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6.종로구 등산연합회 한울산악회(북한산 둘레길, 퍼쥬망)
*칠국의 난(한문제)
七國之亂(칠국의 난, 한문제)
@바둑 한 판에서 비롯된 內戰
.한경제(漢景帝) 3년(기원전154년)
.오왕(吳王) 유비(劉?)는 초왕(楚王), 조왕(趙王), 교서왕(膠西王),
교동왕(膠東王), 치천왕(?川王), 제남왕(濟南王)과 결탁하여
공동으로 反亂을 일으킨다.
.도화선은 한경제 유계(劉啓)의 師父 조착(晁錯)에서 비롯된다.
@조착 “삭번책(削藩策)”
.吳王등 제후(왕)들의 봉지(封地)에 직접적인 威脅이 되었다.
.反軍에서 깃발을 내걸고, 兵力을 일으켜 조정을 압박했다
“청주조착, 이청군측(請誅晁錯, 以淸君側”
(“조착을 주살하여 皇帝의 측근에서 간신을 제거해 달라”고 청하다)
@漢景帝(유계)는 장기판의 “卒을 버려서 車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漢景帝(유계)는 조착과 원한이 있던 원앙(전 吳나라 宰相)의 계책을
받아들여, 시중을 巡察한다는 명목으로 恩師 조착을 동시로 유인하여
요참(腰斬)해 조착이 죽었으나 유비(吳王)는 반란군이 물러나지 않고,
스스로 동제(東帝)라 칭하며 皇位를 빼앗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였다.
@칠국의 亂, 결정적인 원인은 “육박(六博)”의 승부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역사상 바둑 한판으로 인하여 일어난 가장 유명한 내란이며,
조착은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장본인이다.
@吳王(유비)는 누구인가? “史記(오왕비열전)”
.吳王(유비)는 한고조(유방)의 형님(유중 劉仲)의 아들이며,
한고조 12년(bc195)에 吳王에 봉해진 제후이다.
.당시 관상쟁이는 유방(한고조)에게 충고하였다
“50년후에 東南에서 반드시 亂이 일어날 것이다”
오왕(유비)에게 “反骨(반골)”이 있다는 뜻이다
@漢景帝(유계)의 태자시절(바둑놀이: 육박)
.吳나라의 世子가 경성으로 가서 漢景帝(유계)를 접견하였는데,
그 동안 태자(유계)가 함께 놀아주면서 “육박” 놀이를 하였다.
.육박(陸博) 혹은 박(博)이라고도 하는데, 가장 오래된 바둑을 말한다
.출토문물에 기록된 육박의 구성물
기국(棋局, 즉 棋盤), 바둑돌, 저(箸, 주사위), 박주(博籌)
*놀이방법은 대박(大博)과 소박(小博)의 두가지가 있다.
서한 및 그 이전에는 대박의 방법이었는데,
효(梟)를 잡으면 이기는 것이다.
육박을 하는 쌍방이 각각 자신의 바둑판에 6개의 돌을 놓아두는데,
그중의 하나가 “효”이고, 나머지 5개는 “산(散)”이라고 부른다.
“저(箸)”를 6개를 사용한다다.
쌍방이 돌아가며 “저”를 던져서,
“저”의 수량에 따라 바둑돌을 옮기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상대방의 “효”를 잡으면 승부가 난다.
.韓非子(한비자) “박자귀효, 승자필살효(博者貴梟, 勝者必殺梟)”
將棋板에서 王을 잡아야 이기는 것과 비슷하다.
@육박을 좋아하던 태자(유계)와 吳나라 世子는 바둑판 결투를 벌인다.
.유비(吳王)의 아들(世子)이 모신 스승은 모두 楚나라 사람이었는데,
性格이 광망하고 오만하며 호승심이 강했다.
.바둑놀이를 하면서 서로 이기겠다고 싸우다보니 태도가 좋지 못하고,
말도 불손하여 황태자(한경제, 유계)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계(한경제)는 화가 내면서 바둑판으로 吳나라 世子를 내려친다.
급소를 맞았는지 世子는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다.
@한문제(5대)는 世子의 영구(屍身)를 吳나라로 보내 葬事지내게 한다.
.유비(吳王)는 분노하여 소리쳤다
“天下는 유씨일가의 天下이다. 長安에서 죽었으면 長安에서 묻어라.”
사람을 시켜 世子의 屍身(영구)를 다시 長安으로 돌려보낸다.
.吳王(유비)와 유계(한경제)간의 怨恨은 맺어지고,
吳王(유비)에게는 謀反을 일으키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吳王(유비)는 태도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炳을 핑계로 가을에 長安으로 가서 皇帝를 배알하는
禮를 행하지 않고 使臣을 보내어 참가하게 하였다.
.漢나라 제후(王)은 매년 皇帝를 만나서 業務報告를 하여야 했다.
周나라 시절부터 시작된 제도는 天子와 제후간의 약속인 셈이다
.제후가 감히 皇帝를 배알하지 않는것은 죽을 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孟子 “제후가 天子를 배알하는 것을 술직(述職)이라고 한다.
한번 배알하지 않으면 爵位(작위)를 강등시키고,
두번을 배알하지 않으면 그 땅을 빼앗고,
세번을 배알하지 않으면 軍隊를 끌고 가서 친다.”
@吳王(유비)는 이미 죽기를 각오한 행동이라고 볼수있다.
.조정은 吳나라 使臣을 구금하고 심문했다.
.使臣은 그저 사실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왕(유비)가 世子를 잃고서 마음속 두려움으로 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문제(5대)는 마음이 인자하였다
“吳王(유비)가 아들을 잃은 고통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오왕(유비)를 회유하려는 생각에서 용서하였다
오왕(유비)에게 선물을 하사하였다
“궤안(벽에 세워놓고 몸을 기대는 방석)과 괴장(拐杖, 지팡이)”
한문제는 파격적인 배려심으로 아량을 베풀었다
“유비는 나이가 많으니 다음부터는 배알하러 오지 않아도 좋다”
.사건은 이렇게 평정되었고,
吳王(유비)는 그후 20년간 조정에 皇帝를 배알하러 가지 않는다.
@吳王(유비)의 유계(한경제)에 대한 怨恨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복수하겠다는 마음과 모반을 일으키겠다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항상 유계(태자)의 자리를 빼앗겠다고 생각을 했다
“유씨의 天下이니, 皇帝도 유씨들이 돌아가면서 해야 한다”
@吳나라는 구리(銅)가 생산되는 바닷가였으며 소금을 만들었다.
.오왕(유비)는 전국각지의 유랑민들을 끌어모아 동전을 만들고,
吳나라에서 만든 동전이 전국으로 유통되어,
吳나라의 국력은 중앙조정에 필적할 만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여 오나라는 국내에서 세금을 거두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면 오왕(유비)는 그들에게 대가를 주었고,
별도로 사람을 사서 일을 시켰다.
명절에는 돈을 풀어서 선비들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왕(유비)은 吳나라에서 명망이 아주 높았다.
거병시에도 유비가 명을 내리자 금새 20만명이 모여든다.
.오나라로 도망쳐 온 인접국가 도망범들도 모두 유비가 길렀다.
주변국가의 관리들이 오나라로 들어와서 체포하려고 하면,
오왕(유비)은 이를 막아주었기 때문에 유비의 은혜에 감격하였으며,
일단 유사시, 오왕을 위하여 기꺼이 견마지로를 다하려 했다.
유비는 금은보물로 다른 제후(왕)들과 대신들을 회유했다.
.이와같이 오왕(유비)는 계속하여 모반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문제(5대) 재위시, 오왕(유비)이 경거망동하지 않았던 이유는?
.첫째, 한문제는 자신(오왕 유비)에게 잘 대해주었고,
.둘째, 反亂을 일으킬 적합한 이유가 없었다.
.당시 조착은 한문제에게 수차례 상소를 올렸는데,
“오왕(유비)의 죄를 물으라”고 요청하나,
한문제는 차마 유비를 징벌하지 못하여 큰화를 키운셈이 된것이
@漢景帝(유계)가 즉위하였다
.조착의 예감은 일찌감치 유비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므로
“하루빨리 삭번(削藩, 번국을 없애는 것)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조착은 漢景帝(유계)에게 충고하였는데,
“吳王(유비)는 오늘 삭번해도 반란을 일으킬 것이고,
삭번하지 않아도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삭번하면 반란을 빨리 일으키고, 그 禍도 작지만,
삭번하지 않으면, 반란이 늦어지지만, 그 禍는 더 클 것이다.”
@조착의 뜻은 단호하였다
“황제(漢景帝 유계), 당신이 유비의 아들(世子)을 때려죽인 이후로,
오왕(유비)은 反亂을 일으키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다.
반란을 일으키는게 늦어지면 질수록 그 禍는 더욱 커진다.
아예 빨리 반란을 일으키도록 한 후에 진압하는게 낫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칠국의 난”의 도화선은 육박이었음을 알수있다.
.조착의 역할이라는 것은 그저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이다.
@서한에 발생한 “七國의 亂”은 어떻게 진압되었는가?
.최종적으로 漢景帝(유계)의 동생인 양왕(梁王) 유무(劉武)가
전력을 다해서 막아내고,
.태위 주아부(周亞夫), 대장군(두영)이 36만명 군대를 이끌고
오왕(유비) 반군의 식량통로를 단절시키고, 3개월만에 평정한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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