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3. 종로구 등산연합회, 한울산악회(백운산 903m)
*2013,2,23,토,09:00~포천 일동 백운산
*解官六條, 청백리, 청맹과니, 亢龍有悔, 過猶不及
解官六條, 청백리, 청맹과니, 亢龍有悔, 過猶不及
@금융감독위원장(김석동)은 임기 1년을 남기고 사표를 제출하였다
“후임 大統領(박근혜 당선인)에게 辭表를 쓰면,
임기직이기 때문에 사표를 수리하기 힘들고 짐이 될것이고,
사표를 안쓰면 새정부가 출범하는데 모양이 안맞을 것이다”
@牧民心書(茶山 丁若鏞)
“선비의 벼슬살이 하는법은 마땅히 棄(버릴 기)를 벽에 써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 봐야한다...”
.언제든지 벼슬을 버릴수 있으니, 쉽게 건드릴수 없는 사람임을
알린 뒤라야 제대로 牧民官 노릇을 할수있다는 警句이다
@牧民心書의 解官六條(해관육조) “벼슬살이 머슴살이”
*첫번째 遞代(체대)를 명심토록 경고하였는데,
주인이 “그만 두라”하면 언제라도 그만두는 것이 벼슬살이이다
때가 오면 미련없이 떠날 수 있도록 평소 장부를 치밀하게 정리하여
후환이 없도록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의미이다
천박한 수령은 관아를 자기집으로 착각하여 오랫동안(평생) 편안함을
누리려 하다가 교체통보가 오면 마치 큰 보물이라도 잃은 듯하고,
현명한 수령은 관아를 여관(잠시 들리는 곳)으로 여겨,
가을 새매가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훌쩍 날아가듯 한다고 비유하였다
*둘째 歸裝(귀장)을 강조하였는데, 떠나는 사람의 이삿짐이 가벼워야 한다
“맑은 선비의 돌아가는 行裝은 초연히 깨끗해서 낡은 수레, 야윈 馬,
상자~장롱같은 것을 새로 만든게 없고,
臨地(임지)에서 생산되는 비단과 주옥이 없어야 한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새로운 물건이 없고,
淸貧한 모습이 옛날과 같은것을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내정자는 야당에서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아름답지 못한 解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안타깝다
“헌법재판관 퇴임(2012년 9월)후 어차피 되돌아 올것이라며
그동안 사용했던 개인물품을 헌법재판소 창고에 보관중이다”
@육적(吳, 三國時代)은 손권 황제시절 淸白吏 忠臣이었다
.명장출신 육손장군의 사촌동생으로 울림의 태수로 임명되었다
육손은 유비를 물리친 대도독(문관 책사)으로 알려졌다
.흑심전(울림태수 관저)을 백성들이 비웃는 노래 때문에 불태운다
“커다란 쥐가 나의 기장을 훔쳐, 큰집을 지었네...”
.상례전(집무실)의 정기적인 상납제도에 부패의 상징이었다
(벽돌+기와: 백성들의 피+땀... 세금늘려+노동력착취)
“재물은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
.貪川(탐천)에서 맹세했던 이유는 “貪慾을 거부한다”는 의식행사이다
.父親의 遺物(탐관오리 명부)을 포함하여 비석(치욕비)을 새긴다
.관리였던 원비가 쌀을 훔치고 10만군 장악하여 역모를 준비하는데,
자사(상관)를 죽이고, 반역하지만 남월국 창업준비를 하던중 사살된다
*육적은 태수부임시 장강에서 해적을 만나 3년후를 약속하였다
3년간 임기만료후, 석별시간과 선물공세를 예상하고
몰래 짐을 꾸려 새벽에 장강을 건너 장안으로 복귀하는데,
뱃사공은 강풍에 전복방지를 위하여 무게추(큰돌)을 싣었는데,
해적들의 습격을 받지만, 무일푼으로 귀환 약속을 지켰다
*관원+백성은 허탈해 하면서, 떠나버린 태수를 향하여 큰절을 올린다
*손권 황제(吳)가 3일후 직접 찾아갔으나 일어나지 못한다
*1496년, 宋나라 선비(번지)가 소주지역 순찰하면서
큰 돌맹이에 “염석” 글씨를 새긴것을 발견하여 대문밖에 전시하였다
약1270년전 부터 전해 내려오는 육적의 “염석”비를 말한다
@靑나라 건륭제는 전문경의 개에게 大將軍 칭호를 하사하였다
*전문경(청백리) 병문안을 갔을때 “개가 왜 사납냐?”고 물었다
“公職者들의 人事請託~뇌물수수가 많은지라, 사나운 개를 키울때
官服입은 公職者만 집에 오면 물어라”교육시킨 것이다
“그 이후, 청탁자들은 개가 무서워 자택에 出入을 못했습니다”...
.忠犬도 검은 관에 입관시킨 황제는 “大將軍” 칭호를 내렸다
.개가 무서워 조문객도 없었고, 전문경의 遺言으로 독살시켜 합장하였다
*유통훈은 棺을 싣고 다닌 청백리이다
政敵이 세워준 고향의 기와집을 허물다(탐관으로 평가를 우려했다)
*황희의 큰아들의 대궐집 공사...대문을 잠근다(큰 아들의 반성)
“여기는 큰 대궐이 아니다, 잘못 찿아오셨군요...”
@조선시대, 519년간 청백리(218명)를 배출했다
.호조(戶曹: 經濟)~공조(工曹: 建設)~형조(刑曹: 법) 부서가 대부분이다
.형조刑曹: 法 집행(民本主義的 형조문화는 추상같이 公平無私하게 집행)
.高麗에는 廉吏(염리)~良吏(양리) “청렴 검소하고 좋은”라고 불렀다
.淸白吏의 칭호는 숙종(1695년)시절 영의정 남구만이 공식화한다
살아있는자는 廉謹吏라 칭하며, 죽은자는 淸白吏라고 불렀다
.典故大方에는 219명, 淸選考에는 186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맹사성,유관,이현보,이황,이원익,김장생,이항복...
*조선 6조판서 역임한 선비는 총29명이다(5명이 청백리로 추존되었다)
황희(세종)~청음 김상헌(선조, 先안동김씨)~오상(중종~선조)
~이세화(숙종, 인현왕후 폐출반대, 귀향)~정종영(명종)
@청맹과니(靑盲)란? “당달봉사(눈뜬장님: 정치에 등을 돌리고 처신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그래봐도 끄떡없다)
1)조운흘(강릉부사): 광주에 은거(조선초기)
.첩은 진짜 장님이 된줄 알고, 그의 아들과 불륜을 즐겼다
.몇년후, 조선이 안정되자 눈을 비비면서 눈병이 낳았다면서
.첩을 강물에 던져 죽여버린다
2)이맹권(세조정란 생육신), 선산 강정리로 은둔
.30년간 청맹과니, 가족들도 임종시에 눈뜬 장님이었음을 알았다
.가세가 기울어 “수저가 부족해 돌아가며 식사를 했다”
.그는 임금(수양대군)쪽으로 앉지도 않았다
3)구인문(세조정란, 집현전 학자)은 해미(서산)에서 청맹을 했다
.성삼문이 찾아와 문안을 하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장님이 사용하는 지팡이를 짚고, 온천 나들이도 했다
4)靑坡 奇虔(청파 기건, 세종~세조) 淑明女大 청파동(靑坡) 유래?
.제주목사 시절, 海女의 노고때문에 3년간 전복+해삼을 먹지않았고,
연안부사 시절에는 붕어찜을 사양했다
.청렴결백+강직한 처신으로 世宗의 신임을 받은 상민출신 대사헌,
.청파동(靑坡)에서 초헌(가마)을 멀리하고, 창덕궁까지 걸어다녔다
.단종(端宗)이 폐위되자,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장님행세를 하였다
.오고초려(五顧草廬), 수양대군이 직접 5번 찾아갔지만 거절하였다
일부러 바늘로 눈을 찔러보았지만, 눈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항용유회(亢龍有悔)
@2012년 임진년(60년만에 돌아오는 黑龍의 해)
.오방위로 따진다면 다섯 색을 입은 오룡(五龍)중의 하나이다
“청룡(靑龍)~적룡(赤龍)~황룡(黃龍)~백룡(白龍)~흑룡(黑龍)”
.흑룡의 해? “길운 트인 해라고 말하지만 그 반대 의미가 더 많다”
.흑룡은 사해용왕(四海龍王)의 하나로 바다에서 건너온 해룡(海龍)이다
.壬辰倭亂(1592년)도 黑龍의 해였다
@항용유회(亢龍有悔)은 周易에서 등장한다
.항룡(亢龍)이란? 하늘 끝까지 오른 龍(昇天)을 칭한다
“맨 꼭대기에 오른용이 이젠 내려올 때가 되었으니 후회할 일만 남았다”
더 이상 오를수 없는 龍이 눈물을 흘리는 회한의 눈물이다
龍(왕)은 昇天해야 어울린다.
높은 지위에 있을때,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삼국사기~백제본기 “黑龍이 나타난후 王이 돌아갔다” 말이 자주 나온다
龍은 王을 뜻하고, 昇天은 崩御(붕어, 황제의 죽음)를 의미한다.
.어찌보면 世上의 變化를 예고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잠긴 龍이니 기용하지 말라는 잠룡(潛龍)이 되느냐?
천하를 한 번 휘젓는 역동적인 비룡(飛龍)이 되느냐?
최소한 살아있다는 증명을 하기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현룡(現龍)이 되긴 해야겠지만,
조금 뜬다고 자만에 빠진 항룡(亢龍)이 되선 안되겠다”
@율리시스 카이사르(시저)는 부루투스(수양아들, 養子)에게 살해되었다
.로마 공화정을 무력화시키고, 종신 집정관으로 막강한 권력자였다
@리콜라이2세(러시아제국 마지막 황제) 일족은 몰살 당하였다
.러일전쟁(1917년)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졌고
볼세비키 혁명으로 비참한 최후를 당한다
過猶不及(과유불급)
@過猶不及이란?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소박한 교훈이다
.지나친 욕심이 빚어낸 고독한 현장은 수없이 많이 볼수있다
“오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
*花無十日紅 權不十年(화무십일홍 권불십년), 10년을 넘지 못한다
.정상에 오른뒤에는 하산을 준비해야 후환이 없는것이다
.전두환, 노태우는 수천억원의 정치자금(통치자금)으로 구속되었다
@신덕왕후 姜씨(태조 이성계)의 지나친 욕심으로 곤혹을 치른다른다
.최초 정릉(貞陵)은 정동(貞洞)에 있었으나,
.태종 이방원, 貞陵으로 강제 이장하여 200년 동안 묘비도 없었다
.종묘에 배향하던 초겨울(1669,11,1)에 정릉(貞陵)일대에
.세원지우(洗寃之雨), 한이 맺힌 때아닌 겨울비가 되어 내렸으며,
아직도 쓸쓸하게 혼자서 정릉(貞陵)에 뭍여있다
@문정왕후(제2계비, 소윤, 파평尹씨), 泰陵(태릉)은 고독하기 그지 없다
.예송논쟁으로 말도 많았던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로
서삼릉에 모셨던 중종을 강남 宣陵(선정릉)으로 강제 이장시켜,
결국, 죽은후 부부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욕심이 화근이 된것이다
.宣陵(선릉)에는 부모(성종, 정현왕후)가 다정하게 잠들어 있으나,
욕심많은 며느리 덕분으로 靖陵(정릉)에는 아들(중종) 혼자뿐이다
.중종(靖陵, 정릉)는 서삼릉에 장경왕후(대윤)와 합장묘이었으나
선릉(성종, 삼성동 봉은사옆)으로 남편(중종, 정릉)을 이장했지만,
본인이 죽은후(65세), 혼자 泰陵에서 잠들게 된다
.선정릉(중종)~온릉(단경왕후)~서삼릉(장경황후)~태릉(문정왕후)
@盲人瞎馬(맹인할마)
“장님이 눈먼 말을 타고 야밤에 냇가를 건너는 것처럼 위험하다(晉書)”
.환현(桓玄): 창끝을 쌀속에 담그고, 다시 칼로 불을 때어 밥을 하는것
.은중감(殷仲堪): 100세 노인이 나무에 오르는것(눈병으로 애꾸눈)
.고개지(顧愷之): ?
.참군: 장님이 밤중에 눈먼 말을 타고 깊은 연못에 가는것과 같다
.은중감: 그렇다 “무모하고 위험해, 무서운 일이야...”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종로상공회, 종로산악연맹(종로구 등산연합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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