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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산악회

2013-0309.청운산악회 예봉산

by 조흥식 2023. 1. 7.

2013-0309.청운산악회 예봉산(팔당역)

*천하에 인재가 없다니요?     

*팔당역예봉산~예빈산~팔당역(18), 카페펠리체(이경순)

  *오태섭님, 정지용님, 조숙경님 자녀 대학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생신 축하: 김종태님(: 1, 10), 남구현님(: 1, 11)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창립행사 예비회원 초청오찬

 

 

 

천하에 인재가 없다니요?

@인재에 대한 갈증,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하고,  

 .설사 인재를 알아보았더라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나라 한유(韓愈)잡설(雜說)”에서 천리마(千里馬)의 비유를 들어

    일갈한 뒤로 이런 병폐에 대해 사람마다 인식은 하게 되었지만,

    정작 고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뒤 朝鮮에도 문제는 제기되고 있었다.

  .임금은 늘 신하중에 쓸만한 인재가 없는것을 근심하고,

    신하는 늘 임금이 인재를 충분하게 등용하지 못하는것을 근심한다.

    그 때문에 君臣이 서로 제회(際會)하는것은 옛날부터 어려웠고,

    지치(至治)의 성대함은 역대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10가구만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신(忠信) 한사람이 있는 법이거늘,

   .드넓은 천하에 어찌 인재가 없다고 할수 있겠는가?

   .문제는, 현자(賢者)는 자신을 추천하기를 꺼리고,

     임금과 재상은 인재를 알아보는 총명함이 없다는것에 있다.

   .나라의 소하(蕭何), 조참(曹參)

     나라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나라, ()나라에

     버려졌던 인재였지만 흥왕(興王)의 치적을 이루게 하지 않았던가?

 

@깊은 산, 큰 못속에 자신의 광채를 감추고 세상을 개탄하면서,

  .불우하게 죽어간 자가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이좌거(李左車)의 계책이 조()나라에서 채택되었다면,

    정형(井陘)의 대첩(大捷)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정형(井陘)의 대첩이란?

    “()나라 한신(韓信)이 하북성(河北省)에 있는 험한 요새인

     정형구(井陘口)에서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싸워 조()나라에

     대승을 거두었던 고사를 가리킨다(史記 淮陰侯列傳)”

   .그 뒤에 한신(韓信)이 제()나라와 전쟁을 할때,

      용저(龍且)에게 유세한것이 또한 매우 기책(奇策)이었는데,

      그것이 채택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신이 제나라를 평정하고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하고 공을 이룰 재주를 지닌자가 한신 이외에는

      마땅히 없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도,

      오히려 이 정도로 대단한 계책이 있었으니

  .은거한 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인재가 이루 셀수없이 많았고,

      그들 중에서 세상에 나와 큰일을 한 자는

      다만 백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현인을 구하는 것에 급급해 하면서,

      오직 자신의 총명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는지,

      성의가 부족한 바가 있는지 두려워할 뿐이요,

      더러 좌우의 측근 무리들이 총명을 가리는 경우가 많더라도

      천하에 인재가 없다고 단정하여

       현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해이해 진 적은 없었다.

 

@三代이후 인재의 왕성함이 나라 때보다 더한 시대는 없었다.

   .두 정씨(程氏)2)나 염계(濂溪)3)는 모두 왕을 보필할 인재이면서

      경륜(經綸)의 솜씨를 지닌 사람들인데도,

      신종(神宗)은 대부분 초야에서 한가로이 노닐도록 내버려두었다.

 

   *두 정씨(程氏)는 누구인가?

     “송나라 대학자, 성리학의 새 지평을 열었던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 형제를 가리킨다.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주자(朱子)의 학문과 병칭하여 정주학(程朱學)이라 한다(二程全書)”

 

   *염계(濂溪)는 누구인가?

    “송나라 대학자, 신유학의 비조(鼻祖)였던 주돈이(周敦頤)의 호이다.

     저술에는 태극도설(太極圖說), 통서(通書)가 있으며,

      인품이 고결하고 흉금이 탁 틔어, 당시 사람들이 비가 그친 뒤의

      맑은 하늘의 모습(光風霽月)과 같다고 칭송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촘촘한 양탄자 위에서 더불어 논의하고 자문한 자들은

      왕안석(王安石)의 잔당인 포종맹(蒲宗孟), 왕규(王珪), 채확(蔡確)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 나이가 노년에 접어들어, 조정은 날마다 어지러워지고,

      사업의 성취는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묶으려는 것처럼

      허무하게 된 뒤에야 마침내 돌이켜보고 망연자실하면서

      조회에 임하여 탄식을 발하였다.

   .그러나 그때에도 정작 그렇게 된 연유를 돌이켜 찾을 줄은 모르고,

      마침내 말하기를, “천하에 인재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한자(韓子)4)가 이른바

      “정말 천리마(千里馬)가 없는 것이냐?

       아니면 천리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라는 경우이다.

       하늘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아서인가?

        어찌 그리 미혹됨이 심한 것인가?

 

  *한자(韓子) 는 누구인가?

      “()문인,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한유(韓愈, 768~824)이다

       ()는 퇴지(退之), 시호(諡號)는 문공(文公).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고문운동을 주도하였고

       변려문(騈儷文) 위주의 기교적인 산문을 타파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

 

@중용(中庸)9가지 큰 법(九經)에서

   .수신(修身)을 첫 번째로 삼고, 현자를 높이는 것을 그 다음에 놓았다.

      수신이라는 것은 현인을 등용하는 근본이다.

   .현자를 높이는 절목은 4가지를 두었으니,

      참소하는 자를 제거하는 것~여색을 멀리하는 것~

      재화를 가벼이 보는 것~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신종(神宗)은 현인의 등용에 뜻이 있었으면서도

      참소하는 자를 제거하지 못하였고,

      좋아했던 자들은 참소하거나 면전에서 아첨하는 무리들 뿐이었으니,

      그 실덕(實德)이 지극하지 못했던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선조(宣祖)의 명재상, 서애(西厓) 유성룡이 중국 역사책을 읽다가

   “천하에 인재가 없다신종(神宗)의 말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다

   “()나라와 서하(西夏)의 빈번한 침략 속에서,

      왕안석(王安石)을 중심으로 한 신법당(新法黨)을 중용하여

      부국강병(富國强兵)과 국가 제도 전반의 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던 신종 황제이지만,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인재가 부족하다는 탄식을 내뱉은 것이다

 .서애는 그에 대해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감식안이 문제였음을 지적하였다.

      신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인재설(人才說)”이라는 글에서도

      서애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나라 대문호(大文豪)인 한유의 잡설(雜說)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은 뒤라야 천리마가 있는 법이니,

    천리마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백락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백락은 누구인가?

     천리마의 감정에 조예가 깊었던 전설상의 인물이다.

     지나가다가 돌아서서 잠깐 눈길만 주어도 말값이 순식간에

     몇배로 뛰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한유는 그런 백락같은 이를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천리마라도 그저 평범하게 부려지다가 죽어갈 뿐이라고

     탄식하면서, 말미에서 반문하였다.

  “정말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천리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서애는 여기에다 추가적으로 실제 인물들의 사례를 제시하고,

   .마지막에서 인재를 제대로 대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지적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국난극복의 영웅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적극력으로

      추천하였던 사람이 서애 류성룡이였음을 상기하면,

      문인의 상투적인 글장난이 아님을 알수있다.

  .왕안석을 인재로 보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비록 개혁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사마광(司馬光)의 구법당(舊法黨)에 맞서 한 시대를 경영했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애는 인재를 버려두고

      그를 등용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였다.

   .주자학(朱子學) 일변도의 흐름속에서 양명학(陽明學)에도 당당히

      관심을 가질 정도로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던 서애였지만,

      왕안석에 대해서만큼은 주자(朱子)와 그를 존숭하는 학자들이

      가졌던 부정적인 인식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2002년 여름, 월드컵 광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히딩크(이방인 축구감독)는 과감하게 능력위주 선수를 선발하였고,

    결국, 맹활약으로 월드컵 4강신화를 창조하였다

   .선수 대부분은 그동안 국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선수들이었다.

   “앞으로는 히딩크 식으로 과감하게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하겠다.”

 

@()나라 심문규(沈文奎)의 충고

   “하늘은 한 시대가 넉넉히 쓸수있을 만큼 인재를 낸다

   .인재는 언제나 존재한다.

    선거철마다, 인사철마다 인재영입을 외치며 부산을 떨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서애(류성룡)의 문장은 맹자(孟子)의 문체를 잘 배웠다고 한다.

   .맹자와 장자(莊子)는 옛날 문학 지망생들의 필독서였다.

   .어떤 학동이 맹자를 삼천번 읽으면 문리(文理)가 나서 머리에서

    “툭탁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스승의 말을 믿고,

     절에 들어가 삼천번을 읽고 기다렸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화가 나서 스승에게 따지는 편지를 보냈더니,

  .스승은 답장을 보냈는데

     “보아라, 네 편지의 문장이 모두 맹자의 말이 아니더냐.”

   .제자는 그제야 머리에서 툭탁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학동이 바로 서애(류성룡)라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맹자의 문체를 훌륭하게 배웠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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