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7.종로상공회 JCA13 수료식
*CEO아카데미 수료(정성조)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朝鮮 최초의 中華民國 여행기
朝鮮 최초의 中華民國 여행기
@元나라, 高麗 여행기는 이제현의 “서정록”이다
.明나라, 朝鮮 여행기는 조천록(朝天錄), 표해록(최부)이 유명하고,
.靑나라, 조선 3대 연행록으로 꼽힌다
노가재연행일기(김창업), 을병연행록(홍대용), 열하일기(연암 박지원)
@최초 中國여행기 이병헌(李炳憲1870~1940)의 중화유기(中華遊記)
*이병헌(李炳憲)의 중화재유기(中華再遊記), 중화유기(中華遊記)
*공자의 위패를 모신 중국 산동성 곡부(曲阜)에 있는 대성전(大成典)
.7일. 밤에 기도를 고하는 글 한편을 쥐고 공자의 神位 앞에서 읽었다
“(…) 아! 小子가 天地의 마음을 받고 父母의 형체를 전해 받아
세상에 태어난 지가 47해입니다. 명색이 사람이니 천지에 孝道하고
父母를 본받는 일을 잠시라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참으로 천지와 부모의 정에 순종하여 사람의 본분을 다하려 한다면
우리 부자(夫子)의 도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스스로 사람의 일을 조금 알고부터 부자의 도를 배우고 싶었지만
그 문장(門墻) 밖을 엿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천지간에
하루라도 없을수가 없는것이 부자의 道임을 알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이천 수백년 사이에 이것이 東亞 여러나라에
보급되어 시대에 治亂이 있기도 하였고 교화에도 성쇠가 있기도 하였지만
우리 부자 至善의 목표에 귀일하기를 힘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 원통합니다. 동방과 서방이 개통하고 유럽과 아시아가 이어져
예양(禮讓)은 競爭으로 변하고 제기(祭器)는 砲火로 변하였습니다.
우내(宇內)의 사람들이 날로 진화론의 공례(公例)를 향하자 우매하고
약소한 자가 점점 도태되고 있습니다. 불행히 우리 朝鮮은 儒敎國으로
유명한데 이미 다른 종족에게 침몰되었고 중화(中華)도 유교국으로
저명하지만 또 강한 이웃나라가 잠식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평론하는 사람들이 마침내 유교로는 나라를
다스릴수 없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아, 애석합니다. 조선이 망하고 중국이 약해진 것은 유교를 잘하지 못해
변통하는 권도(權道)에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종교로 나라를 구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종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하니 또한 유독 무슨 마음입니까.
병헌(炳憲)은 창해(蒼海)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태어나 종교가
밝아지지 못해 나라가 망하였음을 스스로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는 곧 자신의 천지요 부모입니다.
따라서 천지가 비록 넓어도 나라를 버리면 갈 수 있는 곳이 없고,
부모가 비록 계시지 않아도 차마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날마다 생각하건대 우리 동문(同文) 동교(同敎)의 중화 대국이
우뚝 떨쳐 일어난다면 지리 관계나 민족 역사로 보아 서로 연결이 되니
조선도 마비가 풀어져 깨어나서 혼을 부를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로는 지사(志士)의 당견(黨見)이 더욱 깊어지고
아래로는 국민(國民)의 공덕(公德)이 부진하여 조국(祖國) 이천사백년
성인의 가르침에 대하여 신중히 보수할 줄 몰라 점점 조선이 이미 거친
증세와 거의 닮아가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그러나 부자의 도는 천지에 세우고 귀신에 질정해도 어긋남이 없으며
의심이 없을지니 마땅히 4억 인심을 붙들어서 중국이 결코 석가모니가
열반한 석란(錫蘭)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유태(猶太)가 되지않게
해야 할것입니다.
비록 어리석고 불초하지만 병헌은 부자의 도를 배워
동방으로 돌아가 유교를 배워 묵수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다시 천지 중에 온전한 사람이 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식이 되어
조국의 혼을 부르기를 다시 구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성령께서는 묵묵히 도와주소서.”
@산동성(山東省) 공묘(孔廟)에서 기도문을 읽다(1916.8.7.한밤중. 이병현)
.시절은 팔월이라 한가위가 다가오고 한밤중 사당 위엔 반달이
희미했을 그 때 공자에게 드리는 그의 기도는 비장했다.
“아, 부자(夫子)이시여! 여섯 해 전 조선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고
지금은 중국마저 일본에게 국토를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조선과 중국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유교가 잘못입니까?
유교 때문에 망국이 들이닥친 것입니까?
하지만 나라를 구원하는 것이 유교 아니겠습니까?
조국의 혼을 부르는 것이 유교 아니겠습니까?
아, 부자(夫子)이시여! 소자 고국에 돌아가면 꼭 나라 구원하고
국혼 부르는 새 유교를 일으키리이다. 성령께서는 묵묵히 도와주소서.
@1910년 大韓이 동양평화의 이름으로 일본에게 강제 병합 당하였다.
.1912년 마지막 靑황제(선통제) 퇴위, 중국의 수천년 왕정이 사라졌다.
.1915년 중국 정부가 일본에게 굴욕적으로 21개조 요구를 수용하여
마침내 일본 세력이 산동성까지 잠식해 들어왔다.
.역사의 거대한 파도는 조선을 쓰러뜨리고, 이어서 중국을 쓰러뜨릴 듯한
찰나였고, 조선과 중국의 공통된 유교문명은 마치 노쇠한 문명의
유아적 죽음을 맞이하는 듯이 보였다.
@당시 상해에서 출간된 박은식의 “한국통사”
.한국의 통사(痛史)와 중국의 통사(痛史)를 함께 비통해한
한중(韓中)의 근대사이자 한국의 국혼을 절규한 간절한 기도문이다
.이듬해 이병헌이 산동성 공묘(孔廟)에 와서 한밤중에 공자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린것이다
@사천 이병헌은 중국의 많은곳을 거쳤다.
.사천 이병현의 공묘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의 첫 중국 여행은 두 해 전 1914년에 시작되었다.
.유교를 종교로서 새롭게 정립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을 안고
京城에서 기차타고 압록강, 안동(安東), 심양(瀋陽), 북경(北京),
곡부(曲阜), 상해(上海), 항주(杭州), 향항(香巷) 등을 다녔다.
.강유위(康有爲)를 만나 공교(孔敎)에 관해 상의하려는 일념에서였다.
.그 과정에서 중국에서 펼쳐진 전통과 근대를 동시에 체험할수 있었다.
.상하이와 홍콩에서 1910년대의 근대 문물을 직접 경험하였다면
중국 강남에서는 고전 속의 역사와 문학을 향유하였다.
.박은식과 동행, 홍콩에서 강유위를 만난 이병헌은 환대와 격려를 받았고
.강유위로부터 연재(淵齋) 윤종의(尹宗儀)의 “벽위신편(闢衛新編)”을
처음 알게 되어 이를 차람(借覽)하기도 하였다.
이병현은 중국에서 발견한 조선의 학술이었다.
@1916년, 사천 이병헌은 다시 중국으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박은식과 함께 다시 강유위를 만난 그는 곡부와 태산(泰山)에 오래
머무르며 최대한 공자에게 집중하였고 공자에게 본심을 기도하였다.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김택영(金澤榮)이 살고있는 남통(南通)이었다.
.남통은 두번째 여행의 종착지인 동시에 두차례 중국 여행의 총결산이다.
.김택영의 도움으로 그곳 한묵림서국(翰墨林書局)에서
그의 여행은 “중화유기(中華遊記)”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중화민국을 체험한 조선 유학자의 여행으로 말한다면 이병헌에 앞서
이상룡(李相龍), 장석영(張錫英), 이승희(李承熙)등의 여행도 있었고,
관련 작품도 있지만, 최초 출판물 “중화유기”가 선하(先河)의 위치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종로상공회, 종로산악연맹(종로구 등산연합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1223.종로상공회 2012년도 송년산행(수락산) (2) | 2023.01.03 |
---|---|
2012-1220.종로상공회 2012년도 송년의 밤 (0) | 2023.01.02 |
2012-1118.종로상공회 속리산(문장대) (0) | 2023.01.02 |
2012-1110.종로상공회(JCA 8기) 춘천 가을여행(레일 바이크) (0) | 2023.01.02 |
2012-1104.종로상공회 가을체육대회 (0) | 2023.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