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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산악회

2019-0219. 청운산악회 2월 정기모임

by 조흥식 2023. 9. 23.

2019-0219. 청운산악회 2월 정기모임(수락산역)

안동(~~)

 

 

 

안동(~~)

1.안동김씨

@始祖(시조): 金叔承(김숙승)

.始祖(시조): 경순왕의 4째아들 김은열의 2째아들(공부시랑~평장사)

.소산마을 양소당(養素堂)

 

@중시조: 김방경(고려 장수)

.중시조(1), 김방경은 경순왕의 9世孫

.고려(원종)때의 名將으로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靖亂靖國功臣, 侍中)

.삼중대광첨의중찬, 판전리사사, 도원수, 상락군...

.중시조 김방경의 아들

.김선: 김방경의 아들(밀직사부지사)~김선의 아들(김승용: 대제학)

.김흔: 김방경의 아들(찬성사)

.김순: 김방경의 아들(삼사판사)

.김윤: 김방경의 아들(밀직사지사)

 

@入鄕組: 김삼근(삼태사 김선평의 9대손), 묵계종택

.비안 현감에서 물러나 소산(素山)마을에 정착한 비안공파

.入鄕組 김삼근의 큰아들: 김계권(한성부 판관)

김계권의 막내아들(김영수): 영천군수

김영수의 큰아들(김영): 과거 합격하였으나,

후손들은 소산으로 낙향 텃밭을 지키면서 고고하게 세거했다

김영수의 둘째아들(김번): 과거합격후,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한양 장동(壯洞)의 청풍계(청운동,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주도

 

@김영후: 우정승, 후손들은 조선전기에 勢力, 사실상 舊安東의 주축

.김질: 좌의정(사육신 밀고)

.김수동: 영의정~김찬: 이조판서

.김자점: 인조(영의정), 역모죄로 처형...舊安東의 침몰

.김시양: 판서(청백리) ~김시양의 아들(김휘: 이조판서)

.김응하: 武將(영의정 추증)

김응해: 김응하의 동생(훈련대장)

.김중기: 훈련대장

 

 

2.안동김씨 종택: 삼소재(三素齋)

@청원루(淸遠樓): 청음 김상헌 *한양별곡(청운동)참고

.素山마을 안쪽 청원루(淸遠樓)는 김반(중종)이 지었다

.100년후, 청음 김상헌이 누각을 재건한다(인조 1645)

.김상헌은 병자호란(1636) 굴복을 반대한 척화주전론 우두머리

.항복문서를 찢고 단식으로 척화를 주장했다(최명길 화의파)

.청나라 군대지원 요청에 반대상소, 청나라에서 6년간 옥살이

.풀려난뒤 누각을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청원루라 했으며

.청나라 인질로 심양으로 갈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청음 김상헌(병자호란)의 후손의 영광

.왕비 3, 임금사위 2, 정승 15, 판서 51, 관찰사 46,

왕의 시호를 받은 후손이 49...

.조선 6조판서(29)중에서 청백리 5명이 탄생하였다

*황희, 김상헌, 오상, 이세화, 정종영

*오상(중종~선조)~이세화(숙종, 인현왕후 폐출반대, 귀향)

 

@入鄕組 김삼근의 둘째아들(보백당 김계행): 대사성

.무오사화에 부당함을 상소한후 낙향한다

.소산마을에서 黙溪(묵계)로 옮기고 후손들도 칩거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묵계 종택~만휴정(晩休亭)을 세웠다

 

@장동 김문(壯洞 金門): 청풍계(淸風溪: 청운초교)로 이주한후

.김상용(15611637)의 와유암(臥游庵), 병자호란에 강화도에서 순절

.동생 김상헌(15701652)의 척화로 순조시대 세도가문으로 등극
.김수항(김상헌의 孫子)과 김창집(김상헌의 曾孫)부자는 영의정(숙종)

.김수항(노론)은 기사환국(南人이 재집권), 진도에 유배후 사망

아들 김창집도 부친이 죽은뒤 벼슬을 멀리하고

南人이 실권한 갑술환국후 재기하여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등극하지만 신임사화로 죽는다

.김수증(김상헌의 손자)은 서예와 금석문에서도 명성

.동생 김수항이 스승 송시열과 함께 유배되자, 화천에 은일한다

 

@장동 안동김씨 “4”(숙종: 창협, 창집, 창흡, 창업)

.김창협:금강산 유람(20.1671,8,11~30일간)
.김창업(16581721)
.김창흡 예술후원(겸재, 이병현: 금화 현감)

.김창집

 

@김수증(곡운구곡도 발문) *호남별곡(화순,조광조)참고

.도봉서원 바위 글씨

.고산앙지(高山仰止): 1700(숙종26)

詩經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정암 조광조를 사모하다

 

@김수증(김수항의 형, 안동김씨) *강원별곡(화천)참고

.화천 사창리 곡운계곡(삼일계곡)으로 300년전 隱者를 택한다

.동생 김수항이 송시열(스승)과 유배되자 농사지으며 은일한다

.朱子는 은거속에 삶의 멋을 찿았는데, 그를 모방하여

.조세걸(평양출신 문인화가)를 시켜 谷雲九谷圖를 그린다

.경치가 좋은곳을 곡운(谷雲)이라 칭한다

(농촌풍경: , , , 나귀, 동물, 농사짓는 모습)

 

@안동김씨를 빛낸 사람들(2000년기준: 425,264)

.과거급제(조선): 1120명 합격

(문과:319, 무과:61, 사마시:716, 역과:10, 의과:5, 음양과:2,

율과:6, 주학:1)

.김익정(1398), 김수녕(1436), 김주(1512), 김홍도(1524)

.김시헌(1560), 김주우(1598), 김수항(1629), 김성시(1646)

.김창협(1651), 김노순(1721)

*백범(金九): 독립운동가, 임시정부의 主席, 안두희에게 암살

 

 

 

3.안동김씨

@김조순(김창집의 현손, 1765~1832, 순조의 장인)

.永春玉音記: 정조의 거소(영춘헌)에서 들었던 정조임금의

옥같은 소리를 사돈 김조순이 적어서 집안에 비전했다는 글

아버지가 미쳤다는건, 누구나 다알고 있는것 아니오?”

.정조는 김조순의 이름을 낙정(洛淳)에서 조순(祖淳)으로 바꾼다

.풍고(楓皐)라는 호까지 지어줬다(1780, 순조의 장인으로 간택)

 

@만휴정(晩休亭): 안동김씨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 지은 정자

.청렴리 내 집에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 뿐이다

.양쪽에 온돌방을 두어 학문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폭포, 정자아래 바위글씨 보백당 만휴정 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

 

@척화의 상징에서 최대관료 집안, 조선시대 예술후견인 가문이 있었다

.안동김씨, 반남박씨, 풍양조씨...등은 벌열가문으로

경화사족(京華士族)漢陽의 예술을 이끌었던 주역으로,

특히 안동김씨는 조선의 메디치이다

.장동 김문(壯洞 金門)은 안동(소산)에서 漢陽 淸風溪(청운초교 계곡)

.김상용(1561~1637): 청풍계에 와유암(臥遊庵)을 짓고 書畵를 즐겨

감상하였고, 병자호란에 강화도에서 순절한 충신이다

.동생 청음 김상헌(1570~1652)은 척화 삼학사(척화, 충의)로써

손자(김수항)~증손자(김창집)의 영의정(숙종)을 지낸 명문가이다

 

@김수항(노론)은 기사환국(南人이 재집권), 진도에 유배되어 죽는다

.김창집도 부친(김수항)이 죽은뒤 벼슬을 멀리하였다가

南人失權한 갑술환국 직후 재기하였다

.우의정~좌의정~영의정으로 등용되었지만 신임사화에 죽는다

 

@겸재 정선(1676~1759), “진경산수화

.병자호란 이전(전기): 중국화의 영향으로 흉내를 묘사했는데,

대표적인 모방작품이 안견 몽유도원도이다

 

 

@김조순(1765~1832, 김창집의 玄孫, 순조의 장인)

.안동김씨(장동 김문)는 순조~헌종~철종(60년간) 세도정치를 주도

.대표적 화가(이정, 이징)를 김상헌도 그림을 좋아하였다

.士大夫의 기본 덕목에 학예일치를 중요시 했다

.정조는 김낙정(洛渟)을 조순(祖淳)으로 바꾸고 호(풍고,楓皐)를 내렸다

곁에 두고싶어 지방관으로 파견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1780년에 사돈(순조의 장인)으로 간택되고, 詩書畵音樂에 관심이

많아 판소리와 기악에 흥미를 느껴, 를 짓고 거문고를 배웠다

.정조는 김조순의 글씨를 궁궐내부 芙蓉堂(부용당)” 현판을 달았다

.김조순은 겸재보다 중국풍이 짙은 심사정(1707~1769)을 선호했다

 

@김수증(김상헌의 손자)은 서예, 금석문에 명성이 높다

.동생(김수항)이 송시열과 함께 유배되자, 새로운 삶을 선택하여

벼슬을 버리고, 화천에서 농사지으며 은일한다

.은둔의 삶속에서 멋을 추구했던 朱子의 행적을 모방한 것이다

.谷雲이라 칭하고, 조세걸(평양출신 문인화가)에게 경치좋은 9곳을 정해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를 그리게 하였다

(띠집, 백성들의 농사짓는 모습, , , , 나귀, 가축, 동물...)

.김수증은 조세걸과 일일이 계곡을 답사하면서 어떻게 그릴것인가?

일일이 지도하면서, 거울에 반사되듯 사실적으로 그리게했다

.당시 지식인 층에서 九曲圖도 유행이었다

.朱子를 흠모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의 無爲九曲圖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많은 사람들이 그린것이다

.栗谷도 해주 석담(황해도)을 담은 고산구곡을 그리게 하였으나,

구곡도에는 조선의 산천을 사생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김창협(김수증의 조카)의 곡운구곡도 발문을 보면,

곡운구곡도를 통하여 김수증의 진경산수의 개념을 실천으로

보여줬다면, 김창협은 이렇듯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것이다

 

@김창업(1658~1721,김창협의 동생),김창흡...6형제는 백악사단을 만들어

.18c 조선화단에서 각각 풍속화, 산수화 대표 화가들을 후원하였다

.사실주의를 구현했던 관아재 조영석(1686~1761), 겸재 정선...

.사천 이병연(1671~1751)...시인, 묵객들과 문학과 예술을 논했다

 

@삼연 김창흡은 겸재 정선을 대동하고, 묵객들과 금강산을 여행하였다

.금강산 초입, 금화현감(사천 이병연)도 여행에 동참하여

해악전신첩금강산 화첩을 만들어 화폭마다 제시를 붙였다

 

@김유근(안동김씨 1785~1840 김조순의 아들)

.김유근은 자하 신위, 권돈인, 추사 김정희와 절친하여 書畵를 즐겼다

 

@김이도(안동김씨, 1750~1813)도 예술활동에 후원하였다

.석농 김광국(中人 컬렉터), 신위(申緯 1769~1847 文書화가)와 친하여

.자하 신위는 집안에서 대대로 간직해오던 부춘산거도(황공망 작)”

김이도가 간절하게 원하자, 몰래 주었다는 아름다운 일화도 전해진다

 

@紫霞 申緯 *한양별곡(흥선대원군)참고

.고려말 신숭겸의 후손이다

.옹방강을 만난뒤 모든 작품을 태워버리고, 공부에 더욱 정진하였다

.감히 흥선대원군이 뽐낼수 없을 수준의 . 文章, , 에 뛰어났다

*申緯: 題錦城女史藝香畵蘭 (난초그림을 보면서...)

.畵人難畵恨 사람은 그려도 은 그리긴 어렵고

.畵蘭難畵香 난초는 그려도 香氣는 그리기 어렵네

.畵香兼畵恨 香氣를 그린데다 마져 그렸으니

.應斷畵時腸 이그림 그릴때, 그대 애가 끊겼을테지

.난초의 삼전지묘는 최고의 걸작이다

 

@김흥근(안동김씨 1796~1870, 헌종~고종)

.세도정치(안동김씨)를 믿고 반자하게 굴어 탄핵을 받아 유배된다

.특히 골통품 서화를 많이 소장하였고,

.소치 허련(1809~1893 진도 화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을 위하여

한양의 집을 마련해 주었고, 창작활동의 후견인을 하였다

.소치 허련은 김흥근의 서화 수장고 역할을 했던 별장에 놀러가서

컬렉션을 감상하고 감식하였다

.별장은 玄對樓(현대루, 삼계동 정자)는 훗날 흥선대원군에게

빼앗겨 石坡亭으로 개칭되었다

 

4.안동김씨 몰락(흥선대원군, 서원철폐)

@60년간 안동김씨 왕비 세도정치(1801~1863: 순조~헌종~철종)

.순조(1801~) 세도정치의 서막

.안동김씨 순헌왕후: 헌종~철종의 수렴청정

.효명세자비 신정왕후(헌종의 母親, 풍향조씨, 1808~1890)

.헌종(8), 안동김씨 왕비: 고종 수렴청정

.철종(강화도령 1849~1863), 안동김씨 왕비...1862 농민전쟁

*김이도(1750-1813)~김흥근(17961870)~김유근(17851840)
*김씨형제(김사근, 김흥근, 김병식, 김병기)

 

@흥선대원군은 김좌근의 인격모독을 참아낸다

.김좌근(좌의정, 순헌왕후 안동김씨 동생)은 대원군에게 말한다

(나주양씨, 기생)에게 큰절을 올려라

 

@안동김씨(김흥근)石坡亭(석파정)

.조정만(숙종)의 별장 소운암이 있었으나,

.안동김씨 김흥근(철종, 영의정)이 별장 삼계동정자라고 불렀다

.대원군은 별장을 팔아라고 압박하지만, 거절당한다

, 하루만 빌려달라고 속인뒤, 고종과 함께 머무른것이다

.결국, 임금이 머물던 공간을 신하가 사용할수 없어, 고종에게 바쳤고

.고종은 부친에게 하사, 별장주인이 바뀌고 石坡亭으로 변경된다

 

@흥선대원군 시대(1863~1873. 10년간 섭정)

.서원철폐(1817. 47개 사액서원 제외, 600여개 폐쇄)

백성을 괴롭히면, 공자가 살아나도 용서를 안한다초강경 입장

.화양동서원 문전박대(충북 괴산), 송시열(노론영수 1607~1689)

萬東廟(만동묘; 명나라 태조, 의종, 신종을 모신 사당)

임진왜란에 파병으로 왜란을 극복해준 은덕을 기린것이다

.안동김씨 세력 척결...세도정치 단절(노론~안동김씨)

.경복궁 중건비용(20만냥)을 안동김씨(김좌근, 김병기..)

협박하여 강제 헌납토록 한다

.비변사 폐지, 의정부 부활제도를 살려 인재를 고루 등용한다

 

 

5.정약용과 악연

@정약용의 형(邪學,천주교)은 투옥된후 신유사옥으로 처형된다

.순조 즉위후 辟派(벽파)는 남인계(時派)를 제거하기 위한,

.천주교도의 역모를 고발하여 안동김씨가 등장한다

.정약용은 신하로써 임금을 속일 수 없고,

동생으로써 형의 잘못에 증언할수 없다

.호를 茶山으로 바꾼이유는 강진초당 뒷산이 茶山이었지요

 

@친구(김이교)가 전라도어사로 찾아왔을때, 술로 수작(酬酌)하였다

.를 부채에 적어 선물로 줬는데...가을인데도 부채를 펴서

.한양 김조순(안동김씨의 수장, 순조의 장인)앞에서 보여준다

.김조순은 순조에게 귀향을 해배(解配)토록 건의한다

.에 한무제 시대 흉노에 항복한 이릉장군을 언급하지요

“...이릉의 귀향은 기약이 없네...”

.김삿갓의 백일장 장원에도 비슷한 문귀를 썻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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