞射海紅(만루단하사해홍). 일만 가닥 붉은 노을 바다에 비쳐 붉네.

 

抛梁南(포양남). 어영차, 남쪽으로 대들보를 올리세.

玉龍無事飮珠池(옥룡무사음주지), 옥룡이 하염없이 구슬 연못의 물 마시는데.

銀床睡起花陰午(은상수기화음우), 은평상에 잠자다가 꽃 그늘 짙은 한 낯에 일어나,

笑喚瑤姬脫壁衫(소환요희태벽삼). 웃으며 아름다운 미녀 불러, 푸른 적삼 벗기네.

 

抛梁西(포양서). 어영차, 대들보를 서 쪽으로 올리세.

壁花零落彩鸞啼(벽화영락채난제), 푸른 꽃 시들어 떨어지고 오색 난새 우짖는데,

春羅玉字邀王母(춘라옥자요왕모), 비단 천에 아름다운 글씨로 서왕모 맞으니,

鶴馭催歸日已低(학어최귀일기저). 날 저문 뒤에 학 타고 돌아가길 재촉하네.

 

抛梁北(포양북). 어영차, 대들보를 북 쪽으로 올리세.

溟海茫洋浸斗極(명해망양침두극), 북해 아득하여 북극성에 젖어드는데,

鳳翼擊天風力掀(봉익격천풍력흔), 봉새날개 하늘치니 그 바람 힘으로 물 높이 치솟아,

九霄雲垂雨氣黑(구소운수우기흑). 구만리 하늘에 구름 드리워 비의 기운 어둑하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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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